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잠언 29장 주석 성경말씀] 의인, 왕, 자녀징계(잠 29:1-27)

성령의 능력 2023. 3. 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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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9장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주변 이웃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한다. 악인이 하나님앞에서 죄를 지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올바르게 살라고 말씀한다. 자녀가 잘못을 하면 징계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하라고 말씀한다.

 

의인, 왕, 자녀징계(잠 29:1-27)

 

[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본문은,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자주 책망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왜냐면 사람이 지적을 받고 책망을 들을 때 잘못을 고치고 의와 온전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이 곧은 사람, 즉 그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의 교만과 완고함을 나타낸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것은 악에 악을 더하는 일이며 자신의 심히 죄악 됨을 증거할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그러했다. 신명기 9:6- 24는 그들의 광야 생활을 증거하기를, 목이 곧고 항상 거역하고 하나님의 법을 속히 떠났다고 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의 모습이며 우리의 남은 죄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만, 마침내 징벌하실 것이다. 욥기 21:13, “[악인이]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갑자기] 음부[지옥]에 내려가느니라고 말한다. ‘피하지(마르페 치료’) 못한다는 말은 회복치 못한다는 뜻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 멸망에서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가 병에 걸렸으면 낫지 못하며 파산하였으면 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3:19). 우리는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책망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겸손히 달게 받고 힘써 회개하고 고치자.

[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본문은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의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사는 자들이다. ‘많아지다는 원어(라바)많아지다, 커지다, 위대해지다는 뜻이다. 정치계, 법조계, 교육계, 경제계, 예술계 등 사회의 각계각층에 의인들이 많아져야 하겠다. 그러나 먼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그 직분자들 가운데 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순결한 교회를 원하신다(5:26-27).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불의와 불법이 없고 악과 거짓이 없고 싸움과 분열이 없고 서로 위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인격적 교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 사회에서는 그런 이상적 교제를 기대할 수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교회만큼은 그런 교제가 실현되어 사랑과 기쁨과 평강이 넘쳐야 할 것이다.

본문은, “[그러나]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고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는 자이다. 그는 불경건하고 교만하고 거짓되며 탐욕적이다. 또 그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며 남을 해친다. 이 세상에는 이런 자들이 때때로 지도자들이 된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이런 자들이 교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외식하며 탐욕적이고 부정과 불법이 가득했다(23:25, 28). 그러나 그런 때에 그 백성들은 탄식할 것이다. 경건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이성과 양심에 반대되는 일들이 많아지고 의인들이나 가난한 자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또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하였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의인이 되고, 또 우리 사회에, 그리고 먼저 우리 교회에, 의로운 자들과 의로운 직분자들이 많아지기를 위해 기도하자.

[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본문은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고 말한다.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경건하게, 의롭게, 선하게, 진실하게 사는 것이며 그것이 지혜이다.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할 것이다. 경건한 아버지는 자녀가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고 또 아버지들은 대개 자녀가 도덕적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자녀가 경건하고 정직하고 착하고 진실하게 살면, 그것은 아버지의 기쁨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계명 안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도 들어 있으므로 자녀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하면 부모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창기[창녀]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할 것이다. 창기는 돈을 위해 자기 몸을 파는 자이다. 그러므로 창기를 사귀면 재산을 탕진할 것이다. 잠언 6:25-26,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고 말하였다. 창기를 사귀는 자는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고 부모를 섬길 경제적 힘도 잃고 때로는 부모의 재산까지도 탕진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자기 아내로 만족하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3-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고 말하였고, 베드로전서 2:11, “영혼을 거스려[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자. 우리는 결혼을 존귀하게 여기며,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행치 말고 절제 있게 살자.

[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본문은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한다고 말한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인데,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은 공의로 다스리는 것이다.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며, 계명의 내용은 하나님만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 등이다. 왕이 나라를 공의로 다스리면 그 나라가 견고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교만하면 그의 계명을 거역하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탐심을 가진다. 불의는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시키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결국 나라를 쇠약케 할 것이다. 그러나 왕이 불의를 제거하고 공의를 세우면 잘 될 것이다. 공의는 가정과 사회를 견고케 하여 서로 돕고 돌아보는 사랑과 평화가 있는 곳이 되게 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라에 복을 주셔서 그 나라를 견고케 하실 것이다.

본문은, “[그러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킨다고 말한다.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라는 원어(이쉬 테루모스)예물의 사람,’ 즉 예물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물이 커지고 불순한 뜻이 담기면 뇌물이 된다. 왕이 예물 혹은 뇌물 받기를 좋아하면 신하들은 왕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해 자기들도 뇌물받기를 좋아하게 되며, 그러면 그 나라는 뇌물 왕국이 되고 도덕적 해이가 심하고 부정부패가 많은 혼란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또 그런 나라는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는 일에는 인색하고 지도자들이나 백성이 사치하고 연락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공의의 사람이 되자. 또 우리는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에 공의로운 직분자들이 많기를 위해 기도하자.

[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본문은,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아첨은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부정직하거나 지나친 칭찬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첨한다는 원어(칼라크)부드러운 말을 한다는 뜻이다.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 곧 그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진실한 칭찬이라도 사람을 교만케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잠언 27: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말했다. 하물며 부정직하고 지나친 아첨의 말은 상대방을 교만케 만들고 자신에 대해 과대평가하게 만들고 자신의 부족을 보지 못하고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그로 하여금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거짓된 입맞춤도 행동으로 하는 아첨이다. 그러므로 잠언 27:6,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물론 이웃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아첨하는 말로 하지 말고 진실한 말로 해야 한다. 또 필요한 때는 충고와 경책도 해야 한다. 잠언 28:23,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1, 14에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교훈하였고, 히브리서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교훈하였다. 칭찬, 특히 아첨 즉 부정직하고 지나친 칭찬이 이웃을 시험에 들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인 줄 알고, 우리는 아첨하는 자가 되지 말자.

[6]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본문은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악인은 악하게 행하며 범죄한다. 그러나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올무나 덫은 새나 짐승을 잡는 도구이다. 올무가 된다는 것은 속박을 당하고 종이 되고 결국 죽는 것을 말한다.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 즉 스스로 죄의 종, 마귀의 종, 슬픔과 두려움의 종이 되게 하고, 사망의 종, 멸망의 종, 지옥의 종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시편 7:15, “저가[악인이]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고 말한다. 애굽 왕 바로는 계속하여 강퍅하게 행하다가 장자까지 죽는 재앙을 당했고 결국 멸망하였다. 파사 왕 아하수에로의 악한 신하 하만은 자기가 만든 높은 나무 장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고, 주 예수를 판 가룟 유다는 목매어 창자가 터져 죽었다.

본문은 “[그러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고 말한다. 의인은 범죄해도 즉시 회개하고 돌이킨다. 경건한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지적과 책망을 들었을 때 즉시 회개하였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째 울 때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의인은 회개할 뿐 아니라, 노래하고 기뻐한다. 의의 길에는 기쁨과 평강이 넘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며 성령의 열매이다(5:22).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14: 17). 마게도냐 교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었다(고후 8:2). 사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시련 중에서도 크게 기뻐하였었다(벧전 1: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교훈하였다(4:4).

우리는 모든 악을 다 버리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만 믿고 의의 길만 걸어가자. 또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으로 항상 기뻐하자.

[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

본문은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준다고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웃 사랑과 구제를 포함한다. 가난한 자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사정이 많겠지만, 의인은 그들의 사정을 알아준다. 그는 어떤 사건을 판단할 때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거나 사사로운 이익을 따라 하지 않고, 성경적, 이성적, 양심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하며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동정하고 돕는 것이다. 의로운 욥은 말하기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査實)하여 주었다고 하였다(29:15-16). 시편 41:1,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고 말한다. 주께서는 마지막 날에 의인들이 주의 제자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굶주리거나 헐벗거나 나그네 되거나 병들거나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았다고 칭찬하시며 천국으로 영접하실 것이다(25:35-40).

본문은 “[그러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무시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하는 자이다. 그는 공의에 대한 관심이 없고 이웃 사랑과 구제에도 관심이 없다. 그는 교만과 욕심이 있고 남을 미워하고 속이고 해치며 파괴한다. 그러나 그 결말은 멸망이다. 잠언 28:27“[가난한 자를]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고 말한다. 주께서도 마지막 날에 악인들이 제자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굶주리거나 헐벗거나 나그네 되거나 병들거나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지옥의 형벌을 선언하셨다(25:42-45). 우리는 구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함으로 의인으로 살아가자.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자가 되자.

[8] 모만(侮慢)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본문은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한다고 말한다. ‘모만한이라는 원어(ןוֹצ󰗚)조롱하는이라는 뜻이다. 모만한 자는 교만하여 남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한다. 교만은 명예심 즉 자기를 높이려는 욕심이다. 거기에서는 다툼만 나온다. 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교회 안에서도 교만한 자들이 있으면 다툼이 있고 무질서와 혼란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도 자기들 중에서 누가 더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투었다(20:24; 9:34; 22:24). 그러므로 성경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한다(2:3).

본문은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슬기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결코 악을 행치 않는 자이다. 그런 자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한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회의를 하며 다수결 원칙을 말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수의 의견에 소수가 따라줌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거기에는 겸손과 인내와 양보심이 필요하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할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크게 다투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며 겸손히 대답함으로 그들의 노를 풀었었다(8:1-3).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하고, 또 잠언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남을 조롱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자. 또 그런 자가 있으면 책망하자. 우리는 온유와 겸손과 인내심을 가진 지혜자가 되자.

[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본문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거룩하게, 의롭게, 선하게, 진실하게 사는 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교만하게, 악하게, 거짓되게 사는 자이다. 그는 불효하고 남을 미워하고 죽이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탐낸다.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라는 구절은 원문에 그가 노하든지 웃든지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그가지혜로운 자를 가리킨다면, 이 구절은 그가 미련한 자를 날카롭게 책망하든지 부드럽게 말하든지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를 무시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 다툼은 그침이 없을 것이다. 만일 여기의 그가미련한 자를 가리킨다면(NASB, NIV), 이 구절은 그가 감정을 드러내면서 다투든지 아니면 상대방을 비웃든지라는 뜻일 것이다. 미련한 자는 지혜자의 말로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다툼은 그침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가 미련한 자와 다투면, 미련한 자의 미련이 없어지고 미련한 자가 변화받기 전에는 그 다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할 일을 꾸몄다.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동원했고 형식적인 재판을 하였다. 그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함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압박하여 예수를 정죄케 하게 하였다. 그들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예수를 죽이려는 그들의 결심을 교묘하게 실행하려 할 뿐이었다.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지혜자가 되자. 또 우리는 미련한 자와 다투면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는 줄 알고 미련한 자와 다투지 말자.

[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본문은,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고 말한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원문은 피들의 사람들이라는 말로서 다른 사람의 피를 많이 흘리는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명시된 대로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셨지만, 악인들은 그의 계명을 쉽게 범하며 남을 미워하고 죽인다. ‘온전한 자라는 원어()흠 없는 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성심으로 순종하는 성도를 가리킨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온전한 자를 미워한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자신들의 삶과 너무 다르고 그때문에 자신들의 죄악됨이 더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움은 마귀적 성품이다. 미움은 곧 살인이다. 요한일서 3: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고 천국을 확신하기 때문에 육신의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10:28).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는 구절(NIV도 그렇게 번역함)그러나 정직한 자들은 그의 생명을 염려하느니라”(KJV, NASB)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직한 자들’(원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들, 즉 경건하고 선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의 생명이라는 말은 온전한 자의 생명을 가리킨다고 본다. ‘찾는다는 원어(바카쉬)는 보통은 죽이려고 찾는 것을 의미하지만, 본문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고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찾는 것을 가리킨 것 같다. 경건한 요나단은 다윗을 지키려고 애썼고(삼상 19-20), 경건한 오바댜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겨 보호하였다(왕상 18:3-4).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지키려 애썼다(16:4). 우리는 정직한 자, 온전한 자가 되자. 또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해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의 생명을 아끼고 지키고 보호하자.

[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본문은,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낸다. ‘그 노를 다라는 원문(콜 루코)그의 모든 영(심령)’이라는 말이다. 원어에 이라는 단어(루아크)심령, 의향, 기분, 감정, ()’라는 뜻도 있다(BDB). 영어성경들은 생각’(mind)(KJV), ‘기분’(temper)(NASB), ‘’(anger)(NIV) 등으로 번역하였다. 사람이 자기의 심령을 다 드러내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 심령과 감정을 다 드러낸다. ‘다 드러낸다는 말은 필요한 때나 적절한 때가 아닌 때에 조심 없이 자기 감정을 다 드러낸다는 뜻이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선하지 않다. 어떤 때는 자신이 원치 않는 나쁜 감정, 남을 미워하는 감정, 괜히 짜증스러운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모든 감정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고 다 덕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것을 다 드러낼 필요가 없다.

특히 화가 났을 때 사람은 자기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한다고 말한 것이다. 잠언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의 마음, 생각, 의향, 기분, 감정, 특히 노한 감정을 억제한다. 그는 꼭 필요한 때, 적절한 때에 그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심령과 기분과 감정, 특히 노한 감정을 통제하여 남에게 유익을 끼칠 때에만 나타내자. 자기 절제심과 지혜를 가지자.

[12]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니라.

본문은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니라고 말한다. 관원이 거짓말을 듣고 따르면 그를 섬기는 자들은 악을 포용하고 점점 악하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선한 척하지만, 실상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이 많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관원은 사람들의 거짓말을 분별하고 거짓말에 대해서는 엄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진실이 있는 나라, 진실을 중시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멸망기의 이스라엘은 거짓이 만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다.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9:4-6).

그러나 거짓은 마귀의 죄악이며(3; 8:44) 9계명에 정죄된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미워하신다. 잠언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윤리의 기본은 의와 사랑과 진실이며, 의와 사랑은 진실에 기초해서 권장되어야 한다. 진실이 존중되는 사회는 악을 제재하고 징벌할 수 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12:9).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말하였다(4:25).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우리는 그것을 용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과 의와 선과 진실을 굳게 붙들자.

[13] 가난한 자와 포학[국한문 성경은 포악’(暴惡)]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본문은,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고 말한다. ‘포학한 자라는 원어(테카킴)압제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본문에서 포학한 자는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부자들을 가리킨 것 같다. ‘섞여 산다는 원어(니프가쇼)서로 만난다는 뜻이다(BDB). 세상에는 가난한 자와, 부요하며 압제하는 포학한 자가 섞여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인격과 도덕성이 다양하고 재산 정도도 그러하다. 세상을 만드신 영원자존하신 하나님께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다 만드셨다. 잠언 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말하고, 또 욥기 31: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자가 하나가 아니시냐?”고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셨다. ‘은 생명과 지식을 가리킬 것이다. 사람은 태양빛의 도움으로 사물을 잘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또한 이성적 지식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나 악한 자를 구별치 않으시고 각양의 좋은 것들을 그들에게 주셨다(5:45; 1:17).

그러므로 부자나 권세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하며, 잠언 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고 한다. 사람은 남을 시기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조물주의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생명과 지식을 주신 줄 깨닫고, 남을 무시하지 말고 특히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자.

[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본문은,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한다. 옛시대에 왕은 통치자이며 동시에 재판관이었다. ‘성실히 신원한다는 원어(쇼페트 베에메스)진리로 (혹은 진실하게) 재판한다는 뜻이다. 진리의 재판, 진실한 재판은 법과 이성과 양심에 따라 공의롭고 공정하게 재판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왕은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그들은 때때로 부자나 권세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다. 물론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도 말아야 하지만(23:3), 가난한 자들이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한다든지 해를 당하지 않도록, 왕은 바른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은, 왕이 가난한 자를 진실하게, 공정하게 재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잠언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고 말하고, 잠언 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 왕위가 영원히 견고케 되는가? 왕이 법에 충실하면 그 나라는 질서 있는 나라가 되고 안정을 얻을 것이다. 또 백성들은 그 왕을 지지할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이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에 왕이 이성과 양심에 맞게 공의롭게 재판하면 백성은 그것을 기뻐하고 그 왕을 지지하고 따를 것이다. 또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공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런 왕과 그런 나라를 복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한다. 왕이 의로우면 나라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평안하였고 왕이 악하면 반역과 사회적 혼란이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법과 이성과 양심에 따라 통치하도록 기도하며, 또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만 살자.

[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본문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한다. ‘채찍’(쉐벳)를 가리킨다. 본문은 자녀 교육의 방식에 대해 체벌의 필요성을 말씀한 것이다. 자녀에게 왜 체벌이 필요한가? 그것은 인간 본성이 무지하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악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8:2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17:9). 주께서도 사람의 마음에서 각양의 죄악들이 나온다고 말씀하셨다(15:19-20). 그러므로 교훈이 필요하고 책망과 매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어른에게도 책망의 교훈이 필요하고 징계의 고난이 필요하다.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한다. 성경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잠언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했다. 또 잠언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고 말하였다.

본문은 자식을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이 어미를 욕되게 한다고 말한다. 임의로 하게 버려둔다는 것은 타고난 본성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는 뜻이다. 사람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본성대로 내버려두면 범죄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징벌을 받게 될 것이며, 그것은 부모에게 고통과 수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좋은 자녀가 되자. 또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수치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징계로 잘 교육하자.

[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본문은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고 말한다. 천국은 의인들만 있는 곳이며 지옥은 악인들만 있는 곳이나, 세상은 의인들과 악인들이 섞여 살고 있는 곳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그를 무시하고 거역하고 악을 행하는 자이다. 그는 십계명을 어기는 자이다.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 ‘라는 원어(페솨)법을 어기는 것을 가리킨다. 악인이 많아지면,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 많고,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탐욕이 많은 사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고 성실히 지키는 사회는 의와 도덕성이 있는 사회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의 법을 지킴이 없는 배교적인 사회는 악인들이 많고 죄가 많은 사회이다. 노아 시대가 그러하였다. 그때에 사람들은 음란하였고(6:2) 강포하였다(6:11, 13). 소돔과 고모라 시대도 그러했다. 그때에 사람들은 매우 음란하였다(19:4-7). 가나안 일곱 족속들의 시대도 그러했다. 그들은 매우 음란하였다(18). 하나님께서는 그런 시대들에 그 악한 자들에게 직접 개입하셔서 그들은 엄하게 심판하시고 징벌하셨다.

본문은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고 말한다. 악인들은 망할 것이다. 시편 1:6,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들은 악인들의 멸망을 볼 것이다. 시편 37:34,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시편 58:10, “의인은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시편 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망함을 성도에게 보이시는 까닭은, 성도에게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존재와 공의의 통치를 확신시키시기 위해서, 또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을 증거케 하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의인들의 회가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바른 교훈과 훈련 받기를 힘쓰자. 또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기도하자.

[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본문은 네 자식을 징계하라고 말한다. ‘징계하라는 원어(얏세르)징계하여 바로 잡으라는 뜻이다. 부모는 자기 자녀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필요할 때는 매도 때리고 바로 잡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특히 잠언을 통해 자녀 징계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다. 잠언 12: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본문은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면 자녀가 부모를 평안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자녀가 악하게 살면 부모에게 근심과 고통이 될 것이나, 자녀가 징계를 받고 바른 인격, 선한 인격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부모의 근심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징계를 통해 좋은 인격이 된 자녀는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줄 것이다. 자녀가 잘 되지 못하면 부모에게 슬픔과 근심이 많을 것이지만, 자녀가 잘 되면 부모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7: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23: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모님께 평안과 기쁨을 드리는 좋은 자녀가 될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자녀들을 바른 교훈과 징계로 잘 교육하자.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본문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묵시라는 원어(카존)보여진 것, 이상(異像, vision)’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것은 오늘날 성경적 설교나 성경적 교훈을 가리킨다. 묵시, 곧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성경적 설교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게 될 것이다.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기강이 풀어지고 경건과 도덕성이 해이해진다는 뜻이다. 사사 시대가 그러하였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실한 강론도, 실행도 없었다고 보인다. 그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이 각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한 것이었다(17:6; 21:25). 그 결과, 우상숭배와 음란 풍조가 많았다(17-19).

사무엘이 어린 때에도 그러하였다. 사무엘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異像, 카존)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말한다. 그때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고 아버지의 교훈을 듣지 않았고 아버지 엘리도 그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고 그들의 행위를 금하지 않았다(삼상 2:22, 25, 29; 3:13, 14).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어도 배교적인 시대가 있었다. 엘리야나 미가야의 시대가 그러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없고 성경적 설교가 없다면, 그 시대는 얼마나 더 어두울까!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되다.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법이다. 신명기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1:1-3; 119: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귀히 여기고 또 성경적 설교를 귀히 여기자. 우리는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지키자.

[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본문은,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니라고 말한다. 종은 왜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않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 속에 교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인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고집을 부리는 그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종에게 적당한 책망과 벌과 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요나 같은 하나님의 종이라도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고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배를 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센 풍랑을 예비하셨고 결국 요나는 제비에 뽑혀 바다에 던지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종만 징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그러하다. 아이들의 속에도 교만과 부모를 무시함과 제 생각과 고집이 있다. 그러므로 책망과 매가 필요하다.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우리는 본성이 교만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생각과 고집을 부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매가 필요하다. 시편 119:67, 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러면 좋은 종은 어떤 자인가? 우선 겸손하고, 주인을 존중하고, 제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좋은 생각이 있을 때는 기회를 보아서 겸손히 제안하고, 주인의 뜻을 잘 이해하여 온전히 순종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자이다. 좋은 성도도 그러하다(2:5-8; 16:24; 26:39). 우리는 하나님의 좋은 종이 되자. 겸손하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제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주의 뜻에 순종하고 충성하자.

[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본문은,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언어는 마음의 표현이다. 언어의 조급함은 마음의 조급함을 나타낸다. 언어에 조급한 사람이 미련한 자보다 더 못한 것은 말의 실수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적 사고와 판단을 한 후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잘못된 지식이나 편견이나 느낌을 따라 말하기 때문이다. 잠언 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마음이 상할지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말한다. 마음의 조급함은 빨리 노하게 만들고 말도 급하게 하게 만든다. 잠언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말한다. 사연을 듣기 전에 조급하게 대답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말하기 쉽다. 잠언 18:17,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고 말한다. 말이 급한 것은 발이 급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고 말을 아끼라고 교훈한다. 잠언 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하고, 잠언 17: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고 말한다. 또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어에 조급한 사람이 되지 말자. 우리는 범사에 성경말씀의 묵상과 기도 중에 한번 더, 깊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자.

[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본문은,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고 말한다. ‘곱게 양육한다는 원어(파나크)지나치게 떠받들다, 제멋대로 하게 하다’(pamper)는 뜻이다(BDB, NASB, NIV). ‘자식인 체하다는 원어(이예 마논)감사하지 않다’(BDB), ‘아들이 되다’(Langenscheidt, KJV, NASB)는 뜻이다. 종은 주인을 섬기는 자이다. 그는 신분과 의무가 정해져 있다. 그것은 종이라는 신분이며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이다. 그런데 본문은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나중에는 자식인 체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교만해져서 자기 신분과 의무를 잊어버리고 자기 위치를 벗어나서 주인에게 감사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본문은 종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준다. 종은 너무 잘해주거나 너무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종도 인격적 취급을 받아야 한다. 주인은 종에게 무리한 지시나 부당한 책망을 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필요한 경우 그를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업무에 관한 한, 주인은 그를 엄격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주인은 그에게 무엇을 지시하고 점검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또는 책망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종들이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과 위치를 인식하고 우리의 직분과 임무를 다 행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고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적절하게 훈련시키실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고 칭찬, 격려도 하시지만, 징계도 하실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지혜롭게 잘 다루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바르게 잘 대해야 한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좋은 종이 되어야 한다.

[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본문은,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고 말한다. 잠언 14:17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고 말한다. 그 어리석은 일들 중의 하나가 다툼이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킬 것이다. 잠언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사람은 감정적 존재이므로 사람이 노할 때 상대방이 그 노를 받아주지 않으면 쉽게 다툼이 될 것이다. 또 분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을 것이다. 사람이 분노하면 남을 욕하고 비방하기 쉽고 미워하고 살인까지 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에 가셨을 때 회당에 있는 자들이 그의 교훈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그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였었다(4:28-29). 주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형제에게 [까닭 없이]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 .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5:22). 갈라디아서 5:20,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등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의 죄악의 목록 중에 두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노를 자제하고 버리고 서로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한다. 잠언 14:29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다고 말하고, 잠언 16:32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말한다. 에베소서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말한다. 또 야고보서 1:19-20,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범죄하지 않도록 분노를 절제하자. 또 성경의 교훈대로,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자.

[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본문은,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말한다. 사람은 교만하면 낮아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물리치시고 징벌하시기 때문이다.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신다고 말한다. 잠언 11:2교만이 오면 욕도 온다고 말하고, 잠언 16:18과 잠언 18:12는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이 뒤따른다고 말한다. 또 시편 18:27, “[주께서]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고 말하고, 이사야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리라고 말한다. 이런 하나님의 물리침과 징벌뿐 아니라, 사람들도 교만한 자를 배척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그를 존귀케 하시기 때문이다.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잠언 15:3318:12는 겸손이 존귀의 앞잡이라고 말한다. 즉 사람이 겸손하면 존귀케 된다는 뜻이다.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한다. 또 사람들도 겸손한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우리가 겸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부족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족과 결점이 많은 자임을 안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된 자이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다 버리자. 자존심도 일종의 교만이다. 그것도 버리자.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처신하자.

[24]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다. ‘짝하는 자라는 원어(콜레크)함께 나누는 자, 함께 일하는 자라는 뜻이다. 직접 도적질하는 자뿐 아니라, 그 일을 돕는 자도 같은 부류의 사람이며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도적질뿐 아니라, 다른 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죄를 돕는 것은 그 죄를 짓는 것과 같이 나쁘다. 도적과 짝하는 자, 도적과 함께 도적질한 물건을 나누는 자는 자기 영혼을 미워하는 자이다. 도적질은 십계명의 제8계명을 범한 죄악이다(20:15). 도적질이나 도적질을 도운 것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고 벌을 받을 일이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의를 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지만, 죄를 짓는 것은 결국 자기 영혼을 해롭게 한다. 불의한 돈은 자신에게 화가 된다. 그러므로 잠언 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차라리 가난한 의인이 되는 것이 낫다.

본문은,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다. ‘직고한다는 원어(나가드)말하다, 알리다는 뜻이다. 맹세함을 듣는다는 것은 도적에 대해 아는 바를 고백하라고 맹세시키는 말을 듣거나, 도적이나 그것을 도운 자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도적이나 자신이 그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대해 사실대로 고백하지 않는다. 그는 도적이나 그와 연관된 자신의 죄행(罪行)에 대해 솔직하게 증언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든지, 혹은 나는 모른다고 거짓말한다. 그는 양심이 불량하고 양심이 더러워지고 무디어져 있다. 우리는 남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자. 또 도적과 짝하지도 말자. 우리는 항상 양심을 깨끗이 지키고 거룩과 의와 선과 진실을 실천하자.

[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본문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할까봐, 상대방의 미움을 살까봐,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고, 또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손해가 될까봐,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 있는, 바르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불신앙의 올무, 죄와 불의의 올무, 거짓의 올무를 말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범사에 온유와 겸손과 선함으로 처신해야 하지만, 우리는 항상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사람 앞에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사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안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죄와 시험과 고난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고 말한다. 또 시편 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악한 일을 막아주시고 피하게 해주실 것이다. 물론, 단련이 필요하면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있고, 또 그 고난은 그에게 거룩함과 믿음과 겸손을 이루는 유익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난에서 구원하신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사람을 겁내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자.

[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본문은,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고 말한다. ‘주권자는 정치 권력을 가진 왕이나 통치자를 가리킨다. 주권자가 무슨 일이든지 해줄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친근히 하려 한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에게 은혜를 구하며 친근히 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 ‘사람의 일의 작정이라는 원어(미슈파트 이쉬)사람의 판단’(KJV), 즉 아마 그가 도움을 줄 지에 대한 주권자의 판단을 가리키든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공의로움’(NASB), 즉 간청한 사람의 일에 대한 공의로운 처리를 가리킬 것이다. 주권자가 그의 도움을 구하는 자에 대해 판단하고 도움을 주는 여부, 즉 주권자의 판단과 처분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한 자의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홀로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되어진다(10:29). 그러므로 잠언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말하고, 잠언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1:11은 하나님을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우주와 세계 속에서 홀로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만 살자.

[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정직한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본문은,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정직한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고 말한다. 불의한 자는 악인에게는 사랑을 받을지 모르지만, 의인에게는 미움을 받는다. 의인은 악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시편 101:3, 5,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의인일진대 우리는 불의한 자를 인정하거나 돕지 말아야 한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도 불의한 자를 미워하시고 대적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나 반대로 정직한 자는 의인에게는 인정을 받고 존경과 사랑을 받지만, 악인에게는 미움을 받는다. 악인은 그를 미워하고 비방하고 해치려 한다. 가인은 의로운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마침내 들에서 그를 쳐죽였다. 다니엘의 악한 동료들은 경건하고 의로운 다니엘을 미워하여 죽일 공모(共謀)를 하였다. 타락한 위선적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십자가에 죽이기를 공모(共謀)하였다.

악인이 의인을 미워하는 이유들은 무엇인가? 악인은 어두움을 좋아하고 빛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3:20). 또 의인 때문에 자신의 악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나 체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7:7). 또 의인의 하나님 복받는 것을 시기하기 때문이다(27:18; 12:19). 또 사탄이 악한 자를 충동하여 의인을 미워하게 하고 의인을 낙망시키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범죄하도록 활동하기 때문이다(22:3; 13:29).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악인의 미움과 핍박과 시험을 이길 것이다. 우리는 불의와 악을 미워하고 의롭게만 살자. 혹 악인의 미움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바르게만 행하자.

[에스겔 15장 하나님 말씀] 불에 던질 포도나무처럼 될 것(겔 15:1-8)

 

[에스겔 15장 하나님 말씀] 불에 던질 포도나무처럼 될 것(겔 15:1-8)

에스겔 15장에서는 포도나무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불에 던져질 무익한 포도나무에 대해서 비유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한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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