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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산상수훈 설교]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복(마 5:3-12, 히 4:14-16)

성령의 능력 2021. 5. 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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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설교 중에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긍휼을 주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너희도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긍휼을 복을 계속해서 받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 목: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복”

 

설교자 :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마 5:3-12, 히 4:14-16

 

요 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주 제: 주님의 긍휼 하심을 받은 우리는 이웃에게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자

 

오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다섯 번째 복 있는 사람에 대해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세리의 기도처럼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Kyrie, eleison = Lord, have mercy upon me" (눅 18:13)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언약궤의 뚜껑을 가르쳐 ‘시은좌’(mercy seat)라고 부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번제의 피를 들고 들어가서 피를 뿌리며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기원하며 하나님의 임재(Shekinah)를 상징하는 은혜의 보좌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제사장들의 죄를 선언해 주심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찬송가 209장(통 247장)에 있는 대로

 

1. 이 세상 풍파 심하고 또 환난 질고 많으나 나 편히 쉬게 될 곳은 주 예비하신 시은소 [새 찬송은 이를 ‘주의 전’으로 바꿈]

2. 그 향기로운 기름을 주 내게 부어 주셔서 내 기쁨 더해 주는 곳 주 피로 사신 시은소 [새 찬송은 이를 ‘주의 전’으로 바꿈]

3. 주 믿는 형제자매들 그 몸은 떠나 있으나 주 앞에 기도드릴 곳 다 함께 모일 시은소 [새 찬송은 이를 ‘주의 전’으로 바꿈]

4. 내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나 영영 잊지 못할 곳 은혜의 보좌 시은소 [새 찬송은 이를 ‘주의 전’으로 바꿈]

 

이런 긍휼의 보좌로 다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이 다섯 번째 복 있는 사람에서 말하는 긍휼은 의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축복에 대해서 교훈하시고 다음으로 긍휼을 말씀하십니다. 의가 없는 긍휼은 감상적인 자선에 지나지 않고 긍휼이 없는 의는 냉혹한 기계적 정의에 불과합니다. 의와 긍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만일 의(義)만 있고 긍휼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오래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미 멸망받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 그래서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다시 사고 그녀에게 이르되 “너는 많은 날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긍휼(그리스어로 eleos)이란 말의 뜻은 “당연한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그를 돕는 미덕”을 말합니다.  죄인에게 흔히 퍼붓는 저주는 마땅한 것인데, 하나님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저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이다.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라면, 긍휼은 병자를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은혜는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애정이라면 긍휼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소유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첫 번째 옷이 긍휼의 옷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골 3:12).  긍휼은 성도가 완성해야 할 인격의 덕목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눅 6:36)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접촉할 때마다 목자 없이 유리하는 불쌍한 양 떼로 그 영혼들을 바라보셨습니다. 주님이 없기 때문에 멸망해가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he was moved with compassion, 마 9:36).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에 파멸해 가는 그 영혼들을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이 긍휼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며 상처를 주었으며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스데반처럼 ‘아버지여 저희들이 하는 것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행 7:59-60)

 

당시 로마 사람들은 긍휼은 약자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강자의 미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곁을 떠난 롯이 곤경에 처했을 때 아브라함은 롯을 구해주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후대했습니다.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을 위해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주옵소서“ (민 12:13)하며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한결같이 성경은 긍휼을 강자의 미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으리라”

 

1. 긍휼을 베풀면 자기에게 유익합니다. “주께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딤전 1:2, 딤후 1:2)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달은 사람들에게 긍휼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주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 긍휼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평강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강을 원하시면 긍휼을 베푸십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감옥은 용서하지 못하는 증오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또 누군가를 미워할 때 가장 비참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잠 11:17)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 19:11)

 

용서하지도 않고 우리의 가슴속에 미움을 품고 있을 때 우리의 건강은 상처를 받습니다. 정신은 피곤해지며 영혼도 어두워집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푸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입니다.

 

2.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만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면 우리도 또한 이웃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원하십니까? 긍휼을 베푸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하나님께 우리의 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주기도문, 마 18:35). 오늘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웃에게 긍휼 한 자가 되어야 우리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성공은 돈이나 명예보다는 관계에서의 성공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 관계에서의 성공으로 이끄는 근본 요인이기 때문이지요. 사랑이란 나보다는 상대방을 유익하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오래 참고 온유하고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바로 이렇게 행할 때 우리는 상대방을 유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이 사랑은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부 사이에서 먼저 실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정마다 그 열매가 극히 적은 이유는 부부의 마음속에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사람들의 병든 영혼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주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면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남편과 아내도 상대 배우자의 겉모습이나 행동보다 영혼의 곤고함과 갈급함을 바라보게 될 때 분명히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사랑을 베푸는 이 고귀한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부모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영적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는 자녀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사랑하는 일에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부부가 먼저 서로의 영혼을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게 하시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이 사랑을 자신의 가정의 담을 넘어 이웃 가정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는 겁니다.

 

3.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하나님께 선대한 처분을 구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질문에  ‘그대는 세상에 살 동안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용을 베풀었는가? 우리가 재림의 주님을 만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약 2: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 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1-6)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폴티아의 입을 빌려서 긍휼의 덕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긍휼은 결코 억지로 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고요히 내리는 빗방울처럼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긍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다 같이 축복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긍휼을 본받아 우리도 피차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심판대에서 주님의 긍휼 하심을 받는 올리벳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고마우신 주님이시여, 긍휼의 위대한 축복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일깨워 주시고 도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주님께 졌음을 인정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 주위에 우리를 향한 빚진 사람을 관용할 수 있는 긍휼히 여기는 이 미덕을 이 속성을 이 인격을 우리 속에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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