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히브리서 4장 헬라어 강해] 위대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히 4:12-16)

성령의 능력 2021. 6.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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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위대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활력이 있고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위대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속죄를 위해서 헌신하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위대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히 4:12-16)

 

12절 존 가르 호 로고스 투 데우 카이 에네르게스 카이 토모테로스 휘페르 파산 마카이란 디스토몬 카이 디이크누메노스 아크리 메리스무 프쉬케스 테 카이 프뉴마토스 하르몬 테 카이 뮈엘론 카이 크리티코스 엔뒤메세온 카이 엔노이온 카르디아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 '하나님의 말씀'은 앞에서 인용된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키고 있으나(Hewitt),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 말씀 전체를 가리킨다(Robertson, Morris).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는 표현은 그 '말씀''인격성''역동성'을 지녀서 행위를 동반함을 암시한다.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이들에게는 경고와 심판을 행하게 되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약속된 말씀을 성취케 하는 말씀이다(Hewitt, Morris).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 세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수신자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을 지닌 말씀으로서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안식과 진노를 행한다(Trompf). 그 말씀은 ''과 같아서 하나님의 음성에 계속 불순종할 때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아말렉과 가나안인들의 ''(마카이란)에 패배(敗北)하여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14:43-45).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심성에 내재하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악독(1:29) 등의 온갖 죄악을 예리하게 심판하는 ''이 된다(Hofius, Lane).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혼과 영'(프쉬케스 카이 프뉴마토스), '관절과 골수'(하르몬 테 카이 뮈엘론)는 인간의 구조로 명명되는 '삼분법'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인간 정신의 전체적인 본성을 말하는 수사학적(辭學的)인 표현이다(Bruce, Morris, Robertson).

한편 '찔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이이크누메노스'는 '꿰뚫다'라는 의미로 인간의 영혼과 육을 분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꿰뚫어 잠재된 의식까지 들춰내는 능력이 있음을 시사한다(Bruce, Robertson). 또한 '감찰하나니'의 헬라어 '리티코스'는 법정 용어로써 '판단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찰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에 따라 안식과 진노를 행함을 시사한다(95:11, Lane).

13절 카이 우크 에스틴 크티시스 아파네스 에노피온 아우투 판타 데 귐나 카이 테트라켈리스메나 토이스 오프달모이스 아우투 프로스 혼 헤민 호 로고스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 '지으신 것'이란 '창조 행' 혹은 '물질적인 우주''영적인 존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고후 5:17; 6:15) 가리킨다. 한편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의 헬라어 '아파네스'는 본문에만 사용된 형용사로서 부정 접두어 '''보이다'를 의미하는 '파이노'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동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마음과 뜻을 감찰하시는 능력이 있어(12) 그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남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모든 창조물들이 벗어날 수 없다는 이러한 사상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상식적인 사실이었다(Lane).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리를 상관하시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 혼 헤민 호 로고스'는 동사가 없는 구문으로 해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에게'라는 의미로(Morris),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시사한다(Robertson).

한편 '드러나느니라'의 헬라어 '테트라켈리스메나'는 '목(트라켈로스)을 뒤로 젖히다'라는 의미로 레슬링 선수가 상대방의 목을 감아 뒤로 젖히는 행위나 짐승을 잡기 위해 뒷덜미를 젖혀서 목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된 표현이다(Morris). 이것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어떤 것도 은폐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저자는 12절과 본절의 문맥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 드러난다는 것은(12) 하나님 자신 앞에 드러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Lane).

14절 에콘테스 운 아르키에레아 메간 디엘렐뤼도타 투스 우라누스 이에순 톤 휘온 투 데우 크라토멘 테스 호몰로기아스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4:14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를 '큰 대제사장'(아르키에레아 메간)으로 지칭하고 있다. '큰 대제사장''대제사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으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우월함을 나타낸다(Lane).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 예수의 우월성은 '승천하신 자'라는 초월적인 표현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승천하신 자'의 헬라어 '디엘렐뤼도타 투스 우라누스'에서 '디엘렐뤼도타'는 '...통하여 지나가다'는 뜻을 지닌 동사 '디에르코마이'의 완료 능동태 분사로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뜻보다는 하늘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지고(至高)곳으로 가셨음을 뜻한다(Morris).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은 이 땅의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존재에서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시므로 그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사역의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다(Hewitt).

한편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는 예수께서 인간이시며 동시에 신성을 소유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유한성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행하신 모든 행위와 약속이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것임을 시사한다(Hewitt).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 앞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초월, 더 나아가 그의 하나님의 아들 되신 신성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근거가 된다. 여기서 '믿는 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기아스'는 ''을 뜻하는 말인데 이 고백의 내용은 당시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익히 알고 있는 공식화된 고백으로 본절 상반 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가리킨다(Lane, Neufeld, Bornkamm). 한편 '굳게 잡을지어다'의 헬라어 '크라토멘'은 '단단히 쥐다' 혹은 '들러붙다'의 뜻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끝까지 지키라는 권고이다.

15절 우 가르 에코멘 아르키에레아 메 뒤나메논 쉼파데사이 타이스 아스데네이아이스 헤몬 페페이라메논 데 카타 판타 카드 호모이오테타 코리스 하마르티아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 '연약'은 죄의 유혹에 대한 인간의 연약성뿐만 이니라 인간이 지닌 모든 한계성을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Hewitt). 한편 '체휼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파데사이'는 '함께 수난당하다'라는 의미의 '쉼파스코'에서 파생된 말로서 '동정하다'(to sympathize, NIV)라는 의미이다.

'쉼파데사이'는 단순히 감정을 공유한다는 의미로서의 '동정'(同情)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의 행위를 내포한다(10:34; 13:23; 4:25, Lane). 저자는 '아니하는...아니요'(우...메)라는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예수님 자신이 인간과 동일하게 연약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체휼하시는 예수'에 대한 강조는 예수께서 인간과 동일하게 공감하시는 분으로서 능히 인간을 도우실 수 있음을 나타낸다(Schenk). 예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인간성에 참여하셨기 때문이다(2:17,18).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이것은 예수께서도 인간과 똑같이 유혹을 받아 범죄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Lane, Cullmann) 예수께서 인간과 같이 되셔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경험하셨음을 나타낸다(Bruce,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인간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한편 '죄가 없으시니'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두 가지 견해가 나타난다. (1) 혹자는 본문의 내용 즉 예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점을 부인한다(Buchanan, Williamson). 이들은 '예수께서 본장에서 대제사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속죄제를 드리는 것처럼(5:3), 예수도 대제사장으로서 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통해서 순종해야 함을 알고 모델이 되셨다'(5:8)고 주장한다.

(2) 혹자는 본문의 표현 그대로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죄의 유혹을 받아 범죄 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범죄 하시지 않았다고 주장한다(Hewitt, Lane, Morris, Bruce).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앞에서 언급된 '모든 일에 한결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카드 호모이오테타'는 '같은 방식으로'라는 뜻으로 동일성보다는 유사성 내지는 구별성을 나타낸다(Lane). 예수께서는 인간이셨으나 인간과는 달리 흠이 없으시며(9:14) 지상의 성막에서 제사드리는 대제사장과 같이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는 분이었다(7:27).

따라서 본절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인간들처럼 시험에 넘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극복하심으로 범죄 하지 않으셨으며 시험을 인간과 동일하게받으심으로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시험의 어려움을 낱낱이 아심을 나타낸다.

16절 프로셀코메다 운 메타 팔레시아스 토 드로노 테스 카리토스 히나 라보멘 엘레온 카이 카린 휴로멘 에이스 유카이론 보에데이안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 '때를 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이론'은 '좋은' 혹은 '옳게'를 뜻하는 '''시기'를 뜻하는 '카이로스'가 합쳐진 합성어로서 '적절한 시기'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불완전하여 수시로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를 아실뿐만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베풀어 주심을 나타낸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보좌'의 헬라어 '드로노'는 '왕의 보좌'를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보좌''그리스도의 보좌'(1:3,8)를 나타낸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로 사용되었다.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이 현존해 계시는 장소로서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 장소인 성막 안의 속죄소와 연관된다(9:5; 출 25:21, Bruce).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에 나아갈 수 있었으며 속죄의 행위가 받아들여졌을 때 지성소 안에 있는 그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소(施恩所)되었다(9:5; 16:2-34). 그러나 본절에서 저자가 말하는 '은혜의 보좌'는 더 이상 모세가 전해준 율법적인 속죄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우편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대제사장으로 좌정해 계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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