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갈릴리 바다를 걸으신 기적 사건(마 14:22-27)

성령의 능력 2021. 6. 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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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갈릴리 바다를 걸으신 기적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먼저 보내고 기도하러 산에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는데 풍랑을 만나게 되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령인 줄 알고 놀랬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와 같은 큰 풍랑의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럴 때 나에게 찾아오셔서 안심하라고 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릴리 바다를 걸으신 기적 사건(마 14:22-27)

 

22절 카이 유데오스 에낭카센 호 이에수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엠베나이 에이스 토 플로이온 카이 프로아게인 아우톤 에이스 토 페란 헤오스 후 아폴뤼세 투스 오클루스

마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14:22

즉시...재촉하사 - '재촉하다'억지로 시키다'의 뜻이. 예수께서 오천 명이 넘는 무리들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부르게 하신 후에 급히 서둘러 제자들을 무리로부터 멀리 떠나가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갈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기를 위하셨다(23). (2)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동요하고 있는 무리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서 잠시 쉬시기를 원했다(6:31-32). (3)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먼저 해산시킴으로써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 하는 백성들의 의도와 분위기를 잠재우려고 하였다(6:15).

왜냐하면 그의 제자들은 주님을 도와 무리들의 잘못된 기대를 올바로 잡아줌으로써 주님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성취하려는 기대에 빠져 있었으므로 그들이 남아있는 일이 예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 음식을 먹은 벳새다 광야의 건너편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네사렛일 것이다(34). 한편 요 6:17은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웨스트코트(Westcott)와 모리스(Morris)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예수께서는 벳새다 율리우스에 근접해 있는 동쪽 해안에서 자신을 기다리라는 당부와 함께 제자들을 보내어 호수를 건너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내는'이라는 가정법 과거 동사와 함께 쓰인 '동안에'란 뜻의 '헤오스 후''때까지'(until)로 번역되어야 한다. 따라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고 하는 의미는 주님께서 무리들을 해산시킬 때까지만 제자들이 앞서 가다가 그 후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고 다시 제자들과 만나 건너편으로 건너가시려고 했다는 것이다.

23절 카이 아폴뤼사스 투스 오클루스 아네베 에이스 토 오로스 카트 이디안 프로슈크사스다이 옵시아스 데 게노메네스 모노스 엔 에케이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예수께서 이제부터 그와 함께 하려는 많은 군중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될 수 있다. (1) 여러 가지 이적, 특히 오병이어 사건에서 그가 참 메시아이심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무리들에게 옹위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21), (2) 비록 그가 유대인들이 고대(苦待) 하던 참 메시아이시라고 하더라도 메시아가 올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을 시켜 생선과 육류를 준비하여 잔치를 배설(排泄)할 것으로 생각하던 그들의 예측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온 인류가 고대하는 구원자로서 오히려 유대인들에게는 배척당하고 수난당하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리들의 갈채와 소란은 마귀의 유혹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먼저 여기서 ''은 혼잡한 무리들과 격리된 영적 교제의 장소이다. 더불어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항해 모습을 주시(注視)할 수 있었을 것이다(6:48). 한편 예수께서는 자신이 행한 기적을 둘러싸고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종종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섰으며 그곳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곤 하셨다(1:35; 눅 5:16; 6:12).

예수의 능력의 비밀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에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교제를 나눈 것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사역을 가능케하는 예수의 내적인 삶의 본질이었다. 기도와 이적 행위 사이의 바른 관련성은 행위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고 기도로써 그 행위를 돕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최고로 중요한 것이며 행위는 그 기도를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Archbishop William Temple).

저물매 - 두 번째 저녁을 의미한다.

그는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먼저 가도록"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버리기 전에는 무리들이 해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가기를 싫어하였으며, 만일 그가 "재촉하지" 않으셨다면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 그 제자들은 기다릴 배도 없이, 또한 수종자도 없이 그리스도만을 남겨두는 것을 싫어하였지만, 오직 순종함으로써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곳을 떠나가셨다(23절). "그는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여기에서 살펴볼 것은, 그는 혼자 계셨다. "그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시고, 거기 혼자 계셨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일을 행하셨지만 종종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혼자 있기를 택하였다." 혼자 있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그들이 대화할 사람이 없거나 즐길 것이 없이 고독할 때는 하나님과 그 자신의 마음 이외에는 즐거워할 것이 없다.

그는 따로 기도하셨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그가 하신 일은 기도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님이셨으며,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종(즉 거지)의 현상"을 가지셨으며, 기도하셨다. 그리스도는 그가 명하신 규율대로(마 6:6) 여기에서 은밀한 기도와 그 기도를 은밀하게 수행하시는 모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시다. 아마도 이 산에는 이러한 때를 위하여 마련된 어떤 은밀한 기도처나 설비가 있었던 것 같다. 유대인들은 흔히 이러한 기도처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살펴볼 것은, 제자들이 바다로 갔을 때 그들의 선생은 기도하러 가셨다는 사실이다. 베드로가 "밀 까부르듯"할 때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계셨다. 그는 "저물 때까지 거기 계셨으며,"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밤 사경," 즉 새벽녘까지 거기 계셨던 것 같다. "밤"이 되었으며, 또한 폭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그는 "계속적으로 기도하셨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오랫동안 계속적으로 은밀한 기도를 하거나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완전히 쏟아 넣으려 하는" 것은 특별한 때에나 우리의 마음이 산만하게 되었을 때 종종 좋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그쳐서는"(욥 15:4) 안 된다.

24절 토 데 플로이온 에데 메손 테스 달랏세스 엔 바사니조메논 휘포 톤 퀴마톤 엔 가르 에난티오스 호 아네모스

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14:24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 헬라어 성경에서 이 표현은 '메손 테스 달라세스'로, '바다 한가운데'를 의미한다. 이곳과 평행 구절인6:19에는 '십여 리'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25-30 스타디온쯤 되는 거리이다.

그렇다면 1 스타디온(stadion)은 184.85m 이므로 따라서 육지에서 배까지의 거리는 4.6km 내지 5.5km에 해당한다.

바람이 거슬리므로 - 갈릴리 오수에서 부는 바람은 폭풍우를 동반한 돌풍으로 급격한 기후 변동과 고난의 위험성이 있다(4:37; 6:18). 한편 성경 문학적으로 바람은 생의 덧없음(78:39), 하나님의 심판(18:17),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는 재난(49:36), 사람을 미혹하는 교훈(4:14)등을 상징하다. 따라서 본문의 이 말은 환, 열광하는 군중들을 뒤로하고 예수로부터 떠밀려 배를 타고 있는 제자들이 이미 마귀가 가져다주는 시험, 즉 세상 권력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그들을 괴롭혔을 것이라고 하는 상상을 가능케 한다. 실로 그들의 배는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거슬리고, 그들의 영혼은 그들을 향해 불어오시는 성령의 바람을 거슬렀다.

고난을 당하더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사니조'는 '시금석으로 시험하다', '고통을 주어 심문하다', '동요케 하다'등의 뜻으로, 자들이 풍랑으로 인해 육체와 정신의 급격한 위기에 봉착(逢着)했음을 암시하는 말이. 한편 제자들이 이러한 곤란을 경험하는 이 시간에 예수께서도 협곡(峽谷)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시면서 역시 고난 중에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셨다. 물론 예수에게 있어서 고난은 바로 유대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음모 구상과 방해 공작(plot)에 대한 예견(foreknowledge)과 자신을 이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는 군중들의 오해와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고 평가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지 등등의 사유로 인해서 생겨난 것일 것이다.

이처럼 예수와 제자들은 그 시간에 함께 고통을 당하였으나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그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시고 능히 물리치셨다. 그에 반하여 제자들은 주남님 도우심으로써만 그 고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배 가까이 오신 예수 주님으로 확신할 때까지 배에서 고난을 당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고난을 친히 목격하고 계셨으나 즉시 그들을 찾지 않으셨다. 이는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훈련시키기 위한 조처로서(Chrysostom), 예수께서 육신으로 그들과 더불어 계시지 않더라도 그분의 보호하시는 능력이 여전히 그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는(8:23-27)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이런 시련의 기간을 두셨던 것이다(Homer A. Kent, Jr.).

25절 테타르테 데 퓔라케 테스 뉘크토스 아펠덴 프로스 아우투스 호 이에수스 페리파톤 에피 테스 달랏세스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14:25

밤 사경에 - 유대인들은 밤을 3경으로 나누었으나(일경을 4시간씩, 6:48)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밤을 4경으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마태는 로마식을 따른 것 같다.

따라서 1경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이며, 2경은 9시부터 12시까지, 3경은 12시부터 새3시까지, 그리고 본문에 묘사된 4경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바다 위로 걸어서 - 예수의 만유의 주재로서의 초자연적 위상(位相)을 나타내 주는부분이다. 사실 바다 위를 걷기 위해서는 세찬 바람과 거친 물결 및 지구의 중력을 모두 극복해야 하는데, 예수께서는 이 모든 자연의 사슬들을 지배하시고 그 위에 우뚝 서신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사건은 그 결과가 바로 제자들의 최초 신앙고백,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라고 하는 참 신앙적 고백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생략된 누가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요한복음의 서술이 모두 오천 명을 먹이신 급식 사건 다음에 기술되어 출애굽 사건을 연상케 함으로써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다를 건넜지만 예수는 스스로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바다 위를 걸었다고 하는 것, 즉 모세보다 탁월하신 예수의 신성(神性)을 나타내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실로 예수(복음)의 새 시대는 모세(율법)의 옛시대를 포함할 뿐 아니라 크게 능가(surpass)하고 있는 것이.

26절 카이 이돈테스 아우톤 호이 마데타이 에피 텐 달랏산 페리파툰타 에타라크데산 레곤테스 호티 판타스마 에스틴 카이 아포 투 포부 에크락산

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14:26

유령(판타스마) - 이는 꾸며서 나왔다는 뜻인 '판타조'에서 유래한 말로서 실체가 없는 허상(虛像), 곧 망령 또는 귀신을 의미한다.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 기(寄)현상 앞에 제자들은 그것을 하나의 환각 내지는 미신적 현상으로 오판(misjudgement)하였다. 적어도 그들은 '유령이라' 외치면서 그듸의 눈 앞에 직면한 죽음의 위기에 몸이 굳어버렸을 것이다.

27절 유데오스 데 엘랄레센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레곤 달세이테 에고 에이미 메 포베이스데

마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14:27

안심하라 내니 - 여기 '안심하라'(달세이테)는 말은 '담대하', '용기를 내라'는 뜻이며, '두려워 말라'(메 포베이스데)는 말은 즉시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라'는 뜻이다. 즉 두 용어는 결국 안심하라는 의미의 중복적 권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는 예수의 권고의 말씀은 '나다'(에고 에이미)라는 확신을 주는 말씀에 의해 더욱 밑받침이 되고 있다. '나는 나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기도 하며(3:14),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셨으며,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셔서 권능을 주신 분으로서의 예수 자신을 저들에게 확인시켜 주시기 위한 참으로 친근한 말씀이다. 이 위대한 위로의 말씀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파선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압제자들로부터 대박해를 당하여 신앙과 삶의 위협을 받고 있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며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힘을 주는 것일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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