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잠언 강해 성경 좋은 말씀] 하나님 의지, 의, 교만, 노 억제(잠 16:1-33)

성령의 능력 2022. 5. 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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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서 16장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구원받고 예수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의지, 의, 교만, 노 억제(잠 16:1-33)

 

1-4, 계획, 심령, 행사, 악인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경영이라는 원어(마아라크)정돈’(arrangement)이라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준비(KJV) 혹은 계획(NASB, NIV)이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그 일에 관한 생각들을 정돈하고 그 일을 준비하고 계획한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생각 없이, 계획이나 준비 없이 무슨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부터 난다. ‘말의 응답이란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의 응답을 가리킬 것이다. 사람의 계획한 바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이루어질 수 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하며,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주권적 섭리를 믿는다. 시편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심령이라는 원어(루코스)영들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사람 속에 여러 영들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영의 여러 활동들 즉 생각과 감정과 의향 등의 활동들을 의미할 것이다. ‘감찰하다는 원어(타칸)시험하다, 평가하다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저울에 단다’(weigh)라는 말로 번역하였다(KJV, NASB, NIV).

사람은 모든 행위를 자신이 보기에 깨끗하게 해야 한다. 자기 보기에 깨끗지 못한 행위가 있으면, 그것을 즉시 철저히 회개하고 고쳐야 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말하였다(고전 4:3-4).

그러나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 모두 깨끗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 곧 우리 영혼의 활동들을 감찰하시고 시험하시고 저울에 달아보신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드러난 행위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숨은 마음까지, 곧 그의 마음의 생각과 감정과 의향, 그리고 행동의 동기까지 살피시고 그것이 과연 깨끗하고 선한지, 혹은 불결하고 악한지 시험하고 평가하신다. 시편 7:9,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예레미야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요한계시록 2:23,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행사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 개인적인 일과 가정적인 일을 다 포함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맡기다는 원어(갈랄)‘[돌을 굴리듯이] 굴리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혼자서 염려하지 말고 또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홀로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자이시며 우리는 지혜와 능력이 매우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권자 하나님을 믿는 자는 교만하지도 또 낙심하지도 않는다.

시편 37: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고 비슷한 교훈을 주며, 시편 55: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5: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돌보심]이니라”고 말한다.

본문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한다. ‘너의 경영하는 것이라는 원어(마크쉐보세카)는 ‘너의 생각들 혹은 계획들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의 계획한 바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방해거리들을 막아주시고 이루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은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한다.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다.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최초에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과 그 후에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것을 다 포함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안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그 씌움에 적당하게라는 원어(라마아네후)그를 위하여라는 뜻이다.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그 자체의 목적을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다. 모든 일은 그 자체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옛날 영어성경(KJV)그 자신을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다. 라틴 벌게잇역은, “하나님의 모든 일은 이 목적을 위하나니, 곧 그것들이 그를 순종하게 함이니라”고 번역하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본문은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악한 날을 위해 지으셨느니라]”고 말한다. ‘악한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킬 것이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 날에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앗수르나 바벨론 나라가 그러하였다. 가룟 유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하나님께로서 난다. 우리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믿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일을 계획하고 행해야 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 모두 깨끗해도 하나님께서는 심령을 감찰하신다. 우리는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고 바르게 하고 모든 잘못된 것을 회개하자.

우리의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의 경영하는 것이 이룰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행할 때 내가 무엇을 이룰 것처럼 교만하지도 말고 또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다고 낙심하지도 말고, 오직 우리의 모든 일을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 맡기고 지혜와 용기를 구하며 담대히 행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뜻과 목적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그의 계명에 복종하며 살아가자.

5-8, 교만, 대속, 선행, 소득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교만은 하나님 대신에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않는다. 교만은 근원적인 죄악이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다. 사도 바울은 장로의 자격에 대해 말하면서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말했다(딤전 3:6). 사람이 왜 교만하게 되는가?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위대하심과 전지전능하심과 거룩하심을 모르고 또 자신의 피조물 됨과 연약함과 무능함과 허무함과 죄악됨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 잠언 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 . .”라고 말했고, 잠언 8:13,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했다. 교만은, 피조물이며 죄인인 사람에게 합당치 않은 큰 죄악이다.

본문에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라는 원어(야드 레야드)는 ‘정녕히, 확실히라는 뜻이라고 본다(KB, NASB, NIV). 잠언 11:21도 그런 뜻이라고 본다.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정녕히]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교만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하며,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라고 말한다. 교만한 자는 마귀와 함께 지옥에 던지우는, 하나님의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인자(仁慈)와 진리로 인해 죄악이 속하게 된다는 말씀은 우선 하나님의 구속(救贖) 사역의 이치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진리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여 주셨다. 우리가 죄사함 받은 것은 그의 크신 긍휼과 은혜 때문이었고 또 그의 진실하신 구원 약속과 그 이행 때문이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인자와 진리로 인해 죄악이 속하게 된다는 말씀은 또한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합당하다. 인자와 진실은 구원받은 성도의 표이다. 성도의 선한 행위는 구원의 공로는 아니지만, 구원받은 증거이며 영생에 이르는 과정이다. 형제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또 진실한 죄의 고백과 청산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합당한 덕이다. 주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6:12),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다(18:35). 사도 요한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다(요일 1:7).

또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 죄악을 징벌하시는 심판자이시다. 살아계신 공의의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자마다 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죄를 미워하시고 엄하게 벌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성도라면 어떻게 그 죄를 뉘우치고 떠나지 않고 거기에 머물겠는가?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사람의 행위는 그의 생각과 감정과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의 마음이 그의 말과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우는 그의 생각과 마음과 행위가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할 때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고 바르고 선하게 생각하고 행할 때이다. 반면에,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성령을 근심시키게 되며(4:30) 하나님의 노를 일으키게 된다(1:18).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면 대다수의 사람들과 화목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그의 원수들, 즉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해하려 하였던 자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성경에 몇 가지 예들이 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였으나 꿈에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받고 그를 돌려보내었고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은 천 개를 주며 화해했고(20), 얼마 후 그에게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하며 그와 맹세하며 서로 언약을 맺었다(21:22-23). 아비멜렉은 이삭 때에도 그와 맹세하며 서로 언약을 맺었다(26:26-33). 또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해하려고 쫓아왔으나 꿈에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그를 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 해하지 않기로 맹세하며 그와 더불어 언약하였다(31:51-55).

[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 사람의 가치는 그 소득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경건과 인격성과 도덕성으로 그의 가치를 평가하신다. 하나님의 주관심은 사람의 죄()와 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많이 버는 데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죄 짓지 않고 그의 계명대로, 즉 성경 교훈대로 경건하게, 바르고 정직하게, 선하게 사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없다.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될 것이다(20:17).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48:22). 불의로 치부(致富)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17:11).

인간의 삶에 돈은 필요하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그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공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셔서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들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6). 우리에게 물질적 유여나 풍요가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주실 수 있고 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6:33). 단지, 우리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자기 재능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하고 일을 배우고 또 게으르지 말고 그 직업과 일에 충실해야 한다. 땀흘려 일하는 것은 인생의 의무이다(3:19).

우리는 연약하고 무능한 피조물이며 허무하고 불쌍한 죄인임을 알고 교만을 버리고 범사에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처신하자.

인자(仁慈)와 진리로 죄악이 속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함의 구원을 얻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버리고 인자와 진실의 덕을 간직하자.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라도 그와 함께 화목케 하신다. 우리는 오직 말과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자.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 우리는 이 세상이 장망성(將亡城)임을 알고, 불의의 이익을 탐하지 말고 사치와 허영과 낭비를 멀리하고, 오직 천국만 소망하며, 의로운 소득을 구하며 근면하며 검소 절약하며 절제하며 자족하며 살아가자.

9-12, 계획, 재판, 공정, 공의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야킨)[지도하는, direct] 자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은 자기의 길, 즉 자기의 삶의 목표와 일들을 계획한다. 일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일을 즉흥적으로나 대충하지 말고 지혜와 지식을 사용하여 철저하게 잘 계획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편에서 사람이 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사람의 걸음을 지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자, 곧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우리의 모든 계획한 일들을 이루는 하루하루의 과정과 전체의 과정은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길을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며, 평탄케도 하시고 어렵게도 하신다. 이사야 45:7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10:29).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섭리하시고 지도하시는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는 방향이다.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23:3). 하나님의 주 관심은 우리의 의와 선과 거룩이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은 우리의 영적 성장 곧 성화(聖化)를 가리킨다고 본다.

[10]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말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어(케셈)신적 판결’(oracle)이라는 뜻이다(BDB).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기록하신 법에 따른 공의로운 판결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정부나 법원 같은 제도를 두신 것은 세상을 너무 부도덕하고 무질서하게 버려두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의 일이다. 세상의 왕들이라도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에 따라 공의를 집행하여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벌한다.

로마서 13:1-5,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베드로전서 2:13-15,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선한 왕은 물론이고 모든 왕이 다 그러해야 한다.

[11]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간칭’(杆秤)명칭’(皿秤)은 저울들을 말한다. 저울에는, 지렛대 양쪽에 같은 무게를 매닮으로 수평을 이루게 하는 맞저울(천칭), 접시에 올려놓아 수평을 이루게 하는 접시저울이 있고, 그 외에, 대 저울, 스프링식 저울 등이 있다.

공정한 저울은 하나님의 것이며 저울에 쓰는 추돌들도 그의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저울을 인정하시고 기뻐하신다. 그는 상거래에서 공정한 저울들을 쓰라고 명하셨다. 레위기 19:35-36에서, 그는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고 명하셨다. 그는 속이는 저울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잠언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20:10, 23,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또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장사를 할 때, 사업을 할 때, 모든 종류의 금전 거래에서, 또 학생은 시험을 칠 때, 속이지 말고 공정하게,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은 더러운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모든 인간 관계에서도 공정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과대평가하지도 말고 과소평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사실 그래도 평가해야 할 것이며,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말 것이며, 시기와 질투심을 버릴 것이며, 남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 또 자기의 위치를 잘 지켜야 한다.

[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왕들]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은 하나님의 법이나 양심의 법을 어기는 것, 즉 우상숭배, 불효, 미움, 살인, 음란, 도적질, 거짓말 등이다. 왕은 나라의 통치자로 나라의 도덕적 질서와 평안과 안보의 책임을 가진 자들이다. 왕은 백성이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해야 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징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왕들이 행해야 할 의무이며, 또 왕들의 보좌, 즉 그들의 왕권, 오늘날 말로 하면 그들의 정권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서기 때문이다. 죄와 불의와 부도덕은 나라를 쇠약케 하며 결국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의와 도덕성은 나라를 견고케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우시기 때문이며 또 백성들도 의로운 왕을 따르며 양심적으로 그를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로운 왕은 대다수의 백성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언제나 소수의 악한 무리는 있겠지만, 그들의 불평과 대항이 나라를 크게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역사를 보면, 왕들이 의를 구하며 백성들이 의를 따르면 그 나라는 평안하고 견고하였다. 예를 들어, 다윗은 경건하며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고(삼하 8:15),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하셨다(삼하 7:16). 다윗 때에는 나라에 평안과 강성함이 있었다. 그러나 왕들과 그 백성들이 악을 행하면 전쟁이 일어났고 기근이 찾아왔으며 또 반란과 반역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세상 나라들도 부도덕한 나라들은 오래가지 않아 쇠하고 멸망하였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해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범사에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기도하며 계획하고 하나님의 선한 지도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자.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에 있으므로 재판할 때에 그릇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통치자들은 다 양심의 법에 따라 공의를 시행해야 한다. 우리는, 비록 왕이 아니지만, 우리의 처한 곳들에서 공의를 실행해야 한다.

공평한 저울은 하나님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다. 우리는 장사나 사업에서, 또 그 외의 모든 금전 거래에서, 또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범사에 공정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해야 한다.

악을 행하는 것을 통치자가 공의로 다스리고 징벌해야 그 정권이 굳게 선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의로운 나라가 되어 평안과 강성함을 누리도록 우리 자신과 백성들의 경건하고 바르고 선한 삶을 위해 기도하자.

13-16, , 왕의 분노와 기쁨, 지혜

[13]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의로운 입술은 진리를 말하는 입술이다. 그것은 선을 선이라고 말하고 악을 악이라고 말하며, 선을 악이라 하든지 악을 선이라 하지 않는다. 불의한 자들은 불의한 입술, 거짓된 입술을 가지고 있고, 악과 타협하고 악인들의 비위를 맞추며 아첨하고 아부하며, 또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 악에 동조한다. 그러나 의인은 비롯 까닭 없이 남을 논단하지는 않으나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하여 남에게 진실한 충고를 준다.

왕들은 의로운 입술을 기뻐하고 정직히 말하는 자들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불의한 말, 거짓된 말, 왕에 대한 거짓되고 악한 비방 등은 백성들을 불안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게 만들고 불평, 불만, 원망하게 만들지만, 의롭고 정직하고 덕스러운 말은 백성들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 위로와 격려를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말은 힘이 있어 불의하고 악한 말은 백성들과 나라를 혼란시킬 것이지만, 의롭고 정직한 말은 백성들과 나라를 평안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의롭고 정직한 말을 하는 자들은 나라의 도덕성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왕들은 그들을 사랑한다. 나라의 도덕성은 나라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의롭고 정직한 말을 하는 자들로 인해 나라의 도덕성이 향상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복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의롭고 정직한 말을 하는 자들은 나라를 번영케 하는, 나라의 충신들인 셈이다. 본절의 말씀은 오늘날 직장 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의롭고 정직한 말을 하는 자는 윗사람들의 기쁨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14] 왕의 진노는 살륙[죽음]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와 같다. 통치의 권세를 가진 왕이 진노하면 죽음의 사자같이 무섭다. 왕은 불의와 악을 볼 때 진노하며, 그가 노하면 악인을 죽일 수 있다. 그에게 그런 권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다. 그는 악인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강포해진 세상 사람들을, 또 소돔과 고모라 성의 음란했던 사람들을 홍수로 그리고 유황불비로 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모든 악인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지옥에 던지실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진노를 쉬게 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히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이다. ‘쉬게 한다는 원어(킵페르)는 ‘덮는다, [감정을] 누그러뜨린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노한 왕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 그는 왕 앞에서 바르고 지혜롭고 선한 말을 겸손히 그러나 담대하게 아룀으로써 왕의 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머물고 모세가 40일간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율법을 받고 언약의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산 아래서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기며 즐거이 뛰놀았다. 그 광경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그들을 다 멸하고자 하셨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돌이키게 하였다(32:10-14).

[15]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희색이라는 원문(오르 페네)얼굴의 빛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밝고 기쁜 얼굴빛을 가리킬 것이다.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같지만, 왕의 기쁜 얼굴빛은 생명을 줄 것이다. 근심과 분노는 자신도, 남도 죽게 한다. 왕의 근심과 진노는 백성의 마음에 근심과 죽음의 두려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평안과 기쁨은 자신도, 남도 살게 한다. 기쁨은 살맛을 나게 하며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왕의 평안과 기쁨은 백성에게 생기를 줄 것이다.

또한 왕의 은택은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다. ‘그 은택이라는 원어(레초노)는 ‘그의 호의(KJV, NASB, NIV) 또는 그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늦은 비는 봄비, 즉 봄에 곡식을 여물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유익한 비를 가리킨다. 유대 땅에는 가을에 비가 내린 후 곡식을 파종하는데, 그 비를 이른 비라고 부른다. 그것은 곡식의 파종을 위해 필요하다. 봄에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데 필요한 봄비가 내리는데, 그것을 늦은 비라고 부른다. 사람이 기쁘면 다른 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듯이, 왕도 기쁘면 백성에게 그럴 것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도 그러하시다. 그가 노하시면 우리에게 죽음뿐일 것이지만, 그가 기뻐하시면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이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셨고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에서 비롯되었다.

[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금과 은, 곧 돈은 세상 사는 데 많은 유익이 있다. 돈이 있어야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예쁜 옷도 살 수 있고 편안한 집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돈은 환난 날에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지 못한다. 돈은 우리의 죽음과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 못한다. 돈은 우리에게 마음의 참 평안도 주지 못하며, 우리 몸의 건강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부자가 다 평안하거나 건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혜와 명철은 이것저것을 다 얻게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죄 문제의 해결을 얻게 하며 심령의 평안을 얻게 한다. 그것은 행복의 가장 큰 요소이다. 그것은 또 몸의 건강을 얻게 하며 경제의 안정도 얻게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영육의 좋은 것들을 다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3:13-18은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은을 얻는 것보다 나으며 지혜가 진주보다 귀하며 그 오른편에 장수가 있고 그 왼편에 부요와 존귀가 있으며 그 길은 즐거움의 길이요 평강의 길이며 지혜는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말하였다.

지혜는 하나님을 모시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화목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지혜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린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지혜는 곧 경건함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딤전 4:8). 경건의 유익은 무엇보다 영생이지만, 현세의 육신적인 일들, 즉 건강과 경제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보장된다.

의롭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통치자들의 기쁨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악하고 거짓된 말로 남을 비방하지 말고, 정직하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로 남들에게 유익을 주고 윗사람들의 기쁨과 사랑을 입자.

왕의 진노는 살육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히 의를 행하는 지혜자가 되어 사람의 노뿐 아니라, 또한 감히 하나님의 노를 가라앉히는 자가 되자.

우리는 우리를 기뻐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그의 의와 거룩, 그의 기쁨과 그의 은총 안에 항상 거하자.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이 금이나 은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우리는 금은보다 더 나은 지혜와 명철을 늘 사모하며 풍성히 누리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의와 선만 힘써 행하자.

17-20, 악을 떠남, 교만, 겸손, 말씀

[17]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大路)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은 악을 떠나는 삶을 산다. ‘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정직한 자는 악을 행치 않고 멀리하며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또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 곧 죄를 안 지으려고 조심하고 의롭게 살기를 힘쓰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한다. 사람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 영혼의 평안을 잃고 고통을 당하고 생명을 잃고 영원히 죽게 될 것이다. 악인의 길은 넓고 평탄해 보여도, 실상 평강이 없고 하나님의 징책으로 인한 고생이 많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면, 영혼이 평안을 누리며 영생에 이를 것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런 삶이다.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 말씀은 사람이 교만하면 패망이 뒤따르고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넘어짐이 뒤따른다는 뜻이다. ‘교만이 무엇인가? 교만은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어 생각하는 마음이다. 교만은 근본적인 악이다. 그것은 모든 악의 근원인 마귀의 죄이다(딤전 3:6).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피조물 됨과 죄악됨을 알지 못할 때 교만해진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라고 말했고(18:27),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하였고(6:5), 베드로는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눅 5:8).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이며 죄인임을 알 때 겸손해진다. 사람은 또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지 못할 때 교만해진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라고 말했다(고전 4:7).

교만한 사람은 결국 망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매우 미워하신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죄악들 중에 첫 번째가 교만한 눈이다(6:16). 잠언 8:13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다”고 말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왕위에서 내려 앉게 하셨듯이(4:30), 교만은 멸망의 길이다.

[19]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에게 친구의 영향은 크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교만한 자들 가운데서도 교만의 악을 깨닫고 겸손한 길로 나갈 수 있지만, 사람은 보통 친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13:20). 교만은 유익이 있어 보인다. 사람이 스스로를 강하게 하면 무슨 일을 해낼 것 같고, 사람이 겸손하면 유약하고 무슨 일을 해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겸손한 자와 함께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만을 미워하시고 교만한 자를 벌하시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교만하면 패망하며 넘어진다(16:18).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벧전 5:5; 4:6에 인용됨).

그러므로 성도는 교만한 자들과 친근히 사귀지 않는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은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말한다(고전 15:33). 성도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시편 131편 저자는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고 말한다(131:1). 또 사도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교훈한다(12:16).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라는 구절(NASB, NIV)일을 지혜롭게 행하는 자로 번역하기도 한다(LXX, KJV). 전자의 번역이 본문의 뜻 같아 보인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같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것이다. ‘좋은 것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심리적, 환경적 평안, 육신적 건강, 물질적 여유 등을 포함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영육의 복을 얻을 것이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그들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마귀의 말을 따른 데 있었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5:21-24; 6:9).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고 그에게 기도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하였던 자이었다(12:6-8).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들었고 그 뜻대로 행하였다. 그들은 다 복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다(1:7-8). 시편 1:2-3은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고 말한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며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 영혼을 보전한다. 성도는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며 죄 짓지 말고 의를 행해야 한다. 의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요일 3:23).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다. 우리는 결코 교만하지 말고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함을 명심하자.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것을 잘 유지하는 길이다.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겸손한 자들과 사귀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교만한 자들과 사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말씀인 성경에 주의하고 그것을 항상 읽고 배우고 묵상하며 힘써 실천하자. 그것이 복된 길이다.

21-24, 지혜, 명철, 선한 말

[21]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가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자이며 그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는다. ‘명철하다는 원어(나본)사려 깊다, 분별력이 있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자는 생각이 깊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어 자주 실수하고 범죄하지만,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사려 깊고 분별력이 있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한다.

또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한다. 본문은 지혜로운 자와 입이 선한 자를 같은 부류에 둔다. ‘선하다는 원어(메세크)는 ‘달콤함이라는 뜻이다. ‘입이 선한 자라는 말은 즐거움을 주는 말, 은혜로운 말을 하는 입을 가리킨다. ‘학식이라는 원어(레카크)지식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듣는 이의 지식뿐 아니라, 말하는 이의 전달 능력 즉 설득력을 의미한다고 한다(BDB). 한 영어성경은 말의 달콤함은 설득력을 증가시킨다라고 번역하였다(NASB).

즐거움을 주는 말을 하는 입은 듣는 이의 지식을 더하게 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말은 남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주지만, 지혜로운 자의 말과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말은 듣는 이의 지식을 더하게 할 것이다. 잠언 10:21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고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말은 말하는 이의 전달 능력도 더하게 할 것이다. 그는 더 설득력 있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을 때 닫힌 마음을 열고 잘 듣게 될 것이다.

[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명철한 자에게는 그의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된다. 명철한 자는 지혜로운 자를 가리킨다. ‘명철하다는 원어(사칼)사려 깊다는 뜻이다. 잠언에서 이 말은 명철하다는 또 다른 말()이나 지혜롭다는 말과 동의로 쓰인다. ‘생명의 샘은 생명수를 길을 수 있는 곳이다. 생명수는 생명을 주는 유익한 교훈을 가리킨다. 어리석은 자는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지혜와 명철은 생명을 주는 교훈을 준다. 그 교훈은 우리를 의의 길로 행케 하고,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주고, 몸에 건강과 힘도 주고, 마침내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잠언 3:18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고 말하며, 잠언 4:23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하고, 잠언 11:30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말한다. 지혜는 의에 이르고, 의는 생명에 이른다.

그러나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된다(NIV). 미련한 자들에게서는 미련함만 나온다. ‘미련함은 인간의 본분을 저버리고 여러 가지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미련한 말들과 행위들에 대해 징계하실 것이다. 미련함은 미련한 자 자신에게 해가 되고 결국 영육의 죽음에 이른다. 그것은 심령의 어두움과 고통, 몸의 쇠약과 질병을 가져오고, 또 지옥 형벌에 이르게 한다.

[23]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이다. ‘슬기롭게 한다는 원어(야스킬)는 ‘사려 깊게 한다, 분별력을 준다, 가르친다는 뜻이다(BDB, KJV, NASB).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자신의 입을 슬기롭게, 사려 깊게 한다. 그것은 그에게 분별력을 준다. 그는 범사에 바르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을 할 것이다. 또 그것은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한다.

잠언의 다른 곳들에 보면,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고(10:31), 여러 사람들을 교육한다(10:21). 또 지혜자의 혀는 양약 같고(12:18), 지식을 선히 베풀고(15:2), 그 입술은 지식을 전파한다(15:7). 이것은 남을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자신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반면에, 지혜 없는 자 곧 미련한 자는 이웃을 멸시하고(11:12),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며(12:18), 그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고(12:23), 미련한 것을 나타내고(13:16), 그 입은 미련한 것을 쏟으며(15:2), 또 그 마음에 정함이 없다(15:7).

다시 정리하면, 지혜를 가진 사람은 지혜로운 말, 바른 말, 선한 말, 덕스러운 말을 하고, 지식 곧 의의 지식, 선한 지식, 덕스러운 지식을 더하고, 자신과 남들에게 유익을 준다. 그렇지만, 지혜가 없는 사람 곧 미련한 사람은 미련한 말, 악한 말, 거짓된 말, 덕스럽지 못한 말을 하고, 자신의 무지와 죄악을 더하고, 자신과 남들에게 해를 끼친다.

[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선한 말이라는 원어(이므레 노암)사랑스러운 말, 기쁘고 즐거운 말이라는 뜻이다. 사랑스러운 말, 기쁘고 즐거운 말은 꿀송이 같고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 잠언 4:22는 지혜의 말이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몸의 건강이 된다고 말하고, 잠언 12:18은 지혜로운 자의 혀가 양약 같다고 말한다.

죄는 근심과 걱정, 불안과 염려, 두려움을 만들고, 그것은 슬픈 말, 불쾌한 말, 싫은 말을 하게 만들고, 그런 말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함을 준다. 그러나 사랑스럽고 기쁘고 즐거운 말은 꿀송이 같고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될 것이다. 그런 말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도,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에도 유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말하였고(15:2), 에베소서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했고(4:29), 또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권면했다(살전 5:14).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말의 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스럽고 기쁘고 즐거운 말씀이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즐거움이며(24, 77, 92), 곤란 중에 위로이며(50), 그 맛이 꿀보다 더 달며(103), 그래서 그는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고(97), 새벽 전에 바랐고 야경이 깊기 전에 깨어 묵상하였고(147-148), 정금보다 더 사랑하였다고 고백한다(127). 실상,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기쁨의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이며(5:22)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이다(14:17).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가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한다. 우리는 마음이 지혜롭고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자가 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말을 하고 지식을 더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지혜를 구하자.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지만,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된다. 우리는 미련하여 징계를 받고 멸망에 이르는 자가 되지 말고, 명철한 자가 되어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 그것은 성경을 가까이 하고 죄짓지 말고 의와 선을 행함으로 가능하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한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말을 슬기롭게, 즉 사려 깊고 분별력 있게 하고 날마다 지식이 더하는 자가 되자. 바르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자는 남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 성령 안에서 바르고 선한 삶을 살며 사랑스럽고 선한 말을 해서 남들에게 기쁨과 위로와 유익을 주는 자가 되자.

25-28, 사망의 길, 노동, 불량함, 패려함

[25]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4:12에도 동일한 말씀이 나온다. 이 교훈의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여 기록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도덕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양심도 사람의 죄성 때문에 도덕 기준이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심지어 사람의 보기에 바른 길이 종종 사망의 길인 경우가 있다.

사사 시대의 특징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다(17:6; 21:25). 그러나 그 시대는 우상숭배와 음란의 풍조가 포용되었던,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대이었다(18, 19).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있고,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의 풍조가 있다. 어떤 교회들은 낙태와 동성애도 용납하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이다. 심지어 부모를 공경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도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돈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음란하고 거짓말하면 그것은 사망의 길이다. 사람은 예수님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삶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 곧 성경이다. 십계명은 의의 기준이며 우리의 생활 규범이다. 그 법들은 양심에도 부합한다. 도덕법은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관은 사망에 이르는 넓은 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를 믿고 계명대로 의와 사랑과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사망의 길로 가지 말고 성경에 교훈된 바른 길로 가야 한다.

[26] 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사람은 자신을 위해 수고하며 그가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노동이나 식욕은 사람의 정상적 활동이며 욕구이다.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종신토록 수고하고 얼굴에 땀이 흘러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17, 19). 농사나 목축이나 고기잡이나 장사나 또 여성들의 집안 일은 다 수고로운 일이다. 욥기 7:1은 인생의 삶이 힘든 노동 같다고 말하였고 시편 90:10은 사람의 일평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일한다. 물론, 일하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주신 복이다.

사람은 근면해야 한다. 게으름은 악이다. 사람이 게으르면 가난해지고 궁핍해진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교훈했고(살전 4:11)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살후 3:10).

그러나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이 모든 수고로운 삶은 실상 헛된 일이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표현하셨고 그것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셨다(6:27, 29). 그것은 영혼 구원의 일, 성화(聖化)의 일, 전도와 교회 건립과 확장의 일, 또 이를 위해 하나님께 헌신하고 헌금하는 일 등이다.

[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며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불량한 자’(이쉬 벨리야알)라는 원어는 벨리알의 사람이라는 말인데 악한 자, 무가치한 자라는 뜻이다. ‘이라는 원어(라아)는 도덕적인 악뿐 아니라, 일반적인 해() 즉 정신적, 심리적인 해와 물질적, 육신적 해를 다 포함한다. ‘꾀하다’ (plot)(NIV)는 원어(카라)‘[우물이나 함정 등을] 파다, 파내다(dig up)(KJV, NASB), 탐구하다는 뜻이다.

무가치한 자는 악을 꾀하며 궁리한다. 선한 자는 선한 일을 생각하고 선한 일을 행하지만, 악한 자는 악한 일을 생각하고 악한 일을 행한다. 또 무가치한 자의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다. ‘불같은 것이란, 미움, 시기, 질투, 욕심에서 나오는, 교만하고 남을 멸시하는, 독한 감정으로 하는 말과 행동을 가리킬 것이다.

주께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고 하셨고(12:34-35), 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라고 말씀하셨다(15:19). 사도 바울은 악인들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였고(3:13-14),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하였다(4:31). 또 야고보는,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거슬러]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고 말했다(3:14-16). 우리는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하고 악한 마음과 언행을 버려야 한다.

[28]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 ‘패려하다’(타푸코스)는 원어는 정로를 벗어나다, 비뚤어지다, 패역하다는 뜻이다.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마음이 교만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올바른 교훈을 대적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남에 대한 이해심이 없다. 그것은 인격의 큰 결함이다. 그런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 우리는 마음이 순진하고 반듯해야 하고 선악판단이 분명해야 한다.

잠언 13:10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또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욕심]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4:1-2). 사람의 마음이 온유 겸손하고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와 사랑이 있고, 또 오래 참는 마음이 있으면, 서로간에 다툼이 생길 여지가 없을 것이다.

또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한다. 사람이 말이 많으면 실수가 생긴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잘 하는 것은 인격적 결함이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 6, 7가지 중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6:19). 사람 사이의 이간은 한 사람에게 한 말과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이 서로 다를 때, 또 상대에게 무엇을 이해하게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릇된 오해를 충동질할 때 생긴다.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남을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고 교훈한다(4:31-3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보기에 바른 것 같으나 사망의 길인 길로 걷지 말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바른 길인 생명의 길로 걷자. 그것은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쓴다. 그것은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자기의 일에 근면해야 한다. 일하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주신 복이다. 그러나 이런 일보다 하나님의 일, 곧 믿음의 일, 성화의 일, 전도와 교회 건립의 일에 더욱 힘쓰자.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며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다. 우리는 악한 심령으로 악을 꾀하거나 남을 비방하고 저주하지 말고 모든 악을 버려야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르고 선한 것을 말하고 행해야 한다.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한다. 우리는 비뚤어진 심령을 가지고 남과 다투거나 남의 말을 해서 사람들 간에 이간질을 하지 말고, 순진한 마음과 반듯한 인격이 되어 선악판단을 바르게 하고 온유 겸손하고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화목하며 살자.

29-33, 강포, 백발, 노를 참음, 작정

[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강포한 자라는 원어(카마스)난폭한 자, 광포한 자라는 뜻이다. ‘불선(不善)한 길이라는 말은 선하지 않은 길, 곧 불의하고 악한 길을 말한다. 난폭한 자는 그 이웃을 꾀어 선하지 않은 길 곧 불의하고 악한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난폭한 자가 되거나 남을 악한 길로 이끄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편 15:1-5,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 . .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 . .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난폭한 자와 친구가 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교제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람은 남을 따라하는 습성이 있다. 선한 자와 교제하면 선한 영향을 받고 악한 자와 교제하면 악한 영향을 받는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한다(13:20). 시편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말하였고,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교훈하였다(고전 15:33; 고후 6:14-16).

[30] 눈을 감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감는다는 원어(아차)감는다’(shut)(BDB, KJV), ‘찌푸린다(contract), 좁힌다(narrow)’(KB)는 뜻을 가진다. 근래의 영어성경들은 눈짓하다’(wink)는 말로 번역하였다(NASB, NIV). 닫는다는 원어(카라츠)깨물다(nip), 움츠리다(pinch)’(BDB), ‘오므리다’(purse)(KB)는 뜻을 가진다. 근래 영어성경들은 움츠리다’(compress) (NASB) 혹은 오므리다’(purse)(NIV)는 말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의 눈을 찌푸리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그의 입술을 움츠리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고 다시 번역할 수 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교만하고 패역한 사람은 그의 교만과 패역함이 그의 눈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잠언 6:16-17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6, 7가지를 말할 때 교만한 눈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사람의 악하고 교만한 마음은 그의 눈, 특히 그의 찌푸린 눈으로 나타난다.

또 악한 사람의 입술도 그의 악한 마음을 드러낸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주께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12:35). 사도 바울은, 악한 자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였다(3:13-14). 사람의 악하고 패역한 마음은 그의 말과 그의 입술 모양으로도 나타난다. 그 입술을 움츠리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는 자이다.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오래 사는 것을 약속하셨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잠언 3:16, [지혜의] 우편 손에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 부귀가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성경은 악인들에게 사는 날이 짧을 것을 경고한다. 악인들의 단명(短命)은 불량품 기계와 같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55:23).

그러므로 흰머리는 영화의 면류관이며 그것은 의로운 길에서 얻는다. 잠언 20:29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말한다. 물론, 의인들의 백발만 복되다. 사람이 악을 행하면서 장수하는 것은 결코 영화의 면류관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큰 불행이다. 왜냐하면 그는 더 많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의 죄의 벌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인이 오래 사는 것은 복되며, 의로운 길에서 얻는 그 백발은 참으로 영광의 면류관이다.

의인들의 백발은 지혜의 표이다. 그것은 많은 실패와 성공 속에서 얻은 지혜를 증거한다. 또 그 백발은 성화의 표이다. 인생의 일생은 성화의 과정이다. 또 그 백발은 봉사 사역의 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많이 기도하고 봉사한 표이다. 또 그 백발은 그의 행복의 표이기도 하다. 성도들의 삶은 복되다. 노인들은 공경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19:32).

[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용사성을 빼앗는 자는 체력이 있고 전투 기술과 능력도 있는 자들이며, 또 지혜와 용기도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노하기를 더디 하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이 말씀은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인다. 아직 인격의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며 화도 쉽게 낸다. 그는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성질대로 말하고 화를 내고 행동하며 그래서 실수하고 범죄하는 것이다. 그는 아직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

그러므로 자기의 감정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인격의 가치는 매우 크다. 그것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은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다. 그것은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은 인격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것이라고 말하였고(고전 13:4, 7), 또 성령의 열매들 중에 절제를 꼽았다(5:2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남을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하였고(4:31-32),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교훈하였다(1:19-20).

[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제비뽑기는 옛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한 방법이었다. 레위기 16:8에 보면, 속죄일에 사용할 두 염소 중에 제비뽑기를 통해 아사셀(내어놓는) 염소가 구별되었다. 여호수아 7:14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한 아간을 찾아낼 때 제비뽑기를 사용하였고, 여호수아 18:10에 보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제비뽑기로 분배하였다. 또 사도행전 1:26에 보면, 신약시대에 열한 사도들은 사도 한 명을 보선하여 맛디아를 세울 때 제비뽑기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세상 사람들도 종종 제비뽑기를 사용하였다. 요나가 탄 배의 선장은 풍랑의 원인을 찾는 데 제비뽑기를 사용하였고(1:7), 악한 하만의 동료들은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을 몰살시킬 날을 정할 때 제비뽑기를 하였다(3:7).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로마 군병들도 그의 옷을 나눠 가지려고 할 때에 제비뽑기를 하였다(27:35).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 ‘일을 작정하기라는 원어(콜 미슈파토)는 ‘그 모든 결정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의 뜻이나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작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사용하기도 하시고 우연한 일이나 사람의 결심이나 회의의 결정을 사용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이시다(1:11). 시편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선하지 않고 악한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강포한 자, 난폭한 자가 되지 말고 주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본받는 자가 되자. 또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선한 자들과만 교제하자.

그의 눈을 찌푸리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그의 입술을 움츠리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룬다. 눈빛이나 말은 그의 마음의 반영이다. 우리는 눈을 찌푸리거나 입술을 움츠리는 악한 자가 되지 말고, 우리의 눈빛이 선하며 우리의 입으로 선하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선한 자가 되어야 한다.

노인들의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다. 의로운 길에서 얻는다. 그러므로 노인들은 백발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그것이 죄는 아니겠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머리에 검정색 물감을 들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의롭게 살면서 영화의 면류관인 백발을 가지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 젊은 이들은 노인들의 백발을 존중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삶으로 절제의 열매를 맺어 자기 감정을 통제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사람들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해야 할 일들을 다해야 하지만,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작정대로와 그의 섭리대로 된다는 것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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