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요한복음 1장 강해설교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18)

성령의 능력 2023. 3. 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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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에서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빛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 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예수님도 함께 했습니다. 성도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18)

                         

본문: 요한복음 1:1-18

요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주제: 성육신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심.

오늘부터 복음서를 강해합니다. 맨 마지막인 요한복음서를 제4의 복음서(The Fourth Gospel)라고 부르며,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를 공관복음(Synoptic Gospel, 같은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 기록)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세베대의 아들 요한입니다. 그는 열두 제자들 중 예수님의 측근에 있었던 세 명(베드로, 야고보, 요한)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본서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채, 자신을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His beloved disciple'라고 자주 표현합니다(13:23, 19:26, 20:2, 21:7, 20).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의 제자인 이레니우스(Ireneus, AD 130-200년경)는 말하기를, 이후에 주님의 제자,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있던 요한이 아시아의 에베소에 있는 그의 거처에서 친히 하나의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했습니다. 본서는 아마 AD 85-90년경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보충하고 있는데, 유월절을 3번 언급함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 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2:13, 23; 6:4; 11:55). 

또 요한복음서만, 예수님의 초기 사역을 포함하여 그분께서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 지방에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일들에 대해 증거 합니다. 요 3: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는 말씀과 마 4:12,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는 말씀을 비교하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생략한 예수님의 초기사역들에 대해 증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공관복음서들은 마지막 유월절 전까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대해서만 증거하나 요한복음서는 몇몇 부분(2:1-12; 4:1-54; 6:1-71; 7:1-9) 외에는 유대 지방, 특히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을 증거 합니다(1:35, 43; 2:13, 23; 3:1, 22; 5:1; 7:14; 8:1; 9:7; 10:23; 11:1). 당시 시대 상황은 위기 상황으로 로마 황제들에 의해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 사도들이 거의 순교를 당했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로마제국으로부터 생존이 위협당하는 묵시문학적 박해상황에서 일곱 상징코드를 사용하여 요한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묵시문서입니다(박호용 교수,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 쿰란, 2019). 요한복음서는 특히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합니다. 요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8: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물론 예수님의 인성(人性)에 대한 증거도 명백합니다. 4:6,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19:28,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서를 시작하는 서언(Prologue, 요 1:1-18)은 흔히 “로고스찬가”로 불리며 말씀(Logos)의 성육신이 주제입니다. 오라토리아 서곡에도 전 교향곡의 주제를 담고 있듯이 이 서언에서 요한복음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4:6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이 되셔서 오직 예수님(예슈아)으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이를 성전 문 예배(길), 성소 예배(진리), 지성소 예배(생명)로 해석한다면, 요 1-12장[길]은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며(요절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13-17[진리]장은 제자들을 양육하며(요절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 18-21장[생명]은 십자가와 부활로 지성소의 예배를 이루셨습니다(요절 19:30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τετέλεσται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혼이 돌아가시니라). 이처럼 생명의 빛, 진리의 빛, 구원의 길의 빛을 서언에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빛(요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2) 그분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3)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분께서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1-2절. 요한이 사역하던 당시의 상황이 묵시문학적 박해 상황이었는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헬라어로 로고스 λόγος Logos)이 곧 예수님(예슈아)이십니다. 이 로고스는 창조와 구원의 중심단어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증거하는데, 사람이 되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표현됩니다. '태초'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맨 처음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창조의 시작 때를 말합니다. 시간은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시간 세계의 맨 처음에 이미 말씀이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태초에 대한 이러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가능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보충합니다. 시간 세계의 맨 처음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미 존재하고 계셨음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시간 세계에 속하지 않는 영원하신 분이심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본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합니다. '말씀'이라고 표현된 이분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고 계십니다. 무궁(올람)부터 계신 말씀과 하나님은 구별되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두 번이나 그 말씀과 하나님을 구별하여 말합니다. 여기에 두 분의 관계성이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즉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창세 전의 관계, 즉 무궁의 관계이며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표현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물론 인격적 관계일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표현된 그분의 신성(神性)을 나타냅니다. 물론 그분께서 인격이시라는 것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구별되시는 것과 동시에 그 두 분이 본질적으로, 본체적으로 하나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구약성경 처음부터 신약성경 끝까지 성경 전체에 흐르는 기본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하나님과 아들 간에는 신비하게도 숫자적으로 본질적 하나 됨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부와 성자의 일체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더 넓게는 성신님과의 관계를 포함한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시라고 밝히 증거 합니다. 이사야는 신적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합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합니다(요일 5:2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태초에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 즉 하나님과 구별되시지만,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분, 즉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있고 하나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인생이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적 영광이 있습니다.

3절.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분이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지만물과의 관계를 증거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만물 창조의 매개자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창조물 중에 그분이 없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골 1:16에서 같은 진리를 증거합니다: “만물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 1:2도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증거합니다. 만물 속에는 인간도 포함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곧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시요 우리의 창조자이십니다.

메시아를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기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가라사대 way-yomer' 혹은 '이르시되'라는 말이 11번 나옵니다. 히 11:3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천지만물은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세상에 있는 것 중에 그분이 없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명의 빛(4-5절), 진리의 빛(6-13절), 천국길의 빛(14-18절)입니다.

4-5절.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구원의 관계를 증거 합니다. 그것은 생명과 빛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육적인 생명, 영적인 생명, 무궁한 생명을 다 포함합니다. 생명은 밝고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일을 축하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슬픔과 우울함이며 거기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축하하지는 않습니다. 무덤은 쓸쓸하고 적막한 곳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봄은 밝고 기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해 나는 생명이다라고 증거 하십니다(요 11:25; 14:6).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그를 '생명의 말씀'이라고 표현했고(요일 1:1) 또 '무궁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요일 5:20). 그분에게는 죄사함으로 인한 죽음의 정복과 무궁한 생명이 죄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은 또한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의 빛입니다. 물론 그것은 지식과 의에서 오는 생명의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무지와 죄는 어두움이요 그 결과는 슬픔과 고통과 죽음, 곧 영원한 지옥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은 슬픔과 고통을 제거하는 참 빛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다 어두움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두움에서 빛의 세계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엡 5:8). 우리는 지식과 의,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에 비취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시는 자들에게는 이 빛이 비취었습니다. 고후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감사하게도, 우리들 속에 이 빛이 비치었습니다. 또 지금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시는 자들에게 이 빛이 비칠 것입니다.

2. 참빛으로 오심(요 1:6-13)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7) 그가 증거 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며 하나님이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요 1:1-3). 또 그분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 되시면서(요 1:4) 동시에 진리의 빛이 되십니다.

6-8절.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태어났으니 이름은 요한입니다. 제사장의 가문에 태어나서 요한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하였으나,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한'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침례]를 전파했던 세례[침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말(마 3:1)은 '세례를 주는 자 요한'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에 대해 세 가지를 증거 합니다.

첫째,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로서 세상에 보내졌다.

둘째, 세례 요한은 참빛에 대해 증거 하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명은 참빛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 8절에서도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종들은 다 참빛을 증거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셋째, 세례 요한은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해 그 참빛을 믿게 하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 하였습니다(마 3:5-6, 11-12).

9절. 그가 증거 한 참빛(the true Light)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은 지식과 의, 또 거기서 나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참빛은 하나님과 인간과 구원에 대한 참지식이며 완전한 의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참 기쁨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인간과 구원에 대해 바른 지식을 주지 못하며 완전한 의를 주지 못하며 참 기쁨을 주지 못하는 거짓된 빛들이 많습니다. 참빛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입니다. 빛은 장롱이나 상자 속에 두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사물을 비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비추기 위해 하늘 높이 달려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른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과 구원에 대한 참빛을 주시고 완전한 의를 주시고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10-11절. 세상은 참빛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으로 출생하셨고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약 33년이나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상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무궁부터 계셨던 분이시며 세상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그분 없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요 1:2-3). 그런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온 세상 가운데 특히 자신이 특별한 소유로 선택하신 유대 땅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백성 된 유대인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공관복음서들이 증거 하는 대로, 유대인의 공회는 그를 사형에 합당한 자로 정죄하였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으로 넘겼습니다.

12-13절. 그러나 그분을 영접하는(엘라본 elabon)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어떤 신비적 주문을 외우거나 어떤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집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자녀이었으나 범죄 한 후 마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인들은 죄의 종들이며 마귀의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십니다(요 8:44). 또 사도 요한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불렀고 그들을 의(義)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구별하였습니다(요일 3:10).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참으로 귀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영광입니다(잠 17:6). 귀한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의 존귀를 함께 누립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존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영광스럽습니다. 그것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입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언제든지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과 응답하심을 받아 누립니다. 또 그들에게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8:17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고 믿는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과 중생(重生)은 혈통적 개념이 아닙니다. 부모가 구원받았다고 자녀가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은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과 중생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중생의 새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혼들, 즉 참된 지식과 도덕성을 상실하였던 우리 영과 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 다시 죽을 수 없는 무궁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과 중생입니다.

3. 성육신의 비밀(요 1:14-18)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5) 요한이 그분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말하기를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6)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인류의 생명과 빛이십니다(요 1:1-4). 본문은 그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사실을 증거 하십니다.

14절. 생명의 빛, 참빛 되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獨生者)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거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입니다. 여기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의 뜻이 구약에서 말하는 성막(Tabernacle)의 뜻입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8)'말씀'(로고스)은 1:1-3에서 증거 된 대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 즉 '창조 이전부터 계신 말씀' '하나님과 구별되지만 또한 하나님이신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으므로 그분은 단순히 말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라고 할 때에 '육신'은 단지 사람의 몸만 가리키지 않고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인간의 본질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과 혼과 영을 가진 참 사람(vere homos)이셨습니다. 그는 사람이라고 불리시고(딤전 2:5)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의 혼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마 26:38). 그분은 인간의 몸만 가진 하나님이 아니시고 인간의 몸과 혼과 영을 가진 참 사람이신 참 하나님(vere Deus)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한 사건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변하셨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도 빌립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4:9). 소요리문답 21 문답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救贖者)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은 하나님의 무궁하신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고 그리하여 두 구별된 본질(natures)과 한 인격(one person)을 가지신 하나님과 사람이셨고 영원무궁토록 계속 그러하시다라고 대답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으로 출생하셨고 성장하셨으며 인간의 특성과 연약성을 다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가난과 질병과 불행의 세상 속에서 죄인들 가운데서 생활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 세상 속에 약 30여 년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죄는 없으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하나 신성(神性)이 그 속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어야 속죄제물이 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입니다. 본문 14절은 성육신하신 독생자(獨生者)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거 합니다. 그것은 특히 그분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나타났습니다(요 2:11). 그분의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셨습니다. 독생자는 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과 다른 뜻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참된 신성(神性)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의 관계는 신비합니다. 그것은 시간 세계에서의 관계일 수 없습니다. 만일 그것이 시간 세계에서의 관계라면 아들의 신성에 근본적 결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성육신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임마누엘, 여호와삼마, 코람 데오, 쉐키나입니다. 그분께서 사람이 되신 까닭은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사람이 범죄 했으므로 사람이 죄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람이 범죄 했는데 짐승이나 천사가 벌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받으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짐승이 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무한자이신 그분께서 유한자가 되셨고, 영광의 주님께서 비천한 종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분에게는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분은 또 진리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는 항상 진리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악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셨고 악을 용납하지 않으셨고 악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셨고 선포하셨습니다(요 12:49-50). 그분은 자신을 길, 진리, 생명이라고 부르십니다(요 14:6).

성육신(成肉身)은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요 하나님의 특별계시 중의 특별계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죄인 구원의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므로 죄인들이 그분을 믿음으로 죄 사함의 구원을 얻습니다.

15-16절. 세례[침례]요한이 그분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말하기를 “제가 전에 말하기를 제 뒤에 오시는 분께서 저보다 앞선 것은 저보다 먼저 계심이니라”(마 3:11) “앞선 자”라는 말은 신분이나 권위에 있어서 뛰어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보다 나으십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무궁하신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58). 구약의 미가 대언자는 메시아에 대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上古)에, 태초에니라”고 예언하였습니다. '태초에'라는 말은 '무궁 전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증거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에게서 은혜로운 말씀을 풍성히 들었을 뿐 아니라,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성신님을 받음과 영생과 기도의 응답 등 충만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런 모든 은택을 받아 누립니다.

17-18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율법과 은혜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별시키는 특징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되어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풍성히 주셨습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신약의 복음 속에도 하나님의 율법이 있습니다. 롬 7:12, 14,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형식과 강조점의 차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고 정죄받은 자임을 보여줍니다(롬 3:19-20).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요 '정죄의 직분'이라고 말했습니다(고후 3:6, 9). 한편,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사람들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합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신약의 복음을 '살리는 것'이요 '의의 직분'이라고 말합니다(고후 3:6, 9).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약의 복음 안에서 밝히 증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와 진리를 받았고 그 은혜와 진리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독생하신 아들](전통본문)이 나타내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또 본래(포포테 popote)[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독생하신 아들]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 4:24) 아무도 보지 못했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시지만(딤전 6: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요 14: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며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고 불리셨고(요 1:1) 또 독생자라고 불리셨습니다(요 1:14, 18). 하나님과 말씀의 인격적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빛으로, 진리의 빛으로,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우리는 신적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진리를 충만히 받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자이시며 그분은 그분의 사도들을 통해 그 진리를 신약성경에 기록하게 하셨고 성경과 성신님을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죄인들에게 풍성히 허락하십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신 분께서 오늘날도 성경말씀과 성신님을 통해 은혜와 진리를 풍성히 주십니다.

[시편 81편 설교말씀]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순종을 원하심(시 81:1-16)

 

[시편 81편 설교말씀]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순종을 원하심(시 81:1-16)

시편 81편에서는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찬양을 촉구하고 있다.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겁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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