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레위기 4장 제사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속죄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레위기는 제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 나왔을 때 성막을 짓고 제사가 시작됩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에서는 예배를 상징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속죄 제사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원죄를 사해주신 제사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원죄가 사라졌고 이제는 영원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성도는 예배를 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속죄제(Sin Offering)
본 문: 레 4:3-12
레 4: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레 4: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레 4:5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레 4:6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레 4:7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레 4:8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레 4:9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레 4:10 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레 4:11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레 4:12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 들어가는 말
1. 속죄제와 속건제의 차이점
┌** 죄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가 규정된다면
└** 허물 // 인간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하나님의 나쁜 현상이다.
** 속건제// 신자의 허물에 관한 제사로서 의무제입니다.
** 속죄제// 신자들이 무능력하여 알지 못하거나 실수로 지은 죄, 또는 연약해서 알면서도 지은 죄를 속죄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인데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2. 죄와 성도의 관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신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며, 성도이며, 자녀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죄의 문제가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제와 미래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께 위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니께서 이 죄를 짊어지시고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는 속량 되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죄악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고 있습니다. 죄의 힘은 아직도 우리는 공경하고 있기 빼문에 신자들이 다시 넘어지는 아픔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였더라도 구원을 상실하거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시적으로 단절되는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영광이 더 이상 우리를 통하여 조명되지 않는 어두운 시간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운명으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 범죄는 자로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 이 죄의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들의 생활 속에 들어오는 죄의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본 론
1. 속죄제의 4등급
1). 제사장의 죄(3절)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허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레 4:3)
<罪孼//서자 얼> 히) `아쉬마트'
뜻) `죄악에 대한 재앙' '罪過가 미치게'(bringing Guilt)
제사장의 범죄는 개인에게 그치지 않고 온 백성에게까지 죄과가 미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지도자였던 제사장들도 죄를 범할 수 있는 위기와 위험은 항상 안고 있었고, 실제로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죄의 문제에 대책을 세우신 것입니다. 지도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항상 지도자들이 완전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제사장에게도 현실적으로 죄의 분제가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회중들은 제사장만은 완전할 것을 요구하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제사장도 사람 가운데서 선택하여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예외일 수가 없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제사장도 이간임을 인정해야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 5:1-3)
혹 목회자의 죄 문제가 일어났을 때,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도자의 죄에 대한 책임은 회중들의 책임보다 훨씬 더 중대했습니다. 제사장의 범죄는 그만의 범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 전체에게로 벌을 받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은 제사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제사장을 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의 우익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범죄함에 대한 속죄 제사는 제사장 자신이 흠 없는 숫 송아지를 바치며 드렸습니다. 이는 모든 제사 짐승들 중에 가장 비중이 큰 제물인데 그만큼 제사장의 죄가 무겁고 또한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2).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 문제(13,14절)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레 4:13-14>
여기에서 '회중'은 히브리어로 <에다>인데 이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울 시대에 백성들이 피를 먹었던 것 같은 집단적인 범죄의 경우에 드렸습니다.
"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오라 하고"(삼상 14:33)
범죄의 가능성은 이스라엘 회중에게 더 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범죄는 교회의 지도자도 할 수 있으며 교회도 할 수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같은 파당이 생길 수도 있고 골로새 교회처럼 이단의 위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만 온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13>
이 세상에 있는 교회는 모두가 부족하므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백성의 죄는 장로들이 회중을 대표해서 속죄제물로 수 송아지를 바쳤습니다.(13-15)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레 3:15>
3). 족장들의 죄 문제(22,23절)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부지중에> `비쉬가가' 뜻) "실수하여, 무지하여, 고의가 아닌 우연히"
족장은 히브리어로 `나시'로서 <市長> 또는 왕이나 한 지파의 지도자를 일컫는다. 하나님은 이들의 죄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지도자에게도 죄를 범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성을 아시고 대책을 세우신 것입니다.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니라"(잠 29:12)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는 의미입니다. 한 사회를 지도하고 영도하는 지도자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에 통치를 받는 자들은 통치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딛전 2:1-2)
바울은 지도자가 국민 전체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잘 파악하였습니다. 지도자가 바르게 나라를 통치할 때, 그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숫 연소를 드리는데 이는 권위, 힘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4). 평민들의 죄( 27,28절)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레 4: 27,28절)
이렇게 각기 다른 4종류의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에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노든 사람들이 모두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가장 현실적으로 그리고 냉정한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죄의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컫는 신자들에게도 피 할 수 없는 문제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범죄자는 암염소나 어린양을 드렸습니다. 만인 어린양을 드릴수 없는 평민은 산 비둘기나 집 비둘기 새끼를 가져와 하나는 번제로, 하나는 속죄제로 드리게 하였습니다.(5:7) 그런데 그런 능력도 없는 사람은 고운 가루에다가 기름과 유향을 넣지 않고 생축을 희생단 위에 화목 제물 위에서만 불사르게 하였습니다.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인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레 5:11-12)
등급을 둔 이유는
1)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는 귀하고 값진 재물이 필요함을 계시해주시기 위함입니다.
2) 가난한 사람도 죄 사함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3) 죄의 속량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2. 속죄제의 사역
1)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 온다.(4절)
인간의 죄의 문제의 참된 해결은 오직 여호와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소리 질러도, 인간 스스로 죄의 무제를 해결하려고 발 부둥을 쳐도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이 없으면 결코 자유함이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죄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만 해결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은 십자가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있어야만 하며, 내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 공로에 근거하여 용서를 구해야만 무죄가 선언됩니다.
2) 제물을 안수하고 죽임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하고 죽였습니다.
<按手>하는 것은 제물을 가져 온자가 자신의 양손을 양 뿔 사이에 얹고 힘껏 내리누르는 행위를 가리킨다. 안수하는 의미는
⑴ 제물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와 제물의 죄를 동일시하여서 나의 죄를 제물에게 짊어 지우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⑵ 하나님의 義가 나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제물이 죽음과 저주를 나 대신 받음으로 내 죄는 해결되고 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선언받는 것입니다.
3)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림(5-7)
"기름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聖所 帳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레 4:5-7)
** 회막 = 성소 (the Holy Place) // 지성소(the Holy of Holies)
** 향단 뿔 // 성소에는 향단, 촛대, 떡상이 있는데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①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손가락에 피를 찍어 지성소 입구 휘장에 7번 뿌림 7번 뿌리는 것과 완전성과 신성성을 나타낸다.
② 분향단 뿔에 바르고
③ 번제단 밑에 그 피를 뿌립니다.
그쯤 되면 성소 안은 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런 후에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피가 하나님 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아무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없지만 이 피가 뿌려졌을 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19-20)
예수의 피가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새롭고 생명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님과 교제하고 대화하고 사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4) 제물을 불로 태움
속죄 제물이 된 생축의 모든 기름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두 콩팥과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 콩팥에 덮인 것은 번제단 위에 불살랐습니다.(레 4:8-10) 철저하게 희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용서 받음을 나타냅니다.
5) 제물의 재를 파묻음
남은 가죽과 고기 그리고 그 내장, 머리는 마치 시체를 파묻듯이 바깥으로 가지고 나와 지정된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불살랐습니다.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지니라"(레 4:11-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서"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 주님! (히 13:12-13) 주께서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묻히신 것처럼, 여기의 이 희생 제물들도 밖으로 끌려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특징
1) 다른 제사들과는 특별히 구분되는 필수 불가결한 제사로서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2) 신분에 따라 제물이 각기 달랐습니다.
3) 번제와 다른 점
① 번제//하나님의 사랑을 충족시키는 그리스도의 품성, 그리스도의 고귀성
② 속죄제//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충족시키는 그리스도의 희생, 수난
■ 맺는말
<모르고 그랬는데 뭘 그래?> 우리는 동네 개구쟁이들의 다툼 속에 곧잘 그런 소리를 듣습니다. 그건 고 저지른 잘못은 크건 작건 용서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허지만 그런 말이 얼마나 유치하고 뻔뻔스러운 논리인가?
모르고 저지른 죄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른다는 사실이 죄의 책임을 면할 충분한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어떤 자리에 갔을 때, 그곳의 예의를 몰라서 실례를 범했을 경우,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웃음거리가 된다. 아무리 모르고 그랬다 하더라도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법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법에 따른 처벌은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런 죄를 지정해 주신 방법대로 드리면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하여 그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해 그 어떤 변명도 할 필요가 없다. 죄 값을 보상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찾을 필요가 없다. 다만 더럽고 추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단 앞으로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사야 35장 주일설교말씀] 빈들의 샘물(사 35:1-10, 요 4:5-14)
[에베소서 2장 주일설교말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엡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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