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베소서 3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은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비밀은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감추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의 백성에게만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복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예수님을 깨달을 수 없고 믿을 수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인간은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도 율법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했지만 욕심 때문에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철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백성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때 율법이 필요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엡 3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에베소서 3:1~21
요절: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9)
주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 교회를 통해 성도들에게 공개된 구원을 받자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에베소서 3장을 강해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바울서신은 항상 절반은 교리[직설법], 절반은 윤리[명령법]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체가 교회론을 가르치고 있는데, 1-3장에서 교회의 참된 터는 그리스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비밀을 가진 교회[교리]를 보여줍니다. 4-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윤리]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엡 3:1-13)
엡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엡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엡 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엡 3: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절 ‘이러므로’라는 말은 앞장 후반부에 언급한 진리를 요약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새 사람을 이루어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어가고 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총입니다. 이방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이 은혜 때문에,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고, 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이라는 원문은 ‘너희 이방인들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님의 죄수가 된’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일하다가 옥에 갇힌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가 되었습니다.
2-4절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오이코노미아 oijkonomiva)’에서 경륜은 계획, 직무를 뜻하는데 앞에서 말한 바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구약 백성들에게 감추어 있었던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에서도 이방인의 구원은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창 12:3).
시편 저자는 성령님의 감동 중에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분을 칭송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시 117:1). 그러나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은 아무도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 이렇게 동등한 은혜가 주어질 것을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사실이 하나님의 계시로 바울과 다른 사도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the mystery of Christ’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은혜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증거 한 내용을 읽는 자마다 그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사실과 그가 깨달은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증거 한 대로, 이방인이었던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었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5절 ‘대언자’는 엡 2:20과 엡 4:11에도 나오는 말로서 신약시대의 대언자(代言者)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목회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더불어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바울이 받고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 곧 이방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주신 은혜의 복음 진리는 바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도 성령님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밀의 진리는 다른 세대 곧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알게 하지 않으셨던 진리입니다. 복음 안에서 계시된 교회의 세계성 곧 교회가 유대인들만의 단체가 아니고 또한 이방인들도 참여하는 모임이라는 진리는, 비록 구약성경에 암시된 바는 있지만, 밝히 드러나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사실은 구약시대에는 비밀과 같았습니다.
6절은 바울이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의 내용을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이방인 편에서 볼 때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이 계시된 신약시대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특권을 누립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기업을 이어받는 자들이 되고, 함께 몸의 지체들이 되고, 함께 복된 약속 곧 부활과 영생과 천국 기업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주 예수님께로부터 이 복음을 받았고 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가 복음사역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대로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된 일이었습니다. 바른 직분은 하나님의 은사를 따라 받습니다. 인위적인 직분은 덕을 세우지 못하나 은혜로 부르시고 은혜로 세움을 받은 자마다 그 동일한 은혜의 역사하심을 따라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8절. 하나님께서 이 은혜의 복음을 위해 바울을 택하신 것은 바울이 남보다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에는 바울이 복음에 무지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 믿는 진실한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울은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을 오늘날 심리학적 표현으로 낮은 자존감(low self-esteem)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입술의 고백뿐이 아니라, 바울은 진실로 겸손한 자이며, 과거에 행했던 자신의 실수와 부족을 깊이 회개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겸손하고 회개하는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자신을 크게 여기는 자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에게 바로 이런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겸손한 봉사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하며 그분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자기의 이름과 영광에만 관심을 둘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취함으로써 결국 그분의 영광을 가리는 자가 됩니다.
9-11절. 9절 ‘영원부터’라는 말은 ‘감추었던’이라는 말 앞에 두어져야 하며, 그 뜻은 ‘오랜 시대 동안’입니다. 10절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이라는 말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수종 드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심지어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피조물들은 심지어 하나님 곁에 있는 선한 천사들이라도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 곧 구원받은 성도들을 통하여 그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깊고 넓은 지혜가 알려집니다. 11절.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예정하신 영원하신 뜻대로 된 것입니다. 창세 전 곧 영원무궁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무궁 전의 계획을 상상합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무궁 전의 의논과 작정대로 온 세상에 충만한 이 구원의 일이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나오는 예정은 미래를 예측한다기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회상해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retrospective confession of faith).
12절. 복음 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는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단번에(once for all) 이루신 속죄(redemption) 사역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 때문에, 우리는 오직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그리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 5:1의 말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히 10:19의 말씀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寶血)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13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깨달았다면, 환난의 현실을 인해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고난과 환난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사탄과 악령들은 오늘도 교회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진실한 종들이 당하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부터 주님의 진실한 종들은 항상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지키시고 도우시고 위로하셨습니다. 고난과 핍박 중에 가지는 믿음과 충성이 참 믿음과 충성입니다. 찬송가 336장에서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3)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도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엡 2:1-13절 본문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감사합시다. 이 일이 사도들을 통해 신약성경에 밝히 계시되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바울의 겸손을 본받읍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기 부족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신을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주님의 교회를 위해 당하는 고난 때문에 낙심하지 맙시다. 참된 헌신은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러다가 고난을 받을지라도 낙심치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바울의 기도(엡 3:14-21)
엡 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엡 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엡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엡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14절. ‘이러하므로(이런 까닭에)’라는 말은 이방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가리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이라는 말씀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이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하늘에 있는 가족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 영광중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키고, 땅에 있는 가족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15절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주어진 이름은 예수(예슈아)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요 그분의 소유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얻었던 이름은 ‘그리스도인 Christian’ 즉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이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구절은 개역 개정에 없는데 전통 사본에는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명칭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한 삼위일체적 관계를 보입니다. 이 명칭은 성경의 다른 몇 곳에서도 나타납니다(롬 15:6; 엡 1:3; 벧전 1:3).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간절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족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속에서 시작되었거나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그분께서 친히 이루시는 일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단지 에베소 성도들의 의지에 호소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선한 결심이나 성실한 노력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여전히 연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생활은 말씀과 기도밖에 없고,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16절. 바울의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은,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분의 성령님으로 에베소 교인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은혜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분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은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시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보혜사’로 성도들 속에 오셔서 그들을 위로, 격려, 권면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십니다. ‘속 사람’이라는 말씀은 ‘중생한 영혼의 변화된 새 성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영혼 속에 심겨진 의와 새 생명의 원리입니다.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옵소서’라는 말씀은 중생한 성도들의 속 사람에게 연약의 도전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영적 갓난아이와 같아서 점점 자라가야 합니다. 히 5:12-13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영적 어린아이 곧 기독교의 초보적 교리의 확신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성도들과, ‘단단한 식물을 먹는’ 영적으로 장성한 자 곧 기독교의 초보적 교리들을 넘어서 의의 말씀을 체험하고 선악을 분별하며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성도들을 대조시킵니다. 벧전 2:2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함으로 자라가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벧후 3:18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합니다.
성도의 연약은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것을 ‘육신의 연약’이라고 표현합니다(롬 6:19; 7:18, 22-24; 8:3). 이것이 속사람에게 도전합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타고난 죄악성의 도전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이런 연약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셔서 지식과 믿음, 의와 선과 진실에 굳게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17-19절 바울의 기도의 두 번째 내용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에 계시게 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어 있어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안에 계십니다. 성도는 그분과 연합되어 있음을 믿음과 순종으로 표현하며 체험해야 합니다(요 15:4-5).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항상 계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께서 성령님으로 우리 속에 늘 계시고, 그분의 진리, 그분의 의(義)가 우리 속에 늘 계심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는 자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릴 수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의 세 번째 내용은 18-19절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사랑 가운데 굳게 서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알아 충만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랑은 하나님의 크신 구속(救贖)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요 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 5: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롬 13:10),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의 내용입니다. 사랑은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과 소망보다도 더 귀한 덕목입니다(고전 13:13). 바울은 그들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구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속죄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그 사랑 가운데 확고하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사랑을 확실히 깨닫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 넓이’란 그분의 사랑이 각 민족, 각 나라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을 막론하고 주어짐을 보이며, 그 ‘길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을 말합니다. 또 그 ‘높이’란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의 고상함과 가치를 보이며, 그 ‘깊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심오함인데, 곧 인간의 머리로 다 측량할 수 없고 인간의 가슴으로 다 느낄 수 없는 그분의 긍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제물(Holocaust)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에 넘치는’ 사랑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자신의 몸과 생명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누가 그 사랑을 다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아 충만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20-21절. 약 1:5에서 하나님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영, 혼, 육의 것들을 우리에게 넉넉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4절부터 21절까지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우리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합시다. 성령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성령 충만으로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시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계심을 믿고 항상 인정하고 의지하며 행합시다. 셋째로, 특히 사랑 가운데서 뿌리를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를 알고 사랑으로 충만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를 알고 사랑의 품성으로 충만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넘치도록 주실 것을 믿읍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성경 말씀을 다 믿고 순종하며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며 간구합시다. 믿음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여 응답받읍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주셔서 하나님을 알며, 이웃을 사랑하며, 기도의 응답을 받고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구원의 경륜을 깨닫고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하시며 예배를 통하여 교회와 나라와 가정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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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 주일설교말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엡 2:1-22) (0) | 2021.04.26 |
[요한계시록 4장 주일설교말씀] "천국 하늘의 예배(1)”(계 4:1-11) (0) | 2021.04.24 |
[요한계시록 설교말씀] "작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키자"-빌라델비아 교회(계 3:7-13) (0) | 2021.04.23 |
[요한계시록 2장 설교말씀] "새벽별의 은총" -두아디라 교회(계 2:17-29) (0) | 2021.04.22 |
[요한계시록 주일설교말씀] "첫 사랑을 회복하라"-에베소 교회(계 2:1-7) (0) | 2021.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