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사도행전 8장 주일 설교말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됨(행 8:1-40)

성령의 능력 2022. 3. 19. 12:17
반응형

사도행전 8장에서는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으로 교회가 핍박을 받아서 사도들은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됨(행 8:1-40)

 

본장은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어서 믿는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결과 복음이 사마리아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증거한다.

1-13,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파됨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잘못된 지식은 잘못된 판단을 가져온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과 감정을 버리고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났다. 고난과 핍박은 성도들에게 예상되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많은 고난을 받으셨고 또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고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5:18-20). 사도 바울은 교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고(14:22), 또 디모데에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하였다(딤후 3:12).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으로 인해 사도들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문 것은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충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예루살렘에 아직도 더 전도할 일이 남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직분과 직무를 완수해야 한다.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경건한 사람들은 스데반을 장사하며 위하여 크게 울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죽음과 이별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아쉽게 떠났기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죽을 때 성도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가 죽을 때는 그런 눈물을 흘리는 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후 자기의 모든 아우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왕 아합의 우상숭배를 따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쳐서 그 창자에 고칠 수 없는 병이 들게 하셨고 여러 날 만에, 2년 만에 그 창자가 그 병으로 인하여 빠져나와 죽었다. 역대하 21:20에 보면, 여호람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스데반의 죽음은 그와는 정반대이었다. 경건한 사람들은 그를 위해 크게 울었다.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누가는 사울에 대해 서술한다. 사울의 열심은 특별하였다.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를 다 멸하려 하였다. 그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내어 옥에 넘겼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13-14에서,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잘못된 지식과 판단은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한다. 유대인들은 잘못된 지식과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서 10:2,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이런 잘못된 지식과 열심 때문에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이 되었다(살전 2:15-16; 2:9). 우리는 지식이 바르고 그래서 항상 바른 판단을 하고 바른 열심을 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4-8]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성도에게 닥친 고난은 유익하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그러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되었듯이, 교회가 당한 큰 고난과 핍박은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은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 고난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 구주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주의 명령대로, 제자들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유다와 사마리아에서도 주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에게 전도하는 능력을 주셨고 또 그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도 주셨다. 무리들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았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 하나님의 복음은 큰 능력으로 전파되고 확증되었다. 그 결과, 그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9-13]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하나님께서는 빌립의 복음 전도를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복음은 빌립을 통해 힘있게 증거되었다.

1-13절의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 하나님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유대인들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바른 지식과 바른 판단과 바른 열심을 가지고 주를 섬기자.

둘째로, 신앙의 여정에는 어려운 일이 있으나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핍박도 그의 섭리 가운데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만드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되었듯이,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핍박과 흩어짐은 오히려 전도의 기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자. 또 우리는 오래 참고 믿음을 지키자. 고난 중에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변절하지 말고 세상과 타협하지도 말자.

셋째로, 무엇보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전도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도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힘써 전도하자.

14-25, 사마리아 교회가 성령을 받음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담대히 예루살렘에 머물러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이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어지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전도 설교이든지 목회 설교이든지 간에 성경적 설교 혹은 성경의 바른 강론은 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특히 구원의 복음이 그러하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것은 그 성에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수십 명 이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을 의미할 것이다. 누가는 6절에서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고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교회가 세워졌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 그것은 사마리아에 과연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사마리아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신약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열매들을 확인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사마리아 교회는 하나님의 동일한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참 교회임이 증거되어야 할 것이다.

[15-17]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본 그 교회의 부족한 점은 그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십자가 대속 사역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곧 위로자 혹은 돕는 자로 신약 성도들 속에 오셨다(14-16).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신자들은 누구나 성령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 계시다고 말하지, 성령을 받으라고 교훈하지 않는다. 로마서 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또한 사도 시대의 성령 강림은 방언, 예언, 병고침 등 초자연적 은사들을 동반하였으므로 성령을 받은 여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교회는 예외이었다. 16절이 그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 구절은 예수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는 것은 일반적 현상인데 사마리아 교회는 예외이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그 교회에 보내셔서 좀더 확실하게 한 후에 성령을 보내시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사마리아 교회가 반쯤 이방인들인 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그 교회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 교회가 한 지체임이 증거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그리로 보내었고 그들은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안수할 때 성령께서 내려오셨다. 안수는 그 자체에 효력이 있기보다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상징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안수로 그 교인들이 성령을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교회도 교회의 한 지체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

[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그런데 사마리아 교회에는 아직 철저하게 회개하지 못한 것 같은 교인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 마술사이었던 시몬이었다. 교회 속에는 때때로 쭉정이나 가라지가 있다. 그것들은 마지막 심판때까지 함께 자란다. 그것들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것은 때때로 어렵다(13:29, 30). 시몬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그의 회개는 불완전한 것 같다. 그는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며 자기도 그 권능을 얻어 누구든지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이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고 소원했다. 그는 돈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사려 하였다. 그의 속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이고 과시하려는 교만과 명예심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든지 자신을 크게 생각하는 자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큰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우리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20-24]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베드로는 직선적이게 그를 책망하였다. 시몬은 아직도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의 마음 속에는 물질만능주의 우상이 있었다. 사람이 돈 사랑을 벗어나야 믿음의 길에 바로 들어설 수 있다. 베드로는 그에게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몬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예수께서는 일찍이 수가 성에 복음을 전하셨었고(4:39-42),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성에, 또 사도들을 통해 사마리아 지방의 여러 마을들에 복음이 증거됨으로, 주께서 명하신 대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증거되었다. 복음의 불길은 온 세계를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심을 믿고 감사하자.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는 초대교회 때처럼 우리에게 초자연적 은사들을 주시거나 초자연적 은사들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거하신다. 그는 우리의 위로자, 우리의 인도자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도우신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가 온 세계에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 교회에 성령 강림을 보류하시고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을 주심으로써 그 교회가 하나님의 한 교회의 지체임을 증거하셨다. 기독교의 근본적 교리들에서 이탈한 이단들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참된 교회들은 신구약성경의 바른 교훈 안에서 하나다.

셋째로, 우리는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하자. 교회 안에는 아직도 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시몬 같은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돈 사랑을 버려야 한다. 성도는 먹을것과 입을 것으로 자족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고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성도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다.

26-40, 구스 내시에게 전도함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방법으로 천사를 빌립에게 보내셔서 전도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특별히 사랑하신 증거이었다. 그는 예루살렘까지 왔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지금 전도를 받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긴급히 전도자를 파송하셨다. 빌립은 천사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갔다. 그 길은 광야이었다.

[27-28]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에 즉시 순종하였다. 에디오피아 즉 구스는 아프리카의 이집트 남쪽, 나일강 상류 지역, 오늘날 수단의 누비아 지역이라고 본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1,5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에 약 5배 되는 거리이다. 거기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드린 것을 보면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예배당과의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내시는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경건한 자이었다. 그는 당시에 구입하기 어려웠을 성경책의 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마 그것을 비싼 값에 샀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병거를 타고 먼 길을 가면서 성경을 읽었다. 길이 좋지 않고 병거를 타고 가며 책을 읽는 것은 많이 흔들리고 불편하였을 터인데도 그는 성경을 읽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이었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열심히 읽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여건 속에서 성경을 힘써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건한 성도들처럼 버스나 전철 속에서도 성경을 읽거나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29-30]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오늘날도 성도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자유로이 활동하셔서 전도자들을 권면하시고 격려하신다. 빌립은 달려갔다. 그것은 그가 성령의 권면에 즉시, 즐거이 순종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분별하며 즉시, 즐거이 순종해야 한다. 전도자는 낯선 사람에게라도 접근하여 말을 걸어야 한다.

[31-34]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공평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그가 읽는 성경구절은 이사야 53:7-8의 말씀이었다. 그가 빌립에게 질문한 것을 보면 그는 성경 내용에 큰 관심이 있었고 그 내용을 믿으려는 마음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활동이 그의 마음 속에 벌써 이루어지고 있었다.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입을 열어 말했다. 이 표현은 그 동안 빌립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잠잠했음을 보이는 것 같다. 전도자는 말쟁이, 수다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말하되 하나님의 은혜로 담대히 말해야 한다. 빌립은 이사야의 글에 익숙하였다. 그것은 그가 유대인들의 습관대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많이 읽었음을 보여준다. 빌립은 평소에 성경에 익숙하였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도 바쁜 날들 속에서 성경을 많이 읽음으로 믿음에 부요한 자들이 되고 전도의 도구로 쓰이기를 원한다. 빌립은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이 전도다. 전도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과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인류의 구주이시다. 사람들은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다.

[36-40]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기뻐하며]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먼 곳으로 떠나는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배려이었다. 본절은 빌립이 베푼 세례의 방식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둘 다 물에 내려간 것은 단지 세례를 베풀기 위함뿐이다. 그것은 물 속에 담그는 세례 방식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세례는 물 속에 담그거나 물을 붓거나 물을 뿌림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물에서 올라올 때 주의 영은 빌립을 이끌어 가셨다. 전도는 전도자보다 전도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만 영속적으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전도자는 떠나갔지만, 전도를 받은 구스 내시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는 기뻐하며 그의 길을 갔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구스 내시의 경건을 본받자.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500 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에서 왔고 또 예배드리고 돌아가면서도 그 아마 흔들리고 불편했을 병거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이러한 경건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과 성경 읽는 일을 귀히 여기자.

둘째로, 우리는 전도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준비하신 구스 내시 같은 영혼이 있었다. 둘째,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빌립 같은 전도자가 있었다. 셋째, 성령의 지시하시고 인도하심이 있었다. 넷째, 전하는 내용이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세상에 구주로 보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해야 한다. 여섯째, 전도의 내용인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높임을 받고 전도자는 감취어져야 한다. 일곱째, 전도로 구원받은 자의 심령에는 기쁨이 있었다.

셋째로, 우리는 준비된 전도자가 되기를 원한다. 집사 빌립은 비록 사도는 아니었으나 준비된 전도자이었다. 준비된 전도자란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또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과, 순종의 마음가짐을 가진 자이다. 우리는 그런 전도자가 되자.

[에스겔 3장 하나님 말씀]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겔 3:1-27)

 

[에스겔 3장 하나님 말씀]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겔 3:1-27)

에스겔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불러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것이 선지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파하는

bedesd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