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에서는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항상 예수님 안에서 열심히 거룩하게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벧전 1:1-25)
1-7절, 산 소망과 믿음의 시련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 . . .
베드로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함과 그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그가 항상 데리고 다니시던 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막 5:37; 9:2; 14:33).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한다. 사도는 주께서 친히 불러 세우신 자들로 열두 제자들과 바울을 가리킨다(눅 6:13; 롬 1:1).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나가서 전도하며 권능을 받아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쳤던 자들이었다(마 10:1; 막 3:14-15).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성도들에게 편지하였다. 위의 땅들은 오늘날 터어키 지역에 해당한다. 성도들을 ‘나그네’라고 부른 것은 우리의 본향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역대상 29:15에 보면, 다윗은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 말하였다. 첫째,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미리 아심’이라는 말은 어떤 이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것을 미리 아셨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셨다. 그러나 이 말은 단지 그런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증거한다(엡 1:4-5, 11).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
둘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그의 피뿌림을 얻은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그를 따랐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미워하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린 자들이다(눅 9:23; 14:26, 33). 그들은 오직 주님만 따르며 그의 말씀만 따르는 자들이다. 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뿌림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다.
셋째, 성도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고린도전서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신 주된 목적과 사역은, 일차적으로 교회 창설 시기에 있었던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 등의 초자연적 은사들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있었다. 죄인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는다. 성령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밝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 이로써 성도는 죄악된 세상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3-4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 . . .
베드로는 말한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 특히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관계를 나타낸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구별되시지만, 신적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시다. 이것이 성경이 밝히 계시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우리들의 거듭남(중생, 重生)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과 은혜로 된 것이다. 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의 근거이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즉 대리적 형벌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영원한 새 생명이 우리 속에 심어진 것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모든 사실을 확증하고 보증하였다. 하나님의 선택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도, 성령의 중생케 하심도 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의 결과이었다.
성도는 거듭난즉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이었고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죄씻음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산 소망인 것이다. 세상의 것들은 다 썩고 더러워지고 낡아진다. 그래서 시편 102편에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라고 말했다(시 102:26). 또 이사야 40장에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말했다(사 40:6-7). 그러나 성도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기업 즉 천국은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성도들은 그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상속자들인 것이다(롬 8:17).
[5-7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란앞절에 말한 천국을 가리킨다. ‘말세에 나타낸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성도들이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천국은 주 예수님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또 성도들은 이 놀라운 구원 곧 천국을 얻기 위해 지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요 10:27-28).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이를[이 복음을]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했다(딤후 1:12).
하나님의 구원과 그 능력의 보호하심이 이와 같이 확실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당하며 잠깐 근심하게도 되지만 도리어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없어질 순금도 용광로 속에서 제련함으로써 나온다. 우리의 믿음의 시련은 금의 제련보다 더 귀하다. 성도들은 환난과 시험을 통해 인격의 단련을 받아 거룩하고 겸손하고 믿음 있는 자가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행들을 많이 함으로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에 ‘잘했다’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하였다(롬 5:3-4).
1절부터 7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과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입은 자들인가?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가? 우리는 속죄신앙을 가졌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신구약 성경말씀에만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지금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인 천국의 산 소망을 든든히 붙잡자. 이 세상은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해지는 허무한 세상이며 인생은 나그넷길이다. 그러나 천국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스런 세계이다. 모든 성도들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영원한 저 천국에 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자.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거리들이 많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믿음의 단련을 받는다. 우리의 믿음은 금과 같이 깨끗케 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자.
8-12절,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
[8-9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가 편지하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던 성도들은 참으로 귀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그를 사랑하였으며, 지금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를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이것은 성령의 증거와 사도들의 증거로 가능하였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5:26-27).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였다. 우리는 상대방의 가치를 알 때 그를 사랑하게 된다.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돈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이 돈의 헛됨을 안다면 돈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알 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치를 알 때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음을 알 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교제와 대화로 표현된다. 사람은 누구를 사랑할 때 그와 교제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또 사랑은 봉사와 수고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돈을 쓰는 것은 아깝지 않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그의 일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물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특히 기쁨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면 기쁨이 생긴다. 그래서 사랑하면 얼굴이 예뻐진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쁨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기쁨이 있는 얼굴은 예뻐 보이지만, 근심과 슬픔이 가득하면 미워 보이기 마련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주를 기뻐하였다. 찬송가 85장의 찬송 작가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썼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믿음의 목표는 영혼의 구원이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하여 죽었었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길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하며 그래야 구원을 얻고 영원한 영광의 천국에 확실히 들어갈 것이다.
[10-11절]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은혜요 그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였던 바이었다. 또 그들 속에 역사하셨던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가 장차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였으므로 선지자들은 그것이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연구하였다. 베드로가 구약 선지자들 속에 역사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증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신성(神性)을 가지신 분이시므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즉 구약시대에도 선지자들 속에 역사하실 수 있었고 또 역사하셨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 속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가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셨다는 것은 구약성경 이사야 53:5-6과 시편 16:10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사야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시편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또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때와 시기를 연구했다는 것은 다니엘 9:24-26을 예로 들 수 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x70)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令)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7x7)와 육십이 이레(62x7)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성밖에 둘러판 못]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62x7)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70이레의 기한에 관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7x7)와 육십이 이레(62x7)가 지날 것이요”라는 말씀은 음력으로 69이레 즉 483년을 양력으로 환산하여(470년),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허락받았던(느 2:5-6) 느헤미야의 때 즉 바사 왕 아닥사스다 20년(느 1:1)인 주전 445년으로부터 계산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이 된다고 본다.
[12절]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신약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드러났다. 예수께서는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서 나타나셨다. 또 이 사실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 전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전파한 바이었다. 또 하늘의 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기를 원한 바이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고 사랑하며 기뻐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예언되셨던 분이시다. 예언된 그가 오셨다. 그는 예언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던 구원사역이 다 이루어졌다. 많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나 믿고 사랑하며 그를 기뻐하였다. 우리도 그들 중에 속한다.
13-25절, 거룩과 사랑을 권면함
[13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받았으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야 한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말은 나태하고 해이하거나 정신 없이 살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곧 하늘에 간직된 기업이며(4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가리킨다(5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임할 천국과 우리의 몸의 부활과 영생이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이 영광스런 구원을 온전히 바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망을 거기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만을 바라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6:11-12,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4-16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알지 못했던 때 좇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을 본 삼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불순종적이고 불결한 삶을 살았었으나, 이제는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레 11:45). 거룩은 이 세상의 더러운 죄악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를 말한다.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 . . .
베드로는 말한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는 사람들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이 되었으므로 나그네와 같은 세상 생활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이 산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불순종과 불결의 죄악들만 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18-19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너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복음 지식이 모든 성도에게 공통적이고 기본적임을 가리킨다. 속죄 신앙 없으면 구원받는 참 신앙이 없는 것이다. 복음의 기본적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은과 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다. 그것은 100억원이나 1조원으로도 살 수 없는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 즉 참된 신성(神性)을 가지신 그 분의 보배로운 핏값으로만 가능하였다. 이렇게 귀한 은혜를 입은 우리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20-21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예정된]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예수께서는 창세 전부터 예정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말세에 우리를 위해 나타내신 바 되셨다. ‘이 말세’는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구약 4천년의 역사가 지나고 이제 마지막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는 예정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시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중에서 살리셔서 부활의 영광을 주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만 한다.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 . . .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가 [성령으로](전통사본)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진리를 순종한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되었고,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 그 깨끗해진 마음으로 거짓이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성도는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이다. 예수께서도 ‘서로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요약된 새 계명을 주셨다. 성도는 이미 실천하고 있겠지만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23-25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 . . .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가 얻은 거듭남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되었다. 그 구원의 생명은 실제로 거룩한 순종과 뜨거운 사랑으로 계속 나타난다. 모든 육체는 풀같이 쇠하고 그 모든 영광은 꽃같이 다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의 새 생명도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따라서 여기에 근거한 성도들의 거룩하고 사랑하는 삶은 결코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 때에 받을 은혜 곧 영광스런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확실하게, 충만하게 소망하자. 또한 우리는 순종하는 자들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모든 행실 즉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자가 되자. 우리는 조상 때로부터 물려받은 망령된 행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 또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으므로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이사야 19장 성경 좋은 말씀] 애굽에 대한 경고(사 19: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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