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사도행전 부활절 설교말씀] 스데반 집사의 설교와 순교(행 7:1~60)

성령의 능력 2022. 4. 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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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장에서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스데반 집사는 죽음을 이겼습니다. 우리도 부활절을 통해서 죽음을 이기고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스데반 집사의 설교와 순교” (행 7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사도행전 7:1~60

요절: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 예수님, 제 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말하기를 ‘주님, 이 죄를 이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59-60)

주제: 스데반이 부활의 주님을 담대히 증거한 후 복음으로 순교를 당하다

 

할렐루야!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The Lord is indeed risen.) 오늘 아침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를 맺으신 주님을 찬양드립니다. 일년 52주일이 있는데 매 주일 부활을 기념하고 증거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우리는 부활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부활절 예배를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 7시 반에 인천지역 4300여개 교회가 연합하여 주안장로교회(주승종목사)에서 부활절 연합 새벽예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오늘 오후 3시에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첫 부활절의 아침에 정원무덤(Garden Tomb)에서 부활의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부르신 사건(요 20:11-19)을 찬송가 442장(통 499장)에서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감격으로 찬양합시다.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I come to the garden alone, While the dew is still on the ros-es, And the voice I hear, Falling on my ear, The Son of God dis-clos-es,

(후렴 Ref)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And He walks with me, and He talks with me,

      And He tells me I am His own;

      And the joy we share as we tarry there,

      None other has ever know.

2.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He speaks and the sound of His voice, Is so sweet the birds hush

   their sing-ing, And the melody That He gave to me,

   Within my heart is ring-ing

3.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I'd stay in the garden with Him, Though the night around me be

   falling, But He bids me go, Through the voice of woe

   His voice to me is calling,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사도행전 7장을 강해합니다.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던 스데반이 마지막 설교하며 순교를 당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먼저 간략히 증거합니다. 그의 설교가 당시 로마시대에 사형언도를 받기 전 행한 “최후의 진술/ 변명 apology”이 된 셈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유명합니다.

 

1. 아브라함, 야곱, 요셉(행 7:1-13)

(1)대제사장이 말하기를 “이것이 사실이냐?”(2)스데반이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와 아버지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3) 말씀하시기를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니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여러분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5)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6)하나님께서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7) 또 말씀하시기를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8)"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9)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에 팔았더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10)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이집트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이집트와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11)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땅에 흉년들어 큰 환난이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12)야곱이 이집트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13)또 다시 보내니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15)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 그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16)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1-3절. 대제사장이 거짓 증언을 듣고 나서 발언의 기회를 스데반에게 주었습니다. 6장 14절에 보니 거짓 증인들이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디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에 대해 “이것이 사실이냐?”고 합니다. 이에 스데반이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형제들, 아버지들(Men, brethren, and fathers),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말씀하시기를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창 12:1-3) 스데반 집사님은 구약성경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으나, 사도들의 지식에 비하면 그의 지식은 불완전하여 보입니다. 그는 당시 통용되는 헬라어역 성경과 당시의 유대인의 전통적 견해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즉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이 사실을 명확히 계시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므로 아브람은 여호와의 명을 좇아 하란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11:31-12:4).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는 것이었음은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창 15:7; 느 9:7).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상숭배의 환경을 떠나 하나님 중심의 새 민족과 새 국가를 시작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실 땅은 가나안 땅이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천국을 예표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우상숭배로 병든 장망성(將亡城)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행 2:40).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본문은 데라가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데라는 하란에서 205세에 죽었고, 아브람은 75세에 하란을 떠났다고 기록합니다(창 11:26, 32; 12:4). 아브람이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났다면 그는 데라가 130세에 낳은 아들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데라가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는 말씀에 조화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세 아들들 중 막내라고 가정해도 큰 형과의 나이 차이가 60년이나 된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차라리 아브람은 데라가 70세에 낳은 아들이었고 그가 75세에 하란을 떠날 때 데라는 아직 145세이었고 아브람이 그곳을 떠난 후에도 60년이나 더 하란에서 살았다고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창세기 11장 끝에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는 기술은 그 사건이 12장의 사건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창세기 저자의 역사 기술의 방식입니다(창 25:17; 35:28 등을 참조).

5-7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약속하셨으나 아직 그 곳을 차지할 때는 되지 않았고 단지 약속하셨을 뿐입니다. 아직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의 자손들은 이방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고 400년 동안 종살이의 고통과 학대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학대했던 그 나라를 심판하시고 그들을 그곳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과 나라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세월 후의 일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이, 오늘 신약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도 오랜 세월 후의 일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8절.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표로서 할례의 규례를 주셨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를 덮고 있는 표피 끝을 베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악성을 잘라내는 성결을 상징했습니다. 그것은 중생(重生)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먼저 죄씻음 받아야 합니다. 죄가 인간의 죽음과 불행의 원인이므로 하나님의 진리의 요지는 사람이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죄성은 제거되어야 하고, 거룩과 의의 새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9-10절.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는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시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한 무서운 죄악입니다(마 27: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져내셨습니다. 물론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결한 삶을 기뻐하십니다. 성결한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방법으로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11-14절. 하나님께서 요셉을 먼저 이집트에 보내어 총리가 되게 하신 것은 가족들을 구원하시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선발대 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집트와 가나안 온 땅에 든 큰 흉년에서 야곱의 자손들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을 통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구원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이집트로 초청하였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거주하게 된 연유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창세기는 출애굽기에 꼭 필요한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이집트로 이민간 친족이 70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사용된 구약 70인 헬라역(LXX, Septuagint)

근거한 내용이라고 보입니다. 그 헬라어역 성경 창세기 46:20은 야곱의 자손으로 애굽에 내려간 자들의 수의 도합을 75명으로 말하는데, 그 수에는 요셉의 손자 5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은 그들을 뺀 70명만을 말합니다.

15-16절. 스데반은 야곱과 그 자녀들이 다 세겜에 장사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산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되었고(창 50:13), 요셉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산 땅에 매장되었습니다(수 24:32; 창 33:19). 그 외의 형제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마 요셉처럼 세겜에 묻혔을 수도 있습니다. 또 스데반이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무덤을 샀다”고 한 말은 정확히 말하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샀다는 뜻으로 새겨 읽어야 할 것입니다.

 

2. 모세를 부르심(행 7:17-36)

(17)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니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 왕위에 오르니 (19)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때(20)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21)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니(22)모세가 이집트 사람의 학문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23)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24)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이집트 사람을 쳐 죽이니라(25)그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26)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27)그 친구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말하기를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28)네가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29)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30)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님의 소리 있어(32)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시니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33)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34)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지금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리라 하시니라(35)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36)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이집트와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17-36절, 스데반은 모세의 생애 120년을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처음 40년은 이집트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양육된 시기이었고, 그 다음 40년은 미디안 광야(오늘날 사우디 아라비아)로 도피하여 생활했던 시기이었고, 나머지 40년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고 일했던 시기입니다.

17-19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이방인의 땅에서 나그네 되고 종이 되어 4백년 동안 괴롭힘을 당한 후에 그곳에서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본문 5-7절; 창 15:13-16). 그때가 가까웠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출 1:7).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 왕위에 올랐습니다. 요셉을 총리로 등용했던 이집트 왕은 이집트의 역사에서 중왕국시대 제12왕조 중 아마 센우스레트 3세이었을 것이다. 본절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은 신왕국시대 제18왕조 때를 가리킬 것(Seti 1세)입니다. 그때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그들을 학대하였고 산파들로 하여금 남자 어린아기를 나일강에 던지도록 명령하였습니다(출 1:8-22).

20-22절. 그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출생 시기는 이렇게 민족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모세는 출생하자마자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그의 기쁘신 때에 그의 기쁘신 방법으로 이루십니다.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부모의 집에서 단지 석 달을 길리우고 나일강에 버림을 받았지만, 강에 목욕하러 나왔던 바로의 딸(하트셉수트 Hatshepsut, 재위: 1503~1482, BC)이 그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데려다가 자기 아들같이 길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요게벳)는 그의 유모로 소개되어 아기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출 2:1-10). 모세는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 가운데 어머니의 품속에서, 기도와 사랑 속에서, 또 경건한 교훈 속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궁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양육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지혜와 학문을 다 배웠습니다. 그는 당시 가장 훌륭한 궁중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말과 행위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고 많은 신체 훈련도 받았을 것입ㄴ다. 그의 몸은 튼튼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었습니다.

[23-25절] 모세는 나이가 40이 되었을 때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그를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해 원수를 갚아 이집트 사람을 쳐죽였다. 그는 몸이 건장하였고 싸움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의감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 가지고는 부족하였습니다. 또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형제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26-29절.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료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말했습니다.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모세는 이 말을 인해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양치는 자가 되었고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그의 젊은 꿈은 여지없이 꺾이었고 좌절과 포기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공주의 아들이, 민족을 위한 고상한 꿈이 있었던 그가, 하루아침에 들판의 양치기로 변해 있었고 날마다 그 일에 전념했습니다.

30-35절.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긴 세월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자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특별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그 40년 동안 모세는 자신을 비우는 겸손 훈련을 철저히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또 그는 많은 인내 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많은 교제를 나눴을 것입니다. 광야는 그에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 40년은 모세에게 겸손과 인내와 기도의 훈련 시기이었습니다. 40년이 찬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는 그 광경을 기이히 여기며 그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지금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리라.”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그의 기쁘신 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때이었습니다.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습니다.

36절. 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였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한 자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끝까지 사용하셨습니다.

 

3. 잘못된 성전관과 우상숭배에 떨어짐(행 7:37-50)

(37)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주 우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대언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38)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이집트로 행하여(40)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41)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42)하나님께서 돌이키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대언자의 책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43)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44)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분께서 명하여 그가 본 그 식양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45)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하나님을 위하여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47)솔로몬이 그분을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대언자의 말한바(49)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50)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37-38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대언자’를 주실 것이라고 예언한 자이었습니다(신 18:18, 34:10). 그가 말한 ‘나와 같은 대언자’는 메시아를 가리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참 대언자이십니다. 그분은 모세보다 더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중보자(intermediary, mediator) 역할을 하였습니다.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는 십계명을 선포하시고 율법을 주셨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동일시되시는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고 봅니다. 스데반은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있었고 생명의 살아있는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글자나 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는 친 음성입니다(히 4:12; 렘 23:29).

39-41절. 이스라엘 조상들은 모세에게 복종치 않았고 그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도리어 이집트로 향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보내셨고 그분의 말씀을 전한 자이었으나, 부패한 백성은 그에게 복종치 않았고 그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집트는 하나님 없는 세상입니다. 이집트에서의 생활은 물질 중심, 쾌락 중심의 죄악된 생활입니다. 거기에는 술취함과 방탕함이 있었고 경건함이나 거룩함이나 절제함이 없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세상적인 삶을 좋아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시내산[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미디안 광야의 Lawz산] 위로 올라간 후, 이스라엘 백성은 40일을 참고 기다리지 못하여서 아론에게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동역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십계명 중 제1, 2계명을 범하는 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여년 이집트에서 생활하면서 우상 숭배에 물이 들었습니다. 금송아지(나일강의 수호신 Apis)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제사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출 32:18-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크게 노하셨습니다. 그는 그들을 다 완전히 멸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가로막고 그들을 용서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들을 당장 다 멸하지는 않으셨으나, 그날에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한 레위 지파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3천명이나 죽임을 당했습니다(출 32:28).

42-43절. 아모스 5:25-27을 인용하여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졌음을 고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데서 돌이키셨고 그들을 우상숭배에 버려두셨습니다. 그들이 섬긴 송아지 숭배가 하늘의 군대 곧 별 숭배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광야의 송아지 숭배는 이스라엘 열왕 시대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와 일월성신 숭배로 이어져 내려갔습니다(렘 44:17, 왕하 21:3). 그가 인용한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 본문(암 5:25-27)이 아니고 당시에 사용되었던 헬라어역 성경 본문입니다. 그래서 맨끝의 말이 ‘다메섹 밖에’ 대신에 ‘바벨론 밖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식굿은 헬라어 몰록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태양신을 말합니다. 히브리어 기윤은 헬라어 레판(렘판, 라이판)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로마의 농업 신(神)인 토성(Saturn)을 가리킵니다. 토성은 태양계의 9개의 혹성 중 목성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별인데 지구의 거의 10배나 큽니다. 오늘날 천체 망원경으로 보면, 토성은 빛나는 7개의 고리를 두르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별입니다. 송아지는 농경 사회에서 풍년과 다산(多産)의 신으로 숭배되었고 별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송아지 숭배와 별 숭배에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히 진노하셨고 그들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바벨론 밖으로 흩으실 것입니다. 민수기 19:2에 의하면 흠없는 붉은 암송아지(red heifer)는 죄사함을 위한 제물로 드려집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붉은 암송아지의 탄생은 메시야 도래의 신호로 여겨지며(영국 크리스천투데이, 2018년 9월 11일 보도) 제3성전을 짓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44-47절.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거역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의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대로 시내산(아라비아)에서 본 모양대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성막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을 때 가지고 들어갔고 다윗 때까지 보존되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가 있었고, 성막 제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그를 섬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중심, 성막 중심으로 살기를 원하였고 성전을 건립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고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그것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48-50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집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그의 발받침입니다(사 66:1-2).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다 그분의 창조물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우상들처럼 피조세계 속에만 갇혀있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성막과 성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당시 공의회원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었던 대로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구름으로 자신의 특별한 임재(臨在)의 표시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성막과 성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긍휼로 그 백성을 받으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와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할 때부터 가나안 정착 후에도, 그리고 왕국의 역사 끝까지 항상 하나님을 불신앙했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막 제도, 성전 제도를 통해 제사장 곧 중보자를 주시고 제사를 통해 속죄 곧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과 새 삶을 모형적으로 보여주신 제도였습니다. 성막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근거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말씀과 기도, 성신님의 감동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고 감사하며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성막, 성전이십니다(요 2:19-21,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4. 스데반의 순교(행 7:51-60)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여러분들이 항상 성신님(Holy Ghost)을 거스려 여러분 조상과 같이 여러분들도 하는도다.(52) 여러분조상들은 대언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여러분들은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53) 여러분들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54)그들이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55) 스데반이 성신님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58)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말하기를 “주님 이 죄를 이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51절. 목이 곧다는 말은 교만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해서 이런 책망을 받았습니다(출 32:9; 33:3, 5; 34:9; 신 9:6, 13; 10:16; 31:27; 대하 30:8; 36:13; 렘 17:23).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없고 깨닫는 마음이 없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중생하지 못한 자를 가리킵니다. 스데반은 그들이 바로 그런 자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항상 성신님을 거슬러 그 조상들과 같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만과 무지(無知)는 하나님을 거역케 하고 그분의 말씀을 불순종케 만듭니다. 하나님의 바른 종들은 옛날부터 책망의 설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52-53절.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아담 이후 모든 인간 중에 유일하게 죄 없는 분이십니다(히 4:15; 7:26; 요일 3:5). 메시아는 죄 없는 자이어야 많은 사람들의 대속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잡아준 자’라는 원어(푸로도타이)는 ‘배반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3년 동안 많은 말씀을 들었고 많은 기적과 병고침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인 예수님을 거절하고 배반하였고 정죄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54절 유대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공의회원들의 마음에 찔렸습니다. 예수님은 사형당할 만한 악인이 아니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함으로 그분을 죽였다는 지적에 흥분합니다. 그들도 양심으로는 예수님께서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날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 한 후 청중들은 마음에 찔러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What shall we do?”(행 2:37)하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경우와 달리 이들은 스데반을 향하여 분노를 표출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들의 악한 감정은 이미 그들의 이성과 양심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회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는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55-56절. 스데반집사님은 성신님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합니다. “보세요. 하늘이 열리고 인자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이 보입니다.” 성경은 계시 사건 때에 하늘이 열렸다고 증거합니다(겔 1:1; 마 3:16; 행 10:11; 계 19:11).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9번이나 말하였으나(롬 8:34; 엡 1:20; 골 3;1; 히 1:3; 8:1; 10:12; 12:2; 벧전 3:22; 계 3:21), 그가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신다는 표현은 사도행전 7장 56절뿐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핍박당하는 스데반과 함께 하심을 나타냅니다.

57-58절. 이에 공회원들은 감정이 폭발하며 사탄의 영이 들어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그들에게는 들을 귀도, 깨닫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누구나 그러할 것입니다. 그때 증인들은 옷을 벗어 사울(헬라문화권에서는 바울이라 부름, Saul, who also is called Paul, 행 13:9)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바리새파의 선생인 가말리엘(Gamaliel, 행 5:34)의 수제자였습니다. 이처럼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날 사울은 그의 순교와 죽음의 책임자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처음 등장합니다.

59-60절.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은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으며 무릎을 꿇고 죽으면서 크게 불러 말하기를 “주님, 이 죄를 이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잠들었습니다(fall asleep). 히브리인들은 죽음을 잠든 상태로 표현합니다(요 11:11-13). 본문은 스데반의 최후에 대해 첫째, 스데반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확신했고 천국과 내세를 확신했습니다. 둘째, 스데반은 원수의 죄의 용서를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교훈(마 5:43-44)과 모범(눅 23:34)을 실천한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잔다’는 말로 표현한 것은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밤에 잠자는 자들이 아침이 되어 깨듯이,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입니다. 그때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고전 15:51-52; 살전 4:16-17). 주님께서 지난 금요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오늘 아침에 부활하신 것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는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집사님은 공의회 앞에서 이스라엘의 선민, 하나님의 구속사, 대언자들을 통해 성전을 주심,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배신함, 잘못된 성전신앙 지적, 예수님 처형에 대한 잘못 지적을 담대히 설교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찔려 사울(바울) 중심으로 돌로 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스데반처럼 끝까지 진리를 외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갑시다. 주님 안에 죽는 자는 복이 됩니다(계 14:13). 주님 안에서 오늘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활의 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체로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사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의 부활을 다시 체험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두려움이 사라지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찬 171장) 부활의 신앙은 스데반을 담대하게 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베드로를 변화시켰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도마는 주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오늘 부활의 믿음으로 변화받아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하옵소서. 부활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4월 셋째 부활 주일 낮 예배 대표 기도문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4월 셋째 부활 주일 낮 예배 대표 기도문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고난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의 금요일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무덤에 장사 지내게 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로 하나님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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