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수기 1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미리암이 나병에 걸린 사건의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자 미리암과 아론은 같은 형제라는 이유로 모세를 비방하게 됩니다. 모세보다 형이고 누나라는 것 때문에 모세를 비방합니다. 사역에서는 혈육의 관계가 필요 없음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리암과 아론이 대들고 비방했는데 나병이 걸린 것은 미리암이 걸렸습니다. 아론은 문둥병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원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혈육으로 사역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한 사역자라면 하나님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이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리암이 나병에 걸린 사건(민 12:1-12)
1절은 바테다베르 미르얌 베아하론 베모쎄 알 오도트 하이솨 하쿠쉬트 아쎄르 라카흐 키 이솨 쿠쉬트 라카흐입니다.
민 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 여기서 '구스'는 원문에 '쿠시'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족속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 반도 및 앗시리아 지역 등에 널리 퍼져 정착한 검은 피부색의 함족 계통을 말한다. 한편 모세의 아내가 된 '구스 여인'(the Cushite woman)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그중 '구스'를 '미디안'과 동일시하여(합 3:7) '구스 여자'를 모세의 본처인 '십보라'(출 2;21)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Calvin, Knobel). 그러나 본서의 기록자 모세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같이 불투명하게 언급했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세 소명 전의 도피 생활에서 이루어진 오랜 전의 사건을 놓고 새삼 미리암과 아론이 문제 삼았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의 견해를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2) 모세가 그의 아내 십보라의 사망 후 재혼하였는데, 바로 그 새 아내가 '구스 여자'였다고 주장한다(Michaelis, Keil, Ewald). 문맥상 이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유대 전승도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즉 모세는 출애굽 시 함께 탈출해 나온 잡족 가운데 한 여인을 취하여 후취(後娶)로 취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 I-iii. p. 76). 즉 '그것은 율법에 표현된 바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평등사상 및 친교관계를 직접 나타내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Baumgarten).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복된 연합 관계를 본보기로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Gerlach).
미리암과 아론이...비방하니라 - 원문에서 강조하는 바는 '미리암'이 모세 비방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미리암의 이름이 이스라엘의 제사를 집례 하는 대제사장 아론의 이름보다 앞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며, 둘째 '비방하니라'(테다베르)는 말의 동사가 여성형 주어를 취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셋째 이 사건에 대하여 미리암만 징계를 받아온 이스라엘의 앞에서 수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은 미리암이 적극 주도하고 아론이 이에 소극적으로 동조한 것이었다(Keil, 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그들이 모세의 결혼을 두고 비방 거리로 삼은 동기에 대해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순수성 보존을 위해 가나안 7 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하셨을 뿐(출 34:16; 신 7:1),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예 금지시키신 것은 아니었다(창 48:5; 룻 4;13-22).
또한 가나안 정복 당시와 에스라 9장, 그리고 느헤미야 13장에 강조된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는 그 결혼이 가져올 종교적 타락(우상 숭배)과 도덕적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자체가 무슨 절대 법은 아니었다. (2) 선민(選民)으로서의 민족적 우월성과 배타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그 종교적 자긍심보다 그 육신적 우월 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질책을 면치 못했다(Kurtz). (3) 그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모세의 탁월한 지위에 대한 그들의 교만한 질투심 때문이었다(2절). 그러므로 그들은 실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는 성구를 깊이 깨달아야 했다.
2절은 바요메루 하라크 아크 베모쎄 디베르 아도나이 할로 감 바누 디베르 바이쉐마 아도나이입니다.
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12:2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근본 이유는 자신들에 비해 월등한 모세의 지위 및 탁월한 권위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다. 여기서 '...와(더불어)'라는 전치사 '베트'는 그 해석상 '...로 부터'로 봄이 더욱 타당하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으로부터만 백성에게 말씀하셨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모세의 중보적(中保的) 기능을 언급한 것으로서, 미리암과 아론 역시도 이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도 신령한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었다. 즉 미리암은 여선지자 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으며(출 15:20, 21), 아론은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이 부착된 판결 흉패를 입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했고 또한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기도 했었다(2:1; 출 28:15, 30).
그러나 그들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신정 정치(神政政治) 하에서의 모세만이 가지는 특수한 권위와 기능 곧 중보자로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출 4:16; 32:22). 그러므로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모세에게만 독특하게 주어진 그 권위에 도전한 것은 그 권위를 덧입히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호와께서...들으셨더라 - 이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 전체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한 표현인 동시에, 이 사건의 정확하고도 공정한 심판을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설 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3절은 베하이쉬 모쎄 아노 메오드 미콜 하아담 아쎄르 알 페네 하아다마입니다.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12:3
온유함(아나브) - 원문상 '온유'란 '자기를 낮춤', '괴롭힘을 당함', '겸손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LXX, Vulgate). 그러므로 모세가 온유했다는 말은 자신을 비방하는 소리에 대항치 않고 감정을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묵묵히 참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편, 이 같은 자기 절제는 인간의 본성적 기질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갈 6:22, 2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勝) 하더라 - 즉 당시 모세의 '온유함'을 따라갈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세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교만한 표현이 아니라, 그 당시의 정황을 객관성 있게, 그리고 모세의 심적 고통을 깊이 있게 다룬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평 학자들은 본절의 표현을 근거로, 본서 및 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보지 않고 후대 기록자에 의한 삽입문이라 본다. 그렇지만 고대의 저작 속에 필자가 자신을 객관화시켜 묘사한 작품은 허다하다(Josephus, Xenophon). 아니면 모세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필(代筆)케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H.E. Freeman).
여하튼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칼메트(Calmet)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할 만하다. '여기서 모세가 아무런 교만의 마음 없이 자신을 칭찬한 것처럼,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위선의 마음 없이 또한 자신을 질책할 것이다'(Kiel & delitzsch, Vol. I-iii. p. 78).
4절은 바요메르 아도나이 피트옴 엘 모쎄 베엘 아하론 베엘 미르얌 체우 쉘라쉐트켐 엘 오헬 모에드 바예체우 쉘라쉐탐입니다.
민 12: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12:4
갑자기(피트옴) - 원뜻은 '눈 깜빡일 동안'으로서, 본문에서는 준비할 여유도 없이 순간적으로 진행된 사실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개입 하사 말씀하실 것이라고는 3인 중 마무도 상상치 못했다는 의미이다.
삼 인은 회막으로 - 회막(會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친히 만나시는 장소로서 곧 이스라엘 통치의 핵이었다(17:4; 출 29:42, 43). 한편 이곳으로 3인을 부르신 것은 그들 상에 진행된 비방 문제를 판결하기 위함이었다. 혹자(lange)는 이 일 이후부터 회막의 앞뜰에 여인들의 출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5절>. 세 사람이 회막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야차라는 동사이다. 칼 능동태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 너희 세 사람은 반드시 회막으로 나오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겠다는 말씀이다.
5절은 바예레드 아도나이 베암무드 아난 바야아모드 페타흐 하오헬 바이크라 아하론 우미르얌 바예체우 쉐네헴입니다.
민 12: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12:5
여호와께서...강림하사 - 곧 회막 위에 머물러있던 구름이 회막에 완전히 내려앉은 것을 의미한다(10절: 11:25).
장막 문에 서시고 -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과 아론이 나아오자 구름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서 '장막 문' 곧 '회막 뜰 입구'에 서셨다(레 8:3, 31, 33). 아마 이때 구름은 미리암과 아론 두 사람을 덮고 그 구름 속에서 여호와가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현존(presence)을 밝히셨던 것 같다.
6절은 바요메르 쉬메우 나 데바라이 임 이흐예 네비아켐 아도나이 바마르아 엘라이브 에트바다 바할롬 아다베르 보입니다.
민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12:6
내 말을 들으라 - 원문에는 '제발', '부탁하건대'라는 의미의 부사 '나'가 첨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제발 부탁하건대 이제 내 말을 들으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인간적인 비방을 삼가고 거룩하고 공의로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사(人間事)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시 119:105; 계 20:4).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며 - 직역하면 '만약 너희 가운데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으며'이다. 이는 미리암과 아론의 직분이 '선지자' 또는 '선지자적 역할'을 담당한 자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방법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1) 이상으로(바마르아) - '이상'(vision)이란 '보다', '나타나다', '제시하다'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라아'에서 유래한 말로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인지(認知)시키시는 초자연적인 광경을 가리킨다(창 46:2; 삼상 3:15; 겔 1:1).
(2) 꿈으로(바할롬) - 외부의 변화 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방법이다(창 20:6; 삼상 28:6; 단 2:4).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간접적이고 일방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제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상호 '하나님과 대면하는' 영광을 부여받았다.
7절은 로 켄 아베디 모쎄 베콜 베이티 네에만 후입니다.
민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12:7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 여기서 '나의 온 집'은 회막뿐 아니라 회막에 관련된 각종 규례 및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관계 그리고 언약 백성 모두를 총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충성하다'(네에만)란 말은 '확실하다', '진실(충실)하다'는 등의 뜻이 들어 있는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모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상황 아래서도 하나님께 최선의 헌신을 다함으로써 충실하다는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창 42:20; 신 28:59; 히 3:2).
이런 이유 때문에 모세는 일반 선지자와는 달리 '이상'이나 '꿈'과 같은 간접적인 의사소통 방법이 아닌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face to face) 특별한 방법으로 교제했던 것이다.
8절은 페 엘 페 아다베르 보 우마르에 베로 베히도트 우테무나트 아도나이 야비트 우마두아 로 예레템 레다베르 베아베디 베모쎄입니다.
민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12:8
그와는 내가 대면(對面)하여 - 여기서 '대면하다'(페 엘 페)란 말의 문자적 의미는 '입과 입을 마주 대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출 33:11에는 '얼굴과 얼굴을 서로 대하여'(face to face)란 말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두 표현은 동일한 의미로써 곧 매우 친밀한 교제 관계를 나타낸다.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일반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시는(6절) 꿈(dreams)이나 이상(visions)과 같은 계시 방법을 사용치 않으시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직접 그와 가까이서 대화하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 직역하면 '외모를 보듯이 하고 수수께끼로 아니하며'이다. 즉 눈으로 보아 단번에 이해할 정도로 확실히 말하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애매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 죄인 된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대원리이다(출 33:18-23; 딤전 6:16). 그러므로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테무나트 예호와)이란 여호와의 본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겔 1:26; 단 7:9), 또는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창 16:7)과도 전혀 다르다(Keil).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이란 출 33:11의 경우처럼 외형적인 고유한 형상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의 '형상'이란 출 33:11의 경우처럼 그의 위엄스럽고 영광에 찬 임재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그와 만나시기 위해 사용하신 특수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결국 본질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모세의 직위와 역할은 다른 모든 선지자들 및 백성들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시고 인정하신 모세의 권위를 시기하거나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9절은 바이하르 아프 아도나이 밤 바옐라크입니다.
민 12: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2:9
여호와께서...진노하시고 떠나시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세 지도자 사이에 발생한 분란을 재판장의 자격으로 해결하시고 그곳을 떠나가셨다. 한편 피고 미리암에 대한 진노의 표시로는 뒤이어 나오는 '문둥병' 징계로 이해할 수 있으나, '아론'에 대한 진노의 결과는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론에게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죄의식과 더불어 잠시 동안의 제사 집례 중지 등으로 죄책이 돌아갔을 것이다.
10절은 베헤아난 사르 메알 하오헬 베힌네 미르얌 메초라아트 카솰레그 바이펜 아하론 엘 미르얌 베힌네 메초라아트입니다.
민 12: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나병에 걸렸는지라
=================================12:10
구름이...떠나갔고 - 즉 여호와의 임재의 가시적(可視的) 증거인 구름이 걷힘으로 여호와께서 그곳을 떠나가셨음을 보이셨다(5, 9절).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 그 당시 문둥병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산 자들이 걸리는 천형(天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치료되기까지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성이 미치는 진(陳)에서 격리되어 생활해야 했다<레 13, 14장>. 한편 여기서 문둥병의 증세가 '눈과 같이' 희어졌다는 말은 그 병세가 상당히 악화(惡化)되었음을 나타낸다. 문둥병이라는 단어는 차라이다. 푸알 강조 수동태이다. 분사수동을 사용하여 미리암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서 문둥병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피할 수 없는 진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론이...본즉 - 당시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문둥병을 판별해야 하는 직무를 갖고 있었다(레 13:2). 따라서 그는 미리암의 증세를 살폈을 것인데, 여기서는 그 증세의 완연함으로 인해 자세히 관찰할 필요도 없이 즉각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모세 비방에 가담한 아론에게는 문둥병이 발병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1) 그는 미리암의 충동질에 단지 동조했을 뿐이다. (2) 거룩한 제사를 집례 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직책의 부정을 막기 위해 문둥병이 면제되었다. (3) 문둥병 발병은 교훈적인 성격의 징계로써 비방자의 대표인 미리암만으로도 충분했다. 따라서 구태여 대제사장 아론을 징계하지 않더라도 신적 권위자에 대한 질투가 가져다주는 부정적 결과를 미리암을 통해 아론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11절은 바요메르 아하론 엘 모쎄 비 아도니 알 나 타셰트 알레누 하타트 아쎄르 노알레누 바아쎄르 하타누입니다.
민 12:11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12:11
내 주여(아도니) - 아론은 모세의 형이지만(출 7:7), 이제는 모세가 신적 권위에 있어서 자기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종이 주인에게 부르는 호칭인 '아도나이'를 사용하여 그에게 호소하고 있다. 특별히 '주'(主)라는 호칭 앞에 '제발, 청하오니' 등의 뜻인 히브리어 '비'(한글 개역 성경에는 '슬프다'로 번역됨)를 언급하여 '비 아도니' 곧 '제발 나의 주여!'(please my Lord-NIV)라는 강력한 소청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는 겸손의 진리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욥 5:11; 마 23:12).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 아론은 자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것이 악한 동기(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인하고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죄의 짐을 면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죄의 짐은 범죄자의 몫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면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관이었기 때문이다(8:12; 레 4:4). 이는 책임 회피성 간구라기보다 자신의 죄악을 적절히 깨닫고 통회하는 자만이 요구할 수 있는 청원이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이 간구는 죄의 짐을 벗게 되는 놀라운 사실을 예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롬 5:8).
12절은 알 나 테히 카메트 아쎄르 베체토 메레헴 이모 바예아켈 하치 베사로입니다.
민 12:12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12:12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나온 자 - 생명과 기쁨을 동반하는 출산(出産)을 기대했다가 살이 거의 썩어버린 사산아(死産兒)를 낳는 것처럼 절망적인 때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미리암의 문둥병 증세가 부패한 사산아처럼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아론의 간절한 청원과 모세의 다급한 중보 기도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는 지금 살이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손가락 발가락 부분이 오그라드는 등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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