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레위기 1장 히브리어 강해설교 중에서 번제의 규례에서 소의 번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레위기의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번제의 규례 중에서 소의 번제를 드리는데 이 소의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셔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원죄의 담벼락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번제의 규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죄악의 길로 가면 안 됩니다.
번제의 규례에서 소의 번제(레 1:1-9)
1절은 바이크라 엘 모쎄 바예다베르 아도나이 엘라이브 메오헬 모에드 레모르입니다.
레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은 다베르 엘 베네이 이스라엘 베아마르타 알레헴 아담 키 야케리브 미켐 코르반 라아도나이 민 하베헴마 민 하바카르 우민 하촌 타케리부 에트 코르바네켐입니다.
레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회막 곧 성막을 건립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와 말씀하셨다. 회막(會幕)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만나주신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오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표준이다(사 8:20; 딤후 3: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에 대해 명령하셨다.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코르반 7133)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생축 곧 소나 양 같은 가축으로 예물을 삼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물을 드리라는데 카라브 7126이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가까이 나온다는 의미다. 동사 히필(사역능동) 미완료 남성 2인칭 복수 문법이다. 히필형을 사용했다는 것은 너희가 직접 말씀에 순종하여 마음에 감동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미완료 시제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나오게 됨을 말한다.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을 받아 드려야 한다. 예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님이 올 때까지 드려야 한다.
3절은 임 올라 코르바노 민 하바카르 자카르 타밈 야케리베누 엘 페타흐 오헬 모에드 야케리브 오토 리르초노 리페네 아도나이입니다.
레 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 하시도록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먼저 번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번제(燔祭 burnt offering; 올라 5930)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사이다. 아담의 아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번제이었을 것이다(창 4:4). 또 노아는 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창 8:20).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나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이었다. 번제는 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드리는 제사다. 여기에 사용하는 모든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의 번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제사드리는 자는 흠 없는 수소를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 되도록[받아지도록] 드려야 했다. ‘흠 없는 수컷’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분이시다(고후 5:21; 히 4:15). 죄가 없는 자이어야 속죄 제물이 될 수 있다. 죄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하므로 남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될 수 없다. 열납 되었다는 단어는 라촌 7522이다. 이 뜻은 마음에 드는 것, 즐거움이라는 의미다. 열납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해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처럼 하나님이 인정하지도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성막에 들어가면 죽는다. 우리의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 열납 되는 예배가 된다.
4절은 베사마크 야도 알 로쑈 하올라 베니르차 로 레카페르 알라이브입니다.
레 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제사드리는 자는 자기가 가져온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했다.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자의 죄책(罪責)을 그 제물에게 돌리는 것, 즉 죄책의 전가(轉嫁)를 의미한다. 죽어야 할 자는 제물이 아니고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제물은 그 사람의 죄를 지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속죄(贖罪)의 원리이다. 이와 같이, 번제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구약 제사들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레위기에는 ‘속죄’라는 원어(카페르 3722)가 47회나 사용되었다. 카페르의 문법은 피엘(강조능동)을 사용했다. 완전히 속죄된 것을 말한다. 번제물에 안수를 하고 번제를 드릴 때 드린 사람의 죄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다. 우리도 예수님께 나의 모든 죄악이 넘어가야 한다. 반은 율법으로 반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온전한 속죄가 되지 않는다. 속죄의 개념은 대리적 형벌을 통한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이다. 죄인은 속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5절은 베샤하트 에트 벤 하바카르 리페네 아도나이 베히케리부 베네 아하론 하코하님 에트 하담 베조르쿠 에트 하담 알 하미즈베아흐 사비브 아쎄르 페타흐 오헬 모에드입니다.
레 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제사드리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죽이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본장에서 ‘그는’(4, 5, 6, 9절)은 제사드리는 자를 가리킨다(한글개역 9절에서 ‘그는’이 생략됨). 제사 드리는 자는 자기가 드릴 제물을 직접 죽여야 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짐승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송아지를 잡으라고 했는데 샤하트 7819이다. 살해하다, 학살하다, 죽이다는 뜻이다. 와우접속사 칼(능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이다. 와우접속사는 즉시로 수송아지를 살해하여 죽여야 한다는 의미다. 죄인은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물을 즉시 잡아야 한다. 이 제물을 통해서 자신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살아났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번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에 있는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피는 곧 생명이며, 피 흘림은 죽음을 상징한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제물의 피 흘림은 속죄를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려졌다(마 26:28).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
피는 제단 사면에 뿌려져야 했다. ‘단 사면에’라는 원어(알 함미즈베아크 사비브)는 ‘번제단 위 사방에’라는 뜻일 것이다(KJV). ‘뿌린다’는 원어(자라크 2236)는 ‘듬뿍, 풍부하게 뿌린다’는 뜻이다. 헬라어 70인 역은 ‘붓는다’는 말(프로스케오)로 번역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손과 양발, 머리와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셨다. 성막의 기구들은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며 그것의 밑부분은 번제단이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십자가 밑에, 곧 번제단 위 사방에 듬뿍 뿌려질 것이었다.
6절은 베히페쉬트 에트 하올라 베니타흐 오타흐 리네타헤이하입니다.
레 1: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했다. 가죽을 벗긴다는 원어는 파샤트 동사이다. 히필(사역능동) 완료 남성 3인칭 단수이다. 옷을 벗기다 약탈하다는 뜻이다. 히필형을 사용한 것은 번제물의 가죽을 완전히 직접 죄인이 벗겨야 함을 의미한다.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는 것은 제물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상징한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겉옷과 속옷까지 벗김 받으실 것을 예표 한 것 같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옷 벗김을 당한 채 수치스러운 죽음을 죽으셨다. ‘각을 뜬다’는 말은 여러 토막들로 자르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받으셨다.
7절은 베나테누 베네 아하론 하코헨 에쉬 알 하미즈베아흐 베오르쿠 에침 알 하에쉬입니다.
레 1: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절은 베오르쿠 베네 아하론 하코하님 에트 하네타힘 에트 하로쉬 베에트 하파데르 알 하에침 아쎄르 알 하에쉬 아쎄르 알 하미즈베아흐입니다.
레 1: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제사장들은 가죽을 벗기고 토막들로 자른 번제물과 머리와 기름을 번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아야 했다. 불은 지옥 형벌을 상징할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요 지옥의 형벌을 포함한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 대신, 속죄 제물이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대한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고난과 죽음 정도가 아니고, 죄인을 대신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었다. 그것은 지옥 형벌의 잔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일반 순교자에게 베푸신 은혜와 위로조차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진노의 불을 쏟으셨다.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 비록 여섯 시간 동안의 고통이었지만, 그것은 택자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당하신 지옥 형벌의 고통이었다.
9절은 베키르보 우케라아이브 이르하츠 바마임 베히케티르 하코헨 에트 하콜 하미즈베아하 올라 이셰 레아흐 니호아흐 라아도나입니다.
레 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는] 그 내장과 정강이[다리들]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사드리는 자는 제물의 내장과 다리들을 물로 씻을 것이며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아야 했다. 그것은 화제(火祭) 곧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사이었다.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이 번제의 특징이다. 다른 제사들은 제물의 일부분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먹기도 하지만, 번제는 제물 전부를 불태워 드려야 했다. 제물을 불사르라고 했는데 카타르 6999이다. 분향하다, 향기를 풍기다는 뜻이다. 동사 히필(사역능동) 완료이다. 히필형을 사용한 것은 제상장이 번제물을 가지고 제단 위에서 직접 불살라 번제로 드려야 함을 말한다. 이것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이것은 온전한 희생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예표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셨다. 그의 죽음은 번제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과, 물과 피와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죄와 구원이 되었다. 여기에 기독교가 있다. 죄인들을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救贖)과 의와 거룩과 생명이 되셨다.
불태워진 번제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하나님은 짐승을 죽여 피 흘리고 불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여기에 거룩하고 귀한 사실, 곧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처분이 있다. 무수히 많은 짐승들이 사람을 위해 희생되었으나, 그것은 인간을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었다. 불태워진 제물은 단순히 짐승이 아니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자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 자신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잔인함이 아니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의 은혜와 사랑이었다. 죄로 더러워지고 허무하게 된 존재인 인생이 무엇이기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인가? 아, 이것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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