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디모데후서 3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성경의 목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3장에서 말세가 되면 세상이 타락할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고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않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거짓 교사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도를 올바른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성도를 구원받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여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제목: 성경의 목적 (딤후 3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디모데후서 3:1-17
요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주제: 말세의 현상을 조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온전하게 살아가자.
지난 주일은 창조절(로쉬 하샤나 Rosh Ha-Shanah, 나팔절 Feast of Sophar)로 지냈으며 (티쉬리 10일)은 속죄일(Yom Kippur)로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하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보혈로 단번에(once for all) 대속해 주신 날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16-17장에서 속죄일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속죄일 때 지성소에 들어가 언약궤 위의 속죄소(Mercy Seat) 위에 수소와 수염소의 피를 뿌림으로 대속했습니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25: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단번에 모든 죄를 속해 주셔서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성소가 되시고 욤 키푸르(속죄일)이 되십니다. 히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오늘은 디모데 후서 3장을 강해합니다. 딤후 3장은 말세의 고통하는 때의 19가지 특징을 소개한 후, 사이비이단에 현혹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성경의 4가지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말세의 고통하는 때 (딤후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1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주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면, 그런 때가 닥칠 때 우리는 그런 풍조를 거스르지 못하고 영향을 받거나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입니다. ‘고통하다’는 원어(칼레포스 χαλεπος chalepos)는 ‘다루기 힘들다, 위험하다’는 뜻이며, ‘때’라는 원어(카이로이 καιρος kairos)는 ‘정한 때(appointed time),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장차 우리가 대처하기 어렵고 위험한 시대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가 바로 이러한 때입니다.
2-5절에 말세에 있는 현상들 19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할 것입니다(lovers of their own selves).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과 사람들의 이목(耳目)과 사회의 여론 때문에 이기적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인간의 뿌리 깊은 죄의 하나는 이기심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함이 없고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배려함이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돈을 사랑하는 탐심이 많아지고 탐욕적이 됩니다(coveteous).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딤전 6:10). 돈 사랑, 재물 중시, 하여 돈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길 것입니다.
셋째로, 스스로 자랑하며 자긍할 것입니다(boasters).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려 하지 않고 자기의 업적을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하고 선전(P.R.)하고 자기를 내세울 것입니다.
넷째로, 사람들은 교만할 것입니다(proud). 겸손한 자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자기를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사람들이 점점 교만하여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크게 여길 것입니다.
다섯째로, 남을 비방하며 비판하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blasphemers). 선한 사람은 다른 이의 허물과 약점을 덮어줍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약점을 들추어내고 심지어 거짓말로 남을 비방할 것입니다.
여섯째로, 자신의 부모님을 거역할 것입니다(disobedient to parents).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인간의 기본적 의무이지만, 말세에는 사람들이 악하여 부모를 멸시하고 거역하며 불효합니다.
일곱째로, 사람들은 감사치 않을 것입니다(unthankful).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우리가 사랑을 입은 자들에게 감사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말세에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덟째로, 거룩하지 않을 것입니다(unholy). 거룩하다는 말은 죄와 불 경건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깨끗하고 정결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사람들이 죄악 된 일을 좋아할 것입니다.
아홉째로, 사람들은 무정할 것입니다(without natural affection). 무정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인정이 없음을 말합니다.
열째로, 점점 원통함을 풀지 않을 것입니다(trucebreakers). 사람들은 상대를 용서하고 화해하려 하지 않고 악한 보복심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열한째로, 점점 참소할 것입니다(false accusers). 참소하는 것은 거짓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반대하는 자나 자기에게 손해를 줄 만한 자를 비난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악한 비난입니다.
열두째로, 참지 못하고 절제하지 않을 것입니다(incontinent). 그것은 술의 절제뿐 아니라, 말이나 감정이나 게임의 절제를 못합니다.
열셋째로, 점차 사나울 것입니다(fierce). 악한 자의 특징은 사나움인데, 그것은 온유하고 양순한 성품과 반대입니다. 그것은 노아 홍수 심판 때의 세상 사람들의 강포한 모습과 같을 것입니다(창 6:11, 13).
열넷째로,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멸시하게 됩니다(despisers of those that are good). 선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심히 타락하면 사람들이 선한 것을 좋아하기는커녕 멸시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열다섯째로, 서로 잘 배반하여 팔 것입니다(traitors). 그것은 의리를 깨뜨리고 배신하고 반역합니다.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악한 일입니다. 특히 가룟 유다처럼 의로운 선생을 배신하는 것은 큰 악입니다.
열여섯째로, 성질이 급해지고 조급할 것입니다(heady). 지혜 있는 자는 모든 일을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겠지만, 지혜 없고 어리석은 자는 조급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열일곱째로, 사람들은 자고(自高)할 것입니다(highminded). 자신을 높이는 것이 곧 교만입니다.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가진 자는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또 남에게 무례한 말을 하고 무례한 행동을 합니다.
열여덟째로, 사람들은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입니다(lovers of pleasures more than lovers of God). 쾌락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즐거움들이 있지만(전 5:18), 사람들은 경건 생활을 위해서보다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쓸 것입니다.
열아홉째로,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the power thereof).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름이나 교회 다니는 모양이나 교회의 직분은 가지고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정합니다. 정말 진지하게 믿고 기도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제적 무신론자이거나 영적 방해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열아홉 가지 내용들을 열거한 후에 디모데에게 “이런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from such turn away”고 합니다. ‘돌아서라’는 말은 ‘그들을 피하라, 그들과의 교제를 끊으라, 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그래야 하나요? 그것은 그들이 참된 성도가 아니므로 우리의 교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가 악에 감염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더럽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2.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이는 박해를 받음(딤후 3:6-12)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10 그러나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님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6-7절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 중에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죄를 중히 진 자들입니다. 그들의 죄는 누적된 무거운 짐입니다. 또 그 여자들은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된 자들이었습니다. 죄악 된 행위는 죄악된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으려면 그 마음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또 그 여자들은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죄를 버리고 죄 씻음을 받으라는 교훈이므로, 회개가 없이는 아무도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고 죄 사함과 영생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 사함과 영생을 얻습니다.
8-9절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얀네(Jannes)와 얌브레(Jambres)는 출 7:11-12(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에 의하면 출애굽 당시 모세를 대적했던 이집트의 마술사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했던 자들도 그들과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세 가지로 묘사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진리, 곧 사람이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할 진리를 대적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생각이 부패한 자들입니다. 사람의 부패는 그 생각의 부패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의 변화가 없이는 참된 회개도, 믿음도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생각의 변화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셋째로, 그들은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은 믿을 것이나 버려두신 자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있어서 예수님 믿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요 예수님 믿지 않는 것은 가장 큰 불행입니다. 악한 자들은 진리를 대적하고 생각이 부패하여 믿음이 없는 자들로 행동하고 있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은 마침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10-11절 “그러나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Iconium)과 루스드라(Lystra)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님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0절의 ‘나의 교훈’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가리킵니다. ‘행실’은 그의 복음에 합한 행실을 말합니다. ‘의향’은 그의 행위의 목적을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의 계명의 요약입니다. ‘인내’는 사랑의 덕으로 고난 중에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11절에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들은 사도행전 13장과 14장에 기록된 바로 루스드라에서 돌로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몇 시간 후 성 밖에서 소생하게 된 핍박을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일들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다니며 그가 당한 고난의 많은 경험들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가까이 활동하면서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가 어떻게 믿고 사랑하며 오래 참고 인내했는지, 또 그가 어떤 핍박과 고난들을 받았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가운데서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그가 순교해야 할 때가 되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될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도 바울의 목숨을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세상의 모든 일을 통치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바울을 많은 핍박과 고난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 건져주셨습니다.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바울 자신이 핍박과 고난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진실한 성도들도 그런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일제 강점기 시대와 6.25 때 공산 정권 하에서 핍박을 당했습니다. 성도를 위한 핍박이 다 끝난 것은 아니고 지금도 악의 세력들은 교회를 핍박합니다. 진실한 성도들은 항상 그것을 각오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안과 밖의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잘 견디고 승리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습니다. 마 5:11-12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3. 성경의 목적(딤후 3:13-17)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히 준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13-14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이 세상은 악하며 속이며 속는 세상이며 그런 성질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이런 세상일수록 하나님의 종들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이미 배웠고 확신합니다. 그는 그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와 목회자들을 성경 말씀을 먼저 잘 배우고 그 배운 진리를 확신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풍조나 속화된 교회들의 풍조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 옛 신앙, 성경적 신앙을 붙들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성경과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배웠던 선생님을 기억하면서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좋은 선생은 좋은 지식을 줄 것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잘 전달한 선생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 그들의 교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지식, 믿음, 분별력, 입장, 인격, 삶을 기억하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아는 것은 바른 것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것들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그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오늘날도 바른 진리를 배운 자들은 그 진리를 가르쳐준 자를 기억하는 것이 그 진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5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것들 안에 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지식은, 첫째 그가 누구에게서 그것들을 배웠는가를 기억하는 것이며, 둘째 그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알았던 성경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유대인 외조모 로이스(Lois)와 어머니 유니게(유니스 Eunice)로부터 성경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이것이야말로 복된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아이들은 성경 대신에 세속적 게임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영어, 피아노, 태권도, 컴퓨터, 암산 학원 등을 가르칠 줄 알아도 성경 읽기를 가르칠 줄 모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중요한 유익을 줍니다. 첫째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유익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첫 번째 목적은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원은 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날 교회들은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교리적으로 빈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하며 웃기고 울리는 감동적인 말들, 즉 허탄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딤후 4:3-4). 이것은 교회의 세속화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고 강론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히 준비되게(엑세르티스메노스 ἐξηρτισμένος exertismenos) 하려 함이니라.” 모든 성경(All Scripture is)은 한권으로 단수 동사(is)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경(πᾶσα γραφὴ)’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39권(히브리어 성경은 22권으로 분류됨)을 가리킵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며 성경을 기록한 40여 명 저자들을 통해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by inspiration of God)’이라는 원어(데오프뉴스토스 θεόπνευστος Theopneustos)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어 된’이라는 뜻인데 개역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아 감동을 좋아해서 이 단어로 번역한지는 모르나 ‘영감 inspiration’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의 신적 원천과 신적 권위를 밝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서 나온 계시 말씀이며, 성경의 사상은 사람의 사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또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성경의 네 가지 목적(유익성, profitable)은 ①교훈(doctrine=바른 교훈)과 ② 책망(reproof) 과 ③ 바르게 함(correction)과 ④ 의로 교육하기에(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유익합니다. ‘교훈’이란 교리적 내용과 행위적 내용을 다 포함합니다. 신앙생활에는 교리적 사상과 행위와 삶이 다 중요합니다. ‘책망’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상의 오류나 행위적 잘못을 다 가리킵니다. 말씀으로 책망받는 일은 복됩니다. 그래야 회개를 하며 바른 길과 행실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바르게 함’은 잘못의 교정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책망을 통해 사상적, 행위적 결함을 고치게 되고 바른 방향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의로 교육함’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성경의 목표입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법적인 의를 이미 얻었으나, 우리의 인격과 삶이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히 준비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경의 두 번째 유익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온전히 준비되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구원의 목표는 우리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며 성경은 이 일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지식과 인격의 훈련이 필요한 이 세상에서 필요합니다. 완전 성화 상태인 천국에서는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함으로써 성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되고 진리의 진리 되며, 새 생명의 생명 됨을 증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온전히 준비된 의로운 인격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선한 일들 중 첫 번째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입니다. 그것은 죄인을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건져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일을 위해 쓰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며 행함으로써 교리-사상적인 온전함과 행위-윤리적인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나, 실제적으로도 의로운 인격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구원의 목표는 선한 일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선한 일 중의 첫 번째는 지옥 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식적으로, 인격적으로 잘 준비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전도의 일과 그 외의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 쓰임 받을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말세의 19가지 종말 특징의 유혹을 물리치고 천국 백성으로 승리하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말세지말의 여러 영적 현상들을 가르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경건하게 살려면 오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말씀 중심으로 진리의 경건성을 회복하여 주님의 의를 이루어 주옵소서. 내일 속죄일을 맞이하여 대속의 예수님을 통해 회개함으로 죄 사함 받게 하시며 이번 주간 추석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수요예배 설교말씀]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대상 17:12)
'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수감사절 주일예배 설교] 끝까지 견디자(마 10:21-23) (0) | 2021.09.30 |
---|---|
[데살로니가후서 2장 주일설교] 주의 강림의 날(살후 2:1-12) (0) | 2021.09.22 |
[고린도후서 12장 주일 강해설교] 약할 때가 강하다(고후 12:1~21) (0) | 2021.09.15 |
[마가복음 1장 강해설교말씀] 세례요한의 전도사역 시작(막 1:1-45) (0) | 2021.09.12 |
[사도행전 1장 성경말씀] 예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을 약속(행 1:1-26) (0) | 2021.09.01 |
[마태복음 1장 강해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족보(마 1:1-25) (0) | 2021.08.23 |
[사도행전 6장 설교말씀] 직분자 선택의 원리(행 6:1-7) (0) | 2021.08.22 |
[광복절 주일예배 설교문]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고전 4:1~21) (0) | 2021.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