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데살로니가후서 3장 설교말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18)

성령의 능력 2021. 6. 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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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설교말씀 중에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살아가던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주님의 재림의 시간을 정해놓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림의 시간을 잘못 정하여 말세가 왔다고 하면서 지금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살지 못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살지 않고 게으르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재림의 날짜를 가르쳐 주시지 않을까요? 지금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날짜를 정해 주면 이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살지 않습니다. 종말이 올 것만 생각하여 결국 인생을 망가뜨리게 되고 먹고 마시는데 신경을 쓰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이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목: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살후 3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1-18

 

요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 3:10)

주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는 부지런해야 하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자

 

오늘부터 새로운 교회력(Church Calendar)이 시작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서방 기독교(Western Christianity)에서 교회의 달력은 대림절(강림절 Advent)로 시작하여 성탄절(Christmas), 주현절(Epiphany), 사순절(Lent), 부활절(Day of Resurrection), 성령강림절(Pentecost), 맥추감사절(Spring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Fall Thanksgiving Day)로 일 년을 지냅니다. 대림절(待臨節 Advent)은 ‘강림절’(降臨節) 또는 ‘대강절’(待降節)이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예수님의 초림인 성탄절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영어로 Advent인데 뜻은 “나타나심 Appearance, 오심 Coming”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성탄=성육신)을 기다리는 것과 동시에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러기에 대림절은 이중적 기다림의 절기(Double Waiting of the Lord season)입니다. 대림절의 예전 색깔은 표현하자면 보라색(purple)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교회 강단의 휘장이나 설교자의 스톨 색깔도 보라색을 표하게 됩니다. 보라색은 주님을 왕으로 기다리는 강림절과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사순절에 사용합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색깔이라고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는 4개의 대림절 초(the Advent Candles)를 켜는데, 켜는 순서가 있습니다.

 

① 오늘 첫 번째 초는 보라색 초(purple candle)를 켜는데,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로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② 그리고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은 진보라색 촛불과 옅은 보라 촛불 (two purple candles)을 켜는데, 이 의미는 회개와 평화의 촛불로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서로 다투며 싸우고 분쟁하며 시기했던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회개하며 평화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③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은 두 보라색 촛불과 함께 분홍색 촛불(one pink candle)을 켜는데, 이 의미는 사랑과 나눔, 기쁨의 촛불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며 어렵고 굶주리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며, 서로 기쁨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④ 마지막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은 흰색의 촛불(one white candle)을 켭니다. 이 의미는 만남과 화해, 사랑의 촛불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과 죄 많은 모든 인류와의 만남과 화해, 회복과 그리고 사랑을 의미하는 촛불입니다.

 

교회에 따라서 4개 촛대를 둥글게 하고 가운데 흰색으로 된 큰 초(Christmas Candle)를 두어 성탄절 이브 혹 성탄절에 켜기도 합니다. 그래서 5개초로 장식합니다. 강림절(대림절) 기간 동안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님의 탄생을 소망 중에 기다리며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는 이 시대의 목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수적인 교회들이 교회력에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성탄절도 가톨릭의 전통이라고 지키지 말자는 의견도 듣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AD 325년 니케아 교회 회의를 인정하지 않는지요? 이 당시는 가톨릭이 시작하기 전 교회의 전통으로 AD, BC를 정했고,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했고, 부활절은 춘분지나 만월 지나 첫 주일로 정해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교회 전통입니다. 선교받은 지 135년 지난 한국교회가 이제는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는 교회력과 예배 전통에 무관심하지 말고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주와 선교지에 있는 교회는 이런 교회력, 예전색, 절기 전통에 익숙해 있습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후서 3장을 강해합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부지런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기도의 교통(살후 3:1-5)

 

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님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주님은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님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님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2절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님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나, 성도들도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위해서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탁한 기도 제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주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주님의 말씀은 그들의 혼을 죄에서 구원한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살전 1:5). 이제 그는 그 동일한 말씀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힘 있게 역사하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달음질하다’는 원어(트레케 τρέχῃ trece)는 ‘자유로이 혹은 빠르게 전진한다’는 뜻입니다.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서 혼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의 힘 있는 역사, 그것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말씀의 일꾼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교인들에게 부탁한 두 번째 기도 제목은, 바울 일행을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져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무리하다’는 원어(아토폰 ἀτόπων atopon)는 ‘이성과 양심을 저버리다, 악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런 기도를 부탁한 것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고 복음 전파의 직무를 다하기를 원해서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맡겨주신 사도의 직무가 악한 자들에 의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직무를 완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믿는 것이 아님을 증거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은 그분을 떠나갔고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요 6:66).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날을 정하고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을 때 그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행 28:24). 심지어 지금 믿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신 자가 아니면 어느 날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5:13).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의 방해나 핍박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이었고 사도들이 행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라고 하십니다(마 10:14). 행 18:6-7에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하였을 때 바울은 옷을 떨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유스도라(Justus)의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얽매이지 말고 또 다른 곳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3-4절 “주님은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가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앞으로도 행할 줄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님 안에서 확신하노니” 바울은 주님께서 미쁘셔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미쁘다’는 말(피스토스 πιστὸς pistos)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굳게 하신다’는 말은 믿음의 견고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자라고 견고해지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시작과 성장과 견고함은 다 신실하신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증거 합니다(빌 1:6). 또 히브리서 12:2는 “믿음의 시작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라고 권면합니다.

 

‘악한 자에게서 지키신다’는 말에서, ‘악한 자에게서’라는 원어(아포 투 포네루 ἀπὸ τοῦ πονηροῦ. apo tou ponerou)는 ‘악으로부터’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키실 뿐만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게 지키십니다. 구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죄악에 빠지게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잠시 연약에 떨어질지라도 주님께서는 즉시 우리를 일깨우셔서 그 연약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로 그 연약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바울은 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가 명한 것을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앞으로도 행할 줄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그가 ‘주님 안에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즉 그는 신실하신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게 하시고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혹은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말씀을 순종케 하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사도들의 명령과 교훈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말씀을 순종케 하실 것입니다.

5절 “주님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신 6:5). 잠 4:23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헛된 데 두지 말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이신 사랑과 그분께서 우리 속에 일으키시는 사랑을 다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보이신 인내와 또 우리 속에 주시는 인내를 다 가리킬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또 그분은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참게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는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2. 무질서한 형제들에 대한 권면(살후 3:6-18)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이는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앎임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6 평강의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명하노니’는 말은 ‘권면하노니’ 말보다 강한 뜻입니다. 권면도 순종해야 하지만, 명령은 더욱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는 말은 이 명령이 인간 바울의 권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명합니다. ‘규모 없이’라는 원어(아탁토스 ἀτάκτως ataktos)는 ‘무질서하게’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도들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유전’(遺傳)이라는 말(파라도시스 παράδοσιs paradosis)은 ‘받은 교훈’입니다. 그것은 교리적 내용과 윤리적 내용을 포함합니다. 살후 2:15에서도 그들이 받은 교훈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신약성경은 사도적 교훈입니다. 성경의 교훈을 순종치 않는 것이 규모 없이 즉 무질서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이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이 없었고, 단지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 사도의 교훈을 순종치 않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런 자들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떠나라’는 말은 교제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어떤 형제가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와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의 명령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권면 정도가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분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 한두 명의 형제의 잘못 때문에 교회가 분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헌법의 규정대로, 교회는 잘못을 행하는 자를 권면, 책망하고, 성찬 교제에서 제외하고, 끝으로 제명, 출교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권징 순서입니다.

 

요한 칼빈의 말대로, 권징은 교회의 힘줄과 같습니다. 교회가 권징을 성실히 행할 때 교회는 튼튼한 교회가 될 것이지만, 교회가 바른 권징을 포기하면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권징을 포기한 교회는, 비록 그 교회에 교인수가 많고 재정이 넉넉할지라도, 영적으로는 힘이 없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전체적으로 배교적일 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진실한 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쉽게 타락하지 않고 단지 서서히 그렇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이 좀 깨어 있기만 하면 그들은 교회의 타락을 상당히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6세기 교회개혁이 있기 직전에 가톨릭은 배교했고 진리를 붙드는 자들은 극소수였습니다. 21세기 기독교계도 16세기 개혁 때와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매우 배교하며 해이해져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역사적 대교단들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고, 하나님 앞에 불성실한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 시대에 성경적 교회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합과 교제의 문제입니다. 종교 통합적(Ecumenical) 교제가 아니라 진리를 수호하고 말씀을 순수하게 보전하는 교제여야 합니다.

 

7-9절 “이는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앎임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바울은 이런 엄숙한 명령의 이유로 자신의 모범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주야로 수고하고 일하면서 일한 모범이었습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이었고 친히 그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천막업을 통한 목회를 한 것입니다(tent making ministry). 그는 교회들로부터 선교지원비를 가급적 받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물질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연약한 교인들의 믿음에 시험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었습니다. 바울의 모범은 목사가 세상일을 하고 교회의 사례를 받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성전 봉사자들인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로 생활하도록 정하셨습니다.

 

또 레위인들은 그들이 받은 물질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드려야 했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의 종들의 생활비로 쓰였습니다. 그것이 성전 봉사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과 목사들을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했습니다. 고전 9: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딤전 5:17-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목사들은 자존심 상하게 생각지 말고 감사히 받고, 또 교회는 그들에게 의식주와 목회비 및 자녀 교육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모범은 단지 목사들이 복음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처신해야 함을 보입니다. 목사는 물질에 대해 초연해야 하고 그런 문제 때문에 교인들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하나님의 진리가 귀하기 때문에 목회자가 된 자이므로 그 고귀한 진리를 세상의 물질과 바꾸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0-12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우리는 일하지 않고 먹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노약자들도 힘든 일은 못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무슨 일이든지 땀 흘리며 일해야 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나 죄 아닌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 떳떳한 일입니다. 사람은 게으르면 안 됩니다. 게으른 자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일만 만드는 자들 busybodies’ (페리에르가조메누스 περιεργαζομένους periergazomenous)라는 원어는 ‘남의 일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 성실히 하지 않고 남의 일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 일을 성실히 하고 남의 집은 자주 방문하지 말고 남에게 쓸데없이 자주 전화나 카톡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용히 일하라는 말은 야단스럽게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나타나 남의 일이나 참견하지 말고 자기 일을 조용히, 성실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13-15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말은 열심히 일하며 사는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본문은 ‘그를 지목하고 교제를 단절하고 그를 부끄럽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한 태도는 미움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그와 교제하고 그를 인정하면 그가 깨닫지 못하겠지만, 그와 교제를 끊는다면 그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버려두면, 교회의 기강이 흐려지지만,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하면 잘 될 것입니다. 그가 그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그와의 교제를 끊고 그를 책망함으로써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교회의 성결을 지키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원수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해야 합니다.

 

16-18절 “평강의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언제나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서나 평안을 주십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때마다 일마다 평안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일마다’라는 원어(엔 판티트로포 ἐν παντὶ τρόπῳ en panti tropo)는 ‘모든 상황에서’인데, 평강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또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에게 평안(shalom=eirene)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편지마다 표적이기로’라는 말은 편지가 기적이라는 뜻이 아니고 단지 ‘편지마다의 표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다른 이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한 후에 편지 끝에 친필로 ‘바울’(파울로스 Παύλος Paulos)이라고 서명하여 그것이 그가 쓴 편지임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개역과 개역 개정 등 네슬판에서 아멘이 누락되어 있는데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복음주의자(Neo Evangelist)들은 우리와 같이 바른 교리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톨릭과 손을 잡고 이단을 포용하는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규모 없이,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기독교계는 16세기 유럽 교회 개혁시대와 같이 다시 어두워진 배교의 시대입니다. 배교하는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유행하고 인기 있는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형제자매들은 ‘일하면서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 대사들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일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부지런히 진리를 수호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 형제자매를 위해 나눔과 섬김에 열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저희 가운데 오시는 주님, 기쁨으로 기다리며 환영합니다. 구주 강림절을 맞이하여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더욱 기다리게 하시며, 저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2의 침례[세례] 요한이 되어 재림의 주님의 길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가 쓰인 때보다 더욱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종말 시대에 더욱 부지런하게 하시며 성실하게 진실하게 최선을 다해 진리를 수호하고 배교와 타락을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을 맞이할 세마포를 준비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빌립보서 2장 주일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빌 2:6-8)

안녕하세요. 오늘은 빌립보서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신 이유는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를 구원하

bedesd15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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