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 설교말씀 중에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있습니다.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 때문에 성도들이 미혹되어 영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양의 옷을 입은 늑대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조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태 7:15-20
요 절: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6-17상)
주제: 거짓의 믿음을 과감히 버리고 진실된 믿음을 회복하자
산상수훈(마 5-7장)의 마지막 부분은 두 가지의 선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난 주일에 살핀대로, 좁은 문과 넓은 문, 오늘 살필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 그리고 두 가지 기초(반석, 모래)입니다. 에덴 중앙에 두 가지 나무(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어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자유를 주셨는데 인류는 불순종하여 따먹지 말라는 과실을 먹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불행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정직을 배워서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못하면 가짜 성도, 가짜 그리스도인밖에 되지 못합니다. 지도자일수록 진실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하고, 이웃에게 진실해야 하고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Be not deceived; God is not mocked.)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7-9)
첫 근대 소설이라 평가 받는 <돈키호테>를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 스페인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지혜의 왕자” 별명)는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고 했습니다.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놓아 근대 계몽주의를 꽃피운 프로이센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이성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순수이성 비판》,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 《실천이성 비판》, 미학, 목적론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는 “정직은 어떤 정책보다 우선이다 Honesty is better than all policies.” 인간사에서 상호간에 신뢰를 유지하는 것에 첫째 조건은 서로 간에 정직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만남에서 신뢰가 구축되기는 어렵습니다.
미시시피 강 유역을 배경으로 개구쟁이 소년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그린 동화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 본명은 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년)는 이를 각색해서 “Honesty is the best policy - when there is money in it.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단, 돈이 될 때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마디 더 발전시켜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거짓은 세상을 반 바퀴 돌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는 정직성문제에 투명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지도자들이 자기 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민족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 1941년 연희대 문과 졸업 일본에 가서 문학과 신학을 공부하던 중 1943년 사상범으로 체포,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그분의 생가를 복원한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룽징)시 1800년대 후반 가난했던 조선 농민들이 농토를 찾아 터를 잡은 곳으로 간도(間島)라 불렀는데 두만강 안에 있는 모래톱 개간지를 사잇섬이라는 뜻의 ‘간토’라고 부르던 땅입니다. 독립군들은 이곳에 명동촌을 건설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용정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글귀가 쓰여있는데, 중국 연변(옌밴)조선족자치주 정부는 1900년 용정에 지어졌던 그의 생가를 2012년 새로 복원하고 중요 문화재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1917년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나 그의 생애 27년 2개월 사는 동안 20년을 간도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이 생가 입구 우물도 복원하고 있는데 시비에 “자화상” 글이 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지도자, 영적인 지도자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정직해야 나라가 개조(改造)됩니다. 교회 지도자들부터 정직해야 합니다. 중직자일수록 더욱 정직해야 합니다.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흥사단 창설) 선생님은 평소 정직을 강조하신 분이십니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끔 속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뼈저리게 뉘우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은 참되고 실속이 있도록 애써 실행하라” 죽더라도 거짓말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봅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5) 사이비 지도자, 이단 교주들은 양의 옷, 광명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에는 이리와 늑대입니다. 속이 이리일수록 겉포장을 화려하고 인자하고 멋있게 합니다. 낮에는 지킬 박사이다가 밤에는 하이드 도둑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단편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Dr. Jekyll and Mr. Hyde)는 변호사인 찰스 어터슨이 그의 오랜 친구인 헨리 지킬 박사와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인 에드워드 하이드의 괴상한 관계의 조사에 관한 것입니다.
하이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지킬 박사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이 조사는 그저 호기심과 걱정에서 시작됩니다. 하이드가 명망 있는 국회의원의 잔인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을 때 양상이 바뀝니다. 어터슨이 그 범죄 수사를 돕게 되자, 지킬은 점점 더 은둔적이고 우울해지고,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하이드씨를 돕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결국 지킬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정신적 부담에 사로잡힌 채 그의 실험실에 그 자신을 고립시킵니다. 어터슨의 다른 친구인 래니언이 지킬이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끔찍한 정신적 충격으로 갑작스레 죽습니다. 결국 지킬의 집사가 어떻게 해서 지킬의 잠긴 실험실에 들어와서 지킬을 죽인 낯선 사람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러 어터슨에게 옵니다. 그들은 함께 실험실에 있는 낯선 사람은 하이드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만 자살로 죽은 하이드의 시체만 찾아 냅니다. 지킬 박사는 흔적이 없습니다. 어터슨은 그의 죽은 친구가 남긴 두통의 편지를 읽습니다. 첫 번 편지는 래니언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하이드가 지킬의 연구로 만든 약물에 의해 지킬이 육체적으로 다른 자아로 변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래니언이 직접 목격했다고 밝힙니다. 두 번째 편지는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게 하는 두 가지 모습(선과 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을 때 일어난 일을 밝힌 지킬의 고백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야운하고 고립시킬 수 있다는 이론에 관해 실험하고는 그는 한 사람을 그의 악한 면의 화신으로 바꿀 수 있고, 또한 그로 인해 그의 선한 면을 순수한 선으로 만들 수 있는 약물을 창조해 냈습니다. 그 약물을 자신에게 사용한 후 지킬은 육체적으로 작아졌고 동시에 그의 악한 본성은 강력해졌습니다. 이 인격을 에드워드 하이드라고 불렀습니다. 하이드로서 약간의 시험을 행한 이후에, 지킬은 그가 지킬 박사로서는 결코 저지르지 못할 모든 금지된 반사회적인 기쁨에 취하기 위해 곧 이 변화를 정기적으로 겪기 시작합니다. 하이드의 모습은 더 강하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지킬이 반작용제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이드가 살인을 저지른 후에, 지킬은 약물을 먹기를 그만두기로 하지만, 결국 하이드의 모습에의 중독은 저항하기엔 너무 강하게 진행되어 버렸고 그는 다시 약물을 복용했습니다. 지킬은 결국 약물 없이도 하이드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약물의 반작용제는 효력을 잃기 시작했고, 약물이 그의 분류 선반에 있는 동안까지만 지킬이 그의 원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킬에게는 그 약물만의 희귀한 재료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특히 그가 처음에 아주 많은 양을 얻은 소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이드로 영원히 남게 될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한국교계에서 제자훈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어느 목회자의 아들(옥성호)이 최근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라는 저술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로 읽힌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요즘 인기 있는 목회자인 릭 워렌이나 조엘 오스틴의 책을 우수하게 추천한 유명한 목회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실토합니다. 독약을 보약이라고 말하며 마시게 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였다고 밝힙니다. 심리학으로 이뤄진 성경공부나 설교에 심한 우려를 나타내며, 정신 분석이 교회에 침투한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성경적 상담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용어인 회개와 순종이라는 단어 대신 ‘상처를 받았다’ 혹은 ‘무의식’ ‘자아의 그림자’등 심리학 용어가 비판 없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저자는 목회자의 자녀로 성장하며 교회에 습관적으로 다녔으나 20대 후반 어느 시점에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어 버렸답니다. 그냥 목회자의 아들이니 교회 출석만 하고 겉으로는 기독교인 행세를 했을 뿐이랍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 2005년 1월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로이드 존슨 목사의 “교리강좌 시리즈”(The Great Doctrines of the Bible)을 읽던 중 진정한 모습의 기독교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후 성경 진리에 새롭게 눈이 열리면서 보니, 오늘날 가짜 기독교를 생산하는 원인이 심리학, 경영학, 세일즈 이론, 엔터테인먼트의 기법이 교회 성장학에 들어와서 교회를 타락시키고 기독교의 본질에서 멀어져 감을 해부하고, 성경과 복음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함을 역설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1권은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2권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3권은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계속 집필했습니다. 저자 자신은 한국교회와 목회자가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오늘날 심리학은 종교가 되었다. 진화론에서 ‘우연’이란 신이 있다면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란 신이 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란 말이 억압된 내면의 자아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심리학 용어로 바뀌었다. 최면 요법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과거를 치료해야 한다는 말은 성령 안에서 살아갑시다로 바뀌어야 한다. 프로이드나 융의 심리학이 신학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과거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위장할 수 있었는데, 오늘날 심리학은 그 단어 앞에 기독교라는 단어를 첨가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독교 심리학으로 등장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고 있다. 심리학의 기초는 인본주의이다. 인간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중심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이런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가 자기 사랑과 자기 수용을 위해 하나님까지도 수단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심리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오늘날 심리학은 교회 안에서 세 개의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
(1) 자기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이를 통해 나의 무의식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2) 긍정적인 사고로 이를 통해 나의 무의식을 살찌운다
(3) 성공의 법칙으로 이를 통해 내 속에 있는 무의식에게 결코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최면을 건다.
오늘의 기독교는 한마디로 ‘부족한 기독교’이다. 많은 교회가 심리학이나 마케팅이나 엔터테인먼트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경영학과 향락의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고 믿고 또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교인수를 많이 모은 교회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절대다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고객으로 삼고 판매하고 있는 현실이다. ‘충분한 기독교’가 ‘부족한 기독교’가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교회의 영적 삶에 대한 충분한 진리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되새기로 싶은 충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 회복은 충분한 기독교 회복을 말합니다. 건강하고 바른 주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나무를 보아 좋은 나무인지 못된 나무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합니다. 가시나무는 포도를 맺을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가 맺어지지 못합니다. 이처럼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반대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게 됩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열매를 한번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무를 다시 살펴보십시다. 이제는 돌아가신 김형태 목사님(연동교회 원로,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께서 생전에 한국교회를 질타하셨습니다. “시청 앞 수만 명 모여 얘기한들 그것은 허위다”는 제목 하에 나온 기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미국 자본주의식 반공주의가 경영하고 있는 기업체 같은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셀(cell) 목회를 주장한 미국의 신학자 자신이 당회나 노회를 갖춘 시스템에서는 셀 목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침례교회나 가능하지 장로교는 셀이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론인데 교회론이 바로 되어 있지 않는 목회나 신앙생활이 얼마나 허위라는 게 큰 교회당, 수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드러나고 있지 않느냐? 며 교회론 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한국 교회가 가야 할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권력 중심부를 개혁하셨듯이 교만한 자, 강한 자, 오만한 자를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대형교회가 되면 조직, 인기, 돈의 맛에 빠져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겸손, 온유, 정직, 성실,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될 것을 강조했습니다.
무엇으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알 수 있을까요? 얼굴은 다 같이 양의 모습입니다. 거짓 선지자일수록 더 잘 위장을 한다고 했습니다.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감춰져서 보이지는 않지만 출발점이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마지막에 가서 보면, 거짓 선지자는 다른 결과,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뿌리도 다르고, 종자는 물론 다르고, 열매도 다릅니다. 그런데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줄기와 잎입니다. 뿌리와 열매를 연결해 주는 잠깐 동안 자라는 줄기가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지도의 가르침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너무 서둘러서 판단하고, 비판하려고 하지를 말고 기다려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그 본색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갈 6:9절에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씨를 열심히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나의 마음 밭에 뿌려야 합니다. 말씀을 열심이 읽고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정에 뿌려야 합니다. 부모와 남편들에게 신앙을 열심히 심으십시오. 자녀들에게 심어야 합니다. 조급히 열매를 바라지 말고 좋은 씨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것이 열매가 되어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짓 대언자들을 삼가며,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기억하고,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오늘부터 성령님의 씨앗을 뿌려 예수님의 나무에 풍성한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번 여름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진실 대신 기도, 성실, 화평, 겸손, 인내, 온유로 불러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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