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데살로니가후서 주일설교말씀] 재림의 엄위성(살후 1:1-12)

성령의 능력 2022. 4. 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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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1장에서는 종말의 신앙을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에 주님은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우리는 재림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강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재림의 엄위성(살후 1:1-12)

 

1-4, 바울의 기원과 감사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 . . .

바울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라고 말한다. ‘실루아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실라이다(15:22).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만난 제자로서 그 후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17:14; 18:5; 19:22; 20:4).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설립되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 일행은 그 곳에서 세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께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할 것을 증명하고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다(2, 3). 그들의 전도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4). 그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창조자의 의미이다. 이사야 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둘째는 구원자의 의미이다. 신명기 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사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造物) 중에 우리로 한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셋째는 보호자, 양육자, 공급자라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인다. 여기에 성도 상호간의 친밀한 관계도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한 가족이며 식구들이다.

신약성경에서 주로 예수께 사용된 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의미로 667회 사용되었다. 구약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헬라어 70인역에서 ‘라고 번역되었다. ‘라는 단어는 온 세상의 주인, , 통치자, 주관자, 즉 하나님이라는 뜻을 지닌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크신 하나님’(딛 2:10), ‘참 하나님이시다(요일 5:20).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표현한 것은 구원이 연합의 관계임을 나타낸다. 죄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게 하였다. 죄인은 영적으로 죽었고 하나님과 분리되었지만, 구원은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킨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것은 교회의 놀라운 행복이며 존귀한 특권이다.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 . . .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바울 서신에서 매번 나오는 의미심장한 인사말이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사랑을 가리킨다. 그것은 죄사함과 중생(重生)과 칭의(稱義) 뿐만 아니라, 계속적 용서와 위로와 격려와 새 힘을 주시는 것을 포함한다. ‘평강’[평안]은 죄사함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을 비롯하여,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및 환경적 평안까지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당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기 때문이었다. ‘더욱 자란다는 원어(휘페르아욱사노)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인 동시에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단지 신비한 감정이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교리적 지식을 포함한다. 너희 믿음이라는 말은 모든 교인들의 믿음을 가리킨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다(13). 땅에 심긴 씨는 싹을 내고 자라서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받은 말씀과 믿음도 자란다. 어린 나무는 강한 바람을 견디기에 힘들지만, 다 자란 나무는 강한 바람도 잘 견디어 낸다. 그것은 깊이 내린 뿌리와 굵어진 가지 때문이다. 믿음도 성경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려 견고한 지식을 가지고 순종으로 단련되면 어려운 시험과 환난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믿음이 된다.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성전 건립 혹은 교회 건립으로 표현된다. 성전 건립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슥 4:6). 주 예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16:18). 물론 인간편에서 성경 읽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의 견고한 믿음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10:17; 눅 1:1-4).

두 번째 감사 이유는 그들의 사랑의 풍성함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을 풍성하게 실천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거룩한 교제와 서로를 돌아보는 수고를 통해 표현된다. 사랑하려면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10:24-25). 또 사랑은 수고를 동반한다. 초기 예루살렘교회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으로써 사랑을 실천하였다(2:44-45). 구제는 사랑의 구체적 행위이다.

[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 . . .

바울은 또 말한다. “그리고(호스테)[그래서]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많은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하나님의 교회들 가운데서 그들을 자랑하였다. 우리는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핍박받을 것도 각오해야 한다(딤후 3:12). 환난의 때에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13:10; 14:2). 주께서는 우리의 당하는 고난들을 다 보시고 알고 계신다. 또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잠시 받는 가벼운 것이다(고후 4:17). 또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는 이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아야 한다.

1절부터 4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안을 사모하며 받아 누리자. 둘째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이 크게 자라기를 기도하자.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며 우리편에서도 모임, 성경 읽기, 기도, 순종에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성도들 간의 사랑이 풍성하기를 기도하자. 우리는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하고 병든 자들을 심방하고 위로 격려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모든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잠깐인 세상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야 한다.

5-9, 재림과 심판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핍박과 환난 중에서 참은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며 또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도의 바른 신앙고백과 그것에 일치하는 의로운 삶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일차적 증거이지만, 핍박 중에서의 인내는 그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귀한 증거인 것이다.

[6-9]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불로](원문)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자이시다. 그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의 의와 선에 대해 상주시고 불의와 악에 대해 보복하실 것이다(2:6-8). 특히, 그는 자기 백성을 핍박한 자들에게 그것에 상응하는 고통으로 갚으시고 고통받은 성도들에게는 위로와 안식으로 갚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다스리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들로 사용하실 것이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나타나실것이다. ‘하늘은 장소적 의미를 가진다. 하늘은 그가 지금 계신 곳이다. 주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지금 하늘의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아계신다(16:19; 눅 24:51). 그는 거기로부터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주의 재림을 나타내는 두 단어는 강림’(파루시아)나타나심’(아포칼륍시스)인데, 본절에서는 나타나심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불꽃 중에라는 말은 형벌을 주시리니라는 어귀에 연결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주의 재림은 악인들에게는 심판이다. 우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이다. 또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므로 우상숭배와 온갖 부도덕한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말한다(9:10). 또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7:3).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대속(代贖)의 진리가 들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다(고전 1:23; 15:3). 이 복음을 믿은 자들은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이 복음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과 형벌을 받을 것이다.

재림하시는 주 예수께서는 악인들에게 불로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베드로도 마지막 불의 심판에 대해,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했다(벧후 3:6-7).

바울은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한다. ‘떠나라는 원어(아포)는 근원의 뜻도 있고(KJV) 분리의 뜻도 있다(NASB).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얼굴과 심판의 능력과 영광으로 악인들을 향하실 것이며, 또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물리침을 받고 성도들을 부활시킬 그의 힘의 영광을 체험치 못할 것이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은 지옥 형벌을 가리킨다. 지옥은 악인들을 위한 마지막 형벌의 장소이다. 마태복음 25:41, 46,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저희는 영벌(永罰),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5절부터 9절까지의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자가 되자. 그것은 구원의 표가 될 것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며(17:3)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또 그를 믿는 자는 성경에 증거된 하나님의 교훈을 힘써 순종하며 실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주의 재림 때에 주실 영광을 믿고 바라면서 잘 참고 인내해야 한다. 바른 신앙고백과 순종의 삶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차적 표이지만, 고난과 핍박 중에서의 믿음과 인내는 그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귀한 표이다.

셋째로, 주의 재림의 날에 있을 공의의 심판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자. 재림의 주께서는 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을 밝히 구별하실 것이며, 특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불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 곧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려운 심판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자.

10-12, 재림과 영광

[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 . . .

바울은 또 말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자 가운데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예수께서는 재림하시는 날에 그의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며 찬송할 것이다. 또 그는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실 것이다. 주를 보지 못하고 믿었던 모든 신자들은 주의 재림의 실상을 볼 때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며, 더욱이, 재림의 주께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우실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를 믿었다는 뜻이다. 사도들의 이 증거의 내용은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내용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것을 믿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다(2:8-9).

[11-12]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 . . .

바울은 말한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5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 전체에 관계된다고 본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공의의 심판이 되어 그런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믿는 성도들에게 재림의 주님을 영광과 찬송과 놀라움 가운데 영접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본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런 일들을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였다는 뜻이다.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과 목적을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하여 성도의 표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우리가 어떤 이에게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가 있음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곧 구원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일을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모든 선을 기뻐함이라는 원어(파산 유도키안 아가도쉬네스)‘[하나님의] 모든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의미하든지(KJV), 혹은 오히려 선한 것에 대한 [그들의] 모든 소원’(NASB)을 의미할 것이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시는 선한 뜻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그의 뜻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기쁘신 뜻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시작하신 이 구원을 능력으로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문맥적으로는 선한 것에 대한 그들의 모든 소원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하심이다.

믿음의 일은 믿음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은 살아서 활동하는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구원을 그가 또한 능력으로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선한 것에 대한 모든 소원과 믿음의 행위를 다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힘 주심으로 가능하다.

셋째로, 바울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그들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큰 구원이며(2:3) 완전한 구원이며(10:14) 영광스러운 구원이다(8:30). 이 구원은 주 예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 주 예수의 이름이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성도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주 예수의 재림의 날은 우리의 영육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다.

10절부터 1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표를 가지자. 그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표이다. 우리는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정상적인 삶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생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아닐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믿음으로 살고 모든 선을 소원하며 실천하자.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거룩케 하신 자들은 그 구원의 뜻대로 죄를 멀리해야 하고 믿음으로 살고 모든 선을 소원하며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며 그의 뜻대로 선하게 살아야만 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그에게 영광과 찬송을 드리며,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얻을 것을 기대하자. 우리의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이다. 그 날에 재림하신 주 예수께서는 우리들 가운데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것이며 우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으며 누릴 것이다.

[다니엘 11장 주일설교말씀]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전쟁(단 1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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