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대강절 주일 설교말씀] 대강림절 메시지(출 15:22-27, 막 2:1-12)

성령의 능력 2021. 11. 1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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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주일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성탄절이 오기까지 우리가 준비하는 기간을 갖게 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대강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성탄절을 준비하는 성도의 삶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 목: 대강림절 메시지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출 15:22-27, 막 2:1-12

 

요 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 (출 15:26)

주 제: 말씀으로 치유함을 받아 온전함을 이루어 나가자

오늘부터 성탄절이 되기까지 4주일을 구세주 강림절(Advent=coming)로 지킵니다. 대강절, 대림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교회력이 시작되는 첫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념하며 성탄절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왕 되심을 축하하며 경배하는 절기입니다. 강림절 기간에 5개의 촛불이 준비되어 있는데, 오늘은 희망(Hope)의 촛불을 켭니다. 다음 주는 평화(Peace)의 촛불, 셋째 주일은 기쁨(Joy)의 촛불, 넷째 주일은 사랑(Love)의 촛불, 그리고 성탄절 이브/성탄절에는 그리스도의 촛불(가운데 흰색)을 켭니다.

 

성탄의 메시지는 구원입니다. “인자[사람의 아들 the Son of man]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고 왔느니라 For the Son of man is co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 (마 18:3, 눅 19:10)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구유 간에 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보다 더 낮은 자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마구간 정신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이 말씀으로 많은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똑똑한 사람, 상류층, 지성인, 성공한 사람, 건강한 사람만 구원하러 오셨다면 실패자였고, 좌절했고, 절망했고, 자살 직전에 있던 우리들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요 말구유의 정신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사람의 아들]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우리들의 발을 씻기고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우리의 저주를 막아주기 위해, 실패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아낌없이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눈물의 사랑을 하셨고 상처 받은 사랑, 자기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셨나요? 마태복음에서는 죄인을 위해 오셨고 마가복음에서는 섬기러 오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는 삭개오를 만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사람의 아들]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세상에는 잊혀진 사람도 많고 잃어버린 사람도 많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붙잡힌 여인, 수가성의 귀신 들린 여인은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버려진 여인, 잊혀지고 소외된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거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 자포자기한 사람을 찾고 초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처럼 살던 사람을 하나님이 최초로 만들어 주신 본래 인간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바꿔 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고귀한 사람이요 존귀하고 축복 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모습대로 형상대로 만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선,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강림의 정신이요 성탄의 주제입니다.

 

구원은 본래 창조함을 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 곧 모양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창 2:7대로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호흡 the breath of life, 히브리어. 니쉬마트 하임 נִשְׁמַת חַיִּים) (겔 37:5 breath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혼(a living soul, 네페쉬 하야)이 되었더라.” 그래서 구원은 치유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적인 홍해바다를 건너고 자기들을 따라오던 이집트 군대들이 바다에서 전멸하는 광경을 본 후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저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가져온 물이 다 떨어졌고 수르 광야에 들어온 후 물을 얻지 못하여 갈증이 날 때였습니다. 시내 반도는 4월이 되면 무척 덥습니다. 성인 한 명이 하루에도 1갤론 정도의 물을 마셔야 지낼 수 있는 지대입니다. 60만 대군이 물을 마시려면 수톤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필요한 것이 많이 있으나 물은 필수품 중 필수 음식입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이 떨어질 때 우리는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영혼에게도 생명수는 꼭 필요합니다. 영적인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영혼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이 많이 있습니다.

 

일찍이 2760년전 아모스 대언자[예언자]는 현대를 두고 경고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암 8:11-13)고 했습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애타하며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자세가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시편 42편에서 고라자손은 노래하기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고 했습니다 (시 42:1).

이러한 갈증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 한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물을 마시려고 했으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했습니다. 물이라고 다 물이 아닙니다. 물의 종류가 천차만별입니다. 단물이 있는가 하면 쓴물도 있습니다. 동네마다 물맛이 조금씩 다르며, 주마다, 나라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미국 생활에 젖어 있다가 모처럼 고국 방문하면 물이 맞지 아니하여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은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며 문화를 창출합니다. 요즘 물이 오염되어 정수기가 일용품이 되었습니다. 산에서 나오는 물도 많이 오염이 되어 있어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소문난 약수터가 있어 새벽 3시부터 사람들이 물 길러 줄을 서는 자연 우물이 있는데 그 물을 정밀검사를 했더니 대장균을 비롯하여 많은 박테리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수돗물보다 낫다고 기를 쓰고 그 물을 길어다 마십니다.

 

사흘간 갈증을 느끼다가 물을 발견하니 얼마나 반갑고 흥분이 되었겠습니까 ? 이스라엘 백성들이 맛본 물은 독이 든 쓴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오아시스를 마라라 불렀습니다. 쓰다는 히브리어 말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보면 때때로 우리는 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회에도 독초 같은 사람 하나로 인하여 온 공동체가 피해를 입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시냇물을 온탕 흙탕물로 만들고 맙니다. 우리 몸속에도 어떤 부위에 독소가 있으면 그것이 온몸을 자극하여 고통을 줍니다. 도무지 마실 수 없는 오염된 물, 몸에 해로운 물, 건강을 해치는 물이 어디든지 있습니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큰 법입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하고 난리였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지나오며 받은 큰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조금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금방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사흘 전에 경험한 홍해 바다 건넌 일을 벌써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지도자에게 원망했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평소에는 별로 필요없이 보이다가도 어떤 위기를 만나거나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에 지도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전쟁에서 한 지휘관의 전술에 전쟁의 승패가 좌지우지됩니다. 백성은 덕이 있는 임금을 만나야 하고, 국민은 지혜 있고 꿈이 있는 지도자를 만나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도 경기의 위기를 만날 때 명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급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잊지 아니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문제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 하나님은 기쁨으로 도와주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고 하셨습니다. 챨스 스펄젼 목사님은 말하기를 “당신에게 시험이 닥칠 때마다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힘써서 구하십시오. 그리고 은총이 나타날 때 당장 그를 따르며 묵묵히 시험을 받고 또 그 시험 가운데 즐거워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시험의 끝이 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응답을 주시면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모세가 순종하여 그 나무를 물에 던지자 그렇게 쓴 물이 시원한 단물로 변했습니다. 100퍼센트 절망의 상태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100퍼센트 희망으로 변한 것입니다. 100퍼센트 문제 투성이었는데, 100퍼센트 문제 해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지도자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순종의 지도자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모세를 불러 사명을 주시고 그와 대화하시고 모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예수께서 몇 제자들과 함께 도착했을 때 이미 잔치음식의 필수인 포도주가 떨어진 때였습니다. 그저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바닥났습니다. 완전 위기상황에 부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부탁에 하인들이 예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돌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더니 극상품 포도주 즉 영생수가 된 것입니다.

 

마라의 사건과 가나의 기적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철저한 불가능이 완벽한 가능성으로 바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지도자와 하인의 온전한 순종이 있을 때 변화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나무와 돌 항아리를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돌 항아리는 손님들이 오실 때가 정결 예식을 행할 때 더러운 발을 씻는 용기였습니다.

 

모세가 던진 나뭇가지는 주님께서 골고다에서 지신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며 모든 병을 낫게 합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하기에, 교만이 아니라 겸손하기에,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에, 때리는 것이 아니라 맞기에,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희생하고자 하기에 십자가는 힘이 있고 진정 치유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0에 보니 주님 자신이 헐벗고 굶주린 자,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 외로운 자, 억울하게 갇힌 자, 병든 자이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로 오셨고 지금도 가장 낮은 자, 고통을 당하는 자, 어려움을 당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고난을 함께 나누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히 이러한 모습으로 모든 고통을 감당하셨기에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일찍이 이사야는 주님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고 했습니다.

 

우리도 몸속에 있는 마라의 쓴 물을 십자가를 통해 단물로 변화시키십시다. 마라의 물이 달게 변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백성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물을 피로 오염시킴,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 죽음)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 (출 15:26)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 쓴 물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몸의 독소가 제거될 때 우리 영혼이 건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는 어떤 병마로부터 해방을 받습니다. 말라기 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수를 채우리라” (출 23:25-26).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를 히브리어로 야훼 로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치료하십니다. 사랑의 인술(仁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 많이 있어, 진심으로 사랑할 때 치유가 됩니다. 이 말은 회복을 시켜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호세아를 통해 주신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첫사랑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바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 2:14-15)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은 주로 병든 자를 치료하시며 말씀으로 영적인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에게로 나아오면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나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2:15);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눅 6:19);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 8:16-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혼(thy soul)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2) 시편 107편 19-20절에 보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주님이십니다. 모든 성도가 건강하게 될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병을 주님께 맡기십시다. 육체의 병, 정신적인 병, 영적인 병에서 해방받으십시다. 믿음으로 치유함을 받습니다. 한 가지 잊지 마실 것은 하나님은 의사 이상으로 구원자, 창조자이시다. 생명의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통해 모든 질병을 미연에 방지하십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3-24)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 살면서 방황하고 외로워하고 절망했던 제가 원하는 것을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만족이 없던 제 모습을 고백하며 주님께 돌아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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