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에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말씀하는데 세례 요한이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주어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지막 종말로 갈수록 이런 현상들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선택한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복음을 계속해서 전해야 합니다.
종말의 믿음 없는 세상(마 11:1-30)
1-15절, 세례 요한의 질문
[1-3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 . . .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셨다. 예수께서는 전도하는 일에 힘쓰셨다. 그때 세례 요한은 옥에서 예수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물었다.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오실 그 이’란 메시아를 가리킨다. 예수를 메시아로 증거했던 요한이지만(마 3:11-12; 요 1:29-34), 옥중에서 그에 대해 의심이 생긴 듯하다. 이제 그는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서 과연 오실 그 메시아이신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될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4-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 . . .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은 그가 메시아라는 확실한 증거이었다. 그는 요한의 제자들이 그것들을 보는 그대로 그 선생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셨다. 네 권의 복음서들에 증거된 예수님의 기적의 행위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의 이러한 귀한 증거들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리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7-11절]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 . . .
그들이 떠나자,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문자 그대로 풀을 가리킬 수 있지만, 의심하는 사람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은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 즉 메시아보다 앞에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하리라고 약속된 하나님의 사자이었다. 선지자들 중에 메시아를 직접 보고 그를 소개한 자는 요한밖에 없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켜 메시아를 맞이하도록 길을 준비한 선지자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아직 구약 교회에 속해 있었다. 본문의 ‘천국’은 신약교회를 가리킨다. 신약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신약교회 교인들은 세례 요한보다 메시아에 대해 더 나은 지식과 굳건한 믿음을 가질 것이다.
[12-15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다(마 3:2).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회개하고 믿는 모든 이들이 담대히 천국으로 들어감으로 이것을 ‘침노’라고 표현하신 것 같다.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의 끝이다. 구약 마지막 책인 말라기 끝에 예언된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한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오고 있다. 우리도 그들 중에 속하였다.
16-19절, 이 세대에 대해
[16-19절]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친구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그 행한 일로 인하여’라는 말은 전통사본에는 ‘그의 자녀들로 인하여’이다. 지혜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한다.
이 세상은 믿음이 없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또 하나님의 일에 대해 바르게 반응하지 않고 잘못되게 반응한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심히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비난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시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함께 악을 행하는 자도 아니시다. 지혜의 주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에게는 의로우시다는 인정을 받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의 자녀들이 된 것을 감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선하신 일들에 대해 무지하게 불평하지 말고, 지혜의 자녀들로서 그 일들을 이해하고 사모하고 협력하는 자가 되자. 우리는 무지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대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고 그의 섭리의 목표인 교회와 복음 사역을 위하고 복음 진리를 널리 전파하고 전도자들을 훈련시키고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을 위해 힘쓰자.
20-24절, 회개치 않는 마을들을 책망하심
[20-24절]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 . . .
예수께서는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여 말씀하셨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음부(하데스)는 지옥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그의 권능의 일들을 가장 많이 베푸셨던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등의 마을들의 사람들이 회개치 않음을 책망하셨다. 외형적 기적이 내면적 회개를 항상 동반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마음은 얼마나 어둡고 둔하고 완고한지 모른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기독교는 초자연적 은사를 전하거나 추구하는 은사주의가 아니고 죄를 떠나는 회개 운동이며 거룩한 인격과 삶의 운동이다.
마지막 심판날이 있을 것이다. 그 날에는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신의 모든 행위, 즉 옳고 그른 행위와 선하고 악한 행위에 대해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벌은 차등할 것이다. 큰 죄인은 큰 벌을, 작은 죄인은 작은 벌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또 기적을 보고도 회개치 않는 완고한 마음은 심판날에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어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적을 구할 것이 아니고, 참된 회개와 믿음, 바른 인격과 삶을 구해야 할 것이다.
25-30절, 구원 계시와 초청
[25-26절]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 . . .
그때에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천지의 주재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유식한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 즉 세상 지식이 적고 비교적 순진한 자들에게 나타내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영광만 찬송케 하셨다.
[27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류의 구원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맡겨주셨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직분과 권세와 영광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고, 또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한 시몬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고(마 16:17), 또 그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6:44). 또 본문에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보인다. 예수님만 하나님 아버지를 아시고 또 우리로 하나님을 깨닫게 해주신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 . . .
예수께서는 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무감각과 불신앙에 빠져 있는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 마을들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운 구원의 초청을 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영육으로 수고롭고 무거운 짐 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들에게 그는 편히 쉬게 하시겠다는 구원의 초청을 하신 것이다. 이 초청은 초청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을 보인다. 이 세상에서 누가 이런 초청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그에게 오는 모든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다.
[29-30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스스로 낮아지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다. 예수님 믿는 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며 그를 본받는다. 예수님을 믿는 길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가 명하신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는 제자의 길이다. 그의 멍에는 성도의 직분과 봉사자의 직분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멍에를 메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것이다. 믿음 안에 들어와 보면, 그의 멍에는 무거운 것이 아니고 가벼움을 알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지식과 믿음을 얻었고 구주께서 주신 구원과 안식을 얻었으므로,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주 예수를 섬기며 따르며 배워야 한다.
본장의 교훈을 요약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천국 백성이 되었는가? 우리는 참으로 회개했는가? 기독교는 단순히 기적주의나 은사주의가 아니고, 회개 운동이며 거룩한 삶의 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공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치 않고 믿었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는가?
둘째로, 우리는 참 안식을 누리자. 주께서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에게 참 안식을 주신다.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다. 우리는 그 평안을 누리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자.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그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길이다.
[누가복음 헬라어 강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눅 1:24-31)
'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예배 10분 설교문] 에스겔이 본 마른 뼈 환상 성도의 부흥(겔 37:1-14) (0) | 2021.11.26 |
---|---|
[대강절 주일 설교말씀] 대강림절 메시지(출 15:22-27, 막 2:1-12) (0) | 2021.11.17 |
[역대상 4장 설교말씀] 유다와 시므온의 자손(대상 4:1-43) (0) | 2021.11.14 |
[열왕기상 7장 설교말씀] 솔로몬이 성전의 기구들을 만듦(왕상 7:1-51) (0) | 2021.11.14 |
[시편 14편 주석강해설교] 어리석고 부패된 인생(시편 14:1-7) (0) | 2021.11.01 |
[욥기 2장 주석 성경말씀] 욥이 악성 종기가 남(욥 2:1-13) (0) | 2021.11.01 |
[창세기 6장 주석강해 성경말씀] 노아가 방주를 만듦(창 6:1-22) (0) | 2021.10.29 |
[구약성경지명 성경공부] 감람산 - 멸망 산이 거룩한 산으로(왕하23:13-14) (0) | 2021.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