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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3장 복음 설교말씀] 예루살렘 성곽의 재건공사(느 3:1-32)

성령의 능력 2022. 12. 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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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3장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있다. 성문도 불탔고 성벽도 무너졌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여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고 부정한 자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3장에는 성벽 재건 건축자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성벽 재건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을 참여자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성도도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한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있다. 성도가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은 헛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고 나중에 일한 대가를 상으로 주신다.

 

예루살렘 성곽의 재건 공사(느 3:1-32)

 

본 장을 구분한 방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은, 성곽 건축자들이 그 일을 어떻게 나누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건축자들 각자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알게 하고, 선한 경쟁심이나 좀 더 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게 하기 위해서 일을 분할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분쟁이나 원한 그리고 파벌 의식은 없었을 것이다. 본 장은 내용을 보면, 그들은 어떤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공적인 유익을 위해 그들의 최선을 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는 이 이야기에는 주목할 만한 일이 몇 가지 있다.

 

Ⅰ.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건축하는 자들의 선두에 나서서 지휘했다(1절). 사역자들은 모든 선한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리로 뿐만 아니라 모범된 행동으로도 남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할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힘든 일이라면, 그들보다도 더욱 합당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만일 위험한 일이라면 그들보다도 더욱 합당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만일 위험한 일이라면, 그들보다도 더욱 그러한 모험을 하기에 적합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대제사장의 권위는 매우 큰 것이었으므로, 그는 이 일에서도 독특한 역할을 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양문”(羊門)을 수리했다. 성전에 바칠 양을 이 문을 통해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여호와의 번제물은” 제사장들의 유업이 되는 것이므로, 제사장들이 그것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 문에 대해서는 “그들이 그것을 성별하였다”는 이야기만 언급되어 있는데, 그들은 말씀과 기도로써 그리고 아마도 제물도 드려서 양문을 성별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이 성전으로 통하는 문이었거나,

 

2. 아니면 성벽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비록 그들이 모든 곳의 벽을 동시에 건축했겠지만) 이 문이 제일 먼저 중수되었으므로, 그들은 이 문에서 그들의 성읍과 성벽을 하나님의 보호에 맡긴다는 의식을 거행했을지도 모른다.

 

3. 아니면 제사장들이 그것을 건축한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제사장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성별케 된 자들이므로, 그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해 성별해야 했고, 평범한 행동도 “경건한 방식을 좇아” 행해야 했던 것이다.

 

Ⅱ. 이 일에 참여한 자들은 매우 많았다. 그들은 능력에 따라 일을 분담했다. 모든사람은 공적인 사업을 위해 각자 자기 직책과 권리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돕도록 해야 한다. 혼자서는 감시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도, 힘을 합하면 해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협조가 일을 수월하게 만들 것이다.

 

Ⅲ. 예루살렘에 거하지 않는 많은 사람도 매우 적극적으로 이 일을 행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사욕이나 그들 개인의 이익을 위하지 않고 단지 공적인 유익만을 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제일 먼저 여리고 사람들이 나와 있으며(2절), 또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7절), 그리고 사노아 거민들(13절)이 나와 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Ⅳ. 예루살렘과 다른 성읍의 지도자들 몇 명도 이 일을 매우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들은 자기들의 명예를 걸고 자기들의 재력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기울여 이 선한 일을 촉진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을 일컬어 각 성읍의 “지방(부분)”을 또는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라고 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도 있었고(12절), 또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자도 있었고(14절),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자(15절),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16절), “그일라(keilah)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와, “그 나머지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가 있었다(17, 18절). 아마도 바사 정부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강한 성읍을 맡기지 않고 두 사람을 두어 서로 감시하게 했던 것 같다. 로마도 두 명의 집정관을 두었다.

 

Ⅴ. 여기에 드고아 귀족들에 대한 타당한 비난이 나와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여호와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한” 때문이었다(5절). 즉 그들은 이 일에 대한 의무를 행하러 오지 않았다. 마치 귀족의 권세와 자유가 하나님을 섬기며 선한 일을 하는 의무를 면제시킬 수 있는 것처럼 행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영예이며, 참된 자유인 것이다. 귀족들도 자기 나라의 공익사업에 힘쓰는 것이 자기들을 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고귀하고 유용한 일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귀족들의 고귀 성을 말해 주는 것이 있겠는가?

 

Ⅵ. “옛 문”을 중수하는 일에 두 사람이 협력했다(6절). 그들은 함께 이것을 건축하여 그 영예를 나누어 가졌다. 우리만의 힘으로는 선한 사업을 이룰 수 없을 때, 우리의 일에 동참해 주려는 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옛 문”으로 불리는 이유는, 멜기세덱에 의해 제일 먼저 건축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옛 살렘 성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Ⅶ. 선하고 정직한 상인들도 제사장이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금장색”과 “향품 장사와 상고들”이었다(8, 12절). 그들은 직업 때문에 그 일이 자기들에게는 면제된다고 생각하거나, 공적인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의 상점을 떠날 수 없다고 항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손실이 자기들의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분명히 보상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Ⅷ. 이 일을 진척시키도록 도와준 자들로 “살룸(shallum)과 그 딸들이” 언급되어 있다(12절). 이 여자들에게는 비록 개인적인 봉사를 할 만한 능력은 없었지만, 그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혹은 부유한 과부로서 재목을 사들이고 인건비를 지불할 수 있는 돈을 기부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장 3절에서, “복음에 그와 함께 힘쓰던” 선한 여인들을 언급해 놓고 있다.

 

Ⅸ. 어떤 자들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했으며(10, 23, 28, 29절), 또 어떤 자는(그는 유일한 숙박인이었던 것 같다)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0절).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사업이 있을 때는, 각자 자기와 가장 가깝고, 또 자기의 손이 미칠 수 있는 곳부터 해 나가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집 문 앞을 쓴다면 거리는 깨끗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각자가 한 가지를 고친다면 모든 것을 고칠 수 있게 된다. 만일 침방만을 가진 자가 그 앞을 중수한다면, 그는 그의 할 일을 한 것이다.

 

Ⅹ. 어떤 자는 그에게 합당된 일을 “힘써” 중수했다고 적혀 있다(20절). 즉 그는 매우 열성을 기울여 그 일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힘써 일했으므로 두드러져 보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한 일에 온 성의를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아마도 이 선한 자의 열성이 매우 많은 사람을 자극하여 더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일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XI. 이 건축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여섯째 아들”이었다는 것이 주목되어 있다(30절). 그의 윗형 다섯은 이 일을 돕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그는 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윗사람이 먼저 나설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윗사람들이 혹시 선행을 하기를 싫어할지도 모르므로, 우리가 그들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나이 어린 자가 더욱 훌륭하며 하나님과 자기 세대에게 남보다 더 나은 봉사를 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훌륭한 신사일 것이다. 가장 쓸모 있는 것이 가장 영예로운 것이다.

 

XII. 그들 중 어떤 자들은 “먼저 그들의 동료를 도왔으며”, 수리가 필요한 또 다른 곳을 돌보았다. 므레못은 한 곳을 중수하고(4절), 또 다른 곳을 중수했다(21절). 드고아 사람들도 자기들이 중수한 곳 외에도(5절) 또 다른 곳을 중수했다(27절).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더욱 훌륭하게 보였던 것은, 귀족들은 일하기를 피하려는 나쁜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기 위해 변명을 하지 않고, 귀족들의 태도에 대한 반발로 더욱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열성으로 탐욕스럽고 게으른 귀족들을 부끄럽게 하려 했거나, 아니면 그러한 귀족들의 태도에 대한 벌충을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느헤미야 자신이 이 일에서 어떤 특정한 몫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닌 자가 16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가 어떤 특정한 성벽 일부분을 중수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모두를 감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꾼들 중 반수는 긴요하게 중수해야 할 곳에서 일했고, 나머지는 파수를 섰다는 사실을 우리는 후에 발견할 수 있다(4:16). 한편 그는 손수 그 주위를 돌아다니며 건축하는 자들을 지시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틈이 있을 때마다 일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 그는 또한 적의 동태를 살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읽을 수 있다. 키잡이가 돛대의 밧줄을 잡아당길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앞을 살피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룻기 2장 주일설교말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룻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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