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고린도후서 성경지명 설교말씀] 은혜가 풍성한 고린도 교회(고후 8:7)

성령의 능력 2022. 3. 31. 14:47
반응형

고린도후서 성경 지명을 통해서 우리가 고린도 교회가 풍성하게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은혜도 풍성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 Corinth

 

교회가 풍성하게 갖추어야 할 것

고후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늘날 교회를 살펴보면 고린도 교회 못지않게 여러 가지로 풍성합니다. 지식에 있어서 풍성하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물질적으로 풍성했던 고린도 교회는 바로 오늘 우리 현실과 비길만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에는 물질적인 풍요와 자랑하는 지식만큼 진정 교회가 자랑할 만한 순종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풍성한 은혜를 성도의 교제에서 드러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받았습니다

1) 물질적인 풍요

고린도는 국제적인 항구 도시이자, 무역의 요충지로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의 풍요로운 물질은 고린도를 타락시켰습니다. 고린도인은 패륜아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고린도는 비행이 만연한 사회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그 방탕함으로 죄를 짓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고린도인들은 풍요로운 물질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부요하지만 부패와 죄악으로 만연되었던 도시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마게도냐 교회보다 먼저 연보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도 물질적인 축복을 많이 받고 있었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2) 신앙열과 풍성한 은혜

고린도 교회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못지않은 신앙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거짓 선지자나 분파적인 자들의 선동으로 혼란을 빚기도 하였지만 대다수 성도들은 믿음에 있어서 열심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고린도 교회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부탁하고 또 연보가 늦어질 때에도 책망할 수 있었던 것은 고린도 교회의 신앙이 영, 육간 성숙한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신앙의 열심과 풍성한 은혜를 나누는 일을 등한시했습니다. 은혜를 누리는 자는 은혜를 나누어야만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은혜와 사랑을 밖으로 드러내라고 권면했습니다.

 

2. 그리스도 희생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1) 하늘의 부요와 영광을 희생하신 은총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부요와 영광을 버리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낮고 천한 자리로 비하(卑下)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은 일생을 통해 머리 두실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눅 9:58). 하지만 구원을 이루셨고, 믿는 자를 부요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성도로서 누구보다 부요한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심으로 주신 은총이 이처럼 풍성한데,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주시는 은총은 또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장차 하늘나라에서 누릴 천국의 부요와 영광을 사모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를 도와 더불어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

우리가 누리는 부요와 평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대가로 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바 은혜를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난 당하는 형제를 도와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강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희생적 사랑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에 합당한 의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3. 은혜를 나누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1) 서로 나누어 균등을 이루어야 함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는 것입니다. 때문에 만물을 공유하는데 있어서 균등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당시 만나를 거둘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모았더니 욕심을 부린 자나 적게 거둔 자 모두 동일하였다고 합니다(출 16:16-18). 이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인생이 누릴 수 있는 물질이란 만나처럼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조금 풍성하다고 교만할 것이 아니요, 부족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의 것을 서로 나누어 균등을 이루는 아름다운 교제인 것입니다.

2) 형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인 연보

교회의 상부상조는 험한 세상 가운데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향기와 같습니다. 서로 많이 취하려고 속이고 빼앗는 세상 가운데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구제하며 위로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은 교제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형제를 돕는 고린도 교회의 연보는 형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이 일에 나태할 때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권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켰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은혜로 사는 모든 성도는 이미 받은 바 풍성한 은혜를 나눔으로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구제받는 것보다 구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축복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베풀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입었고, 따라서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명령에 따라 연보에 참여한다면 율법에 의해 연보 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보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약 히브리어 성경 호세아 주석강해]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 말씀(호 1:1-2)

 

[구약 히브리어 성경 호세아 주석강해]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 말씀(호 1:1-2)

호세아 1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호세아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였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부패하여 타락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

bedesd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