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잘 섬겨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면 결국 망하는 기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제 목: 신앙생활의 경고
성 경: 고전 10:1-12
1912년 4월 10일 무려 2.2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영국의 사우드앰톤(Southamton)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가던 타이타닉(Titanic) 호의 침몰 사건과, 1941년 12월 7일 353대의 일본 전투기들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국함대를 한꺼번에 쑥밭으로 만들었던 사건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민족에게는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기도 전에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를 기해 일제히 38선 전역에서 공격을 개시한 김일성 공산당의 만행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 사건들입니다.
이들 사건들의 배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모두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 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사전에 모두 경고를 몇 차례씩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등한히 여겼던 결과라는 것입니다. 타이타닉호는 영국이 자랑하던 최고의 여객선이었습니다. 이 여객선은 세계 최대 최고의 여객선으로 선장의 말이 "하나님도 이 타이타닉호 만은 침몰시킬 수 없다"라고 호언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하리만큼 장비가 튼튼하였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비극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왜 그 배가 침몰하였는가?
오늘날 말하기를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 배가 가는 항로에 빙산의 얼음 덩어리들이 떠내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무전이 계속 들어왔으나, 이 거대한 기선 앞에 무슨 빙산이 장해가 되겠는가? 고 무전 사는 모든 경고를 무시해 버렸다고 합니다. 무려 6 차례나 똑같은 경고의 전보를 받고서 무전사가 하는 말이 [그만 입 닥치시오! 나는 바쁘단 말이오!]....... 이런 일이 있은 지 꼭 35분 만에 비참한 비극을 만나 침몰하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그런가 하면 진주만 공격에서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일본군의 기습은 아침 7시 50분에 행해졌는데 7시에 레이다 실에 근무 병들이 레이다 망에 잡히는 검은 점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점점 그 숫자가 많이 나타나서 레이더 스크린을 까맣게 채우는 것을 보았지만 그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레이다 병의 보고를 받는 당직 장교인 젊은 중위는 대수롭지 않게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비행기라고 생각해 버려 묵살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 중위도 레이다 병에게 하는 말이 "Don't worry about it" (걱정할 것 없어!)라고 말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나라의 고급장교들, 정치가들, 38 전역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고 그렇게 수차례 보고 했으나, 태평성세만 누리다가 당한 것이 6.25의 비극이 아니었던가!입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절대로 남침해 올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다 죽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역사 섭리란 모르는 일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하나님은 악인도 악한 날에 쓰려고 준비해 두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당신의 심판의 도구로 쓰기 위하여 준비해 둔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는 말씀을 바로 듣고 우리의 생활을 바로해야 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상숭배입니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십계명에도 제일 첫 번째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우상]이란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그렇게 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는 하나님 한분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물체나, 다른 가공된 이념이나, 사상을 더 주장하거나 따르게 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독재자들이 자신을 하나님 위치에 올려놓았고, 힘이 곧 정의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동서 이념의 벽이 와해되고 사상적 갈등이 소멸된 이후 온통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입니다. 물질은 주관하고 다스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태를 보면 모두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돈>이란 우상 앞에 모두 절하는 꼴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돈>이면 해결 안 되는 것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정치도, 교육도, 인격이란 것도 모두 돈이 한다고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하기야 제가 어떤 분에게 들으니, 모모 하는 사람들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돈이면 법도 다 해결사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돈 주어서 안 통하는 것이 없다는 결론이 우리 사회는 이미 났다고 그렇게 결론짓는 것을 보고 슬픈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어린 청소년들에게 까지 속속들이 돈의 위력은 파고들어, 돈만 있으면 종교도 필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그까짓 것 죽은 다음에야 삼수갑산엘 가든지 말든지 살아서 이 좋은 세상 즐기며 살다 죽으면 여한이 없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극단적인 현실파들에게는 하나님이니, 내세니, 천국이니, 하는 말이 모두 거짓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틈이 없는 그야말로 길바닥같이 다져진 마음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마약 이상으로 침투해 있는 물질만능의 우상숭배 사상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어떠한 비극이 또다시 임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의 즐거움으로 결코 사용하였어 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몽땅 빼앗길 날이 옵니다.
2. 간음하는 자들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간음이란 말의 의미를 폭넓게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육체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여서 종교적 차원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간음이란 두 마음을 품고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간음이란 지조를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을 배반하고 이중적 인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여놓고 또 다른 신을 섬길 때 그것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두 마음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렇게 두 마음으로 행하면 그 모든 것이 간음이란 말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본래 <순수성> <신실성> <진실성>을 의미합니다. 믿으면 전적으로 믿고, 안 믿으려면 안 믿어야지.... 뜨뜻미지근한 채, 메스껍게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토하여 내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에는 그러므로 완충지대가 없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면 아니고 기면 기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 기는 신앙의 자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어주려면 전적으로 믿어주어야지.. 의심하며 두 마음으로 대한다면 우리들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겠습니까? 전적으로 자기를 믿으니... 그만큼 하나님 자신이 돌보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게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시험한다는 것도 불신이 깔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부모를 의심하여 자꾸만 확인해 보겠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어느 자식이 확인해 보고 믿는 자식이 있는가?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겠다는 것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확인해 보려고 상대방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아직도 그 둘의 사랑은 어딘가에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참된 사랑은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라면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면 누가 이런 사랑을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한 사랑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음으로 비로소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사도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의 주님을 아직도 모른다고 하거나, 당신과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한다. 그처럼 더 큰 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했던 사람이 그것도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나를 모르겠다고 할 때 그런 배신감을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입니다. 죄! 죄! 죄! 하지만 가장 큰 죄는 도덕적 윤리적 죄가 아니라,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제일 큰 죄이고, 그를 의심하면서 그의 사랑을 확인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이 제일 큰 죄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도마에게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은혜를 망각한 행위입니다. 지금까지 은혜를 받고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것은 과거의 은혜는 잊어버리고 현실적인 문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에게 신세를 진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현재의 문제만 크게 보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원망은 시험에 드는 첫 관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망할 마음이 생길 때 사탄의 시험이 옵니다.
아니 사탄은 벌써 시험하려고 원망의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에 결코 감사와 기쁨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감사와 기쁨이 그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은 성령의 이끌린 마음입니다. 그러나 원망하는 마음은 성령의 이끌린 것이 아니라 마귀의 올무에 넘어가도록 유도해 가는 작전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18 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6.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라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는 커녕 범사에 원망과 시비로 차 있다면 그것을 어찌 성령의 이끌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사건건 시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벌써 무엇인가 대인관계에서도 삐뚤어진 관계에서는 사사건건 원망이요 시비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나, 교역자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에는 감사생활 보다 원망이 앞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실족하지 않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 때문에 실족하고, 교회봉사하다가 실족하고, 헌금하다가 실족하고, 직분 행하다가 실족하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감사와 영광을 받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경고를 통하여 우리들의 현재의 생활을 재 점검해 보고, 떠나야 할 자리에서 떠나고, 버려야 할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끊어야 할 관계들을 끊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경고를 듣고 준비했더라면, 타이탄호도, 진주만 공격도, 그리고 6.25의 비극도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에게 임하는 이러한 경고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 간음하는 자들, 시험하는 자들, 원망하는 자들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족보 성경인물 PPT 설교]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창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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