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성경공부

[히브리어 단어 성경공부] 가난한 자의 히브리어 단어 연구

성령의 능력 2023. 4. 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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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가난한 자가 많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를 가난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라고 말씀했다. 가난한 자를 억압하면 하나님이 그 죄를 묻는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말씀으로 보호해야 한다.

 

가난한 자의 히브리어 단어 연구

 

(1800, 달) 낮은, 약한, 가난한

달(형용사)은 달랄(1809)에서 유래했으며, '낮은, 약한, 가난한, 얇은'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7회 나온다. 아니와 달리 달은 고통과 압제를 강조하지 않으며, 에브욘과 달리 근본적으로 필요를 강조하지 않으며, 라쉬와 달리 빈곤한 자보다는 결핍된 자를 나타낸다. 달은 이스라엘에서 보다 낮은 계층을 언급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참조: 왕하 24:14, 왕하 25:12). 달에서 육체적(물질적) 상실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또한 비만의 반대를 나타내며(41:19), 바벨론인들이 뒤에 남겨놓은 이스라엘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천한 자들을 의미하는 달라(dalla)와 비교해 보라(왕하 24:14).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부르신 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을 때 자기 부족의 연약함(달)을 언급하였다(6:15, 참조: 삼하 3:1).

달은 암논이 다말을 연모할 때 암논의 외양을 나타낸다: "저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뇨 내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뇨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애함이니라"(삼하 13:4). 달은 물질적 부(富)의 결핍(10:15)과 사회적 힘의 결여를 나타낸다(2:7). 이러한 상태의 사람들은 부유한 자(30:15, 3:10) 및 세력있는 자(19:15)와 대조된다.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들을 보호하시며(23:3, 14:21, 10:2) 그들에게 공의를 약속하신다(11:4). 달은 영적인 결핍에 대해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5:4).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이러한 용법들은 에브욘(빈궁한)에 병행된다(14:30).

[동의어] (관련성구)

(34, 에브욘) 궁핍한 자, 가난한 자.

에브욘(남형)은 아바(14: 부족하다)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어원은 불확실하다. 에브욘은 '필요' need를 강조하며 '부족한 상태에 있는 자, 궁핍하거나 가난한 자'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온다.

(a) 에브욘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에 대해 사용되며 헬라어 프토코스의 관례적인 의미에 가장 가까운 단어로서 의연금을 구하고자 애쓰는 사람, 거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는 조상의 물려준 땅을 지키지 못한 자이다(23:11). 이 가난한 자는 이웃의 물질적 도움을 받아야 할 자이며(15:7, 15:9, 15:11). 부림절(Purim)에 특별한 예물을 받는 자이다(9:22).

이러한 자는 옷이 없거나(31:19), 혹은 먹을 음식도 없다(132:15). 확실히 이런 물질적 부족(결핍)이란 의미로 사용된 '가난한' 자는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이다(30:25).

(b) 에브욘은 사회적으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모세가 선포한 율법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공평하게 처리하며(23:6), 차용한 것의 지불을 면제년에는 면제해 주라고 명령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중의 가난한 자를 위한 보호를 마련하신 것이다(5:1-4). 하나님은 면제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들을 명하여 자유스럽게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라고 하셨다(15:7, 15:9, 15:11).

어떤 형제가 자신의 부채를 갚기 위하여 자신을 종으로 파는 경우 희년까지만 고용인으로 봉사해야 하며 희년이 되면 그는 자유로운 몸으로 그 집에서 떠나서 자신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25:39-41). 하나님은 도우는 자가 없을 때에 의인들의 궁핍함을 친히 도와 주신다(삼상 2:8, 5:15, 132:15, 24:2-14). 이와 같은 사회적 의미들이 구약성경을 통하여 발견된다. 잠언에서 궁핍한 자들은 사악한 자들에게 압제받는 자들이다(30:14). 왕은 곤핍한 자들에게 공의를 베풀어야 하며(31:9), 선량한 여인은 가난한 자들의 궁핍을 돌보고 있다(31:20).

선지서에서(예레미아, 에스겔, 아모스) 가난한 자들은 사악한 자들에 의하여(4:1) 압제받는 자들(모세의 율법을 거스려), 또는 경건한 자들에 의하여 공정하게 대접을 받는 자들이다(22:16). 아모스는 특별히 저들의 권리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이외에 참조: 2:6, 5:12, 8:4, 8:6). 요시야 왕은 곤핍한 자와 가난한 자들을 신원하였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다(왕하 22:16).

(c) 에브욘은 하나님 앞에 영적 상태에 대해 사용되었다. 2:6에서 에브욘은 '의로운'과 동의어로서 도덕적 영적 자질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2:6).

이사야는 궁핍한 자들을 하나님의 장자(사랑하는 자)로 언급한다. 하나님은 빈궁한 자들의 성이 되신다(25:4). 시편들(60회의 출현 중 33회가 사용된다)은 주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저들의곤핍이 적에 의하여 야기되는 의인들과 저들의 도움이 하나님께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의인들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을 곤핍한 자로 묘사하기도 하였다(9:18, 86:1). 궁핍한 자들은 정직하게 행하는 경건한 자들이다(37:14).

하나님의 진정한 영적 사람들은 이스라엘 안에 거하는 사악한 자들에 의하여 압제받는(12:5) 궁핍한 자들이며(37:14) 저들의 성채는 하나님 자신이다(109:31). 결론적으로 이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께 울며 호소하며(12:5; 70:5), 하나님은 저들을 구원하여 주신다(40:17). 시편 72:12은 메시아를 궁핍한 자를 도우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자로 묘사한다(참조: 시 29:19).

[동의어] (관련성구)

(4542, 미스켄) 가난한

미스켄(형용사)은 '궁색한, 가난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전도서에서만 4회 나오며, 가난한 자의 '지혜'에 대해 사용되었다(4:13, 9:15, 9:16).

[어떤 학자들은 40:20의 '메숙칸'과 8:9의 '미스카누트'가 마소라 본문에서 잘못 표기되었으며 따라서 당연히 '미스켄'으로 고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미스케노트'가 또한 동일한 단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 단어는 차용어일 것이다. 아카드어(Akkadian)의 '무스케누'를 참조하라. "농부"를 의미하는 아랍어 '미스킨'은 이태리어와 불어로 차용되었다.

'미스켄'의 소수의 용법으로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매우 어려우나 일반적 의미는 전 14:13에서 가난한 사람과 왕의 사이를 대조함으로써 명백하게 나타난다. 70인역본은 이 단어를 이해하는데 약간의도움이 된다. 헬라어 '페네스'는 많은 소유물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대해 사용되며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 일해야만 하는 자에 대해 쓰인다. '부유한' 사람(플로이토스)은 일하지 않아도 자신의 수입으로 생계를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은 전도서 성구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가끔 이와 같은 두 계층 간의 경계선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프토코스'는 궁핍하여 구걸하는 자, 즉 너무나 가난하여 일할 수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계층의 사람들과 헬라어 '페네스'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있다. 5:3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영적인 구걸자, 즉 그들은 너무 심약하여 영적인 결실을 위해서 노력할 수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66:2에서 '아니'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해 사용되며 하나님의 말슴에 대해 두려워 떠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에브욘', '아니', '달'과 '라쉬'를 보라. - G. L. Carr.]

[동의어] (관련성구)

(5375, 나사) 들어올리다, 가지고 가다

나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들어 올리다, 나르다, 가지고 가다, 취하여 가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50회 나오며, 칼형이 600여회, 나머지는 니팔, 피엘, 히필,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1.칼형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각기 다른 의미, 즉 ① '들어올리다' to lift up, ② '가져가다, 나르다' to bear, carry, '지탱하다' support, ③ '취하다' to take, '제거하다' take away를 나타낸다.

(a) '들어 올리다' to lift up라는 의미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여러 어구에서 사용된다. 즉 맹세할 때(32:40, 20:5, 20:6, 20:15 등), 폭력을 행할 때(삼하 18:28), 신호로서(49:22), 형벌을 가할 때(10:12), '손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명예를 회복시킬 때(40:13, 40:20), 즐거움과 독립심을 보일 때(10:15, 2:4, 83:3), 그리고 성문의 상인방들(lintels)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으로서(24:7, 24:9), '머리를 들어 올리다'. 선한 양심, 확신, 호의, 혹은 용납의 표시로서 '얼굴을 들다'(삼하 2:22). 종종 '바라보다', 혹은 '보다'라는 동사 앞에서 종종 중복적으로(13:10, 13:14),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욕망 때문에(39:7), 하나님을 향하여(123:1), 그리고 우상에게(18:6, 18:12, 18:15) '눈을 들다'. 또한 '울고 외치다'를 뜻하는 동사 앞에 중복적으로(27:38, 삼상 30:4), 그리고 즐거워하는 것을 나타낼 때(24:14) '소리를 높이다'. 여호와의 이름(20:7), 기도(7:16, 11:14), 노래(23:7), 비난(15:3)과 같은 것을'목소리로(어떤 것을) 높인다', 마음이 '사람을 들어 올림'으로써 행동을 유발시키거나(35:21, 35: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36:2) 오만과 교만(왕하 14:10)을 야기시킨다.

이상 세 가지 중요한 의미 중에서 첫 번째 의미가 이 단어를 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또한 들어 올린다, 집어 올린다라는 범주에서이다. 사람은 성막을 더럽힘으로써(28:43, 18:22), 이웃을 미워함으로써(19:17), 동물의 시체를 만짐으로써(22:9), 혹은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써(18:32) 부정과 죄를 집어 올릴 수 있다. 즉 초래할 수 있다, 혹은 물들 수 있다.

(b) '지다, 가지고 가다, 나르다'라는 두번째 의미의 범주는 특히 죄 혹은 죄의 형벌을 지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예컨대 가인은 "내 형벌이 내가 질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한글개역,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4:13)라고 불평한다. "그가 그의 죄를 질 것이다"라는 표현이 빈번히 나온다(5:1, 5:17, 7:18, 5:31, 14:34 등). 이것은 대표나 대리(10:17)에 의해 다른 사람의 죄를 진다는 개념이나 속죄양(16:22)의 개념에 쉽게 이른다. 53:11의 어근 사발(짐을 지다)은 53:4에서처럼 다음 구절에 나오는 나사(지다), 즉 "종이 많은 사람의 죄를 지다"와 병행된다. 이러한 짐(debits = 차변들)은 세상 생활을 영향 하는 현세적 근거에 의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넘어갈 수 있다(14:31, 14:3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주장해 온 바대로 이것을 계속적이고 필수적인 사태로, 특히 영원토록 숙명적으로 적용하는 잘못을 범했다(18:19-20). 왜냐하면 24:16에서는 그 반대가 분명히 진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c) 세번째로 이 단어는 제거함, 용서, 혹은 죄, 불의, 범죄의 용서를 강조한다. 이러한 죄를 제거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 열거될 정도로 특징적이다(34:7, 14:18, 7:18). 종종 나사의 이러한 형태는, 예를 들면 요셉의 형제들의 심부름꾼(50:17), 바로(10:17),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32:32, 14:19), 나봇을 위하여 아비가일 (삼상 25:28), 사무엘에게 사울(삼상 15:25)이 드리는 중보 기도에서 사용된다. 이것은 또한 여호수아가 임종을 앞두고 한 말에서도 사용된다(24:19). 이 의미의 대표적인 표현은 의심할 여지없이 32:1, 32:5에서도 발견된다. 죄는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용서되고 잊혀질 수 있다.

2. 이 세가지 기본적인 의미의 범주들의 수동적, 강조적, 재귀적, 사역적 개념들은 22:16에서 사람으로죄를 지게 하다라는 뜻으로 히필형으로 나오는 그러한 이례적인 용례를 제외하고 죄의 교리에 적용되지 않는 열거된 다른 어간들에서 종종 보여진다.

[동의어] (관련성구)

(6033, 아나) 가난한, 궁핍한

아나(형용사, 아람어)는 히브리어 아나이(6040)에 해당하며, '가난한, 궁핍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27에서 1회 나온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였느니라".

[동의어] (관련성구)

(6035, 아나우) 가난한, 고통받는, 겸손한, 온유한

아나우(형용사)는 아나(6031)에서 유래했으며, '가난한, 고통받는, 비천한, 겸손한, 유순한, 온유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회 나온다. 형용사 아나우는 고난의 목적인 경건한 자의 도덕적, 영적 상태를 강조한다. 여기에서 고난의 목적은 이 상태가 세상적 행복과 풍요보다는 오히려 고난 받는 삶과 결부됨을 암시한다. 아나우는 고난의 의도적인 결과, 즉 겸손을 뜻한다. 모세에 대한 묘사에서 그러한 사람은 거만하게 자랑치 아니하며(12:3) 단지 그의 처지를 그대로 말하는 자이다. 즉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이다(참조: 20:19에서의 바울의 말).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모세는 하나님과 가장 완전하게 관계를 맺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러한 태도는 축복받은 것으로 찬양되며, 요망되는 태도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고난을 주실 때 의도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며 그들은 이 목적을 향하여 고난을 견디어야만 하는 것이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과분한 호의)를 받음으로(3:34) 하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 여기며, 경험으로 안다. 그들은 하나님이 찬양받으실 때 기뻐하고, 하나님을 찾으며(69:32, H3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킨다(2:3).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37:11)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다(25:9). 따라서 그들은 교만한 자들보다 더 나은 존재로 칭찬받는다(잠16:19). 그들은 사악한 자들(37:11) 및 조롱하는 자와 대조된다(3:34). 이사야(61:1)는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여기에서는 "마음이 상한 자"와 병행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인정하심을 인식하고 있으며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76:9, H10, 147:6, 149:4).

유월절의 무교병을 고난의 떡이라고 부르는 것은 흥미롭다(16:3). 이 떡은 고난의 궁극적인(때때로 당연한) 원인인 죄(25:18)와 죄의 속박(특히 애굽에서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하심(3:19)을 상기시키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동의어] (관련성구)

(6041, 아니) 가난한, 비천한, 억압받는

아니(형용사)는 아나(6031)에서 유래했으며, '가난한 poor, 비천한 humble, 낮은 lowly, 억압(압제) 받는 oppressed'을 의미한다(19:10, 삼하 22:28, 29:12, 10:9, 3:14 등).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7회 나온다.

아니는 억압하는 자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 즉 토지가 없는 자들과 동의어가 된다. 이와 같은 가난은 상속권 박탈과 불법적인 손해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비롯된 것이 아님이 이 단어가 재산이 아니라 폭력과 대조되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이스라엘백성은 응당 지불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음으로 고용한 종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 그가 압제당할 경우 그는 하나님을 옹호자로 요청할 것이다.

'아니'한 자들은 재정상으로 매일매일 벌어서 생계를 꾸려가는 자들이며 사회적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압제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단어는 물질적인 소유의 결핍에 따르는 어려움을 경험하는 '에브욘'과 함께 빈번히 사용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아니'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명령받는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15:1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아니'가 심지어 담보물이나 저당물로 삼을 물건이 겉옷 밖에 없다 하더라고 돈을 꾸어 줄 것이며, '아니'한 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하는데 옷이 꼭 필요하므로(이 옷은 그의 유일한 겉옷이다) 그 옷을 밤새도록 돌려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지 말 것을 명령한다(22:25-26).

19:10에서 '아니'한 자들은 타국인과 나란히 밭의 이삭을 주울 권리를 지니는 자로 분류되어 있다. 아니는 22:22에서 달(가난한 자[한글개역에는 "약한 자"])과 구별된다. "약한 자(달)를 약하다(달)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아니)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의 보호자이자 구원자로 묘사되며, 그는 그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곤고한 자들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자들은 경건한 자로 간주되고(18:17) 그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로 간주된다(24:9, 14:21, 58:7). 많은 경우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가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경우에 가난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들도 있다. 그들은 심판받을 때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은 누구의 잘못으로 과부가 되지 아니한 과부의 보호자이신 것과 같이 가난한 자의 보호자이셨다. 그러나 이 단어가 어떤 사회적 조건을 가리키기보다 특정 사회적 계급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입증하기가 어렵다.

물질적 상실과 그로 인한 어려움은 사회적 압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적 역경은 3:1418:17에서 분명히 고려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아니'한 사람들(10:2)을 공정하게 다루라고 명하신다. 특히 왕은 그들의 권리를 영원히 감독할 책임이 있다(82:3). 이 단어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하여(51:12) 혹은 질병으로(88:15, H16) 육체적 고통을 받는 자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22:24, H25에서와 같이 종종 육체적 고난은 영적 고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외적 고통은 내적 고통을 야기시키고 그 결과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게 된다(25:16, 34:6, H7, 69:29, H30).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받는 자로 자주 묘사된다(68:10, H11).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9:18, H19, 74:19).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49:13) 구원하시며(34:6, H7) 건지시며(35:10)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72:2, 72:4).

끝으로 이 단어는 겸손한 (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9:9에서 메시아를 묘사한다. 이 단어는 조롱하는 자(3:34, 참조: 4:6), 오만한 자(18:27, H28, 삼하 22:28)와 대조된다. 이러한(겸손한) 자는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으며(66:2),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며(74:19),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이며(14:6), 구원을 확신하는 자이다(삼하 22:28).

아니(고통받는)는 종종 아나우(6035: 겸손)와 혼돈되기도 하며, 이 두 단어는 서로 바뀌어 표기되기도 한다(혹은 ASV와 RSV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바뀌어 번역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는 유명한 요드 와우(yod-wow) 상호 교환에 의한 것일 수 있으나(GKC, sec. 17c; Ernst wurthwein,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p. 72)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러한 교환 현상은 복수형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사야는 아니와 아나우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 것 같다.

[동의어] (관련성구)

(7326, 루쉬) 가난하다, 궁핍하다

루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난하다, 궁핍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 나오며, 칼형과 히트폴렐형으로 사용되었다. 어근 루쉬는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 보편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다윗은 미갈과 결혼하기에는 그가 하잘것없음을 말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삼상 18:23). 그리고 나단은 그의 유명한 비유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삼하 12:1)

[요한복음 예수님 말씀] 예배의 정신(요 4:23-24)

 

[요한복음 예수님 말씀] 예배의 정신(요 4:23-24)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 물을 뜨러 왔다가 메시아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항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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