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히브리서 9장 강해 설교말씀] 영원한 단번 속죄(히 9:1-28)

성령의 능력 2022. 6. 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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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장에서는 구약의 제사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의 제사로는 영원한 속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잠시 속죄할 뿐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인 회개가 필요합니다. 영원한 속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십자가 제사를 통해서 우리의 원죄가 완전하게 속죄되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복음으로 완전해집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속죄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영원한 단번 속죄(히 9:1-28)

 

1-10, 구약 성전 제사의 부족함

[1-5]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 . .

본문은 또 말한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첫 언약, 곧 구약 아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그것을 위한 성막을 주셨었다. 성막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성막 입구의 휘장(첫째 휘장)으로 들어가는 첫째 부분은 성소(聖所, 하기온)라고 불린다. 성소 안에는 등대가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힘입어야 함을 암시한다. 또 성소 안에는 떡상이 있고 그 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쌓아놓은 떡(진설병 陳設餠)들이 있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이 되심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을 암시한다.

둘째 휘장을 통해 들어가는 두 번째 부분은 지성소(至聖所, 하기아 하기온)라고 불린다. 거기에는 금향로가 있었다. 여기에 말한 금향로’(크뤼순 뒤미아테리온)는 성소에 있었던 금으로 싼 분향단(30:1; 헬라어로 뒤시아스테리온 뒤미아마토스)을 가리키지 않고 지성소에 두었을 금향로(대하 26:19, 뒤미아테리온)를 가리킨 것 같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대제사장이 11차씩 사용했던 금향로는 지성소에 보관되었다고 말하였다. 금향단이나 금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사역을 하시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심을 나타내며, 또 부수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감을 상징한다.

지성소에는 또 언약궤가 있었다. 거기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첫째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증거한다. 둘째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위에 세우신 직분자의 권위에 도전함을 허락지 않으심을 증거한다. 셋째는 언약의 비석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과 의지와 또 자기 백성에게 명하신 도덕적 의무를 보인다. 그것은 인간의 죄악됨을 깨우치시는 뜻이 있다.

속죄소를 덮는 그룹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그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옹위하고 그 영광의 광채를 가리운다. 특히, 속죄소는 성막제도에서 가장 중심적 요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이루실 속죄사역을 상징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 구원의 은혜를 나타낸다. 우리는 율법으로는 죄인으로 정죄될 수밖에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를 받는다. 그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6-7]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구약의 성막제도의 의하면, 제사장들은 보통 성소에 들어가 제물의 피를 뿌렸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유대의 달력으로 710일 속죄일에 11차씩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 날 대제사장은 아마도 3번 지성소에 들어갔던 것 같다(16:12-15). 첫 번째는 향로를 가지고 들어가 지성소에 향연이 가득하게 하였고, 두 번째는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뿌렸고, 세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뿌렸다. 대제사장의 이러한 행위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사역을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이 예표된 일을 다 이루셨다.

[8-10]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본문은 구약제도와 제사 의식의 부족함을 세 가지 면에서 증거한다. 첫째로, 구약제도 아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문구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KJV, NIV).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길이 열렸다. 마태복음 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히브리서 10:19-20,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둘째로, 구약의 성전예배의식은 비유적, 예표적이었다. ‘현재까지의라는 원어(에이스 톤 카이론 톤 에네스테코타)현재의 때를 위한’(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가리킨다. 또 구약제도와 제사 의식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더불어 육체의 예법만 되었고 개혁할 때까지 주신 것이었다. 그 개혁의 때가 신약시대이다. 예언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구약의 예언과 예표는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제도와 의식은 폐지되었다.

셋째로, 구약제도와 제사 의식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 온전케 할 수 없었다(7:11, 19). 사실 짐승의 피는 사람의 죄를 깨끗케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며 예표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가 그 일을 이루셨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대속사역으로 사함을 얻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7:27).

1절부터 10절까지의 진리는 무엇인가? 구약의 성막 예배, 성전 예배는 부족했다. 그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모형적으로, 예표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이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것이었다. 이제 그가 오심으로써 또 그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죄를 단번에 속량하심으로써 구약의 의식들은 다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폐지되고 신약의 규례로 대치되는 것이다.

11-22,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

[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장래 좋은 일은 구약시대에 비추어 말씀한 것으로서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일이며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이미 이루어진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시대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과 달리 신약시대에 이루실 속죄사역의 일을 위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그 일을 성취하셨다. 그는 영원한 속죄사역을 이루시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가 이루신 속죄사역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이루어졌다. 그 장막은 하늘 장막과 하늘 성소 곧 천국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이 일을 이루셨다. 레위기에 보면,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염소 두 마리를 준비해야 했었다. 수송아지는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이었고, 숫염소 두 마리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제물이며 다른 하나는 놓아주는 염소인데 완전한 죄사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16:6-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제물을 삼으셨다. 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속죄라는 원어(뤼트로시스)구속’(救贖)이라는 말로서 값을 주고 사심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의 값 즉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피흘리신 값은 너무 크기 때문에 영원한 속죄라고 불린다. 그 속죄는 영원하기 때문에 매년 반복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표현되었다. 그의 죽으심은 한번으로 충족하였고 더 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으시다.

[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구약제도와 비교할 때 더 많은 효력이 있다. 구약의 제사제도도 효력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 사람의 육체의 부정을 깨끗케 하고 거룩케 하셨다. 그렇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흠 없는 자신을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효력이 있겠는가? 여기에 영원하신 성령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가리킨 듯하다. ‘흠 없는 자기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무죄성(無罪性)을 말한다. 그는 무죄하셔야 다른 이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피는 효력이 있다. 첫째 효력은 사죄(赦罪)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은 행실들로부터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한다. 둘째 효력은 새 생활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담대히 섬기게 만든다. 구약시대에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제도를 통해 사죄와 새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은 구약에 비해 더 크고 더 확실하다.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리고]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피의 세 번째 효력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 곧 천국의 약속을 얻게 하는 것이다. 영원한 나라, 영생의 나라인 천국은 구원의 목표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다.

[16-17]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 . . .

본문은 말한다. “[이는]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없음이니라].”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이루셨는지를 말씀한다. ‘유언이라는 원어(디아데케)는 앞절의 언약이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유언적 성격이 있었다. 아버지가 유언으로 자기 기업을 아들에게 상속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의 유언이 효력이 있어서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게 된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효력을 가지게 된다.

[18-21]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첫 언약 곧 구약도 피 없이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피를 취하여 그 책에 뿌리고 또 모든 백성에게 뿌렸다. 그 책은 언약서라고 불리었고 그 피는 언약의 피라고 불리었다(7, 8).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주 예수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와 같이, 그 피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바 . . . [] 언약의 피이었다(26:28). 이제 언약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으로 그 언약은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가리키며 피 흘림은 속죄 혹은 죄사함의 의미가 있다. 레위기 17:11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혹은 영혼’]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의 죄사함과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받으셨고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보혈을 흘리셨다.

11절부터 22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음을 증거한다. 그는 구약의 예표를 성취하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 그는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에게 확실한 죄사함과 하나님을 섬기는 새 생활과 영원한 천국 기업의 상속을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받은 죄사함과 영원한 새 생명과 천국 기업의 상속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순종과 충성으로 보답하자.

23-28,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제사장 사역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성막 기구들은 짐승의 피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지만, 하늘에 있는 성막의 원형은 더 좋은 제물인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드려져야 했다. 성막제도는 하늘의 원형에 대한 모형에 불과했고 짐승의 피뿌림도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실제로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 . . .

본문은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나타나심이며].” 본문은 하늘 성소가 더 좋은 제물로 드려져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는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을 가리킨다. ‘참 하늘하늘 자체라는 뜻으로 천국을 가리킨다. 천국에는 성전이 없다(21:22).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완전한 속죄사역을 이루시고 그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신 곳은 하늘 자체 곧 천국, 즉 하나님의 보좌 앞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에, 즉 하나님 앞에 들어가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의 효력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사역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부족과 실수와 흠과 결함에 대하여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흘리신 속죄의 피 공로를 끊임없이 적용하시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8:34).

[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드리지 아니하셨나니] 그리하면[왜냐하면 만일 그러하였다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다른 것의 피는 여러 짐승의 피를 가리킨다. ‘자주라는 말(플라키스)(25, 26)단번에라는 말(하팍스)과 대조된다. ‘세상 끝에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류 역사 4천년의 끝이 왔다는 뜻이다. 본문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약 제사장들처럼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고 하늘 자체 곧 천국에 들어가셨고 지금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며, 구약 제사장들처럼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가 아니고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그의 피는 우리의 죄를 없이하는 참되고 완전한 속죄의 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은 완전하였다.

[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 . . .

본문은 또 말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며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진리인 동시에 심각한 진리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며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인간에게 기본적 진리인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발자취에 비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으로 오셔서 사람처럼 한번 죽음을 경험하셨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일반 사람의 죽음과 의미가 달랐다.

일반 사람은 근원적으로 다 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죽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자로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죽으셨다. 또 일반 사람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하나님의 정하신 심판자로서(5:22)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딤후 4:1), 또 자신이 피흘려 속죄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본문은 그때 구원받을 자들을 두 번째 나타나실 자 곧 재림의 주를 바라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죄와 상관없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연결된다고 본다(KJV, NASB, NIV).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죄를 짊어지는 것과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23절부터 28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제사장 사역에 대해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드려 단번에 속죄를 이루시고 천국에 들어가셨고 지금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사역을 하신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사역과 현재적 중보사역을 든든히 의지하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항상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대망하자. 그가 오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완전케 되고 우리는 죄성이 없는 몸으로 부활하거나 변화되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사람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간다. 죽음은 예고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우리는 항상 참된 믿음과 말씀 순종으로 거룩과 의, 선과 진실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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