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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예배자료] 추도예배 이론과 추도예배 순서

성령의 능력 2021. 3. 1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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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추도예배 이론과 추도예배 순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추도예배에 대해서 이론과 함께 가정에서 어떻게 추도예배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추도예배 이론과 추도예배 순서

 

1장 가정 추모예배 이론과 실제

 

1. 가정 추모예배 이론

 

(1) 추모예배가 갖는 의미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극복해야 할 가장 커다란 문제는 전통 종교의 도전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조상숭배와 제사 문제는 성경말씀과 대치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기독교가 뿌리내리는 데 가장 커다란 장애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조상 제사를 대신하여 고인을 생각하며 추모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추모예배는 장례식 후에 1년이 지나서 가지게 된다. 예식의 명칭은 추도라 하지 않고 '추모라고 부른다. '추도식'(追悼式)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지만 그 의미를 보면 "고인을 기념하여 애도하고 추모하는 ",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함", "조상을 추모하는 기도회" "죽은 이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모임"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추도식''자는 기도할 '()'자가 아니고 "슬퍼할 도" 자이므로 기도회라는 말이 적당치 않다.

 

또 추도의 '''자는 "슬퍼할 도' 자이므로 "돌아가신 이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이므로 신앙적으로 추도식이라는 명칭이 적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한편 추모식(追慕式)"돌아가신 이를 생각(사모)하고 그리워 마음에 새긴다"라는 뜻이다. 조상이 돌아가신 그 날에 후손들이 모여서 그분의 삶을 회고하며 올바른 신앙의 삶을 다짐하는 기회를 삼고자 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추모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좋다고 생각한다.

 

추모예배는 몇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1) 추모예배를 통하여 고인이 이 땅 위에 계실 때에 어떻게 사셨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어른이 살아계실 때에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

 

2) 고인이 살아 계실 때의 소원을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주신 교훈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인이 살아 계실 때 나에게 무엇이라 하셨는지를 생각하며 생전에 나에게 주신 교훈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남기신 유언을 되새겨 본다.

3) 자신의 생활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었는지를 살펴보고, 고인이 소천한 이후에 지금까지 유언한 내용대로 살았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4) 이제부터 복음 위에서 믿음의 길을 걷고자 결심해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바로 살 수 없다. 십자가에 달리신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복음 위에 굳게 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걷고자 결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위의 네 가지가 있어야 추모예배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에 대한 견해와 추모예배

인간의 죽음과 사후 존재 형태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장례의 의식구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의 개념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죽음은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찾아오는 단회적인 사건이다. 래서 여호수아는 죽음을 "온 세상이 가는 길"(23:14)이라고 표현했고,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이라고 했다(왕상 2:2). 말씀에서 죽음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근본 개념에 대하여 벌콥은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세 가지 죽음을 말했다. 첫 번째, 육체적 죽음인데, 이것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영적인 죽음인데, 이것은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됨을 말한다. 세 번째는 영원한 죽음인, 이것은 악한 자의 재결합된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의 은총과 임재에서 분리되고 추방되어 형벌받는 상태를 의미한다(2:2; 20:14-15; 21:8).

 

이런 점을 종합하면 죽음은 결코 멸절이나 소멸이 아니다. 육체의 죽음은 영혼의 죽음과는 구별되는 것이며(벧전 3:18), 육체적 생명의 상실일 뿐이며(마 2:20; 3:4), 육체와 영혼의 분리인 것이다(12:7; 2:26; 19:30). 그러면 기독교인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형벌 곧 '죄의 값'이라고 말하고 있다. 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죄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어 죄책에서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그 이유는 첫째로 기독교인에게 오는 죽음은 형벌로서의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8:1-2; 고전 15:55). 이 사실에 대해서 벌콥은 "그들이 정죄 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그들에게 형벌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힘입어 사죄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죄의 유혹이 있으며,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죄는 왕 노릇 할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죽음을 하나님의 백성을 성화시키기 위해서 두신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 벌콥"죽음의 관념이나 죽음이 가까웠다는 의식 등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비상한 유익을 주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교만한 자를 겸손케 하, 육욕을 억제케 하며, 속세의 욕심을 저지해 주며, 영적 성장을 촉진케 하는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고통과 죄악의 세상에서 싸우다가 죽음을 통하여 영생의 복을 얻게 되는 관문이 되는 것이다(14:13; 1:21; 벧전 4:12-13).

 

추모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구절을 찾기는 어렵다. 요한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14:13)고 했다. 이 말씀에서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그 영혼이 영생 복락의 자리로 나아간 것이므로 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추모예배는 이러한 복된 죽음을 맞은 날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특히 앞서 가신 분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며 사셨는가를 회고해 보고, 그가 어떤 교훈을 남기셨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신앙의 발걸음을 되돌아보고, 나에게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3) 목회 속에서 추모예배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예식이 있다. 이 예식을 은혜롭게 인도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에게 은혜가 되며, 믿지 않는 자에게 전도의 효과가 있다. 특히 예식을 받는 본인에게는 더욱 큰 축복이 되므로 예식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추모예배는 장례 후 1년이 지나서 가지는 예식이므로 온 가족들이 큰 관심 속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 예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집례해야 한다. 이 예식이 은혜롭게 진행되면 가족 중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미 믿는 신자이지만 게으름과 나태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했던 성도에게 은혜가 되어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더욱 충성과 헌신을 다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 사역 속에서 추모예배가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추모예배가 성도들에게 끼치는 유익과 효과

추모예배는 성도들에게 큰 유익을 끼친다. 먼저는 고인의 삶과 신앙생활을 회고함으로써 얻는 유익이다. 저 가신 고인의 삶을 다시금 생각함으로써 성도들은 현재의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그리고 고인의 신앙생활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회개하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고인이 우리에게 주신 교훈이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교훈을 얻고 자신의 현 모습을 가다듬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신앙생활에 나태했던 사람은 다시 열심을 품게 되고, 님의 품을 떠났던 자는 돌아오며, 믿지 않는 친족이 믿게 되고, 앙생활을 잘했던 분들은 더욱 헌신을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끝으로,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무능한 자라고 하는 고백을 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추모예배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를 드리게 되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되고, 교회로서도 전도가 되며 부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5) 성경에 나타난 제사 의식

*구약의 제사의식

1) 제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

구약성경은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이미 제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사가 시작되었고 가인의 살인 사건도 제사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의 제사는 노아, 아브라함, 야곱, 이삭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제사를 거쳐 시내산 계약에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체계화된 민족적 제사로 발전한다. 구약성경에서 제시된 제사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국한된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른 신을 섬기는 다신주의를 엄격히 배격한다. 또한 섬김뿐만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라도 신의 모형을 형상화하거나 만들어져서도 안 된다.

2) 구약성경의 조상 이해

구약성경의 조상에 대한 개념은 '아버지', 열조, '선조, 조상'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열조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에는 부친 이전의 아버지들을 가리킨 것으로 나타난다. 또 민족의 조상, 문화의 창시자로 소개되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을 부를 때 조상의 하나님으로 불리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역사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3) 구약성경의 죽은 자 숭배

구약성경에는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대상에게도 제사의 대상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조상이 후손들에게 정신적으로 중요한 대상으로 존경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따라서 죽은 자에게는 인격적인 대우나 어떤 수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구약성경은 죽음과 죽은 자를 부정하게 보고 무력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죽은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 정결 의식을 행하도록 하였고 거역할 때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도록 엄하게 명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죽은 자에게 강력하게 부정성을 부여한 것은 죽은자 숭배를 배척하기 위한 신앙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배척 사상은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이나 죽은자에 대한 어떤 형태의 섬김 행위나 죽음을 미화시키려는 숭배적 요소가 들어올 것에 대비한 배제의 뜻으로도 해석된다.

 

*신약의 제사의식

1) 제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

신약 성경에서도 죽은 사람에 대한 교훈이나 섬김의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지시는 분명하게 찾아볼 수 없다. 신약 성경에서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새 계약으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어서 잔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계약이다'(눅 22:19-20).

 

예수께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계, 곧 사랑의 계명을 따를 의무와 힘이 생겼다. 이 새 계명은 구약의 율법처럼 돌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며 새 계약의 제물은 예수 자신의 몸이었다. 예수의 몸과 피로 맺어지는 새 계약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2) 신약 성경의 조상 이해

신약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조상에 대한 관념은 아주 큰 전통과 유전으로 인식되어 강한 관념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유대인들의 사고는 조상으로부터 주어진 유전과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3) 신약 성경의 죽은 자 숭배

신약 성경에는 죽은 자 숭배 사상에 대한 것은 확실히 나타나 있지 않다. 죽은 시체를 보거나 만진 사람에게 어떤 부정성을 부여하거나 결례 의식을 행하도록 요구한 사례도 없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전통을 고수하려는 유대인의 생활습관으로 보아서 구약적인 전통이 그대로 지켜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사복음서에서 강조한 것으로 보아서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하나님은 살아계신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또 성경은 '만일 죽은 자에게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말씀을 사용하므로 죽음은 소망이 없고 저주스러우며 부활이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비극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복음으로 다시 살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죽음은 비극, 암흑, 불행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이 정복되는 것, 곧 죽음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약 성경에서는 죽은자에 대한 숭배적 요소가 없으며 배척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6) 조상제사의 문제점과 제사를 드리면 안 되는 이유

1) 제사는 우상숭배

유교의 제사는 효와 조상숭배 사상과 뗄 수 없이 연합되어서 둘 중에 하나만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데 있다. 그러므로 유교의 제사 대상과 숭배의 대상은 죽은 영이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한 효도로 생각하여 제사드리는 것은 잘못이며 분명한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2) 제사는 조상숭배 사상의 나쁜 관습

조상숭배는 좁은 의미에서 사자(死者)를 전부 조상이라 하지 않는다. 조상은 후손을 필수 조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후손이 없는 조상은 조상이 아니고 다만 사자에 불과하거나 잡신이다. 아무리 오래된 가계라도 후손이 없어지면 그들 조상은 무주 고혼(無主 孤魂)되고 만다. 그러므로 조상숭배는 후손, 즉 남자를 낳아야 된다는 강한 집념을 가져왔으며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남자를 낳아야 했다. 러므로 사회생활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으며 오늘도 이 사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본다.

 

3) 제사는 계급주의가 만들어낸 산물

역사적으로 보아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 있다.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고대 중국에서도 제사를 지냈다. 때의 제사는 부모가 아니라 윗대의 뛰어난 황제에 대하여 후대의 황제들이 제사를 지냈는데 그 이유는 제사를 지내야만 궁중의 위대한 신하가 나온다고 하였으며 제사를 지냄으로써 훌륭한 가문과 그렇지 못한 가문을 구별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주나라 때 황제는 일곱 개 사당에서 제사를, 큰 제후들은 다섯 개의 사당에서 제사를, 그다음 태후들은 그보다 조금 작은 세 개의 사당에서, 재상들은 두 개의 사당에서, 관원들과 스승들은 한 개의 사당에서 그리고 평민들은 사당을 짓지 말고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이 주 나라 때까지는 상당히 유지되다가 춘추 전국시대에 와서는 이 질서가 깨어짐으로 모두가 다 제 마음대로 사당을 짓기 시작하여 결국 제사가 일반화되었다. 그러므로 족보나 제사는 계급 사회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제사의 변천과정을 보아도 분명히 계급주의적인 산물이다. 고구려 때 한학의 전래와 대학관의 설립으로 상류사회에 유교의 예법이 보급되고 이때에 급제가 수입되어 죽은 조상을 제사하는 풍속이 생겼다.

 

고려에서는 제례 법규를 계급제로 제정하여 엄격하게 적용시켜 시행하였다. 대부 이상은 3대를, 6품은 2대를, 7이하 서민은 부모 당대에만 제사하였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는 주자가 강조한 조상 제사를 장려했으나 처음에는 일반 서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상류사회에서만 행하다가 서민들에게도 가묘와 사대 봉사를 허락하였다. 그 이유는 서민들에게도 자기를 드러내려는 인간의 속성이 작용했고 신분간의 질서가 붕괴됨으로써 조상에 제사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조 시대의 제사는 흉제와 길제로 구분하였다. 흉제는 상중 제사를 말하고 길제는 상을 마친 뒤에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그러나 까다로운 제사의 절차와 방법 때문에 상류사회에서나 실천이 가능했으므로 허례허식의 폐단만을 남기게 되었고 후에 영조 시대 이재의 사례편람이 나오게 되자 간소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이와 같이 제사의 변천과정을 보면 효의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계급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4) 제사는 미풍양속이 아니다

제사는 우리나라의 고유문화나 전통이 아니라 13세기 이후에 들어온 외래문화와 전통이었으며 그 문화도 백성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가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강권하다시피 하여 민간에 퍼뜨린 풍속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제사를 꼭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제사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 아니다.

 

5) 제사는 정치도구로 사용되었다

공자가 활동한 춘추 말은 정치적 혼란과 중국의 전통적인 봉건사회 체제가 붕괴하며 아울러 예제와 사회규범도 변혁을 겪어야 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동향 속에 당시 타락한 지도자들 밑에서 기근과 홍수와 질병까지 돌아 어려움에 빠진 백성들을 지도해야 하는 지도자로서 공자의 본래적인 관심은 인륜과 정치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그 기능은 첫째로 교화를 근본으로 한 기능이다. 공자는 '백성이 예를 잘하면 부리기가 쉽다"라고 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다른 한 가지는 정치적 질서의 기능이다. "사람이 예를 따르면 잘 다스려지고 안전하고 존속하나 예를 따르지 않으면 어려워지고 위태로우며 멸망한다"라고 하였다. 조상을 섬기는 효가 임금을 섬기는 충으로 연관되어 정치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제사는 군왕이 천하를 다스리는데 필수적인 근본 원리로 삼고 있으며 국가적인 통일적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중요시되었다. 종묘와 교사 의 제례는 종법 제도와 봉건제도의 체계를 통하여 국가적인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중시되었다.

 

한국인들의 제사는 조상에 대한 예요, 효도로 알고 있는 것은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기독교를 조상을 섬기지 아니하는 불효의 종교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619-31절은 제사가 죽은 자에게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대화나 교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하나님께 구하기를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생전과 사후와의 세계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대화나 어떤 교제도 불가능하며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사무엘하 1115-23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자기의 아들이 병들었을 때에는 금식하고 울면서 기도하였지만 아이가 죽은 후에는 음식을 먹고 의복을 갈아입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의아해서 왕에게 물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아들을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이러한 질문을 받고 다윗은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말씀 속에서도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살아 있는 사람과는 어떤 경로로도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시간과 물질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은 죽은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과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한다. 전도서 320-21절은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간다는 말씀인데 사람의 영혼과 짐승의 혼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믿는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과는 교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19:30)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도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 23:46)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스데반 집사의 임종 순간에 대하여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굻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79-60)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대속 사역을 완성하실,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고 있. 스데반이 세상을 떠날 때는 내 영혼을 받아 달라고 기도하고 있. 즉 영혼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영혼과 육체가 공존하는 것을 인간의 삶이라고 하고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행사이므로 산 자는 죽은 자와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사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 그 무엇도 죽은 자를 위해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제사는 결코 부모를 공경하는 행위가 아니 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면 안 된다.

 

창세기 3154절에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경야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야곱이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하는데, 그 제사는 조상에게 드린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본래 성경에 나타난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려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영적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서의 삶을 강조한 것이다.

제사 제도는 인간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죄로 인하여 영이 죽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로 말미암아 그 죄에서 사함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부모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부모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이고, 부모에게는 불효의 죄를 짓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이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사는 부모를 공경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금해야 하며, 앞서 가신 분을 추모하며 예배하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고, 앞서 가신 분이 어떻게 사셨는지 생각하고 그가 주신 교훈을 살펴보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드려야 하며 형제간에 사랑을 나누며 서로 신앙생활을 독려해 줄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7) 불신자들과 함께하는 추모예배 인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추모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신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불신자들이 함께 예배에 참여한다고 해서 추모예배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예배 순서를 다르게 드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예배드리기 전 예배의 서론으로 추모예배의 의미를 설명해서 예배에 참여하면서 정숙을 유지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추모예배가 앞서 가신 분의 과거의 삶을 회고해 보고, 그 교훈을 살피며,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지를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함께 예배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추모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예배를 인도해야 할 것이다. 그들 중 한 생명이 주께 돌아오면 주님은 온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기뻐할 것이며, 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8) 추모예배는 어떻게 드리는가?

추모예배는 장례 후 1년이 지나서 드린다. 비행기 추락 등으로 인해 유해가 없어서 발인예배를 드릴 수 없을 때에도 추모식을 거행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식구나 친척, 친지들이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추모식을 가지기도 한다. 추모예배 시에 자리에 앉을 때는 우선 가족들이 중심에 앉고 교인들은 사방에 둘러앉도록 한다.

 

추모예배는 2년 이상은 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 생일에 하는 것은 제사 형식이 되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별히 고인에 대한 약력을 소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례자가 설교하기 전에 이런 분이었다고 간단하게 설명한 후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자리에 앉힘으로써 서론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먼저 개식사를 한다.

 

"오늘 고 000님의 추모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우리가 고인이 떠난 지 일 년이 지난 오늘 왜 자리에 모였습니까? 추모예배는 네 가지 뜻을 가지고 모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한 후, 전술한 대로 추모예배의 네 가지 의미를 설명한다. 네 가지의 의의를 설명한 후에, 다시 말하기를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추모예배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 네 가지를 위해서 우리가 오늘 여기 모였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고요히 머리 숙여 묵도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하면 질서 정연하게 예식이 진행된다. 이렇게 추모예배를 드리는 네 가지 목적을 잘 알고 또 그 가족들에게 바르게 인식시키고 예배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서론이다.

 

서론이 확실해야 본론이 효과를 거두게 된다. 추모예배의 설교는 너무 간단해서도 안 된다. 부드러운 위로와 축복을 포함하는 것이 좋으며, 책임감을 줄 수 있는 권면의 내용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오늘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굳게 믿으며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도록 엄중하게 복음의 씨앗을 심어 주는 것이 좋다.

 

2. 가정 추모예배의 실제

 

(1) 예배 인도자의 준비와 자세

추모예배의 인도자는 몇 가지 준비해야 할 내용이 있다. 먼저는 심방받을 가정의 가족사항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추모예배를 드릴 가정의 가족사항이 어떻게 되는지, 몇 남매인지, 자녀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특히, 가족이나 친지 중에 누가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는지, 또 누가 불신자 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무엇보다 말씀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추모예배의 말씀에 따라 예배드리는 가족이나 성도들이 변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 준비와 함께 충분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은 예배 인도자가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고인에 대해 충분하게 알아야 한다. 고인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어떻게 사셨는지 살아 계실 때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설교할 때에 참고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추모예배를 드리는 네 가지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가족들에게 인식시키고 나서 예배를 시작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의 자세는 위로자의 마음으로 유족들을 만나야 하고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도록 결론을 맺어야 한다

 

(2) 추모 예배 시 꼭 기억해야 할 사항

추모예배를 드리게 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내용 몇 가지가 있다.

1) 추모예배는 장례 후 1년이 지나서 가진다.

2) 추모예배는 정식으로는 2년 이상을 드리지 않는다.

3) 추모예배의 좌석은 가족들이 중심으로 앉고 성도들은 사방에 둘러앉도록 한다.

4) 추모예배를 묘지에서 드릴 때 묘지를 바라보고 할 것이냐'는 문제는 자유롭게 해도 좋다.

5) 고인의 생일에 예배드리는 것은 제사 형식이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

6) 명망 있었던 교인의 경우에 약력을 소개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체하지 않도록 주례자가 설교 전에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좋다.

7)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서론이 있는 것이 좋다.

8) 예배 전의 서론에는 자리를 앉히는 것과 추모예배를 드리는 네 가지 목적을 가족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추모예배의 목적은,

첫째, 고인이 땅 위에 계실 때에 어떻게 사셨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둘째, 그분이 살아 계실 때에 내게 주신 교훈을 되새기는 것이다.

셋째, 그분의 교훈과 유언대로 살았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다.

넷째, 이제부터 바로 살고자 하는 결심을 하는 시간인데, 했으면 더 잘하고, 못 했으면 회개하여 그치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9) 예배는 개식사, 묵도, 찬송(188, 439), 성경봉독, 설교, 찬송(539), 축도 순으로 드린다.

 

(3) 효과적인 추모예배 인도와 예배 진행 순서

 

*개식사

'지금은 고 000(직분)님의 추모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약력소개

'헌재 고 000(직분)님의 약력을 잠깐 알려 드립니다.' 그 후에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다.

*묵도

고요히 머리 숙여 묵도합시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40:6-8)

*기원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여관과 같은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을 사는 많은 사람들 중에 고 000 집사님을 영원한 하늘나라로 불러 주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이 엄숙한 시간에 추모예배를 드리오니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성령님께서 예배하는 가운데 오셔서 사랑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은혜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찬송 - 찬송가 534장을 부르겠습니다.

*. 성경봉독 -해당 성경 말씀을 봉독 한다.

*. 설교 - 설교자가 설교를 한다.

*. 광고

"이 시간에는 고인의 약력을 따로 소개할 수도 있고 여러분 중에 조사의 순서를 엄숙히 주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모든 순서를 생략하겠습니다. 또 유족 중 한 분이 대표로 "여러분, 감사합니다" 정중한 인사를 드려야 하나 그 순서도 생략하겠습니다.

*. 찬송 - 해당 찬송가를 부른다.

*. 축도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 11: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 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 충만하신 은총이 고 000 집사님이 남기신 사랑하는 유족들의 머리 위에와 남은 여생을 아버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서있는 주의 모든 백성의 머리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 폐회선언

이상으로 추모 예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4) 불신자들과의 연합을 위한 제언

추모예배를 드릴 때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사전에 오늘의 추모예배는 기독교 예식으로 드리게 되며, 목사님께서 집례 하시게 된다는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엄숙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사담을 일절 금하고, 대폰의 전원도 차단시켜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한다.

 

예배 인도자도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추모예배의 의의와 목적을 잘 설명해 주어서 불신자들도 예배에 적극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불신자들이라 할지라도 부모님이나 가족의 장례 후 1주기 추모예배를 위해 방문한 인도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참석하게 된다. 추모예배 시에 불신자들이 함께 있다고 해서 예배 순서를 변경하거나 약식으로 진행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예배 순서대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장례] 위로 예배 순서 및 설교와 대표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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