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욥기 23장 설교말씀]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승리(욥 23:10-17)

성령의 능력 2021. 7.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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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23장 설교말씀 중에서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승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은 율법주의 신앙을 하다가 하나님께 고난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해서 율법주의 신앙이 깨지고 복음주의 신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도 시험을 받을 때 신앙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됩니다.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승리(욥 23:10-17)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욥23:14 그런즉 내게 작성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23: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욥23:16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욥23:17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1. 하나님은 왜 고난의 시험을 허용하시는가?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1:1) 사람이었는데 인간 역사상 최악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 하더라도 남의 죄나 자식들의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한 예도 많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도 아닌데, 히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시련을 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시련을 주시고 만약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12:8).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련은 죄의 대가로 벌을 받기보다는 하나님의 바라시는 수준에 도달시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철부지여서 그것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철부지 아들이 재벌이신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과 특권을 알지 못하고 백 원 짜리나 천 원짜리로 만족하고 과자나 장난감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자녀에게 단돈 만원이 무슨 필요가 있고 재산 등기나 몇 천마원의 예금통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이 자녀가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아버지의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육시키을 시켜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아버지의 큰 재산을 관리하고 그 많은 사원들을 지도할 능력이 없을 때에는 그가 아들이라도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관리 책임을 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 계획을 가지시고 무궁한 하늘나라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어려서 그 가치도 모르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고 위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을 하인에게 맡겨 놓고 먼 나라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귀인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하인과 간이 살면서 하인의 종노릇을 하고 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의 수준에 이르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옛날 하인과 함께 사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싶을 때 어느 때나 먹고,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자고, 놀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음식도 사사건건 간섭을 합니다. 그것이 바록 고통스럽게 보이지만 가문과 기업을 다스리고 통솔하여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훈련 과정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2:2-3)였다는 우리의 과거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욥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욥으로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신앙이 어릴수록 시험 문제는 쉽습니다. 그러나 성장해 갈수록 시험 문제는 어려워지고 주는 신앙, 감사하는 신앙으로 바꾸어집니다. 어른이 되면 부모를 위해, 자녀들을 위해 베풀어 주는 인격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욥의 시험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시험입니다. 유치원생이 대학생 시험을 이해하겠습니까? 이렇게 욥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수준에 오려 놓으시려고 어려운 시험의 문제를 내셨다는 것입니다.

 

2. 욥이 당한 시험

1) 많은 재산을 잃은 고난

피땀 흘려 모은 재산, 평생토록 애써서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7,000마리, 약대 3,000마리, 소 500마리, 암나귀 500, 그리고 많은 종들을 일시에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부자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어떤 대책도 세워 볼 여지도 없이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이 와서 무참하게 약탈해 가 버린 것입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자기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일 순간에 자기를 둘러싸고 든 소유가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2) 자식을 잃은 고난

욥이 자기의 소유가 다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 허망함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이제는 자기의 손과 발이 잘리고 창자가 끊어지고 심장이 터지는 것 같은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기쁨이요, 자랑이요, 보배 같은 사랑스러운 자녀들의 참사 소식입니다. 욥은 7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은 신앙으로 잘 자랐습니다. 부모 공경 잘하고 형제들과 우애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이렇게 귀한 자녀들이 하루는 형 집에서 잔치를 하다가 집이 무너져서 한꺼번에 몰사해 버린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런 애통한 일이 어디 수 없는데 일시에 10자녀를 다 잃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누구라도 눈이 뒤집히고 혼절하고 환장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3) 건강을 잃은 고난

욥은 그 비극들을 보고 들으면서 이제는 자기의 몸이 다 망가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몰아치는 비극으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습니. 재산이나 자식이나 다 앓아도 건강만 잃지 않으면 어느 때인가는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 기왓장으로 긁고 있습니다. 속으로 병이 나는 것은 아무리 아파도 그래도 위신을 세울 수나 있지 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서 기왓장으로 긁고 습니다. 그러나 욥의 병은 피부가 곪고 못 볼 형편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병든 몸에서 나는 악취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병든 남편을 포기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나의 이 가죽이 썩은 후에 (19:26)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래서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4) 아내를 잃은 고난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아내만이라도 옆에서 고난에 동참하면서 같이 울어 주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이 믿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자살하여 죽어 버리라고 하고는 곁을 떠나 버립니다. 욥의 아내는 고통을 당한 남편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몰인정한 악처인가 하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욥의 아내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극악한 욥의 형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욥의 아내도 마찬가지로 집의 소유와 자녀들이 사라지는 참변을 겪으면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더구나 남편까지 송장처럼 되어 버리니 그녀는 집에 남아서 어렵고 힘들게 살다가 이런 일을 당해도 황망하거늘 더할 나위 없는 명예와 부와 건강과 권세의 복을 누리다가 한꺼번에 그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니 살아야 할 이유도 소망도 방법도 없고, 스스로를 주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아내가 옆에 있기가 더 역겨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아내의 위로마저도 빼앗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홀로 그 일들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5) 친구를 잃은 고난

세 친구가 위로를 하려고 욥에게 발치로 앉아서 일주일을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죄 없이 고난당한 자가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위로가 아니라 질책하고 책망하는 말입니다. 친구들로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는 하나님을 믿느다고 다 형통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욥과 같이 이렇게 형편없이 되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밖에는 이해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로서는 알 수 없는 무슨 죄를 하나님께 지은 것이 분명하니 그것을 고백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라고 충고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경건한 친구,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리는 이 친구에게 어찌 이런 일이 닥친다는 말인가 하고 함께 괴로워하는 그들이 내린 결론은 그래도 욥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거듭거듭 항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욥을 비웃고 욥에게 교만함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은 욥과 욥의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위로하기 위해 고난당하는 친구 욥과 더불어 논쟁을 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당하게 하신 일은 친구들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6)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음

욥은 주께서 왜 나에게 얼굴을 돌리시고 나를 원수같이 여기십니까?라고 했습니다(13:14).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조롱하고, 아내가 나를 배신하고, 든 것을 잃었다 해도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 소망이 없을 때 그 이상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습니다. 이 외침은 비통한 외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에게 등을 돌리신 것입니다. 욥에게는 모든 고통보다 하니님이 자기에게서 등을 돌려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욥에게는 모든 고통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등을 돌려버리셨다고 생각될 때의 고통이 극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아무런 설명도 위로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3. 욥의 훌륭한 신앙

 

그러나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 고난 속에서도 승리했습니다.

1) 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옹호하였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주셨으니 그분이 임의로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11:6) 어떤 엄마가 딸을 어려서 데려다 키웠는데 후에 그 딸이 자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 것을 알고 더 이상 엄마를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별스런 말로 설득을 해도 믿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엄마는 큰 배신감을 느끼고 그렇게 비참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못하고 안달하고 염려할 때, 래서 자기 지혜와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할 때 가장 섭섭해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 인생을 맡겨 드릴 때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욥은 그런 고난 가운데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을 약탈한 스바 사람들이나 갈대아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고, 충성스럽게 양을 지키지 못한 종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망한 아내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도로 가져가셨으니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셉도 자기의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습니다.

 

2) 욥은 하나님의 섭리와 내세에 대해 확실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23:13)라고 욥은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이십니다. 그분은 선하시고 지혜로우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때문에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고 누구도 모를 것입니.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갈 뿐입니다.

 

4. 욥의 교만과 회개

 

그러나 욥기 19장을 보면 욥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특심했어도 형제들과 친구들에게까지 수치 거리, 조롱거리가 되는 일언 지경에 이를 때는 그 속에서 어떤 원한과 적개심이 일어났습니다. 한탄과 비탄이 마음에서 용솟음쳤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무죄함을 항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할 수는 없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한 데 대하여 불평까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친구들이 자기의 고난이 죄에 대한 대가라고 너무 우기니까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자신의 의를 더욱 강조하고 반면에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으시는 처사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는 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 하나님을 본다는 말도 실은 자신의 무죄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서 이 세상에서는 육체의 고난을 당하지만 죽은 후에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육체를 고쳐 주시고 자기의 고난을 돌아보시기를 바라는 그런 희망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욥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의 무죄와 의로움을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입증하면서(29장과 31) 때때로 세상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불의에 대한 방관, 불공평함과 비교를 해서 말했던 것입니다 (24:12,22, 21:17-21). 그리고 자신이 그 고난 중에서 애타게 하나님이 보시고 침묵하신 것을 비난하였습니다(23:3-9, 19:7). 그리고는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로 이 고난을 당하게 하셨다고 항변합니다(30:18-19, 19:6-12). 또한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게 된 줄로 알았습니다.(23:13).

 

하나님께서는 무죄함에서도 불구하고 고난을 허용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심을 체념하듯이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죄한 자로 낙심케 하시고 두렵게 하셨다는 것입니다(24:14-17). 이렇게 스스로 의롭다 하였고(32:1), 하나님보다 자기를 의롭다고 했던 (32:2) 것이 욥의 잘못으로 드러났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의롭게 살았는가를 욥은 여러 방면으로 세밀히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곤고한 자, 어려움에 처 한자, 빈한 한 자, 억울한 자를 지나치지 않고 글들을 성심껏 돌보았는데, 하나님은 자기의 당한 엄청난 곤고와 수치에서 자기를 건져주지 않으신다는 것이 대조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욥은 자기의 의를 주장하면서 자기의 그 의는 세밀하고 틀림이 없으, 하나님은 때때로 세상에서 의로운 자로 억울함을 당하게 하시고 악한 자로 형통하게 하시는 그런 부조리와 모순을 허용하시는, 당신의 뜻대로 주권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분임을 은근히 비교하고 욥이 하나님의 주권과 자기의 의를 변호하는 것은 잘못이 없으나 이제는 아주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자기의 의가 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말했습니다.

 

욥의 생애에서 고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한 개인인 욥의 수준에서 판단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부조리와 모순을 길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관점과 시간으로 보지 않고 자기 규모와 수준의 의로운 행위와 비교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하시는 말씀은 온갖 창조 질서의 신묘함이었습니다. 피조물과 자연법칙과 그 모든 생물의 기질과 질서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되었음을 하나님은 드러내십니다. 욥이 너무 자기에게 집착되어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하나님을 재고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거꾸로 욥의 수준과 규모를 깨닫게 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과 비교하면 참으로 미미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전능함에도 인간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무지합니다.(38,39).

 

욥은 자신이 율법적인 신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신은 하나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됩니다. 체험의 신앙이 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율법에서 복음으로 돌아설 때 하나님이 갑절의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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