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에베소서 삼일절 설교말씀]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자”(엡 5:1~33)

성령의 능력 2021. 3. 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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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베소서 5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둠들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빛 되신 예수님을 피하여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산하면서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둠에 빛이 잡혀 먹히고 있습니다. 원래 어둠은 빛이 오면 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빛이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하니 어둠이 더 성행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산해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치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빛의 자녀인 성도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목: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자”

 

본문: 에베소서 5:1~33

 

요절: “너희가 한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라.” (엡 5:8)

 

주제: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서 성령의 열매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을 맺자.

 

오늘은  3.1절 주간입니다. 나라가 일제 강점에 넘어간 지 9년 만에(1919년) 교회 중심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항상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생명을 다하고 온 몸을 다하여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성경 말씀의 핵심입니다(마 22:37-40).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기 자신(“네 몸처럼”)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의 경건 인물들은 나라 사랑(애국)에 본을 보였습니다. 왕, 선지자(대언자), 제사장, 사사들, 지도자들.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도록 기도했으며(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바울, 요한), 잘못될 때는 회개운동을 하였고(미스바 성회, 애가, 다니엘 9장, 에스라 9장, 느헤미야 9장), 하나님 말씀의 회복 운동에 적극 동참했습니다(에스라, 느헤미야의 말씀 사경회).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에 가보면 전 세계 유대인들이 성전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지 20년 만인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됨으로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 양도 및 통감부 설치를 하였습니다. 이미 1903년 8월 24-30일 원산에서 캐나다의 하디(Robert Alexander Hardie: 남감리교 선교사, 1865-1949) 선교사가 시작한 회개운동(자신의 교만, 선교의 실패 고백)이 대부흥운동으로 발전되고 있던 차에 나라의 비운을 접하고 민족을 위한 기도회로 발전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원산뿐만 아니라 개성과 서울, 평양 등지에서 각종 기도모임과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통성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907년 초에 하디가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인도하고, 길선주 장로의 인도로 시작된 대부흥운동에서 개인(경건주의)과 나라(복음주의)의 회개 운동이 특별한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함께 역사하여 대부흥운동으로 전국 교회와 한국 전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이 시작된 지 12년 후인 1919년 3월 1일 삼일절의 원동력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한민족의 정치적 시련과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는 등 국가적 위기는 대부분 선교사들로 하여금 정경분리 원칙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정치적인 일에 간여(干與) 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이끌고 가도록 하였지만, 당시 민족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구국운동에 적극 나서서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을 접목했던 것입니다. 삼일 운동은 한국교회의 경건주의와 복음주의가 나라 사랑과 조화된 모범적인 경천애인의 신앙의 결과입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인이나 되며, 비서명자 48인 가운데도 24인의 기독교인이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전 인구 1천 7백만 중 기독교의 수는 3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전체 인구의 불과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던 점을 감안할 때, 삼일운동에 기독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3.1 운동에 직접 서명한 목사님들 중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고민하던 신석구 목사님의 경우, 선언서에 서명하는 문제를 놓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민하면서, 2월 27일 새벽에야 "5천 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내 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는 응답을 받고 참여하였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이승훈의 제안으로 독립운동의 참여할 것을 결정한 동기 역시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권고로 "고국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응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이 끝난 후 이 때문에 일제에 의해 체포된 후 공소 공판에서 "피고는 항상 일한 합병에 불평을 품고 조선독립을 희망하였는가?"라는 총독부 판사의 질문에, 이승훈의 경우 "그렇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바가 있으니 오색 인종 어느 누가 조국의 흥왕과 종족의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며, 더욱이 남의 나라에 합병된 자기 나라의 독립을 바라지 아니하였으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답도 이와 한결같았습니다.

 

3.1 운동 이후 이로 인하여 받은 교회의 피해는 막심하였습니다. 총독부가 1919년 5월에 발표한 통계를 보면, 전부 파괴된 교회당 수가 17동(제암리 감리교회 등), 일부 파괴된 것이 24동, 그 외 교회당의 손해가 41동, 교회 재산의 손해액은 3만 달러, 오산중학교의 피해액은 5천 달러였습니다. 그리고 1919년 6월 30일에 투옥된 사람의 수도 기독교인이 2,190명으로 유교나 불교 및 천도교인을 합한 1,556명보다 훨씬 많았으며, 교역자도 151명으로 천도교 직원 72명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하여, 각 지역에서는 조금씩 다른 날짜에 시작한 만세 운동이었는데, 대구는 1919년 3월 8일 신명학교(현 신명여고), 계성학교(현 계성고),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 학생과 서문시장 상인과 주민 등 많은 군중이 시가행진을 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작년에 대구 서문시장으로 가는 3.1 운동길 또는 90 계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이 길을 오르면서, 양옆에 태극기로 장식되어 있는 계단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복음 한국 통일을 기도했습니다. 나라 사랑에 앞장섭시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에베소서 5장을 통해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서 성령님의 열매인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결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요절 말씀인 엡 5:8-9절 말씀을 합독합시다. 9절에 “빛의 열매”가 아니라 “영의 열매 the fruit of the Spirit ὁ γὰρ καρπὸς τοῦ Πνεύματος”입니다. 바꾸어서 읽읍시다. “너희가 한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 영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in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and truth) 있느니라.”

 

1. 사랑과 거룩함을 실천하라(엡 5:1-7)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 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엡 5: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1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만 따라야 합니다.

 

2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 같이 사랑 안에서 걸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救贖)하셨고 성령님께서는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살려 중생(重生)시켜주셨습니다. 선택과 구속과 중생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고 도리어 섬기려 하시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마 20:28). 그분의 죽음은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과 희생물’ (프로스포라 카이 뒤시아 προσφορὰ καὶ θυσία prosfora kai thysia)즉 ‘예물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죽음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크시고 진실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본받아 범사에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3절. ‘음행 fornication’은 합법적 결혼 관계 이외의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합법적 결혼관계란 본인들의 동의와 부모들이나 증인들의 인정 아래 이루어진 결혼 관계를 말합니다. 부부의 성행위는 아름다운 사랑의 방법이지만, 그 외의 성행위는 음행의 죄악입니다. 성경에서는 근친상간적 행위나 동성애나 짐승과의 성행위도 포함하며 또 매춘행위도 엄격하게 금합니다. ‘모든 부정한 것 all uncleanness’은 모든 종류의 더러운 악을 말합니다. 죄악 된 것을 보고 들음으로 생각과 감정이 더러워지는 것부터 말이나 행위의 불결까지 모든 더러운 악들을 포함합니다.

 

잠언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말합니다(잠 4:23). ‘탐욕 covetousness’은 좀 더 가지려는 마음, 즉 물욕입니다. 돈뿐 아니라, 또한 세상 영광,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let it not be once named among you’는 말씀은, 실질적으로 마음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이런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죄에 대해서 심히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언급하는 것도 꺼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마땅한 바’입니다. ‘성도’라는 말(하기오스 hagios)은 ‘거룩한 자’라는 뜻으로 거룩은 모든 불경건과 부도덕을 떠나는 도덕적 성결입니다.

 

4절. ‘추잡한 것’이라는 원어(아이스크로테스 αἰσχρότης aisxrotes)는 ‘단정치 못함’이라는 뜻이며, ‘희롱의 말’은 저속하고 상스러운 농담을 가리킵니다. 단정치 못한 말, 어리석은 말, 상스러운 농담, 음행적인 농담이나 욕설 등은 다 성도들에게 합당치 않은 것들이며 성도답지 못한 말들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말들을 버리고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5절. 우리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리고 단정치 못한 말, 어리석은 말, 상스러운 농담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음행 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탐욕을 부리는 자를 우상 숭배자라고 표현한 것은 탐하는 자는 돈이나 재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고전 6:9-10, 갈 5:19-21)

 

6절. ‘헛된 말’이란, 예를 들어, ‘웬만큼 죄를 지어도 괜찮다,’ ‘그 정도 죄를 지어도 천국은 갈 수 있다’라는 등의 말입니다. 그것은 속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이며 우리가 죄를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계속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모든 죄악들을 버리려 할 것이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애쓸 것입니다. ‘이것들로 인하여’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죄악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심 등의 죄악들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이런 죄악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합니다.

 

7절.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과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끝까지 참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마침내 이 세상에 가득한 죄악들에 대해 일어나셔서 그것들을 범한 죄인들에게 진노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과 의식주로 만족하며 오직 천국을 소망하며 감사하게 살아야 합니다.

2.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자(엡 5:8-14)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2 그들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엡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낮과 밤, 빛과 어두움은 누구든지 분간할 수 있듯이, 영적 세계에서도 의와 불의,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은 밝히 분간할 수 있습니다.

 

8절.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어두움은 무지와 부도덕을 가리킵니다.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 단정치 못함, 어리석은 말, 상스러운 농담, 불결 등에 속했지만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우리들은 빛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므로 빛 안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4). 어두움과 반대로, 빛은 지식과 도덕성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거룩과 의, 선과 진실로 단장되었고 오직 도덕적 삶을 추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빛의 자녀(the children of light)처럼 행해야 합니다.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후렴)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2)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크신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3)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을 넘고 물 건너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4) 동서 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9절. ‘이는 영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기 때문이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삶으로써 맺혀지는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그것은 도덕적인 인격과 행위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며(롬 8:14), 그 열매는 도덕적인 삶입니다.

 

10절.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고 주님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다운 삶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쁘신 뜻을 잘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확인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하여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고(암 5:6), 또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라고 하십니다(암 5:14). 또 그는, “오직 공법[공의]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하십니다(암 5:24). 경건과 의와 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11절. “또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들을 책망하라.” 7절부터 계속 명령어로 이어서 교훈합니다. 7절, ‘그들과 함께 참여하지 말라’; 8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10절, ‘주님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입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이란 어두움의 일들이 열매 없는 일들임을 말합니다. 어두움의 행위들은 유익한 열매들이 없는, 인간답지 못한 행위들입니다. 죄악을 사랑하는 인간은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책망한다’는 ‘폭로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일들의 헛됨과 무가치함과 사악함을 폭로하고 책망해야 합니다.

 

12절. 죄인들은 악을 은밀히 행하며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그 어두움의 일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부끄러워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기도 부끄러워합니다. 공공연히 뻔뻔스럽게 악을 행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을 행할 때 그 행위의 악함을 느끼면서 행하며 그들의 악이 혹시 드러날 때면 자기 얼굴을 가리우며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13절.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빛에 의해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죄의 죄악됨과 헛됨과 사악함이 책망될 때, 그것과 대조하여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선한 것인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14절.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 하시느니라.” ‘잠자는 자’는 교인들 중에 바로 살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었던 혼이 거듭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은 깨어 불신앙의 세상 속에서 빛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그들은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참된 지식과 도덕성의 빛을 비추셔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불경건과 불의와 죄악을 버리고 참된 지식과 도덕성을 갖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3. 지혜 안에서 때를 분별하라 (엡 5:15-21)

엡 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엡 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5절. 우리는 어떻게 신중하게 행할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지혜 있는 자인지 아닌지를 나타낼 것입니다. 지혜는 구원받은 자다운, 성도다운, 빛의 자녀다운 바른 행동들로 나타나고 그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음은 세상 사람들 같은, 성도답지 않은, 어두움의 사람들 같은 그릇된 행동들로 나타나고 그것들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할 것입니다.

 

16-17절. ‘시간을 되찾으라 redeeming the time’을 개역이나 개역 개정에서 ‘세월을 아끼라’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원어(엑사고라조메노이 톤 카이론)는 ‘시간을 사서 건지라’라는 뜻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가장 잘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중 매체들은 하나님의 지식과 구원의 진리 외의 모든 것을 다 전달하고 있습니다. 죄악 된 세상 풍조들, 옷차림, 술, 음란, 심지어 마귀 이야기들까지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전달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구원 진리만은 제외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일차적으로 죄인들의 구원이며, 또 성도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라.”

 

술은 육신적 기쁨과 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세상의 근심과 고통을 잊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나 술 취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통제력을 잃게 만들고 실수하게 하며 방탕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잠 23:29-35) 성도들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술 취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전 6:10; 갈 5:21). 성도는 술 취함 대신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위로자, 격려자,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풍성한 위로와 격려를 얻습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는 원어(플레루스데 엔 프뉴마티 πληροῦσθε ἐν Πνεύματι plerousthe en pneumati)는 ‘성령님으로 계속 충만되어라’라는 뜻입니다.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어(플레루스데 plerousthe, 현재 수동태)는 반복적 행위를 말합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한 번만 가지는 일이 아니고 계속 반복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또 이 명령어는 수동적 의미를 가집니다. 성령님의 충만에 있어서 우리가 주체가 아니고 성령님께서 주체이십니다.

 

19절. 지혜의 삶은 성령님 충만의 삶이요,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감사의 행위로 나타납니다. 본문의 ‘시’는 시편을 가리킨 듯하고, ‘찬송가’는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를 가리킵니다. 찬미 혹은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속성들과 그의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높이는 노래입니다. ‘영적인 노래들’은 ‘신령한 노래들’이라는 말로서 성도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나오는 간증적 노래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서로 화답하라’는 말은 ‘서로들에게 말하라’는 뜻인데, 이것은 시와 찬송과 영적 노래들이 하나님께 향할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성도들을 향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생활에 교훈과 유익을 주게 하고 그래서 다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나타냅니다(골 3:16).

 

20절.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한다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와 중보자이시며 그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그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고 우리의 삶의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21절. 개역 개정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대신 개혁자의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남을 섬기며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며 그것은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피차 복종하면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줄 것입니다.

 

4. 그리스도와 교회를 남편과 아내로 비유(엡 5:22-33)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엡 5: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남편, 교회를 아내로 비유하며 상호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엡 5:32).

 

22-28절.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복종하되 주님께 복종하듯이 해야 합니다. 아내들이 남편들의 말에 대항하고 남편들과 충돌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아내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항할 수 없는 것처럼,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대항하지 말고 복종해야 합니 다.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남편들이 아내들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구세주가 되셨고 자신을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가 이런 친밀한 관계라고 해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그분에게 복종해야 하듯이, 아내들은 범사에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들의 복종은 거의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는 일 즉 죄 되는 일의 경우입니다. 죄 되는 일 외에는 언제든지 무엇에든지 아내들은 그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25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을 그런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6-27절. 남편들의 의무와 교회의 거룩함은 연관이 있습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이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교회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대속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영혼들이 복음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얻어 거룩하게 되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救贖) 받고 복음으로 깨끗하게 된 교회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거룩하고 완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비록 지상에서 이런 노력은 불완전하며 우리의 의와 완전은 여전히 예수님의 피밖에 없지만, 우리는 교회들의 거룩과 완전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8절.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을 자기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29-33절.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지 자기 몸을 사랑합니다. 자기 몸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고 또 옷을 입혀 몸을 보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몸의 지체인 교회를 이처럼 보호하시고 양육하십니다. 결혼이란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일입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말씀은 결혼이 독립 가정을 이루는 일임을 말합니다.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은 결혼이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부부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입니다. 결혼 관계의 비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과연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결혼의 비유로 종종 표현합니다(고후 11:2; 계 19:7-8).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풍성한 생명(요 10:10)을 얻는 것은 영적인 연합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신비적으로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33절. 남편들은 자기의 아내들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또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을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하라’는 말은 존중하고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아내들은 남편들을 무시하지 말고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과 거룩함을 실천하며,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시간을 회복합시다. 아내와 남편의 의무는 복종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됩니다.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범사에 복종하되 주님께 복종하듯이 해야 하며,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또 제 몸같이, 즉 조건 없이 희생적으로 아내들을 사랑해야 합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살게 하옵소서. 사랑과 거룩성을 회복하며,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복된 길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삼일절을 맞이하여 자유민주주의로 한국을 통일시켜 주시고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민족으로 축복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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