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사도행전 1장 히브리어 강해]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편지(행 1:1-5)

성령의 능력 2021. 7. 1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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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편지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한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령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고 말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많은 증거로 살아계심을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이 안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편지(행 1:1-5)

 

행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우리가 이 책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데오빌로를 마음에 상기하고 우리가 그의 입장이 되어보며 그리고 누가복음을 연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어떻게 그의 말씀이 끊긴 곳에서 계속될 뿐 아니라 사도들의 활동이 그들의 스승의 활도 즉 그리스도의 활동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게 해 준다.

데오빌로, 데오빌로는 그의 은인으로서 그를 위해 이 책은 쓰인 것이다(나는 오히려 데오빌로가 누가의 제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책이야말로 그에게 증정하기 위해 또한 그를 교훈하고 지시하기 위해 계획되었고 그의 지시나 보호를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절). 그의 복음서 앞의 증정하는 글에서 저자는 그를 "데오빌로 각하"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자는 "데오빌로여!"라고 호칭한다. 그렇다고 이 말이 그가 존엄성을 잃었다거나 지위가 낮아져 명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직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칭호가 주어진 위치를 물러났거나 그의 덕이 높아져서 그에게 주어진 이름 외의 존칭을 경멸했거나 누가가 그와 더욱 친숙해져 그들보다 자유롭게 불렀든지 이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기독교인이거나 비기독교 저술가이거나 고대인들은 그들의 작품을 어떤 특정한 인물에게 증정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서 중의 한 권을 특별히 우리의 이름을 부름으로 지적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개별적으로 성서를 받아들여야 함을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앞서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해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복음. 이곳서 그는 그의 복음을 그가 "먼저 기록한 작품"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먼저 쓴 글"이 헬라오로는 (톤 프로톤 로곤)을 계속하고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쓴다고 하였다. 복음서가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내용과 틀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기록하지 않고 전하여진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록된 말씀만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앞의 글을 썼고 영감으로 이 책을 쓰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학자들은 "완전을 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히 6:1). 그들의 안내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지식을 가르쳐야만" 한다(전 12:9). 그리고 먼저의 노력의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더 노력하지 말아야 할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저자 누가가 전의 작품에서 기초를 놓고 그 위에 사도행전을 세웠던 것처럼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생기를 얻고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설교, 새로운 작품 때문에 옛 것을 잊을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마음에 두고 그것들을 보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의 복음의 내용. 그의 복음의 내용은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 시작하심부터 모든 것으로" 다른 세 복음서 기자들의 주제도 이와 같은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리스도는 행하시고 가르치셨다. 그가 가르치신 말씀은 그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 기적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임을 증명해 주었다"(요 3:2). 그가 가르치신 우리의 행할 바 의무는 그가 행하셨던 거룩하고 자비한 행위 속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가 우리에게 "한 모범이 되셨으므로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오신 스승"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행하고 가르치는 자 즉 그의 삶이 곧 연속적인 설교자야말로 제일 훌륭한 목사인 것이다.

(2) "그리스도는 행하시고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다." 그는 그가 가르치셨고 행하셨던 모든 것을 교회의 기초로 삼으셨다. 그의 사도들은 그가 시작하신 것을 계속하여 수행하였고 오늘날도 같은 것을 행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시키시고 계속하게 하도록 하시며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이 행하고 가르치도록 능력을 주신다. 성령은 그리스도 자신이 시작하셨던 복음 사업을 전심전력 수행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신다. "이 큰 구원은 주님에 의해 말씀됨으로 시작되었다"(히 2:3).

(3)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 중 특히 누가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기 시작하신 모든 사실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물론 작은 일까지 모두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이 다양한 말씀들 중 사표가 되는 주제들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도 판단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의 말씀이 선포되고(마 4:17) 그의 기적이 처음 행하여지셨는지(요 2:2) 알고 있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비록 모두 기록하지 않았지만 대강의 전반적인 모습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행1: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복음서 기록의 시대 범위는 "그가 승천하신 날까지"로 한정되고 있다(2절). 그가 세상을 떠나신 후 그가 몸으로 나타나신 일은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마가복음은 "주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기록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막 16:19) 누가복음도 마찬가지다(눅 24:51). 그리스도는 그가 "승천하시어" 숨어서 하실 다른 사업을 시작하실 때까지 끝까지 계속 행하시고 가르치셨다. 기록했다고 했는데 히브리어 문법을 푸알 강조수동 완료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한 이야기를 누가가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록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이 3절에서 입증되고 옹호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 기록된 부분이 너무 구체적이므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가 부활하신 가장 큰 증거는 "그가 사도들에게 살아서 자신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살으셔서 자신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그들은 그를 보았다."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증언을 믿어도 좋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믿도록 강요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결코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1. 증거가 절대 확실했기 때문이다. - 즉 그가 살으셨다는 것과(그들과 같이 거니시고 말씀을 나누었으며 먹고 마시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분이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되풀이하여 그들에게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있는 상흔"을 보이셨고 그 사실은 의문시되던 사실에 가장 확실한 증거이었다.

2. 그의 보이심은 자주 있었고 또 계속 반복되었다. 그가 그들과 항상 같이 계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자주 나타나시며 그들의 의문과 의심을 점차로 만족하게 해소시켜 주시며 "40일 동안이나 그들에게 보이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했던 모든 슬픔은 다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지상에 오래 계셔서 제자들의 믿음을 강건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셨듯이 그가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신 사실은 우리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연약하심을 체휼 하시는 대제사장을 우리가 모시고 있다"는 것을 겸손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확신하게 해 주는 것이다.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은 이제 그가 그들을 떠나시나 그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나시므로 "그들의 마음 문을 여시어" 그의 교훈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말씀이 지시되고 있다.

 



1. 그는 그들이 행해야 할 사업에 대해 교훈하셨다. "그는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가 선택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임무도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가 "사도로 택한 사람들에게 계명이 주어지듯" 특권도 주어졌다. "가령 그가 집을 떠나 여행할 때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길 때"(막 13:34) 그 권한과 함께 "성령을 통하여 계명도 그들에게 주시었다." 그는 대속자로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그 성령을 그들에게 부어 주셨다. 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곧 계명을 주심을 뜻하였다. 위로자로서의 성령은 명령 자이기도 하시며 그는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여 준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 된 그들에게 의무도 부과하신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그들로 하여금 사명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의 성령을 받으라 한다(요 20:22). 그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의 사업을 이루신 후에야 승천하시었다.

2. 그는 그들이 가르칠 말씀에 대해 교훈하신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 그는 그 나라가 어떤 곳이며 앞으로 예정한 시기에 그 나라가 세상에 세워지리라 가르치신다(막 13: 비유). 그는 특히 본서에서 그 나라가 이 세상에서는 은총의 나라로써 저 세상에서는 영광의 나라로써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자세히 말씀하셨고 그것대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법이 될 계약을 알려 주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위해서였다.

(1) 그들이 성령을 보았다는 받도록 준비시키시고 그 성령의 인도대로 그들이 가도록 예정된 그 길을 따르게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은밀하게 그들이 세상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며 성령이 오시면 이 진리의 성령이 그들이 말해야 할 것을 자세히 알게 해 주시리라 말씀하셨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는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그가 다시 사셔서 자신을 보여 주신," 제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보이셨을 뿐 아니라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그가 그리스도인 줄 알았다. 그 외에 아무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해" 그렇게 명쾌하고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들을 보시고 정치나 모든 세상 나라, 철학이나 자연계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순전히 신적인 내용과 은총의 나라에 대해서 또한 그들 자신에 관한 일들과 그들이 보냄을 받을 사랑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행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들이 곧 성령을 받으리라는 특별한 보장과 그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4,5절). "그가 사도와 같이 모이사"라고 했는데 그가 죽으시기 전 지정한 곳인 갈릴리 산에서의 면담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승천을 보기 위해 "다시 모이었다"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서 그렇다(6절). 예수께서 지금은 그들에게 갈릴리로 지정하셨지만 거기서 계속 머물으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고 거기를 떠나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들에게 기다릴 것을 명하신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보다 큰 것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어떤 것보다 위대한 것을 그들의 높임 받으신 구세주에게서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 그들은 약속된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제 그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약속된 긍휼이 임할 것을 믿음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지정된 때"가 이르러 그 긍휼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그때처럼 "때가 가까이 이를 때"는 우리도 다니엘처럼 간절히 그날을 바라야만 한다(단 9:3). 

(2) 그들은 지정된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거기서 처음으로 성령이 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거룩한 산 시온의 왕이기 때문이요,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지겠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세상의 모교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거기서 치욕을 당하셨고 그러기에 거기서 또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을 그가 사랑하심은 우리에게 우리도 우리의 원수와 박해자들을 용서해 주라는 가르치심으로 받아야 한다. 사도들은 갈릴리에 있었을 때보다 예루살렘에서 더욱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편안히 기쁨으로 하나님을 믿고 꾸준히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제 사도들은 공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고 그러므로 공회에서는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예루살렘은 많은 등불이 세워져야 할 제일 적절한 등경이었다. 

행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는 그들이 헛되이 기다리지 않을 것을 보증하신다.

(1) 그들에게 예정된 축복이 임할 것이며 그 축복은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될 것이다"라고 말씀되고 있다. 즉 다음 같은 뜻이다. 세례를 받으리라고 했는데 니팔 수동태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완료는 한 번 성령 세례를 받으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① "너희에게 성령이 어느 때보다 풍족하게 부어질 것이다"라고 한다. 그들에게 이미 성령은 부어졌고(요 20:22) 그 유익함 또한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욱 측량할 수 없는 은사와 은총과 위로를 받을 것이고 이 온갖 선물로 세례 받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던 구약의 약속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요엘 2:28; 사 44:3; 37:15).

② 제사장들이 성직을 맡게 될 때 세례를 받고 물로 씻어야 했듯이 "너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라 한다." "제사장들이 성별의 징표를 지니었듯이 너희도 같은 의미의 징표를 지닐 것이다. 성령께서 너희를 진리 안으로 더욱 이끌어 주심으로 너희는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양심은 성령의 증거 하심으로 정하게 되겠고 너희는 사도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③ "그렇게 되면 전에 너희가 주님을 섬겼던 때보다 더 잘 섬기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인도되어 구름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은 것처럼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견고히 연결되므로 전에 하였던 것처럼 고통이 두려워 그를 다시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2) 이제 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씀한다.
① 그들은 주님에게서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이며 그들은 성령을 의지하게 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첫째, 성령은 약속에 따라오시는데 이 약속은 전에 메시아를 보내시므로 영원한 생명이 이제 임하게 되리라는 약속처럼 위대한 것이라 한다(눅 1:72; 요 1, 2:25). 일시적인 행운이 섭리에 따라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과 영적인 축복은 약속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갈 3:18).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영이 자연과정을 거쳐 우리 안에 주어지고 또 형성되는 것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슥 12:1)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① 이 선물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성령의 약속을 교회에 유산으로 물려 주리라 생각하셨다.
② 이 선물이 더욱 확실해지기 위하여서는 이 약속의 유업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으로 믿어야 되리라고 한다.
③ 이 선물이 진정한 은사가 되려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굳게 잡고 그 약속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와 같이 성령도 믿음으로써만 받아들여진다.
둘째,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① 그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중재자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보았고 그의 예정만을 따르시고 그의 뜻만을 간직하셨다.
② 또한 성령은 우리들의 아버지의 약속이다. 그가 우리를 "양자로 택하셨다면" 또한 "양자의 성령"을 주실 것이다(갈 4:5, 6). 그는 "빛의 아버지로서, 모든 영의 아버지로서 자비하신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이다."
셋째, 그들은 아버지의 이 약속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여러 번 들었다. 특히 운명하시기 직전 고별 설교에서 "보혜사"가 오실 것을 되풀이하여 확증해 주셨다. 보혜사는 아버지의 약속의 확인으로 우리로 그 약속에 의지하도록 격려하신다. 이 약속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들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와 아멘이다." "너희는 내게서 그것을 들었고 나는 그것을 이루겠노라" 말씀하신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예언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이 예언을 상기시키신다(5절). "너희는 내게서 뿐만 아니라 요한으로부터 그 약속에 대하여 들었도다." 요한이 말하기를(마 3:11)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라고 하였다.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요한의 말을 인용하고 성령의 은사를 그의 예언의 성취로 보심으로 요한에게 명예를 안겨 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그의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한다"는 말씀을 이루셨다(사 44:26).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떤 그의 사자들보다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그들이 은총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음은 그들의 명예이다. 그러나 "은총의 성령"을 주신 것은 그의 절대적 "권한인"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요" 성령으로 가르칠 것이며 성령으로 중재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령을 통한 역사는 가장 뛰어난 사자의 역사보다 더 귀한 것이다.

(3) 이제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같이 약속되었고 예언되었고 기다려졌던 성령의 은사를 사도들이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그 약속은 완전히 성취된다. 이분이 바로 "오시리라던 분"이요, 그러기에 "다른 사람은 바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성령은 "며칠 안 되어" 주어지리라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매일 성령을 받기에 합당한 마음을 보존하도록 며칠이 걸린다고 말씀하지는 않았다. 다른 성경 말씀을 보면 이 성령의 선물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리라 한다. 이 말씀은 특별한 권능에 대해 말해 주는데 이것은 성령에 의해 첫 번 전도자들과 교회 설립자들에게 주어졌고 그러므로 그 능력에 의해, 떨지 않고 그 시대에게 말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와 그 가르침의 증거를 후손들에게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에 의해, 또 약속을 수행함으로, 우리는 신약을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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