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광복절 주일설교말씀] 심는 대로 거둡니다(갈 6:1-9)

성령의 능력 2023. 2. 1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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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디아서 6장에서는 각자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을 심은 사람은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받게 되고 나쁜 것을 심은 사람은 나쁜 것으로 받게 됩니다. 광복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해방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죄악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해방된 것을 기뻐하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갈 6:1-9)

 

요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주제: 눈물의 기도로 심어 기쁨의 단을 거두자

 

갈라디아서는 교리서신으로 1-3장에서는 바울 사도의 개인 간증과 사도권에 대해 공격하고 비판하는 율법주의 이단의 도전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달리 할례당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 침투하여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하며 특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율법주의 이단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서 복음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서신에서 율법주의 이단을 강하게 정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과 그 복음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참 자유에 대해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4-6장에서는 우리가 받은 자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누릴 것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전체가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1장의 복음의 유일성, 2장에 복음 안에 있는 자유, 3장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4장 아들로서 누리는 자유, 5장 자유자의 삶(믿음으로 역사하는 사랑) 6장 자유자의 삶(선행)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요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갈 5:1-2)인데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입니다.

이 말씀이 훗날 대헌장(大憲章, Magna Carta=“the Great Charter of Freedoms)의 기초가 된 말씀인데 1215년 6월 15일에 영국의 존(John) 왕이 귀족들의 강요에 의하여 서명한 문서로, 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하여 국민에게 자유권을 나눈 문서입니다. 왕에게 몇 가지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국왕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문서화하기 시작하여 전제 군주의 절대 권력에 제동을 건 문서로 현대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헌장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선언 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이 말씀은 구원의 복, 의의 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림에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고 종이나 자유자가 차별이 없고 남성이나 여성이 차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다 동등한 복을 받았고 다 동등한 영적 특권을 누립니다.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곧 자유자입니다. 복음은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은 의가 죄인을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참 평안과 기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곧 율법의 정죄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복음인]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32). 죄로부터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의요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이 의, 이 구원,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율법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와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의 은혜와 자유 안에 굳게 서고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종의 멍에란 율법의 종으로서 짊어졌던 멍에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代贖)으로 그 멍에를 제거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 복음의 자유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율법의 멍에 아래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자유를 선용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이는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음이니(갈 5:13-14).”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은 상대방이 나의 주인이요 나는 그의 종인 것처럼 서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는 까닭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마 22:37-40). 사랑은 이웃을 섬기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도왔고 섬겼듯이(눅 10:33-35).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0:28, 막 10:4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며(고전 13:5),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요 15:13).

3장 1-14절에서 율법주의 곧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생각에 대하여 적어도 일곱 가지의 반론을 제시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을 것이다.

(2)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오심은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전제한다.

(3) 사람은 율법을 지키려는 육신적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와 성경 자체가 증거하며(사 64:6; 렘 13:23; 17:9) 또 우리가 경험하는 바이다.

(4)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성령의 기적들을 베푸신 것도 신자들이 율법을 지킬 때가 아니고 단지 예수님을 믿을 때이었다(행 3:12, 16).

(5) 아브라함은 행함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창 15:6). (6)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이다(신 27:26). (7) 성경은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예언하였다(합 2:4).

육체대로 살아가는 삶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갈 6:8). 심는 대로 거둡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6-17)

육체의 일은 간음, 음행, 살인,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입니다(갈 5:19-21) 성령을 좇아 살지 않고 육체를 좇아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본문에 열거된 열 일곱 가지(전통사본, 수용원문 Textus Receptus)는 크게 네 부류인데, 음란과 우상숭배와 원수 맺음과 술취함 등의 일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악 된 일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거룩하고 사랑하며 바른 정신과 절제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성령으로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과 충성, 온유, 절제 등의 덕성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5:9에는 성령의 열매(수용원문, 현대역에서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합니다.

성도의 가치는 많은 지식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물질의 풍요 등에 있지 않고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에 있습니다. 우리는 헛된 세상 영광을 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 속에 성경의 교훈을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심는대로 거둡니다!

갈라디아서 6:1-10에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6장 1절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을 받은 자요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성도가 범죄자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성도는 범죄자를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충고해야 하고 또 필요하다면 책망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규모 없는 자들[무질서한 자들]을 권계 하라”라고 했고(살전 5:14), 히브리서 3:13도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범죄자를 충고하고 바로 잡되 교만하거나 거친 마음으로 가 아니고 온유한 심령으로 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디모데후서 2:25에서도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라고 말하십니다.

성도는 또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데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는 말은 “너도 시험을 받지 않도록”이라는 뜻입니다. 성도 각자가 시험을 받지 않고 범죄치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 각자의 성화가 중요합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므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것은 죄 안 짓는 거룩한 삶입니다. 성도에게 성화가 중요한 까닭은 그가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마 5:16) 하나님을 증거 해야 하며(벧전 2:9)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벧전 3:1). 우리가 범죄 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설교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기도의 문이 막히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과 힘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살전 4:3). 성도의 삶의 첫 번째 목표는 죄 안 짓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갈 6:2에서 “너희가 짐들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들을 서로 지라는 것은 남의 드러난 죄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주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저녁 식사를 하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고 그런 다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죄의 용서를 상징합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데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의 결점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서로 사랑하려면 서로의 결점에 대한 용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짐을 서로 질 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갈 6:3에서 “이는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임이니라.” 우리는 짐을 서로 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남의 드러난 실수와 범죄를 이해하거나 동정하거나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고 고상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똑같이 부족한 사람이며, 어느 날 우리 자신도 다른 이의 죄와 비슷한 죄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갈 6:4-5절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성도는 자기를 크게 여기지 말고 각각 자기 일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자랑할 것이 자기 안에서만 있고 남과의 관계에서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부족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 6: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은 현세적인 모든 좋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말씀의 봉사자들의 사역은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의 가치를 안다면, 육적인 것을 함께 나누기를 아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소식도 나누고, 좋은 음식도 나누고, 목회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임이니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원어는 단순히 ‘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마귀에게나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에 속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대접하는 것은 그를 보내시고 세우신 하나님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의 근거로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은 자연계나 영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사무엘상 2:3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사 엘리에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7:12).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시편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빌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6~10)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아무것도 심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거두지 않습니다.

갈 6:8 “이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임이니라.”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것’은 육신의 죄성에 이끌려 행하는 행위들을 말합니다. 그런 행위들의 결과는 썩는 것 곧 멸망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해 심는 것’ 곧 성령에 이끌려 행하는 행위들, 곧 성령의 열매를 맺는 행위들은 영생에 이릅니다. 이것은 사람이 이런 일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는 자는 육체의 죄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한 일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것, 전도하고 선을 행하는 것 등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영생 얻는 자들의 표요 장차 영생에 들어갈 자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일들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또 하나님의 일들에 전념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는 것은 믿음의 열매, 구원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성도의 삶의 목표입니다. 디도서 2:14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

사람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기 쉽습니다. 남이 그를 몰라주고 또 때로는 오히려 그를 비난할 때, 또는 좋은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때, 낙심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치 말아야 할 이유는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좋은 결과를 볼 것이며, 또 최종적으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앞에서 좋은 결과를 볼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오는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결론은 6:1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무 유익이 없으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임이니라.”입니다. 본문은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를 보입니다. 우리에게 할례는 아무 효력이나 유익이 없습니다. 할례는 율법 준수의 의무를 보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줄 뿐이며 사람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무할례가 유익하다는 뜻도 아니다. 이방인들의 할례 없음은 그들이 본래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으며 소망 없는 자들이며 하나님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고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입니다. 새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새 자아(自我)를 가리킵니다(고후 5:17). 그것은 새 생명을 얻은 자요 새 성향을 받은 자입니다. 구원받은 영혼의 새 성향은 지식과 의와 거룩만을 향한 성향이며 범죄치 아니하며 범죄 할 수도 없는 성향입니다. 성도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은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주신 구원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효력이 있고 유익이 있습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의미도, 가치도, 효력도, 유익도 없다. 그리스도 밖의 모든 사람은 죄인이요 정죄된 자요 허무한 자이며 영원한 멸망 곧 영원한 지옥 불못의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인천 상륙 작전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작전 암호명: Operation Chromite “철광 작전”) 이었습니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고, 13일 후 9월 28일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 함락이 함락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러 UN이 참전하게 됩니다.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받은 ‘더글라스 맥아더’는 모두의 반대 속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성공확률 5000:1,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뿐입니다. 작전을 수행하면서 북한군을 교란시키기 위해 무전으로 작전 위치(대여섯군데)와 작전일을 몇 개 띄우기도 했답니다. 맥아더 장군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 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서 결국 상륙작전의 성공의 발판을 낳는 이야기입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륙작전을 기어코 성사시킨 맥아더 장군의 마음을 사로 잡은 일이 있었답니다. 한국을 비밀리 방문한 맥아더 장군은 낙동강 전투를 시찰한 맥아더는 10대 소년병을 참호 속에 만났습니다. 전선에서 퇴각하지 않은 한 소년병을 만난다. 왜 퇴각하지 않았느냐는 맥아더 장군의 물음에 그 소년병은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에 감명받은 맥아더 장군은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재차 물었고, 소년병은 "저에게 소총과 충분한 실탄을 달라"라고 요구했답니다.

이 짧은 만남이지만 맥아더는 이때 한국 참전과 상륙작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분이 2013년에 별세하신 고(故) 신동수선생(아내 두월순씨는 생존)이시랍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은 맥아더이지만 그 배후의 승리의 주역은 사실 국군이었음을 영화를 부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심는대로 거둡니다. 눈물로 씨앗을 뿌려 마침내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신앙의 선진처럼(시 126:6) 뿌린 대로 거두게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개인, 가정, 교회, 국가에 꼭 필요한 교훈입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생명과 평안과 진리의 열매를 얻습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심판과 멸망과 파멸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남북한은 이 진리를 꼭 깨닫고 진정 민족과 나라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오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550장(통 248장) 찬송은 음악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일생을 바친 헤스팅스가, 구약에서 예언 되었던 은혜와 축복과 기쁨의 시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된 것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는 이사야 60:1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인간들에게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 가운데 특히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2절을 두 번 반복해서 부릅시다.

1.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2.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같이 누리겠네

3. 보아라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 흘러오네

이산과 저산이 마주쳐 울려 주예수 은총을 찬송하네

4. 땅들아 바다야 많은섬들아 찬양을 주님께 드리어라

싸움과 죄악의 참혹한 땅에 찬송이 하늘에 사무치네 아-멘

[이사야 43장 복음 설교말씀] 하나님의 백성(사 43:1-13)

 

[이사야 43장 복음 설교말씀] 하나님의 백성(사 43:1-13)

이사야 43장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구원했다. 이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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