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욥기 7장 강해설교말씀] 욥-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욥 7:1-21)

성령의 능력 2021. 12. 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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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7장에서는 욥의 탄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친 인생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욥이 갑자기 닥친 시련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고난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육체적인 고통이 왔을 때 괴롭습니다. 하나님께 의문이 생깁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육체의 시련이 왔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욥-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욥 7:1-21)

 

[1-5]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 . . .

욥은 계속 말한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차바)[힘든 노동](BDB, NASB, NIV)이 있지 아니하냐? 그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꾼은 그 삯을 바라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야르케 솨웨)[헛된 달들 동안](욥이 고난받은 기간)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合瘡)되었다가(라가)[굳었다가] 터지는구나.”

세상에는 평안이 없다. 모세는 인생의 7, 80년 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했다(90:10). 주께서는 인생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고 표현하셨다(11:28). 욥은 여러 달 동안 혹독한 고난을 경험하고 있었다. 세상에 고난이 있는 까닭은 근원적으로는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땅은 너로 인해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다(3:1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다(11:28; 14:27). 또 하나님께서는 장차 참된 안식의 세계인 천국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14:17).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린다(4:9-11).

[6-10]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 . .

욥은 또,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천을 짜는 베틀의 북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욥은 자신의 날들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다고 표현한다. 인생의 삶은 쏜살같이 빠르고 흐르는 물같이 신속하다. 모세는 7, 80년의 일생이 날아가듯이 신속히 간다고 말하였다(90:10). 한 주간이 빨리 지나가고 한 해가 빨리 지나가며 어느덧 황혼이 찾아온다.

또 욥은 자신의 삶이 소망이 없고 한 호흡 혹은 바람(루아크) 같고 복된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짧고 허무하다. 다윗은 시편 39편에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39:5-6).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우리의 생명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표현하였다(4:14).

욥은 본문에서 또,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같이 음부[무덤]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 짧고 덧없이 빠르기 때문에, 사람이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지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죽음으로 인생의 지상의 삶은 끝난다.

[11-16]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 . . .

욥의 고통은 영혼의 고통이었다. 그는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내가 바다니이까? 용[바다 짐승, 바다 괴물, 고래]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는, ‘내 마음의 아픔’ ‘내 영혼의 괴로움에 대해 말한다. 그는 몸의 고통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의 이유를 알지 못할 때, 또 믿음이 약해지거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 생기는 고통이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인가, 또는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다 짐승인가라고 묻는다.

또 욥은 침상에서도 평안치 못했다. 그는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침대]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愁心)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異像)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침상은 하루하루 피곤한 인생에게 휴식의 공간이다. 그러나 욥은 침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서운 꿈으로 인해 놀라고 이상(異像)으로 인해 두려움을 가졌다.

이러한 고통 중에서 욥은 죽는 것을 소원하여 말한다.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에쳄)[아마 ‘뼈의 쑤심’] (BDB)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그는 이미 자기 생일을 저주하였었다(3:1). 또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기를 기뻐하시고 그 손을 들어 그를 끊으시기를 사모하였었다(6: 8-9). 이제 그는 몸의 고통보다 숨이 막혀 죽는 것을 원한다.

[17-19]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 . . .

욥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살피신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파카드)[살피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마음을 두신다.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말하며, 시편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라고 말한다. 사람은 죄가 많고 부족한 존재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귀중하게 여기시고 선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아침마다, 분초마다 살피시고 시험하신다. 그는 사람을 잠시라도, 침 삼킬 동안이라도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전 포괄적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삶,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신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는다(121:4).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다고 말씀하셨다(10:30). 요한계시록 2:23에서, 주께서는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수고로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평안을 누리자. 또 우리는 영원하고 충만한 안식의 세계인 천국만 사모하자.

[20-21]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 . . .

욥은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16:13)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고 우리의 혀의 말을 다 아신다(139:2-4).

후반부의 원문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이다(MT, KJV).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욥은 자신의 부족과 죄를 인정한다. 또 그는 죄의 보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느낀다.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 앞에 의인은 아무도 없다. 욥기 34:21,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신다”고 말한다. 또 히브리서 4:12-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말한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진심의 순종으로 조금 의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치 않으시고 그를 주목하셔서 그의 심령으로 무겁고 피곤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내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의 용서가 아니고서는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아무 해결책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용서를 간청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이 빠른 세월의 흐름 속에서 헛된 세상일에 시간을 다 쓰지 말고 세월을 아끼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오직 믿는 일과 주 안에서 선한 일들에 힘쓰자(5:15-17).

우리는 평안할 때, 즉 심령의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 침상에서의 평안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 그러나 고난이 올 때 우리는 욥을 기억하고 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자.

우리는 무익한 존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중히 여기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살피심을 감사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고 또 선하게만 살자.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투성이의 죄인임을 인정하자.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죄와 칭의를 감사하며 천국을 사모하자.

[고린도전서 1장 헬라어 원문 강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문안 인사(고전 1:1-9)

 

[고린도전서 1장 헬라어 원문강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문안 인사(고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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