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욥기 38장 성경 좋은 말씀]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심(욥 38:1-41)

성령의 능력 2022. 6. 1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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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8장에서는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조에 관한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욥은 하나님 말씀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 하심(욥 38:1-41)

 

1-24,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심 (1)

[1-7]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 . . .

그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무지한 말로 이치(에차)[의논, 조언]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은 그의 위엄과 불쾌함을 나타내시는 것 같다. 욥과 그 친구들은 자신들을 반성하며 두려움과 겸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욥의 문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불경건이나 사악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무지와 사려 깊지 못함에서 나온 불평스런 말에 있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측량하였는지], 누가 그 준승[(목공일에 쓰는) ]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柱礎)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욥은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이 모든 일을 행한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홀로 이 일을 행하셨다(44:24).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드러난 창조 세계의 일들도 모른다면, 그는 하나님의 감추인 섭리의 일들에 대해 아는 것처럼 처신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새벽별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동의어로 쓰였고, 그것은 천사들을 가리켰다(1:6).

[8-11]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카술라)[포대기]를 만들고 계한[경계]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바닷물은 때때로 물 무더기와 같다. 시편 33:7,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그러나 바닷물이 무더기같이 넘쳐흐를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그의 의복을, 흑암으로 그의 포대기를 만드셨고 문을 만들고 빗장을 지르듯이 바닷물의 경계선을 정하시고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말며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치라”고 말씀하셨다. 바닷가의 모래 벌판은 바닷물이 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선이다(5:22).

많은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많은 양의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여 비와 눈이 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땅을 삼킬 듯이 밀려오는 바다 물결과 거대한 파도는 심히 두렵다. 거대한 바다는 때때로 큰배들과 노련한 선원들도 삼킨다. 타이타닉 호 같은 거대한 배도 파선되었다. 넓은 바다와 거센 파도 때문에 실종된 사람들은 그 시신조차도 찾기가 쉽지 않다. 스나미 같은 해일은 그 주위의 마을들을 황폐케 만든다. 사람은 바다 물결을 제어하거나 제압할 수 없다. 기습적인 폭우와 홍수도 속수무책의 재앙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주장하신다. 기상 이변을 조정하실 수 있는 자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 바다와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8:27).

[12-15]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쫓아낸] 일이 있었느냐?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같이 나타나되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 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지구의 자전(自轉)을 통해 아침을 오게 하신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침이 오지 않을 것이다. 새벽빛이 온 땅에, 땅끝까지 순식간에 비취게 하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빛이 비치면 땅이 변한다. 어두울 때는 혼돈뿐이었으나, 빛이 비추면 땅은 진흙에 도장을 찍은 것같이, 예쁜 옷같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산들도, 들들도, 풀들도, 나무들도, 새들과 짐승들도 밝은 빛 아래서 각각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가지 색깔의 빛, 즉 무지개에서 잘 드러나고 프리즘을 통해 관찰되는 그 빛을 만드셨고 천지만물과 인간들을 위해 친히 주셨다.

그러나 새벽빛은 또한 악인을 쫓아낸다. 악인은 밝은 빛을 싫어하고 어두운 밤을 좋아한다. 욥기 24:15-17,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변장하며, 밤에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문을 닫고 있은즉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그들은 다 아침을 흑암같이 여기니 흑암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악인들에게는 빛이 없다. 악인들은 빛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그 대신 어두움을 좋아한다. 빛은 사람에게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빛을 거두신다. 악인에게는 참된 기쁨과 평강과 행복이 없다. 또 악인의 높이 든 팔은 껶여진다.

[16-18]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바다 근원(네베크)[]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고 하신다.

깊은 바다 속에는 아마 많은 샘들이 있을 것이다. 노아 홍수 때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고 성경은 말한다(7:11). 전문 잠수부(다이버)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만(보통은 수중 30미터 정도 들어간다고 함), 그것은 깊은 바다(보통 5-6km, 최저 약 11km)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잠수함도 물의 압력 때문에 아주 깊은 바다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특별한 탐사선도 겨우 900미터 정도 내려간다고 한다. 사람은 바다 속에 대해 지극히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녀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것을 아시며 그것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사망의 문,’ ‘사망의 그늘진 문에 대해 언급하신다. 그것은 죽음과 무덤을 가리킬 것이나, 혹시 악인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의 문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음너머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지옥의 문,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간 세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세계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라고 물으신다. ‘측량하다는 원어(힛본네타)지각(知覺)하다, 이해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광활한 지구의 넓이를 느낄 수 없다. 오늘 우리도 땅의 크기를 수학적 어림 계산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19-24]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광명이 거하는 길이 어디이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年數)가 많음이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빛은 주로 태양에서 나오는데, 우리는 태양에 대해, 빛의 이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흑암의 처소도 알지 못한다. 21절은 반어법(反語法)이다. 그것은, 비록 욥이 나이가 많을지라도 빛의 거하는 길과 어두움의 처소를 알지 못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두시고 죄인을 징벌하실 때 그것을 사용하시고(16:21) 죄인들을 징벌하기 위해 폭풍과 폭우와 우박을 사용하신다(30:30; 13:11, 13). 예를 들어,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을 위해 아모리 다섯 왕들의 연합군들과 싸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큰 덩어리 우박들을 내려 여호수아를 도우심으로 아모리인들 중에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게 하셨다(10:11).

하나님께서는 또,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고 말씀하신다. 본문은 빛이 나뉘어 뻗쳐 나가는 길이나, 동풍이 땅에 흩어지는 길에 대해 말한다. 사람은 빛이 나뉘는 길이나 동풍의 길을 알지 못한다.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지구를 약 일곱 바퀴 반 도는] 빠르기로 달리면서 뻗치어 나간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동풍에 대해서는 사람이 파악하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우쳐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다. 그는 바닷물을 주장하시는 섭리자이시다. 그는 빛 자체이시고 세상의 빛을 주관하시는 섭리자이시며 친히 만물과 사람들에게 빛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바다 근원과 사망의 문과 땅의 넓이를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빛과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아시고 동풍의 길도 아신다. 우리는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 앞에 두려움과 겸비함으로 엎드려야 하고 무지하게 하나님께 도전적이고 불평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욥에게 그런 부족이 있다면, 그는 그것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25-41,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심 (2)

[25-30]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날 때 그 폭우를 주장하고 그 홍수를 주장하는 이가 누구인가? 누가 그 물길을 내었는가? 사람이 그것을 예측하였더라면 재난을 피했을 것이나 예측하지 못하므로 때때로 물에 쓸려 죽고 집도 떠내려간다. 또 누가 천둥과 번개의 길을 내었는가? 사람은 그 길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없는 광야와 황무하고 거친 들판에 비를 내려 땅을 축축케 하시고 연한 풀이 나게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연만물 속에서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 조금 알 뿐이요 그 신비한 현상들의 이치를 다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비와 이슬방울이 어떻게 생기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은 수증기가 어떻게 공중의 서리가 되는지 혹은 물이 어떻게 얼음이 되는지 그 이치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이 섭씨 0도가 되면 언다는 것을 알지만, 왜 그것이 그래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왜 온도가 내려가면 이슬이 생기고 얼음이 생기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창조 세계는 신비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는 신비한 일을 많이 행하신다. 욥기 5:9,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그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9:10).

[31-33]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옛날부터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들을 관찰하며 별자리들의 이름을 붙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중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욥도 앞에서 이런 별자리들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별들을 다 만드셨다고 말한 적이 있다(9:9). ‘묘성(昴星)’(키마)은 플레아데스 별자리(Pleiades) 혹은 황소자리 별자리로서 일곱 개의 별들로 되어 있고, ‘삼성(參星)’(케실)은 오리온 별자리(Orion)로서 세 개의 별들로 되어 있다. ‘열두 궁성(宮星)’(맛자로스)과 ‘북두성(北斗星)’(아이쉬)은 아마 열두 궁성 별자리와 큰 곰 별자리를 각각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네가 묘성 곧 황소자리 별자리의 일곱 별을 묶었느냐, 또 삼성 곧 오리온 별자리의 세 별을 풀겠느냐고 물으신다. 그는 또 네가 열두 궁성 별자리를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고 말씀하시고 또 큰 곰 별자리의 별들을 인도하겠느냐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는 말은 땅에 대한 해와 달과 별들의 영향을 다스릴 수 있는가라는 뜻이라고 본다. 거대하고 광활한 우주 공간인 저 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그리고 그것들이 여러 모양들을 이루며 규칙적이게 제자리를 지키는 현상들은 참으로 신비하다. 이것은 피조물인 사람이 조금도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욥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34-38]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욥의 목소리가 구름에 도달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도달했다 할지라도 구름이 그의 말에 복종치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욥이든지 누구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늘의 번개를 주관하고 그것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것은 욥이든지 누구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고 물으신다. 사람은 확실히 짐승들과 다르다. 물론 사람은 범죄한 이후 하나님을 아는 참 지혜를 잃어버렸고 심히 무지하고 허무한 것을 추구하고 사는 상태에 있지만, 확실히 짐승들과는 다르다. 사람에게는 짐승들에게 없는 높은 수준의 지혜와 이성과 도덕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지혜와 총명은 누가 준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또, “[그러나]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본문은 “[그러나]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티끌이 굳어질 때와 흙덩이가 서로 붙을 때, 누가 하늘의 병을 기울일 수 있느냐?”라는 뜻이다(NASB, NIV). 사람은 자신의 지혜로 구름들의 수를 셀 수 없으며 하늘의 물병을 기울여서 단단하게 굳어지는 티끌과 딱딱하게 붙어버리는 흙덩이를 부드럽게 할 능력이 없다. 욥이든지 누구든지 사람은 구름과 비를 명령할 힘이 없다. 그런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39-41]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욥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암사자라는 원어(라비)사자라는 뜻이며, ‘젊은 사자라는 원어(케피림)젊은 사자들이라는 복수명사이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납고 날렵한 짐승이다. 그것은 100 내지 250킬로그램의 체중을 가지고도 시속 6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려가 얼룩말, 영양, 기린, 사슴, 물소, 멧돼지 등을 사냥한다. 낮에는 보통 나무 그늘에서 쉬고 밤에 활동하며 열 마리나 스무 마리씩 떼를 지어 산다. 사람이 사자를 위해 먹이를 사냥할 수 없고 젊은 사자들의 식욕을 채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또,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하신다. 까마귀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새이다. 노아 홍수 때에 노아는 물이 걷힌 후 창문을 열고 맨 먼저 까마귀를 내어보냈다. 시편 147:9는 하나님께서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것을 주시는도다라고 말하며, 주께서도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말씀하셨다(눅 12:24). 까마귀 새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에게 먹을것을 주신다.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은 다 하나님의 선하신 배려와 공급 속에 살고 있다(104:27-29).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상 만물을 섭리하신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정말 조금 알 뿐이다. 그는 폭우와 우뢰와 번개 길을 내시고 이슬방울과 얼음과 서리를 주관하신다. 그는 하늘의 별들을 홀로 창조하셨고 운영하신다. 그는 구름과 번개와 비를 주장하신다. 그는 사자와 까마귀 같은 모든 동물에게 먹을것을 주신다. 그는 자연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지극히 크신 하나님, 그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엎드려 그를 경배하며 그의 위대하심과 그의 지혜와 능력과 자비하심을 찬송하고 잠잠히 그의 섭리에 순응하고 그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자.

[레위기 10장 좋은 성경 말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레 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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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0장에서는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에 각자 불을 담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다른 불을 담았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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