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와서 고생할 때 하나님은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시록 말씀을 통해서 현재 일어날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언한 말씀이 성취가 되었는데 아직 성취되지 않은 말씀이 계시록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새 예루살렘이 열리고 천년왕국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는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면서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 1:1-20)
요한계시록의 주된 내용은 종말 예언이다. 요한계시록 1장은 이 책의 내용과, 사도 요한의 기원과 송영, 그리고 요한이 계시를 받은 경위 등을 기록한다.
1-3절, 계시의 성격
본문은 본서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원천, 주체, 내용, 목적, 천적 전달자, 인간적 전달자, 방법, 계시와 성도의 관계, 계시의 복됨, 계시된 내용의 긴급성 등을 증거한다.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 . . .
요한은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이다. 요한계시록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시란,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첫째로, 계시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자신의 모든 뜻을 계시하여 주셨다. 히브리서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께서만 계시하실 수 있다. 창조의 진리도, 구원의 진리도, 종말의 진리도 그러하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다”는 말씀에서와 같이,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자주 구별되신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삼위(三位)의 구별을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한다. 신성(神性)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되신다. 그 두 분의 인격적 관계는 신비에 속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인성(人性)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사람이신(딤전 2:5) 그는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예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한 인격이시며 하나님과 인간 예수와의 인격적 관계는 역시 신비에 속한다.
이렇게 삼위의 구별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그들의 관계성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까닭은 성경이 그의 신성에 대해 충만히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요일 5:20), ‘크신 하나님’(딛 2:13)으로 불리셨다. 그는 갈릴리 바다 속에 있는 한 물고기의 입 속의 은전 한 세겔을 보셨다(마 17:29). 또 그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떡 기적, 죽은 자들을 살리심 등). 또 그는 하나님과 나란히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셨다(계 5:13).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별되시면서도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심을 증거한다. 즉 성경은 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있다.
둘째로, 계시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계시의 내용을 하나님께 받아 알려주셨다. 사도 바울이 받은 구원의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었다. 갈라디아서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요한이 받은 종말 예언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계 1:1). 이 말씀은 본서의 신적 권위성을 증거한다.
셋째로, 계시의 내용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것은 미래의 일들, 특히 종말 사건들이다. 그것들 속에는 대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죽은 자들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포함된다. ‘반드시’라는 말은 계시된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 예언의 내용은 진실하고 확실하다. 또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이 계시의 내용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 말씀을 주신 지 2천년이 지났다. 교회는 이 말씀대로 때가 가까움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종말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일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가 작정하신 모든 일들을 속히 이루실 것이다.
넷째로, 계시의 목적은 ‘그 종들에게 보이시기 위함’이다. ‘그 종들’은 주의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을 가리킨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유다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요한계시록은 바로 하나님의 종된 우리를 위한 책이다.
다섯째로, 계시의 천적 전달자는 천사이며, 여섯째로, 계시의 인적 전달자는 그의 종 요한이다. 요한계시록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일곱째로, 계시의 방법은 상징으로 나타내심이다. ‘지시하신’이라는 원어(세마이노)는 ‘상징으로 나타내다’는 뜻이다. 이것은 본서의 내용이 증거하는 바이다. 본서에는 많은 상징들이 나온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사건들에 대한 상징적 예언의 책이다.
[2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 . . .
요한은 말한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본절은 계시의 기록자와 그것의 내용과 그것의 충분함을 증거한다. 계시의 기술자는 요한 자신이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계시를 책으로 기록하였다.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며, 사도 요한이 본 바이었다. 본서에는 ‘본다’는 동사(에이돈)가 57회나 사용되었고, 그 중에 ‘또 내가 보니’라는 표현(카이 에이돈)이 32회나 나온다. 요한은 많은 상징적 내용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다 증거하였다’는 말은 요한이 기록한 본서가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하게 기록하였음을 증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다. 그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딤후 3:16-17). 그러므로 이 책에 무엇을 가감해서는 안 된다(계 22:18-19).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본절은 계시와 성도의 관계, 계시의 복됨, 그리고 계시된 내용의 긴급성을 증거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읽고 듣고 지켜야 하는 관계가 있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었다. 그래서 읽는 자(단수명사)와 듣는 자들(복수명사)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감사하게도 모든 성도들이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성경책을 많이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지킨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수(保守)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보수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특히 계시록을 통한 복은 환난을 대비함과 인내와 위로의 복이고(13:10; 14:12) 성도가 환난과 죄악을 이겨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이르는 복이다(22:5, 17).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참으로 복되다.
계시된 내용은 긴급한 일들이다. “[마지막] 때가 가깝다.” 성도에게는 항상 종말의식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구의 종말이 가깝다. 본서와 성경 다른 곳들에 예언된 세상 종말의 징조들, 예를 들어 많은 거짓 목사들의 출현, 교회들의 배교(背敎),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핍박, 세계복음화 등이 이미 나타나 있다. 자연계에도 자원 고갈,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 등 이상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계시의 책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책이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덮어두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이다.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우리는 신적 권위로 인쳐진 말씀인 이 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은 종말 예언의 말씀이다. 본서는 인류와 세계의 미래 역사에 대한 지도책과 같다. 우리는 인류와 세계의 미래를 위하여 이 책을 주목하고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은 복되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장차 올 대환난을 대비할 믿음과 인내와 위로를 얻을 것이며, 마귀와 세상과 죄악을 이기고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들어가는 복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묵상하고 지키자.
4-8절, 문안과 송영
4-8절에는 사도 요한의 문안 인사와 송영이 기록되어 있다.
[4-6절]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 . . .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사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다. 종말 예언의 계시인 본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에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어키 지역을 가리킨다. 요한은 먼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영원 자존(永遠自存)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계시하셨다(출 3:14). ‘그 보좌 앞에 일곱 영들’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 신들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 충만한 위엄과 능력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5:6, “[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그의 충성된 증인 되심, 그의 부활, 땅의 임금들의 머리 되심을 언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충성된 증인이셨다. ‘증인’이라는 헬라어(말투스)는 ‘순교자’라는 뜻도 가진다. 참 증인은 죽기까지 진리를 증거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증거하신 충성된 증인이셨다. 또 그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셨다. 그는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이며 온 세계의 정치가들의 우두머리이시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
사도 요한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은혜와 평강은 성도에게 참으로 요긴한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더 잘 믿을 수 있고 죄 안 짓고 바르게 살 수 있다. 평안은 은혜의 결과로 누리는 마음의 평안이다. 평안 속에는 건강과 일용할 양식과 환경적 평안까지 다 들어 있다.
본절 중간부터는 예수님께 대한 송영이 나온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다수의 전통사본들은 ‘해방하시고’ 대신에 ‘씻으시고’라고 되어 있다. 뜻은 비슷하다. 이것이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쁜 소식, 하나님의 사랑의 소식이다. 죄가 인생의 근본 문제이다. 범죄한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영원히 멸망하고 지옥에 던지운다. 그러므로 죄씻음을 받아야 하고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씻음의 구원,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이다.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되었다(벧전 2:9). 하나님과 성도들 간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 요한과 함께 우리도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을 돌려야 한다.
[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승천 시 구름이 그를 가리웠듯이 그의 재림 시에도 그는 구름과 함께 오실 것이다. 구름은 그의 영광의 신비를 부분적으로 가리울 것이다. 그의 재림은 각인의 눈이 볼 수 있는 사건일 것이다. 또 심판주의 나타나심 앞에 어떤 이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후회와 공포의 부르짖음을 할 것이다. “그러하리라, 아멘”이라는 마지막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어구이다.
성도는 이 땅의 것을 소망하지 않는다. 이 땅의 것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다 불탈 것이다. 그것들은 다 불심판을 위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의 기대는 전적으로 거기에 있다. 그가 다시 오시면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8절]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본절은 다시 하나님의 영원자존성을 증거한다.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신약적 표현이다. 구약성경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에서 ‘주’라고 번역되어 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시작과 끝이시다. 시작은 창조요 끝은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하나님이시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사건을 기록한 창세기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한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자, 곧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다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는 제한성이 없으시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시다. 그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다. 여기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의 질적 차이성이 있는 것이다. 영원자존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우주와 인생과 역사의 모든 해답이 있다.
4절부터 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우리 인생은 우주의 시작도 또 끝도 알지 못하는 자이지만, 하나님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하나님만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씻으시고 장차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가 다시 오실 때 그를 찌른 자들도 그를 볼 것이며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것들을 소망하지 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자.
셋째로, 우리는 일곱 영으로 온 세상에 충만하게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는다. 그의 지혜와 지식, 위엄과 능력은 충만하시다. 그는 믿는 성도들 속에 거하시며 그들을 위로하시고 거룩한 삶을 이루게 하신다.
넷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도의 특권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자. 또 우리는 천국 백성답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의 제사장답게 담대하게 살자.
9-20절, 계시를 받은 경위와 주께서 하신 말씀
[9-11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 . . .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는지, 즉 그가 계시를 받은 경위를 증거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요한은 자신을 성도들의 형제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노사도의 겸손한 인품을 나타낸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겸손히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은 직분자들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 요한은 자신을 또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환난이 있다(마 16:24; 행 14:22; 딤후 3:12). 우리는 다 그 환난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또한 그의 나라와 참음에도 동참하는 자들이다. 환난이 있지만, 그의 나라도 있다. 참으면 영광도 있다(딤후 2:12). 그의 십자가의 낮아지심 뒤에는 부활과 승천의 높아지심도 있다.
요한은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 그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었고(요 20:19, 26),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이었다(행 2:1; 레 23:15-16). 사도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일을 복된 날로 구별하시는 표들이 있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주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섬에 있었다. 초대교회의 증거에 의하면, 그는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였으나 그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위하여 그를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어려운 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생기며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요한은 그가 보는 내용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주께서 요한이 본 내용을 책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더 잘 보관하고 전파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 더 굳게 서고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셨다.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온전함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12-16절]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요한은 일곱 금촛대와 촛대 사이에 서신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가 본 첫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이었다. 그것은 일곱 교회를 가리켰다. 이 책의 주된 관심은 교회이다. 성경은 교회를 위해 주신 책이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의 설립과 성장과 완성에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참된 교회의 건립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요한이 본 두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예수께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신 것은 그의 왕으로서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시는 것 같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것은 그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나타내신다. 또 그의 눈이 불꽃같은 것은 그의 깊고 철저한 통찰력을 나타내시며, 그의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것은 그의 심판의 권세를 나타내신다.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은 것은 그의 말씀의 큰 권위를 나타내신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는 것은 그가 교회들의 목사들을 붙드시고 사용하심을 나타낸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쪼개는 그의 예리한 말씀을 나타내신다. 그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은 것은 그의 크신 영광을 나타내신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장차 재림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영화로우시고 엄위하시다. 그 영광의 주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시며 주의 재림 직전의 종말 사건들을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17-20절]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러졌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져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피조물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처음과 나중이시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성경이 증거하는 기본적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는 이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죄인들을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구주이시다.
‘네 본 것’은 일곱 금촛대와 그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이제 있는 일’은 사도시대 교회들의 일들을 가리키고 ‘장차 될 일’은 교회 역사상 되어질 일들과 주님 재림 직전의 일들과 인류의 최종 상태에 대한 것들이다. 일곱 교회와 일곱 별의 ‘일곱’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대표할 것이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하였는데, 사자는 교회의 목사를 가리킨다. ‘일곱 별의 비밀’이라고 한 것은 목사들의 영적 상태와 충성 정도는 다른 사람은 모르고 주님만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교회의 목사들은 주의 오른손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너무 염려하거나 너무 낙심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일곱 교회들 사이에 다니시며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손에 붙들고 쓰기도 혹은 쓰지 않기도 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깨닫자. 우리는 그의 성결과 위엄, 그의 불꽃같은 눈길, 권위 있는 말씀을 깨닫자. 또 우리는 교회의 성격도 깨닫자. 우리는 교회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한다.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금처럼 귀한 존재이다. 그것은 옛날 대제사장의 옷의 흉패와 견대에 있는 12보석과 같다. 또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 빛, 즉 전도와 선행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또 우리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별들이다. 그가 그들을 붙드시고 사용하실 것이다. 여기에 목사직의 존귀함도 있지만 목사들의 책임과 의무도 있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1장 성경 좋은 말씀] 복음의 유일성(갈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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