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도는 만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기초이며 머리이신 예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교회의 기초 예수 그리스도(엡 1:1-23)
1-14절,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1-2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 그가 무지하여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을 때, 주께서 그를 부르셨고 사도로 삼으셨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위해 세우시고 보내신 자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안을 기원하였다. 은혜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의 은혜이며 평안은 그 은혜에 근거한 마음의 평안과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평안을 포함한다.
[3-6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인해 그를 찬송하면서 그의 구원을 세 단계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과,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과, 셋째는 성령의 인치심이다. 오늘 우리도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송해야 한다.
성도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그것은 땅에 속한 것 곧 현세적, 육신적, 물질적 복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것, 즉 내세적, 영적인 복이다. 현세적 복도 복이지만, 우리가 죽으면 다 끝나는 복이다. 그러나 구원은 영생과 영원한 천국의 복이다.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창세 전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의 기쁘신 뜻대로’ 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근거하였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는 그의 기쁘신 뜻대로 인류 중 어떤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셨다. 그는 그들을 아셨고 사랑하셨고 택하셨고 구원과 영생으로 예정하셨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태초부터 계신’ 자이시며(요 1:1), 그의 근원은 ‘영원 전부터’이시다(미 5:2).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고(요 8:58) 또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영광을 누렸다’고 말씀하셨다(요 17:5). 하나님께서는 한 무리의 죄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죄의 책임을 그리스도에게 전가(轉嫁)시키셨다. 그는 그들의 죄를 속량하실 제물이 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일차적 목적은 택자들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함을 보인다. 죄는 사람 앞에서는 때때로 감출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혜롭고 거룩하고 의롭게 지음을 받았으나(전 7:29; 골 3:10; 엡 4:24) 범죄함으로 더러워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을 구원하셔서 다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를 계획하셨다. 그의 구원 계획은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지만, 양자(養子)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다(요 1:12; 롬 8:15).
하나님의 선택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선택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은혜이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죄인들은 지옥 갈 자들을 택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 것밖에 없다.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창세 전에 선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었다. 그들의 모든 죄는 사함 받았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속(贖)함을 증거한다.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贖)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벧전 1:18-19).
[8-10절] 이는(헤스)[그 은혜를]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뜻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代贖)의 이치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이었다. 구약 백성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유일한 길이시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시간표가 있음을 보인다. 아담 창조 후 6천년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다. 아담 후 천년 경에 노아라는 인물이 출생하였다. 아담 후 2천년 경에는 아브라함이 출생했다. 아담 후 3천년 경에는 다윗이 출생했다. 아담 후 4천년 경이 되어 ‘때가 찬 경륜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들 곧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 다 통일이 된다. 성경에 밝히 증거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그는 지금 천국에 올라간 성도들의 영혼들이나 지상에 있는 성도들이나 다 한 몸, 한 가족, 한 교회, 한 나라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모든 택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11-12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그리스도를 먼저 바랐던(혹은 믿었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役事)하시는 자’ 곧 주권자이시다. 우리의 예정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였다. 이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원어는 6절과 14절의 말과 동일한데, 그것은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하나님의 기업이 된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다.
[13-14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그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救贖)하시고[그 얻으신 것의 구속(救贖)의 때까지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이다. ‘너희도’라는 말은 11절의 ‘우리가’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에베소 교인들도 구원의 복음 진리를 듣고 그 복음을 믿었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그 안에서 또한 믿어’라는 말은 ‘그것을 믿어’라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앞에 나오는 구원의 복음을 가리킨다. 성령께서는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셨다. 성령의 인치심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선택과 구속(救贖)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세 번째 단계이다.
14절의 ‘이는’(호스)(남성 관계대명사)이라는 말은 앞절의 성령을 가리킨다. 원어에서 ‘성령’은 중성명사이지만, 남성 관계대명사가 사용된 것은 성령의 인격성의 한 증거이다. 성령의 인치심, 곧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 안에 거하시는 것은 성도가 끝까지 견디는 일에 보증과 보장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주께서 피흘려 사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은, 모두 다 끝까지 보존되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화를 이루다가 마침내 영광에 이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안을 사모하며 받아 누리자.
둘째로, 우리는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도록 실제적으로도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은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그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우리의 죄로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로 복음을 깨닫고 믿어 구원 얻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시다.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15-19절,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함
[15-16절]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주 예수께 대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이를 인하여’라는 말은, 앞절에 말한 에베소인들의 구원받은 사실을 인하여라는 뜻이다. 성도의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은 그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은 그의 믿음이 순종하는 믿음 곧 참된 믿음이라는 증거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로 인하여 감사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며 그들의 믿음이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 진실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참된 감사가 있다. 성도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인한 감사보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사실과, 그의 믿음이 참되며 자라는 것을 인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성도의 참된 감사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본 서신 1:3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아버지]라고 말했다. 요한복음 20:17에 보면,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무덤에서 시체가 없어졌다고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증거대로 ‘사람’이시고(딤전 2:5), ‘의인’이시고(행 7:52), ‘마지막 아담’과 ‘둘째 사람’이시다(고전 15:45, 47).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또한 ‘영광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본질적으로 예수님과 부자(父子) 관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리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요 17:5). 성경은 예수님을 ‘영광의 주’라고 말한다(고전 2:8; 약 2:1).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은 서너 가지이었다. 우선 본절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시기를 구하였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죄사함의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요한복음 17:3에서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증거하셨다. 그러나 이제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혹은 영]’이 필요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이다. 잠언 9:10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시작]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하였다. 또 ‘계시(啓示)’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셔야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1:27). 또 그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막 4:12). 신앙생활의 시작에도 또 진행에도,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지식을 이미 얻었으나 그의 지식은 자라고 확고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고 더 아는 것이 영적인 복이다.
[18절]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라는 말은 앞절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라는 기도 내용과 비슷하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눈뿐 아니라 또한 마음의 눈이 있다. 예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다(마 6:22-23).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마음 눈을 밝히셔서 세 가지를 알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첫째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둘째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셋째로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19절)을 알게 하시기를 구한 것이다. 첫째와 둘째는 서로 통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은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다. 이것은 우리가 보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이며 성도의 확실한 소망이다. 하나님의 구원 곧 죄로부터의 구원은 바로 이 소망으로의 초청이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기업은 부활한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 곧 새 하늘과 새 땅과 거기서 누릴 영생 복락(永生福樂)이다. 그것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롬 8:18)이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고후 4:17)이며 또 ‘지극히 귀한 보석 같은 영광’(계 21:10-11)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저주받은 이 지구에 사는 죄인들을 건져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구원이다.
[19절]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라는 구절은 ‘믿는’이라는 말에 연결되는 것 같다. 죄로 인하여 어두워졌고 심히 무감각해졌던 우리를 깨우쳐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는 그의 능력의 일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자를 은혜로 역사하셔서 자발적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 믿음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능력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17).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능력의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구원을 얻었다. 또 이 능력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의 기도의 내용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 눈을 밝히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날마다 하나님을 더욱 아는 복을 누리는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영생의 나라인 영광의 천국에 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그는 무지하고 약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예수님 믿게 하셨다. 우리는 그의 능력만 믿고 살아가자.
20-23절, 그리스도와 교회
[20절]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역사(役事)하여 그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으로 나타났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표현이었다. 죽음은 인류 역사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처럼 보였고, 인생의 절망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절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가장 큰 절망을 단번에 정복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사건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에서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昇天)과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 또한 놀라운 사실들이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의 승천에 관하여, 구약성경은 에녹과 엘리야의 사건을 통해 이미 예시한 바 있었다(창 5:24; 히 11:5; 왕하 2:11). 예수께서도 자신의 승천에 대해 언급하셨었다(요 6:62; 16:28). 특히 누가복음 24:51과 사도행전 1:1-2, 9-11은 승천의 사실을 증거하였다. 또 신약성경의 다른 몇 곳에서도 승천의 사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눅 9:51; 엡 4:8-10; 딤전 3:16; 히 4:14).
승천하신 그는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이 사실도 사도들의 글들과 특히 히브리서에서 밝히 증거되어 있다(롬 8:34; 골 3:1; 벧전 3:22; 히 1:3; 8:1; 10:13; 12:2).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신 의의(意義)는 다음 두 절에 언급되어 있다. 첫째는,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심이고, 둘째는,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시키심이다.
[21절]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심으로써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는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 중 어떤 천사들은 선하지만, 어떤 천사들은 악하다. 베드로전서 3:22는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말하였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말하기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빌 2:9-11).
물론, 이 사실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신자들이나 이방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무시하고 그의 신적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그의 권세와 그의 영광이 어떠하심을 증거한다. 무지한 세상이 그를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뿐이지, 그는 아버지와 함께 동등한 권세를 가지시고 동등한 영광을 누리신다. 그는 지금도 주의 백성을 통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신다.
[22절]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심은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심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의 주이시다. 만물은 그의 발 아래 있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만물 중에는 인류의 원수인 사탄도 포함되며 사탄도 마침내 그리스도의 발 아래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발 아래 굴복될 것이다. 시편 110:1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했다(롬 16:20). 사탄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 또한 우리의 발 아래 굴복되는 때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이다.
지금 모든 이들이 그 앞에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인류의 원수인 사탄을 그 앞에 굴복시키기 위해 다시 오시면, 그는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그때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말할 것이다(계 5:13). 장차 만물이 그 앞에 복종할 것이다.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교회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머리’라는 말은 ‘우두머리, 통치자, 주’라는 뜻이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표현하였다. 에베소서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것은 다 통치적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의 주이실 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교회의 참 지도자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마 23:10).
‘머리’라는 말은 또한 유기체적 의미도 가진다. 머리와 몸은 나뉠수 없는 관계이다. 머리가 없는 몸은 죽은 것과 같다. 사도 바울은 본 서신 후반부에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표현하였다(엡 4:15-16).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생명적 관계이다. 그 둘은 잠시라도 분리될 수 없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생명이시요 힘이시다.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둘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개인이지만, 또한 새로운 인류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인류가 선택되었다(엡 1:4).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며 정돈된다(엡 1:10).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한 새 사람을 이루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엡 2:15).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또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표현된다. ‘충만케 하시는’이라는 원어(플레루메누)(현재 중간태 분사)는 ‘자신을 위해 충만케 하시는, 자신을 위해 완성시키시는’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충만과 완성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측면에서 이해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한 성취요 완성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으로, 온 세계적으로 교회를 통해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창세 전의 하나님의 선택과 2천년 전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과 성령께서 죄인을 중생시키시고 성화시키시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교회를 통해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전도, 곧 지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기지(基地)일 뿐 아니라, 또한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한 성취인 것이다.
교회의 충만과 완성은 수적인 면에서도 이해된다.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 전체가 다 구원받을 것이다. 그것은 수적으로 충만한 구원이다. 요한계시록 7:9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라고 증거하였다. 성경과 역사가 증거하는 대로, 교회는 쇠퇴하는 단체가 아니고 수적으로 성장하고 충만해져 가는 단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받은 자들로 충만케 하고 계신다. 그것이 교회의 정체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천사들과 모든 인간들의 이름들 위에 뛰어나신 이름이시다. 세상은 그를 모를지라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찬송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을 바로 인식하고 그에게 절대 순종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크신 지도자이시며 왕이시다.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권위를 가진 자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대로 그의 뜻과 교훈에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교회의 본분은 오직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몸의 충만과 완성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영적 성장과 교회 전체의 영적 성장뿐 아니라, 또한 지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립해야 하고 충만케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우리로 말미암아 힘있게 완성되도록 그에게 충성해야 한다.
[사사기 3장 주일 설교말씀] 사사 옷니엘, 에훗, 삼갈(삿 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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