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4장 성경말씀 중에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보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술람미 여인처럼 신부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원죄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나를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신부 삼아 주셔서 영원히 나의 신랑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인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본 문 : 아가 4:7-16
아 4: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아 4: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아 4: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아 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아 4: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아 4: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아가서는 `아름다운 노래', `사랑의 노래'라고 합니다. 한 쌍의 남녀의 사랑 고백이며, 연애 편지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 아가서는 출애굽 기념일인 유월절에, 룻기는 오순절, 예레미야 애가는 아브(Ab)달 8일, 즉 예루살렘 멸망 기념일에, 전도서는 장막절, 에스더는 부림절에 읽었습니다.
쉬르 하쉬림(song of songs, 노래 주의 노래)라고 하는 아가(Conticles)는 애매하고 구설수가 많은 책입니다. 남녀의 애정이 성경의 편입되었는데, 유대 랍비들은 구약 정경을 놓고 주후 90년 얌니아 회의 때 열띤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으로 해석했습니다. 아가서는 숭고한 사랑의 노래며, 뭇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춘향가는 세대가 변해도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고 전승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양반집 자제인 이도령이 천한 기생의 딸 춘향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체통, 관습, 핍박에서 짓밟히지 않고 고결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고전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이 변해도 뭇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은 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원수지간의 청춘 남녀가 사랑을 했고, 그 사랑 때문에 두 사람이 죽어가지만 원수지간의 가문이 화해하는 해피엔드의 줄거리입니다. 금세기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는 현대판 아가서요, 현대인의 냉각된 가슴에 에델바이스 꽃 같은 향기를 전해 줍니다.
왜 아가서를 결혼식장이나 봄의 축제일에 읽지 않고 유월절에 읽었을까요?
이유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상징합니다. 즉, 구약의 시가서(욥, 시편, 잠, 전, 아가)의 순서가 욥같은 고난의 인생이 시편의 신앙과 잠언의 지혜로 전도서의 허무한 세상을 살다가 아가서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와 비슷하다 해서 유월절에 읽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전도서의 허무한 세상, 헛된 세상을 시편의 신앙과 잠언의 지혜로 살아갑니다. 이 과정에는 고난과 질병과 기아와 고독, 불안, 때론 전쟁과 죽음, 절망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전도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가서 같이 아름다운 삶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소망이 넘치고 과연, 우리의 삶이 절망만이 아니라 살맛 나는 기쁨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왜 살맛 나는 기쁨입니까? 9절에서 우리 주님은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라고 불러주십니다. 이 칭호는 언제까지나 친근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나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호칭이 바뀝니다. 남남으로 대할 때 직장동료로 대할 때 친구로 대할 때 호칭이 다릅니다. 연인이 될 때는 <선생님, 아저씨, OO 씨에서 오빠, 자기로, 또 여보, 당신으로 더 나아가 호칭이 필요 없이 눈만 봐도 알게 됩니다. 신랑이 신부를 바라볼 때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렇게 고백하겠습니까? 아름다움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이제까지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 입고 입장하는 신부들을 많이 보았는데 다 예쁘고 아름답더군요. 결혼 행렬에서 신랑에게 인도되는 신부는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신부에게 아름다움의 매력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인정받습니다. 머리 크기가 몸 전체의 1/8이 되는 팔등신의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었다고 하는 팔등신 미인이었습니다.
요즘 여성들도 아름다워지려고 아침부터 헬스, 수영, 에어로빅으로 몸매를 가꾸고 성형수술도 받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달랐습니다.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건강하고 일 잘하며 애 많이 낳는 강인한 여인을 환영하였습니다. 여유 있는 시대에는 가늘고 긴 손가락 희고 고운 피부,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아름답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잠언 31장에는 똑순이 같이 살람 잘하는 팔방미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여인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의 조건은 세월 따라 가버립니다. 화무십일홍인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목숨이라도 내줄 것 같던 신랑이 결혼하면 딴 사람으로 변해 아주 비인격적이고 폭력적이며 무관심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그 반대로 남편들이 아내에게 꽉 잡혀 산다고 하며 간 큰 남자 시리즈도 나옵니다. "아침에 밥 달라고 식탁에 앉는 남자, 아내가 잔소리하는데 말 끊는 남자, 아내 눈 똑바로 보고 말대꾸하는 남자, 밥 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남자들이 간 큰 남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해도 부부 정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신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성도들을 끝까지 신부로 대해 주십니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흠잡을 데가 없는 것입니다. 옷 입는 것, 말하는 것, 음식 솜씨... 다 아름답고 다 맛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대목에서는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판단기준이 흐려집니다. 원래 우리는 죄인이고 허물 많은 백성입니다. 아가서에서 신부로 나오는 술람미 여인 같이 볼 것도 없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자들입니다. 술람미는 에티오피아 지방으로 새까만 흑인들이 삽니다. 이름 없는 산촌 처녀가 솔로몬 같은 왕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왕의 사랑을 받은 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신부라고 했으니 합법적인 결혼으로 백년가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도 신랑과 신부 곤계입니다. 거기에는 늘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결혼한 신부는 친정을 떠나 새 집으로 가야 합니다. 호적도 달라지고 새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친정아버지를 모시다가 새댁이 되면 남편 중심으로 생활 패턴이 바뀝니다.
주님의 신부인 우리 성도들은 새 사람입니다. 세상 방식을 버리고 주님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 기뻐하실 매력이 있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9-11절을 보면 성도들이 주님만 사모하여 보면 눈빛이 주님의 마음이 끌리게 합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결한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깨끗하지 못한 부분, 더러운 것이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빛을 잃게 됩니다. 주님 바라보는 정결한 눈이 세상 바라보고 진리가 아닌 것을 보게 되면 순결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성실의 목걸이로 치장할 때 주님의 마음을 끌게 됩니다.
기도의 향기를 날릴 때에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또한 덕스럽고 은혜스러운 언어생활이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성도들의 입술은 격려와 위로, 축복의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거친 심령을 포근히 감싸주는 봄비 같은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신부가 신랑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경신의 식구들은 모두 다 예수 신랑의 사랑을 받는 거룩한 신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 중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생명과 힘을 줍니다. 생명과 힘은 활동하고 움직이는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가정문제를 들여다보면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부들은 우울증에 빠집니다. 사랑을 못 받으면 힘과 생기를 잃고 무기력증에 걸립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움직이기 싫습니다. 매사에 짜증이 납니다.
교인들도 무기력한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발걸음이 즐겁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그 이유가 많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 고여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내게서 넘쳐나면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세상의 잡다한 문제가 사라집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신부들은 더 깊은 사랑의 교제로 들어갑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유향산과 몰약 산으로 가자고 합니다. 이 동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하며 살던 평화의 동산, 에덴과 같은 곳입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을 사모하며 만나는 곳이 바로 이 샬롬의 동산입니다.
주경가 델리취는 몰약 산과 유향봉에서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분향하는 성전이 있다고 합니다. 몰약은 아라비아, 인도의 식물인 발삼의 껍질의 갈라진 틈에서 나온 향기로운 진액입니다. 이는 최고급 향품으로 방부제로 쓰입니다. 에스더와 여러 소녀들이 6개월간 몰약으로 몸을 가꾸고,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유향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옥합을 깨어 향유로 부은 것입니다. 이 몰약과 유향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입니다. 이건 신부 되는 우리 성도들이 신랑 예수님에게 드릴 예물이기도 합니다. 희생적 사랑, 변함없는 사랑, 향기로운 사랑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헌신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십자군 부부의 흉상이 서 있는데, 아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데 오른팔이 없답니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용감한 기사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다가 모슬렘 교도인 살라딘에게 잡혔습니다. 그 기사는 사랑하는 아내가 아기를 낳을 텐데 아기 얼굴도 못 보고 죽을 수 없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살라딘은 "네가 죽으면 네 아내는 딴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라며 비웃음을 보냈습니다.
그 기사는 아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살라딘은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를 강요하며, 만약 아내가 그를 살리기 위해 오른팔을 잘라 보낸다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살라딘의 편지는 영국의 아내에게 전해지고 남편을 사랑한 아내는 오른팔을 잘라 보냈습니다. 살라딘은 그의 아내의 사랑에 감탄을 해서 약속대로 기사를 살려주었습니다. 지금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른팔 없이 서있는 미녀는 오른팔을 가진 미녀보다 더 많은 감동으로 방문객의 식어진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질러줍니다.
우리 주님은 오른팔이 아니라, 우리 위해 온몸을 갈보리 십자가에 던져 우리를 피로 사셨으니 이보다 더 큰 희생의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몰약 산은 주님이 갈보리에서 드린 희생 제사의 언덕입니다.
12절, <잠근 동산>이라 했습니다. 주님과 나만의 동산, 사랑의 동산은 아무나 무례하게 들어오는 험한 동산이 아닙니다. 정원이나 포도원은 울타리나 담장을 두르고 문에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합법적인 주인 외에는 접근이 금지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만 열리고 봉헌되는 신부로서의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농촌의 교회 동산이 세상 사람들에 의해 많이 훼손되고 더럽혀졌습니다. 쓰레기를 버려 썩어 냄새가 나고 거기에서 술을 마시고 개를 잡아 불에 태우고 아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동산에 울타리를 치고, 문을 잠겄습니다. 이것은 세상과의 분리가 아니라 거룩한 곳을 거룩하게 여기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의 경계입니다. 그러나, 우리 경신의 가족들에게는 열린 장소입니다. 주님과 만나는 대화의 장소요, 기도의 향기가 배어있는 동산입니다. 이 동산에서 주님과 교제합니다. 교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13절 이하에 아름다운 열매와 향기로운 향품으로 동산에 가득합니다. 거기에는 석류가 있습니다. 봉선화의 일종인 고벨화, 존귀한 분에게 부어드리는 나도초, 자주색 꽃으로 10월에 피는 향기롭고 요리, 약재, 부인병에 효능이 좋은 민홍화, 생강 냄새가 나는 갈대 종류의 향기로운 창포, 나무껍질에서 기름내는 상록수인 계수, 알로에로 알려진 잎에서 향기로운 약재를 축출하여, 미용과 건강식품으로 쓰이는 침향... 이 모든 화초와 열매 맺는 동산이 교회입니다. 오늘 교회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 동산에는 우물이 있고, 샘이 있어 갈수록 아름답고 복된 동산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입니다. 목마를 때 콜라, 사이다, 아이스크림보다 생수 한 잔이 더 좋습니다. 이 갈한 세상에서 목마르시거든 이 영생의 샘에 와서 생수를 마시기 원합니다. 에덴동산처럼 축복의 강물이 흘러내리고 각종 보석과 향기로운 과수로 늘 싱그러운 것처럼 은혜받은 성도는 생명이 넘치는 동산과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16절에서, 신부가 신랑을 이 동산으로 초대합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이제 사랑하는 님, 주님을 초청하시고 행복한 축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자는 풍족히 마시고, 배불리 먹으며 하나님의 복락의 강수로 크게 만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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