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신약히브리어성경 요한복음강해] 간음한 여인 용서 사건(요 8:1-11)

성령의 능력 2021. 1. 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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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 히브리어 성경 요한복음 강해설교 중에서 간음한 여인 용서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초막절이 끝난 다음 날입니다. 이 날은 기쁨의 날입니다.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고 기쁨이 있었던 날인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절기를 지키지 않고 돌아다니다고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아침에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의 흠집을 잡아내려고 합니다. 간음한 여인은 율법의 죄로 다스리면 돌로 쳐서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코너까지 몰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죄를 물으면 여인은 죽어야 하고 율법을 어기고 살려주면 하나님의 아들로 왔다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냐고 할 것이며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여인을 죽였다고 할 것이 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돌로 먼저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간음한 여인처럼 죄악 가운데 살았는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용서해 주시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복음주의 신앙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신약성경을 헬라어 성경 원문과 히브리어 성경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간음한 여인 용서 사건(요 8:1-11)

 

헬라어 성경 1절은 이에수스 데 에포류데 에이스 토 오로스 톤 엘라이온입니다.

요 8: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8: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 7:53-8:11까지의 기사는, 사본상 문제가 있는 부분이. 이 중요한 사본들(B, L, T, W)에는 없고, 중요하지 않는 사본들(D, E)에만 있을 뿐이다. 알포도(Alford)와 하스킨스(Hoskyns)는 말하기를, 이 부분이 진정한 역사성을 띠었지만 요한의 친필은 아니고, 구전적(口傳的)으로 돌아가던 것이 여기에 삽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분(7:53-8:11)의 순정성(純正性)을 변호한 학자들도 있(I.W. Burgon, C.H. Van Herwerden, J.J. Van Oesterzee etc).

헨드릭센(Hendriksen)에 의하면, 이 부분을 요한복음의 순정 부분이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의 이유는, (1) 여기 있는 어떤 낱말들이 요한의 기록한 다른 책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2)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이 부분이 중요한 사본과 번역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로벌트손(A.T. Robertson), 이것이 본래는 변주(變註)에만 있던 것인데 후에 서사자(書寫者)의 잘못으로 본문에 삽입되었다고 한다(Introduction to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1925, p.154).

그러나 이 부분이 요한복음의 순정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들 수 있는 이유는, (1) 여기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정죄하시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그가 8장에 가르치신 바 진리가 죄인을 놓아준다는 사상(32)과 부합한다. (2) 요한의 제자 파피아스(Papias)도 이 부분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하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말하기를, "파피아스가 히브리 복음에 있는 대로 주님 앞에 고소당한 많은 죄 있는 여자에게 관한 이야기도 해석하였다"라고 하였다(Ecclesiastical History, III. 39:17).

(3) 어거스틴(Augustine)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사본에서 간음한 여자의 이야기는 뽑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여자들이 그 이야기를 근거하고 정조 없는 행동의 구실을 삼을까 두려워한 까닭이었다"라고 하였다(De Adulternis Conjugiis II. 7). 이 점에 있어서 헨드릭센(Hendriksen)은 결론하기를, "여기 기록된 것이 확실히 역사적으로 있는 사건이었겠고, 거기 포함된 사상이 사도적 사상과 충돌되지 않는.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의 복음에서 제외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마땅히 보수해야 된다. 전도자들이 이 부분 말씀에 근거하고 설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New Testament Commentary, The Gospel of John, II. pp. 33-35).

 

2절은 오르드루 데 팔린 파레게네토 에이스 토 히에론 카이 파스 호 라오스 에르케토 프로스 아우톤 카이 카디사스 에디다스켄 아우투스입니다.

요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 그가 감람산으로 가신 (1)은 기도하시기 위함이었겠고, 일찍이 성전으로 들어오신 것은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다. 기도하심과 가르치심은 그의 주요한 일이었다. 그들을 가르치셨다고 했는데 히브리어로 라마드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피엘 강조 능동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열심히 전파하여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해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주님은 지금도 성도들이 복음을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이해시키고 있다.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3절은 아구신 데 호이 그람마테이스 카이 호이 파리사이오이 프로스 아우톤 귀나이카 엔 모이케이아 카테일렘메넨 카이 스테산테스 아우텐 엔 메소입니다.

요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절은 레구신 아우토 디다스칼레 아후테 헤 귀네 카테일레프데 에파우토포로 모이케우오메네입니다.

요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8:3,4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흠을 잡아 보려고 애쓴 자들이었다. 그들, 범죄 한 여자를 끌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잔인한 월권행위를 감행하였다. 죄인은 법정에서 취급되어야 하는데, 법관이 아닌 그들로서 죄인을 끌고 다닐 권리는 어디 있었는가? 그들은 음행 하는 여인을 잡으러 다니려고 밤새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간음 중에 잡혔다고 했는데 헬라어 성경은 카탈람바노 단어를 사용했다. 완료 수동태를 사용하여 이 여인이 잡히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잡힐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음행 하는 여인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덫을 쳐놓고 기다리다가 잡았다는 의미다. 히브리어도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5절은 엔 데 토 노모 모세스 헤민 에네테일라토 타스 토이아우타스 리도볼레이스다이 쉬 운 티 레게이스입니다.

요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20:10; 22:22 참조. 그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온 목적은, 진실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의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만일 그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을 것이면, 로마의 정권을 거스르게 되었을 뻔하였. 그 이유는, 그때에 로마의 정권이 유대 민간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만일 그 여자를 돌로 치지 말라고 하셨더라면, 모세의 율법을 거스른 자라는 죄인 취급을 받으실 뻔하였다. 유대인들은 저렇게 교묘하게 예수님을 딜레마(Dilemma=窮地)에 빠뜨리려고 시험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 히브리어 사칼이라는 단어는 부정사연계형을 사용하여 죄지은 저 여자를 위하여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고 묻고 있다.

 

6절은 투토 데 엘레곤 페이라존테스 아우톤 히나 에코신 카테고레인 아우투 호 데 이에수스 카토 큎사스 토 다크툴로 에그라펜 에이스 펜 겐입니다.

요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로마 법에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는 법이 없으니 만큼,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의 법대로 하라고 명하신다면 로마 법에 걸리게 되고, 모세의 법대로 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산헤드린 공의회에 걸리게 될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글을 쓰신 일은, 이 사건에 관련하여 한번 있었을 뿐이다. 그 글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히브리어 나사를 사용함으로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여 골탕을 먹이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피엘 강조 능동형 부정사연계형을 사용하여 예수를 위하여 완전히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것을 말한다. 

 

7절은 호스 데 에페메논 에로톤테스 아우톤 아나큎사스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호 아나마르테토스 휘몬 프로토스 톤 리돈 에프 아우테 발레토입니다.

요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함은,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실언하시는 허물을 찾아보려는 간교한 마음에서 그리한 것이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것은, 그 여자보다 먼저 각기 자기 자신을 심판하라는 말씀과 같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있어서 범죄자를 취급하는 새 계명(사랑)의 원리이다(6:1). 이 말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5)고 한 말씀과 같다.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저희의 올무에 걸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의 양심을 찌르셨다.  돌로 치라고 했는데 헬라어 발로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명령법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이미 너희 안에 죄가 없다면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의미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없다. 예수님 외에는 모든 인간이 죄인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껴 돌로 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율법주의 신앙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돌로 치게 된다. 정죄의 신앙을 하기 때문이다.

 

8절은 카이 팔린 카토 큎사스 에그라펜 에이스 텐 겐입니다.

요 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 혹설에, 그때 그 쓴 글은 거기 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이름이었겠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을 땅에 쓰신 목적은, 그 이름의 소유자들이 생명 책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려 함이라고 한다(17:13). 그러나 이런 해석은 추측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라포라는 동사를 사용했는데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9절은 호이 데 아쿠산테스 카이 휘포 테스 쉬네이데세오스 엘렝코메노이 엨셀콘토 헤이스 카드 헤이스 아릌사메노이 아포 톤 프레스뷔테론 헤오스 톤 에스카톤 카이 카텔레이프데 모노스 호 이에수스 카이 헤 귀네 엔 메소 헤스토사입니다.

요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 크로솨이데(Grosheide), 그들의 나가게 된 원인이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의 기록하신 글에도 있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 "그들은, 예수님의 땅에 기록하신 말씀을 읽었으나 항복하지는 않고 부끄러움을 당하였으니 만큼, 거기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한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1950,P.7). 그들이 "하나씩" 간 것은, 그들이 감동으로 행동하지 않고 마지못하여 행동한 증표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양심적으로 옳은 줄 알면서 그래도 대항해 보려는 억지를 부릴 듯이 머뭇거리다가 할 수 없어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저렇게 진리를 눌러보려는 강퍅한 심술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을 찌르신 주님의 옳은 말씀의 권위 앞에서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모두 다 물러갔다.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고 했는데 엘렝코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다. 현재, 수동태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자신들의 죄가 있다는 것을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 있었던 자들에게 자신들의 죄가 생각나도록 역사하셨다는 의미다. 

 

10절은 아나큎사스 데 호 이에수스 카이 메데나 데아사메노스 플렌 테스 귀나이코스 에이펜 아우테 헤 귀네 푸 에이신 에케이노이 호이 카테고로이 수 우데이스 세 카테크리넨입니다.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여자의 죄과를 가볍게 보시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제멋대로 재판장이 되어 남을 정죄하는 인간들의 월권 행동을 옳지 않게 여기시는 것뿐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이제 신약 시대를 당하여 누구든지 주님을 믿을 때에 영적(靈的)으로 사죄함이 될 수 있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간음한 여인처럼 원죄의 용서를 받은 자이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다. 우리 평생에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11절은 헤 데 에이펜 우데이스  퀴리에 에이펜 데 아우테 호 이에수스 우데 에고 세 카타크리노 포류우 카이 메케티 하마르타네입니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회개자에게는 사죄를 선고하시는 사명을 가지셨다. 그러니 만큼, 그가 그 여자에게 회개를 권고하실 뿐이고 정죄하지 않으셨. 헬라어 성경에 죄를 범하지 말라는 단어를 하마르타노 동사를 사용했다. 명령법, 현재, 능동태를 사용하여 주님이 여인에게 반드시 죄를 범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현재시제를 사용함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 히브리어 성경은 하타 동사를 사용하여 칼,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이것도 여인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 범죄를 짓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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