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왕 때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와서 헤롯에게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별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다가 별이 베들레헴에서 멈추었고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동방박사의 예루살렘 방문(마 2:1-8)
1절 투 데 이에수 겐네덴토스 엔 베들레엠 테스 이우다이아스 엔 헤메라이스 헤로두 투 바실레오스 이두 마고이 아포 아나톨론 파레게논토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성 경: [마2:1]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예루살렘 방문]
헤롯왕 때에 - 마태는 예수의 탄생 시기가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던 기간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 일자를 기산(起算) 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왕통이 단절되고 이방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실현됨으로써 '홀(笏)이 유다를 떠나고, 치리자(治理者)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남으로, 지금은 실로가 오실 때이며, 백성이 그에게 복종할 때'(창 49:10)라는 야곱 예언의 성취를 묵시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본절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하튼 여기 '헤롯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Idumean) 안티파터(Antipater)의 아들로서 주전 73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영웅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팔레스틴 인접 지역을 B.C. 55년경부터 A.D. 93년까지 통치한 왕조의 실질적인 중흥자였다. 실로 그는 25세에 이미 갈릴리의 총독을 역임했고 그러한 탁월한 정치력으로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 그의 반대 세력을 팔레스틴에서 완전히 축출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여 계속되는 로마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각종 건축 사역(극장. 원형 경기장, 기념비, 우상 제단, 성채<城砦> 등)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된 부역을 강요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제3 성전) 사역을 B.C. 20년에 시작하여 그가 죽은 뒤인 A.D. 68년에 완성시킴으로써 주위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한편 그는 10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중 에돔 출신의 첫 아내 '도리스'(Doris)에게서 안티파터(Antipater)라는 아들을 얻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가 죽기(B.C. 4년) 수일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으로 그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마카비가(家) 출신의 둘째 아내 마리암네(Mariamne)에게서 두 아들을 얻었으나 그들 역시 그 어미와 더불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또한 대제사장 시므온의 딸이었던 미리암네 2세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아 이두메의 분봉왕이 된 빌립 1세를 낳았다. 한편 사마리아 출신의 넷째 아들 마르다게(Malthace)에게서 아켈라오(2:22)와 안티파스(Herod Antipas;14:1)를 낳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의 다섯 번째 아내 클레오파트라(Cleopatra)에게서 칼시스(Chalsis)와 빌립 2세를 낳았다. 이러한 가족 관계에 대한 도표는 신약 서론 참조하라. 여하튼 헤롯은 B.C. 4년에 매우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최후를 맞아야만 했다(19절).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본문 이외에는 성경 어느 부분에서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일자를 산출하는데 많은 애로점이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해롯이 B.C. 4년에 죽었기 때문에(Schurer) 적어도 예수는 그전에 태어났음이 틀림없다고 믿어왔다. 한편 헤롯의 사망 일자에 대해서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가 죽기 전에 월식(月食)이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B.C. 4년 3월 12-13일로 측정케 했다. 그에 반해 유대인들의 전승은 헤롯이 죽은 후 유월절이 시작되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이때를 B.C. 4년 4월 11일경으로 추정케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적(政況的) 증거로 보아 예수의 탄생 연대는 B.C. 5년 후반기나 B.C. 4년 초반기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유대 베들레헴 - 이 베들레헴은 '유대'(in Judea)라는 단어와 함께 쓰임으로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분명히 구별된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인 것은 2절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에 대한 암시인 듯하다. 한편 구약 때 이 지명은 주로 '에브랏', 또는 '에브라다'로 불리어졌었다(창 48:7;룻 1:2;삼상 17:12;미 5:2).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 남방 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서 메시아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자(미 5:2) 유대의 실질적인 건국(foundation lf a nation)을 이룬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6:1-18). 여기서 히브리어 지명 베들레헴(베트레헴)은 '떡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 그 지역이 곡식과 과실이 풍성한 비옥한 곡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이 지명과 걸맞게 온 인류에게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서 출생하신 것이다(눅 2:4).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 본 문장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두', 곧 '보라'는 감탄사가 원문에 언급되어 있다(1:20). 이는 저자 마태가 본문이 지니는 중요성과 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술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내방(visit)한 방문객의 출발지와 그들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먼저 '동방으로부터'의 헬라어 '아포 아나톨론'은 '떠오르는' 이란 뜻의 '아나톨레'에서 유래한 말로서 '동쪽으로부터의'(from the east, NIV)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사실에서 '동방'을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Vincent), 바벨론, 메데(Carr), 아라비아, 또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Bruce)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적 해석 이외에 문화가 발달한 지역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소아시아, 애굽, 인도, 그리스 등지로 보는 학자도 있다. 이 같은 다양한 견해들 중 '동방'이 바벨론이었다는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D.A. Carson). 왜냐하면 바벨론에는 예루살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메시아에 관한 구약 예언을 사전(事前)에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유대인과 긴밀한 유대(紐帶) 관계에 있었던 자들임을 암시하며(Wycliffe), 그런 이유에서 그들은 유대인들이 대거 운집해 있던 바벨론에 거주하던 자들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박사(마고이)들의 신원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 '박사'로 번역된 '마고이'는 박수나 점장이 등의 엉터리 마술사가 결코 아니었고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벨론의 제사장을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단 2:2, 48;4:6, 7). 특별히 이 용어는 이 때로부터 600년 전에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단 5:7, 11)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그리스에서는 이 용어를 마술사와 박수 등의 의미로 사용하였다(행 8:9;13:8). 한편 터툴리안(Tertullian, A.D. 255년경 사망) 당시의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고이'가 왕들이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이것은 왕들이 와서 메시아를 경배할 것이라는 구약 예언들(시 68:29, 31;72:10, 11;사 49:7;60:1-6)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듯하다. 여하튼 박사들이 (1) 점성학적 계산에 따라 자극을 받고 베들레헴을 향해 온 점, (2) 디아스포라(Diaspora)의 영향 등으로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아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동방 박사'는 바벨론 출신의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존귀한 자들로 볼 수 있다. 6세기 말 경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이름이 각각 멜콘(Melkon, 후에는 Melchior로 밝혀짐), 발사살(Balthasar) 그리고 가스퍼(Gasper)로 밝혀진 바 있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한 아기를 찾기 위해 유대인들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방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2절 레곤테스 푸 에스틴 호 테크데이스 바실류스 톤 이우다이온 에이도멘 가르 아우투 톤 아스테라 엔 테 아나톨레 카이 엘도멘 프로스큐네사이 아우토
성 경: [마2:2]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예루살렘 방문]
유대인의 왕 - '다윗의 자손'(1:1;9:27;12:23;15:22 등)이란 말이 유대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메시아의 별칭이었듯이, 이 명칭은 이방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메시아의 별칭이었다. 실로 '메시아 대망'은 모든 유대인의 공통된 현실이었거니와 바벨론 유수 사건으로 인해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하여 유대에서 나시는 메시아가 유대를 구하고 온 세상이 그로 인해 축복받는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었었다(Josephus).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이 이름으로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으심으로써(27:37) 당신의 메시아성을 직. 간접으로 드러내셨다.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 동방 박사들의 이러한 질문은 그들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 사실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왕이 이미 나셨고, 그 사실을 모든 유대인들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정작 메시아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ironical) 한 일이다. 이로 보건대 예수는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영적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하다.
그의 별 -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重大事)를 결정짓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관례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한 자연현상으로서 별을 이용하셨다. 그런데 이 별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대두되었다. 즉 (1)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이다(Chrysostom을 위시한 대부분의 초대교회 교부들 및 초기 기독교 문서들), (2) 실재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다(Spinosa 등), (3) 혜성(혜성) 또는 폭발로 인해 엄청난 양의 빛을 몇 주 정도 발하는 초신성(超新星)이다(Kepler, Martin, Schubert 등)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존을 확신할 수 있듯이 이 별의 실제적 현상 역시 인정할 만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코 과학적으로도 모순되거나 결함이 없다는 점에서 세 번째 견해가 가장 적절한 것 같다. 한편 본서의 저자 마태는 이 부분을 기술하면서 적어도 민 24:17의 발람의 신탁(神託), 곧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묵시적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염두(念頭)에 두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태는 초대 기독교 문서들에서 가끔 발견되는 '별'에 대한 무분별한 알레고리칼(Allegorical)한 해석법으로는 본문을 접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본문과 민수기는 둘 다 '별'을 이스라엘의 왕,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약 성경에는 별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상관관계를 적절히 묘사해 주고 있다(벧후 1:19;계 22:16).
경배하러 왔노라 - '경배하다'는 뜻의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신약 성경에서 그 대상으로 대부분 하나님과 예수를 두었다(8, 11절). 그러나 이 말은 일반 헬라어에서 넓은 의미로 '복종하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단어를 근거로 지나치게 그리스도론 정립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Broadus). 따라서 여기서는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알아보고 '경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여기서 '경배'는 페르시아인들의 전통적 인사법을 연상케 하는 말로서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는 예(禮)를 가리킨다.
3절 아쿠사스 데 헤로데스 호 바실류스 에타라크데 카이 파사 히에로솔뤼마 메트 아우투
성 경: [마2:3]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동방 박사들의 예루살렘 방문]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이 말 초반부에 부드러운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가 들어 있다. 따라서 본절이 시작하기 전에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 경배코자 한 것과 대조적으로'라는 말이 의미상 첨가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유대인의 왕'의 탄생 소문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와 더불어 메시아를 갈망하던 예루살렘 백성들까지 헤롯의 병적인 정도의 잔인한 학정(oppressive government)과 또는 왕권 교체에 따르는 정변(political change) 등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실 헤롯은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 때문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5명의 마카비 용사들을 살해하기까지 했었다(1절 참조). 한편 백성들의 이와 같은 우유부단한 태도는 예수의 생애 속에서 끊임없는 배척으로도 이어졌고 마침내 '자기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비극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소동한지라 - '소동하다'는 뜻의 헬라어 '타랏소'는 '뒤흔들리다', '당황하게 하다', '무섭게 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서 그 당시 예루살렘 성내(城內)의 극심한 불안과 공포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실로 헤롯은 자기 왕권의 위기의식 때문에, 메시아의 오심을 마음으로부터 준비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사회, 정치적 혼돈과 생존에의 위협 때문에 심각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평화의 왕이시자 모든 역사의 처음과 끝이 되신(계 1:8) 예수의 도래가 악인들에게 미칠 궁극적인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4절 카이 쉬나가곤 판타스 투스 아르키에레이스 카이 그람마테이스 투 라우 에퓐다네토 파르 아우톤 푸 호 크리스토스 겐나타이
성 경: [마2:4]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궤계]
왕이...서기관들을 모아 - 이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Sanhedrin)로 보는 학자(De Wette)도 있으나 그보다는 주로 종교적 문제들에 대해 헤롯의 자문 역할을 하던 개인적인 성격의 단체(Bruce, Vincent)로 보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결국 이 자문 위원들은 기나긴 역사의 면면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듯이 진리를 외면하면서까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애썼던 권력의 하수인들이라 볼 수 있다.
대제사장 - 헬라어 원문에는 '대제사장들'(투스 아르키에레이스)이라는 복수로 기록되었다. 이는 그 당시의 대제사장 제도를 반영한 표현으로서 여기 '대제사장'은 현직 대제사장과 전직 대제사장 및 대제사장 가문에서 유력한 인물 등을 모두 포함한 말이다. 그러나 원래 대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만이 할 수 있는 영구직이었으나, 헤롯이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을 임의로 면직 또는 임명하는 불법을 자행함으로써(Josephus) 종교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 그 같은 사실은 솔로몬 성전 이래 바벨론 포수 전까지(약 410년간) 18명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에 비해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후부터 헤롯 때까지(약 420년간) 300명이 넘는 수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으로도 중명될 수 있다.
서기관 - 국가 기관에 종사하는 일반 서기관은 주로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였는데(행 19:35) 비해 유대 종교 집단내의 서기관은 구약 율법에 능통하며 구약의 구전(oral tradition)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일종의 율법 해석자요 교사였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율법사(lawyer)로 불리기도 했고(22:35) 때로는 랍비로 호칭되기도 했다. 당시 시민법의 상당 부분이 서기관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그들의 권위는 대단했다. 한편 그들은 대부분 바리새인 출신들이었는데 반해 그들과 경쟁적 관계에 있던 대제사장 계급은 대부분 사두개인 출신들이었다고 한다(D.A. Carson). 따라서 당시 헤롯이 체질적으로 함께 모이기를 싫어하는 이들 두 계급 사람들을 동시에 부른 데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한 학자들도 있다(Schweizer). 그러나 간사한 헤롯이 이 두 부류의 견해를 동시에 수렴함으로써 '유대인의 왕' 탄생에 관한 사건이 종교, 역사적으로 거짓이 아닌지에 대한 사실 여부를 명확히 알아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부류를 동시에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D.A. Carson).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 헤롯은 그리스도(1:1)와 유대인의 왕(2:2)이 동일 인물이며,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자의 칭호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27:37).
물으니(에퓐다네토) - 동사 시제가 미완료형으로서 질문이 집요(執拗)하리만치 끈질겼음을 암시한다. 더욱이 이 말은 종종 '시험 삼아 물어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헤롯이 어떻게든 자신의 의구심을 풀어보려는 깊은 갈증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5절 호이 데 에이폰 아우토 엔 베들레엠 테스 이우다이아스 후토스 가르 게그랍타이 디아 투 프로페투
성 경: [마2:5]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궤계]
가로되...기록된 바 - '기록된'(게그라프타이)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들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확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본문의 '선지자로'에서 '로'는 헬라어 '디아'에 해당하는데 정확하게 번역하면 선지자를 '통하여' 기록된 것을 의미한다. 즉 전치사 '디아'는 구약의 예언을 전한 선지자가 말씀의 궁극적인 근원이 아니라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 일뿐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1:22).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 헤롯의 질문에 조금도 주저치 않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구약 미 5:2에 근거하여 예언된 메시아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임을 지적했다(1절). 이는 그들의 해박한 성경 지식을 보여주며 더불어 그 당시 팽배해 있던 메시아 대망 사상을 반영해 준다. 실로 그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참 믿음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기록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지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6절 카이 쉬 베들레엠 게 이우다 우다모스 엘라키스테 에이 엔 토이스 에게모신 이우다 에크 수 가르 엑셀류세타이 헤구메노스 호스티스 포이마네이 톤 라온 무 톤 이스라엘
성 경: [마2:6]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궤계]
유대 땅...목자가 되리라 - 이 부분은 미 5:2의 인용이며, 삼하 5:2(대상 11:2)이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서 기자 마태는 히브리 맛소라 사본을 그대로 따르지도 않았고, 또 70인 역(LXX)을 따르지도 않았다. 이처럼 마태가 독자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미 5:2과 차이가 나게 된 점을 살펴보면 (1) '베들레헴 에브라다'가 여기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변형되어 있다. 이것은 '에브라다'가 고전적 표현으로서 시적(詩的)인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변형을 이룬 것 같다(Gundry). (2) 미가서의 '유다 족속 중에'가 '유대 고을 중에'로 바뀌어져 있다. 이 차이는 단지 '족속'이란 용어가 '고을'의 의인화된 표현이란 점에서 큰 무리 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3) '작을지라도'와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가 상반된다. 이 두 구절들의 전체적인 해석을 보면 이 차이가 단지 형식적(표면적)인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즉, 두 구절은 모두 베들레헴이 메시아의 탄생 장소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크게 드러 내놓을 곳이 못되지만, 이제 메시아의 탄생으로 크고 위대한 처소(處所)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Hengstenberg). (4) 한편 마태는 삼하 5:2에서 인용한 '목자'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이 표현의 목적은 미 5:2의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다름 아닌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을 성취하는 자'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양으로 비유된 성도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먹여주시는 선한 목자(요 10:11)가 되신다. 이를 가리켜 사도 베드로는 '영혼의 목자', '목자장'(牧者長) 등으로 표현하였다(벧전 2:25;5:4).
7절 토테 헤로데스 라드라 칼레사스 투스 마구스 에크리보센 파르 아우톤 톤 크로논 투 파이노메누 아스테로스
성 경: [마2:7]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궤계]
이에(토테) - 이 용어는 마태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막 9회, 눅 14회, 요 10회) 자주 사용한(약 90여 회)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서 '그러고 나서', '그때에'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적 의미로 사용된 본절 이의에는 대부분 단순히 다음 문장을 연결하는 연결사로 사용되었다(17절;3:5, 13).
헤롯이 가만히 - 이는 헤롯이 은연(隱然) 중에 일을 추진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처럼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통한 자였던 것이다. 한편 마리아와 아이를 살리려는 요셉의 의로운 행동 '가만히'(1:19)와 대조적으로 헤롯의 '가만히'는 아이를 죽이려는 음모를 암시하는 사악한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박사들을...자세히 묻고 - 아마도 헤롯은 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극진한 예우로 대했을 것이다. 한편 '별이 나타난 때'를 묻는 헤롯의 질문을 통해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아직 감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질문 속에는 어린 왕의 탄생 기점을 알아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16절) 사내아이들을 살해하려는 무서운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 헤롯은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훼파된 다윗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간악한 계획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메시아 왕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셈이다.
8절 카이 펨프사스 아우투스 에이스 베들레엠 에이펜 포류덴테스 아크리보스 엑세타사테 페리 투 파이디우 에판 데 휴레테 아팡게일라테 모이 호포스 카고 엘돈 프로스퀴네소 아우토
성 경: [마2:8]
주제1: [메시아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궤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 헤롯은 박사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었다는 자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에게 염탐꾼을 딸려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이 빗나간 것(16절) 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진정 그는 이 이방의 박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으로 인한 지시(12절)대로 움직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헤롯의 비상하고도 교활한 '지혜'를 아기 예수를 찾아가는 박사들의 '발' 밑에 놓이게 하시는(고전 2장) 하나님의 섭리가 명쾌히 드러나게 된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경건을 가장한 헤롯의 위선이다. 아기 예수를 살해하기 위한 계략(stratagem)의 겉포장은 '경배'였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기 발로 걸어와서 스스로 드리는 동방 박사들의 진정한 '경배'(2, 11절)와 어두운 데 웅크리고 앉아서 '나도... 하게 하라'는 헤롯의 거짓 '경배'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거짓 경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로마 군사들의 모독과 조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7:29)
[다니엘 2장 강해설교말씀]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 꿈(단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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