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외적인 성결보다는 내면적 성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은 외면적 성결은 강조하지만 속은 모두가 썩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은 귀신 들린 딸의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 고백(막 7:1-37)
1-13절, 씻지 않고 먹는 것
[1-5절]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보고 흠을 찾았다](전통본문).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전통]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물로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과 침상들]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전통]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예수께서는 씻지 않은 손으로 떡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것을 크게 여겼고 거기에서 흠을 찾았다. 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로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그 외에도 잔과 주발과 놋그릇과 침상들을 씻는 것 등을 지켜왔다. 그들은 그의 제자들이 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지 예수께 물었다. 그들의 지적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비난일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비난이었다고 보인다. 즉 장로들의 유전을 버리는 것은 잘못이며 그것을 용납한 선생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들의 경건 생활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보다 낫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교만한 태도도 나타낸다고 보인다.
[6-9절]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遺傳)[전통] [즉 주발과 잔을 씻음과 기타 너희가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지키느니라[지킴이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예수께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외식의 악을 지적하셨다. 그 외식자들은 입술로는 무엇을 고백하나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 대신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며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린다고 지적하셨다. 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했더라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도 없었고 사람의 전통이나 붙들고 외식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겉모습으로만 경건하고 의로워 보였던 것이다.
[10-13절]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 예를 드셨다. 모세의 율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명령되었으나(출 20:12; 21:17), 장로들은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렸으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교훈에 반대된다. ‘고르반’은 예물이라는 뜻이다. 헌금이 부모에 대한 물질적 보답의 의무를 면제시키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였다고 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사람의 전통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뿐이다. 사람의 교훈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이 성경적인 한에서만 권위가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오직 성경뿐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규범은 성경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했고(딤후 3:16), 또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사도적 교훈 곧 신약성경]을 지키라”고 교훈했다(살후 2:15).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어떤 훌륭한 사람의 교훈이 아니고 심지어 교회의 공식적 신앙고백도 아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성경뿐이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전통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그것을 어긴다고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성경으로 사람들의 전통들을 늘 분별하고 판단하고 평가하여 혹시 부족함이 있으면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인간관계의 도덕적 계명들도 힘써 지켜야 한다. 성도는 어떤 구실로도 성경에 계시된 도덕적 계명들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살인하지 말고 남을 미워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마음으로라도 음란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탐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14-23절,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14-19절]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외식자들은 외적 정결만 힘썼다. 그러나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과 부정결은 도덕적 문제이지 단지 위생적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주의 말씀을 듣고 배울 때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주께서 아무리 바른 말씀을 하셔도 영적인 귀가 없는 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이 말씀뿐 아니라 모든 말씀들이 그렇다. 아무리 많은 말씀들이 선포될지라도 깨달은 말씀만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주께서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그 비유에 대해 묻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으로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뒤’라는 원어(아페드론)는 ‘변소’를 뜻한다. 사람이 먹는 것들은 유익한 영양분들은 몸에 다 흡수되고 나머지는 다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는 것들 자체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음식물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고 깨끗하다.
[20-23절]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전통본문은 “간음, 음란, 살인, 도둑질, 탐욕”의 순서이다. ‘음탕’이라는 원어(아셀게이아)는 ‘음탕’ 혹은 ‘방탕’이라는 뜻이고, ‘광패’라는 원어(아프로쉬네)는 ‘미련함’이라는 뜻이다(BDAG). 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그 악한 생각들은 간음, 음란, 살인, 도둑질,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미련함 등이다. 사람은 죄로 심히 부패되어 있어서 육신적 욕망에 지배를 받고 있다. 모든 인류는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무능력해져 있다. 구약의 역사가 이 사실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17:9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고, 예레미야 13:23은,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아담의 자손인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참된 의와 선을 행할 수 없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늘 마음의 깨끗함을 지켜야 한다. 참된 성결은 마음의 성결이다. 마음의 악한 생각들, 간음, 음란, 살인, 도둑질, 탐욕, 악독, 속임, 음탕, 방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미련함 등을 씻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마음의 성결을 얻는 길은 오직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피로 죄씻음을 받는 길뿐이다(행 15:9; 히 10:22).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만 가능하다.
24-30절, 이방 여자의 딸을 고쳐주심
[24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와 시돈]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의 마을들에서 전도하신 후 일어나셔서 거기를 떠나 두로와 시돈 지경으로 가셨다. 두로와 시돈 지경은 갈릴리 서북쪽 지중해 연안 지역이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이 필요한 곳은 어디나 방문하셨다. 그는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였으나 숨길 수 없으셨다. 그가 병자들을 고치고 기적들을 행하셨다는 소문은 그곳까지도 퍼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은 그의 사명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하려 하셨다. 그는 병자를 고치거나 기적을 행하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25절]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렸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는 그를 아셨고 그가 올 것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께서 그 여자와 그의 병든 딸을 위해 그곳에 가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병든 어린 딸은 더러운 귀신 곧 더러운 영이 들려 있었다. 더러운 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정신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부모에게 대항하고 이웃에 대해 원망하고 거짓되고 음란한 정신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악한 성질들을 사용한다. 그 딸은 이런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26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수리아-페니키아] 족속이었다.마태복음 15:22는 그가 ‘가나안 여자’라고 말한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이스라엘 백성의 거주 지역이 아니고 이방인들의 지역이었다. 그는 이방 여자이었다. 그는 예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기도는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어떤 형식을 갖춰야 하거나 주문처럼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할 소원들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나의 딸을 고쳐주시옵소서.”
마태복음 15:22에 보면, 그 여자는 예수께 나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메시아라는 지식과 믿음이 있었다. 또 그는 예수께서 각종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신적 구주이심을 믿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감히 예수께 나아와 그의 딸의 치료를 간청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대답지 않으셨다. 그러자 그는 예수께 절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다시 말했다.
[2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자녀들과 개들에 비교하셨다. 그의 처음 반응은 매우 무정하게 보였다. 그의 말씀은 그 여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주님께 이런 취급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 여자를 시험하는 것이었고 그 여자는 그 시험을 잘 통과하였다.
[28절]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 여자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 대신에 매우 겸손하게 대답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과 특권과 복을 누리나 이방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으며 또 이방인들에게는 경건도, 도덕성도 부족함을 인정한 것이다. 단지 그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하였다(마 15:27).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바른 마음가짐이다. 사람은 자신이 피조물이요 부족한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그 여자는 겸손하게 그러나 간절하게 딸의 병고침을 간구하였다.
[29-3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마태복음에는, 주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5:28).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고 아이는 치료되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의 정신적 질병의 심각성을 인식하자. 우리는 현대인의 정신적 질병의 치료를 위해 적당한 휴식, 운동, 맑은 공기 마시기, 등산, 걷기, 친구와의 교제, 자기감정의 조절 훈련, 그리고 신경정신과적 처방 등이 다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을 믿고 그의 도우심을 구하자. 예수께서는 많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 이 세상에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늘날도 사람의 영육의 질병을 완전히 고쳐주실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겸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해야 한다. 본문의 이 여자는 겸손한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와 응답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할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고, 또한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믿음 없는 기도나 교만한 자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31-37절,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심
[31-32절]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원문은, “예수께서 다시 두로와 시돈 지경에서(전통사본) 나와 갈릴리 호수로, 데가볼리 지경 안으로 오시매”이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 지중해 연안 도시들이다.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다시 갈릴리 호수 쪽으로 내려오셨다. 데가볼리 지경은 갈릴리 호수 남쪽의 일부와 남동쪽의 요단강 건너편 일부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귀먹고 어눌한 자[말을 더듬는 자, 언어장애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병자 자신이 예수님께 나아와 고침 받기를 간구한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주위의 사람들이 병자를 예수께 데려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에게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했다. 세상에는 병환자들이 많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류의 죄의 결과이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일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불행한 일들은 장차 죄 없는 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33-34절]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께서 그를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신 것은 사람들이 그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뒤에 사람들을 경계하시며 아무에게라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병자를 고쳐주기 위함이 아니고 죄인들의 죄를 씻어주기 위함이셨다.
그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고 그의 혀에 손을 대신 것은, 그 귀먹고 어눌한 자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가 지금 그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셨다. 그의 문제는 귀와 혀에 있었다. 특히 혀의 장애는 그의 말의 기능을 어렵게 하였다. 사람의 말은 목청과 입뿐 아니라, 혀의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문제 되는 바로 그곳에 그의 치료의 손을 얹으셨다. 그의 이 특이한 행동은 그 귀머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그를 고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그는 하늘을 향해 탄식하셨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실 때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곤 하셨다(막 6:41; 요 11:41; 17:1). 그는 하나님을 향해 탄식의 기도를 드리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죄의 결과로 인한 인간의 불행을 보시고 탄식하신 것이다.
[35-37절]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그런데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졌다. 주님의 치료는 신속하고 완전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이었다. 누가 예수님처럼 고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만 하실 수 있다. 오늘날도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오늘날도 그는 살아계셔서 일하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영적 불구자들을 치료하신다.
예수께서는 그 병자를 데려온 자들에게 경계하시며 아무에게라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가 경계하실수록 그들은 더욱 널리 전파하였다. 사람들은 심히 놀라,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하신 일들은 다 잘하신 것뿐이다. 그는 참으로 좋으신 구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긍휼이 많은 주님이시다. 그는 귀먹고 어눌한 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는 그 고통하는 사람을 보시고 하늘을 향해 탄식하셨다. 이와 같이 그는 병자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 오늘날도 그는 불행한 일을 당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중풍병자, 나병환자, 앉은뱅이, 소경, 귀머거리, 귀신 들린 자 등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주셨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20개, 마가복음은 18개, 누가복음은 20개, 요한복음은 8개 각각 증거 한다.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풍성히 증명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확신하자.
구주 예수께서는 오늘날도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사도 시대 이후에 외적 기적은 중단되었을지라도, 내면적 기적, 곧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 심령의 눈과 귀가 열려 성경말씀을 이해하고 입이 열려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일은 항상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외적 기적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좋은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들을 예수께 데리고 나와 고침 받고 구원받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요한복음 1장 예수님 말씀] 사람이 되신 독생자(요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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