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로마서 12장 주일설교말씀] 코람데오(롬 12:1-2)

성령의 능력 2021. 6. 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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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로마서 1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코람데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거룩해지기 위해서 동물로 제사를 드렸다면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원죄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자 범죄를 회개함으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거룩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코람데오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성경: 롬 12:1-2

 

요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지난 주일 교회 개혁 주일로 지키면서 오직 말씀(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를 한 달 동안 묵상했습니다. 이 5가지 Sola 개혁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코람 데오(Coram Deo = in front of God, before the face of God)입니다. 라틴어로 코람(coram)이란 “~앞에” “면전面前에서”란 전치사이고 Deo는 Deus(하나님)의 3격(여격)으로 코람 전치사는 여격을 인도합니다. 지난 주일 살핀 Soli Deo 도 “오직 하나님께만”의 여격(3격)입니다. 그래서 같은 “데오 Deo”라는 말이 됩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개혁가였던 요한 칼빈(Calvin)의 일생을 지배했던 중요한 삶의 좌우명가운데 하나가 바로 ‘코람 데오(Coram Deo)’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의 방식을 요약했던 말입니다. 아울러 이 말은 동시대 기독교 개혁을 한 마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이 내세웠던 Sola Scriptura(오직 말씀으로만) Sola Fide(오직 믿음으로만) Sola Gratia(오직 은혜로만)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라는 다섯 가지 슬로건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의 의미는 ‘사람 앞에서(coram hominibus)”세상 앞에서(coram mundo)’의 명예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구하며 분별하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And be not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y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at ye may prove what is that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존귀와 영광이 됨을 인정하는 것이 코람데오의 본질입니다. 신령한 영적 예배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거룩한 산 제물(a holy living sacrifice)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not conformed to this world), 예수님을 본받고(conformed to Jesus Christ) (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renewing of mind) (3) 변화를 받으면(be transformed) (4)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 선(good)이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acceptable) 뜻이고, 물과 성령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하신(perfect) 뜻입니다. 이런 뜻을 분별하는 사람은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코람데오의 신앙생활’ 즉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저 푸른 소나무처럼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켜나가는 모습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7-8)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진정한 제자도(discipleship) 즉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 코람데오의 모습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마 16:24).

 

성경에 코람데오가 나오는 성경구절을 묵상합니다

 

AD 400년경에 번역된 라틴어 성경 벌게이트역을 보면 다음과 같이 신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 4:10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신 12: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신 16: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대상 13: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대상 13: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대상 16:1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대하 33;12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왕상 8: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칠일 합 십 사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

에스라 8:21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욥 15: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시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잠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말 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 24: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행 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고후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고후 7: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

고후 12:19 “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갈 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딤전 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딤전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딤후 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계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코람데오의 삶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묵상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주일에 살핀 대로 Soli Deo Gloria!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은 열심히 하고, 영광을 가리는 일은 절대 하지 맙시다.

 

주기도문 송영에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무궁토록 있기 때문입니다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For of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whom be glory for ever. Amen.” (롬 11:3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4:10-11)

 

요한 칼빈은 평생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천국에 가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둘째,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항상 하나님 먼저 생각하고, 주님의 일 먼저 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마 6:33)

 

천지만물이 창조될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우리의 삶, 순종의 삶이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에덴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행복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에덴의 행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하나님 중심에서 자아 중심으로 돌아서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아니라 세상 우선주의, 쾌락 제일주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제일주의인 생명나무를 따먹지 아니하고, 사람 제일주의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맙니다.

 

그때부터 인류는 행복을 잃고 저주와 가시와 덤불과 엉겅퀴가 나는 세상을 살게 되었고 형극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노동 고통, 해산 고통, 죄와 죽음 가난과 질고 슬픔과 고통 눈물과 한숨과 비극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하나는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이 자기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할 때 그 어떤 우물을 파도 그것은 터져 버린 웅덩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2장 19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리의 속에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이요 우리의 삶에 저주요 불행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돌아오기를 촉구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행복한 삶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중심주의로 돌아서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3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는 이 세 구절 속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성자가 그것을 수행하시고, 성령이 운행하시므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성경의 시작에 분명히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1-9에 보아도 말씀(Logos)되시는 예수님이 제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또 눅 1:37절에 보면 "대저 주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말씀 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전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창조의 역사를 합니다.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 줍니다. 보호와 동행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시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시 119:105)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 지어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신 32:1-3)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9-12)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요 3: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말씀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심으로 그 말씀을 통하여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요 17:8절에 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께서 말씀을 받아 가지고 성자 예수 안에 계신 성령과 더불어 동역하므로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풍랑을 잠잠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5개로 5천 명을 먹이고 12 광주리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와 절름발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죽은 영혼들을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살렸습니다. 바로 그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혼돈한 세상 속에 질서와 조화를, 공허 속에 충만을 흑암 속에 빛을 창조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히 11: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성부는 성자를 통해서 성령으로 창조의 역사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엡 6:17절에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랬고 또 마 4:4절에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신 8:3)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2-13)

 

누에는 그 입에서 실을 내어 고추를 만들어서 집을 짓고 난 다음 그 속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사람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로 행복과 불행의 집을 짓고, 성공과 실패의 집을 짓기도 하며 화와 복의 집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 57:19절에 보면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조그마한 불씨가 큰 숲을 태우듯이 혀는 작은 것이로되 큰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보라 사공이 어떻게 그 큰 배를 운전하는 가를 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혀는 권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맺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타락한 언어도 능력이 있습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능력이 그 속에 들어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하나님은 그 말씀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롬 10:8에 보면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지 않고 바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심령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입술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제 구시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갈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베드로에게 무엇을 좀 구걸하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를 향하여 주목했습니다. "금과 은은 나에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라고 했을 때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에게 주셨던 그 말씀, 예수님 안에 거하셨던 그 성령이 베드로 안에 거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입술 속에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입술과 베드로 안에서 역사하는 동일한 성령이 오늘 우리들의 심령 속에 거합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했던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심령과 입술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행동하고 이 말씀을 가지고 찬양하고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살아 있는 증거,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 위대한 은혜와 능력과 기적과 축복을 나타내 주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넷째, 하늘의 지혜로 생명나무를 소유하는 삶입니다. 신본주의의 삶입니다.

바로 범죄 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의 경건한 생활로 회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한 이후에 에덴을 잃어버리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어 버렸듯이, 오늘날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아 중심으로 인본주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수없이 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롯과 같이 인본주의의 삶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참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신본주의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았을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고 하였듯이, 그럴듯합니다. 화려합니다. 우리를 유혹하기에 넉넉합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에덴에서 쫓겨난 것 같이 가시와 덤불과 엉겅퀴의 형극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필경은 사망입니다. 심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인본주의의 상징인 바벨탑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졌지 않습니까? 인본주의자는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고 맙니다.

 

그러나 신본주의자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되었지 않습니까? 최후의 승자가 되었지 않습니까? 영원히 그의 믿음이 오늘날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떠한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자아 중심주의 인본주의로 살겠습니까?

 

야곱은 인본주의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신본주의 뜻입니다(창 32:27-28)

 

여러분의 남을 생애를 영으로 살겠습니까? 육으로 행하겠습니까? 성령과 더불어 동행하겠습니까? 내 마음 내 생각 내 뜻대로 살겠습니까? 말씀으로 살겠습니까? 신본주의로 돌아오십시오. 말씀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성령과 더불어 동역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순종하고 주의 뜻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심과 같이 평생이 주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일생이 될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현재로 주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이 되고 마침내 주님께로 갑니다(롬 11:36).

노아 가정은 하나님 주권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1) 가장인 노아는 ‘여호와’ 중심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창세기 8장 19절에서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를 나온 다음, 20절의 첫 구절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란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아벨과 노아와 같은 신본주의 신앙인은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고, 가인과 같은 인본주의 신앙인은 자기와 가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처럼 자기 형편을 위하여 자기나 가족, 조상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노아와 같이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릴 때에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참된 예배자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2) 노아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노아는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습니다. 이는 노아의 마음에 구원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 가장 새것,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예물이며 이때 진정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권적 섭리를 믿은 노아 가정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신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축복하셨습니다.

 

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노아 스스로 번영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는 노아를 보시고 노아 자녀들의 번영을 축복하셨습니다.

② 노아를 모든 만물 위에 세워주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나가자 하나님께서도 노아를 지극히 높여주셔서 모든 만물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노아에게 복종케 하셨습니다.

③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노아 스스로 먹고사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노아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를 덤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노아는 아담의 범죄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코람데오의 경건 생활을 하는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실 때의 기준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코람데오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H.I.G.H.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찾으십니다.

Holiness (거룩): 죄에 대해 민감하며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는가?

Integrity (정직): 작은 일에도 성실하며 정직함을 보이는가?

Gratitude (감사): 부족함의 현실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가?

Humility (겸손): 섬김을 받는 자인가? 아니면 섬기는 자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코람데오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 제일주의, 말씀으로 사는 삶, 신본주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언제나 사용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코람데오! 쏠리 데오 글로리아!

예수님은 믿음의 완성자(히 11:1~40)

 

[히브리서 11장 강해설교말씀] 예수님은 믿음의 완성자(히 11:1~40)

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11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완성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고도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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