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데살로니가전서 성경 좋은 말씀] 재림 때의 영광(살전 2:1-20)

성령의 능력 2022. 2. 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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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당하지만 재림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영광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재림 때에 우리가 받을 영광을 기억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재림 때의 영광(살전 2:1-20)

 

1-12, 바울의 말씀 사역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바울은 빌립보에서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혔었고 데살로니가에서도 유대인의 강한 반대를 받았었다(16-17). 그러나 그는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을 힘입어 복음을 담대히 전하였다. ‘힘입어라는 원어(파레시아조마이)는 ‘담대함을 가진다는 뜻이다.

[3-5]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우리의 권면은 간사(플라네)[거짓]에서나 부정(不淨)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속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이는]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증거하심이니라].”

바울 일행이 고난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말한 이유는 그들의 권면이 거짓이나 부정(不淨)이나 속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들의 권면이 순수하지 않았다면, 평안할 때는 혹시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환난 중에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환난 중에 담대히 거짓을 말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바울 일행이 복음을 담대히 말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대로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환난 중에 할 말이 없었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담대히, 자유로이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종들은 현실의 어려운 환경을 거슬러 담대히 일할 수 있다.

바울 일행이 거짓이나 불결한 동기에서 일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다는 증거는 그들도 알고 있듯이 바울 일행이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첨의 말을 하지 않았고 더러운 이익을 구하여 탐심의 탈을 쓰고 거짓되이 행동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그들이 알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도 증거하실 수 있는 바이었다.

[6-8]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바울 일행은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사도이므로 존중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든지 다른 이들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이것은 땅의 것이 섞이지 않은 그들의 순수함을 보인다. 복음 사역자는 땅의 썩어질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니므로,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 그의 상급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삯군들은 복음을 빙자하여 이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족할 것이다.

바울 일행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영혼들을 위해 온유한 심령으로 자기들의 목숨까지 즐거이 줄 마음으로 일하였다. 그들은 유모가 자기 자녀들을 기름같이 유순한 자들이 되었고 영혼들을 사모하고 사랑하여 단지 말로만이 아니고 목숨까지도 주기를 즐거워하는 심정으로 일했다. 여기에 복음 사역자들에게 필요하고도 중요한 또 하나의 면모가 있다.

[9-10]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 . . .

바울은 말한다. “[이는]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전파하였음이니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바울은 한번 더 자신의 말씀 사역에 대해 증거한다. 그는 자신의 수고와 애쓴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 사실을 언급한다. 이런 사실들은 그의 말씀 사역이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졌음을 증거한다. 그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사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누를 끼쳤을 것이고 일하지 않고 편안히 섬김을 받는 자가 되려 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다시 간추려 말하기를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이라고 한다. 바울의 말씀 사역은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고 흠 없이 행한 사역이었다. 이것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증인이요 하나님도 증인이 되신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말씀 사역에 대해 담대히 증거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뒤를 따르는 교회의 말씀 사역자들과 봉사자들이 본받을 만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거룩하고 정정당당하고 흠 없이 행하는 봉사자들이 되어야 한다.

[11-12]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그의 말씀 사역의 목적을 증거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함으로 그들을 부르셔서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늘날도 복음사역의 목적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믿음 중심, 의와 선과 진실 중심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1절로 1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복음 사역자들은 거짓이나 부정(不淨)이나 속임으로 일하거나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고 일하지 말아야 하고, 또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거짓된 종들이며 삯군들일 것이다.

둘째로, 복음 사역자들은 유모같이, 아비같이 영혼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심정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일해야 하고,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해야 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이 행해야 한다.

셋째로, 복음 사역의 목표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며 경건하게 믿음으로 살게 하고, 또한 천국 백성답게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행하며 그의 계명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13-20, 성도의 표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 . . .

바울은 말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인해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 진리 곧 오늘날 신약성경에 밝히 기록된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반복하여 증거한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사도의 일행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받았으며 그들이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며 또 그것이 옳다고 증거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는 말은 그가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이 그것을 그렇게 받은 것이 옳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신뢰하였기 때문에 범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깨닫지 못하는 곳에는 구원과 영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받는 심령마다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다. 신약의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다. 이 모든 말씀들이 오늘날 신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깨닫는 것은 인생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바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 속에서 활동했다고 증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글자들이 아니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예레미야 23:28-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夢事)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되었음이니] [이는]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받았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인들 속에 역사한 증거는 그들이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처럼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라는 말씀은 교회들의 위치가 지역적으로는 유대 지방이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음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진실한 성도들의 주소이다. 교회들은 또한 하나님의 교회들이다. 그것은 교회의 소속을 보인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하며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고의, 최종적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 곧 신구약 66권의 성경말씀이다.

[15-16]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그들 자신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의 죄악은 참으로 컸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을 죽였고 바울 일행과 예수 믿는 성도들을 유대 땅에서 쫓아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했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항한 매우 큰 악이었다. 그들은 그 죄악을 항상 채우는 자들이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끝까지 임하게 되었다.

[17-18]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곳으로 가려고 한두 번 시도하기도 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진실한 다른 성도들을 보기를 원한다. 특히 주의 종들은 그들을 통해 구원받고 양육받은 성도들을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성도들 간의 교제는 이 땅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제이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영원히 기쁘게 누릴 교제인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바울 일행의 길을 막았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의 방해와 시험들을 경험한다. 우리가 장차 사탄과 악령들을 이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때때로 우리의 삶과 봉사의 일들 속에 사탄의 방해와 시험들을 허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염려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일에는 고난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부지런히 충성하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의 뜻하신 바들이 다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작정하신 열매들이 다 맺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아니냐 함이니라.] [이는]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기쁨임이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을 보기를 원한 이유는 그들이 바울에게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나타날 일을 말한다. 지금 교회들은 지상에서 여러 가지 싸움 속에 있고 불완전 속에 있으나,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복음의 결실들이 밝히 드러날 것이다. 그때 진실한 성도들은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영광과 기쁨이 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순종함이 없는 이름만 가진 교인들, 진심으로 회개치 않은 자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목사들의 근심거리요 교회의 수치거리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들, 비록 실수는 있어도 중심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하고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목사들의 기쁨과 면류관이다.

13절부터 2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복음, 지금 성경에 밝히 기록된 내용과, 오늘날 참된 목사들을 통해 전해지는 성경적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자. 이 지식과 믿음은 참된 성도들에게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표가 된다.

둘째로, 우리는 많은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키자. 초대교회는 많은 환난을 당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지켰다. 많은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 성도의 표가 아닐 수 없다.

셋째로, 우리는 참된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를 만들자. 교회의 안팎에는 많은 환난과 마귀의 시험이 있으나, 참된 성도들 간에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다. 목사와 성도들 간에, 또 성도들 상호간에 아름다움 교제가 있고 사모함과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참 교회의 표이다.

[골로새서 성경 좋은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골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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