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부활에 대한 교훈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 사건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신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부활하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부활의 증거로 보여주셨고 마지막 날에 부활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마지막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제목: 그리스도의 복음: “부활의 증인”(고전 15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고전 15:1~58
요절: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고전 15:3-4)
주제: 성신님께서 임하셔서 권능을 받고 전 세계에 나가 부활의 증인이 되자
오늘은 교회 개혁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가톨릭과 문화에서 11월 1일 만성절(모든 성인들이 출현한다는 날 All Saints Day)의 전야제인 할로윈(Halloween, 성인들을 hallows라고 함) 날에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주제로 성경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교회개혁을 외친 날을 기념합니다. 당시 면죄부 남발, 성직자의 비리, 잘못된 교리 (자비와 구제도 구원의 방편, 교황권, 성인, 화체설 미사) 등으로 부패해 가는 가톨릭에 대한 항의서 95개조를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문에 내걸고 개혁의 횃불을 들었습니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사제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다고 못을 박았는데 루터는 그렇다면 ‘모든 성도도 사제이다’는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 Priestertum aller Gläubigen “priesthood of all believers”)을 주장하여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일반 성도들도 성경을 읽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라틴말로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해서 평신도들은 거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자국어 성경 번역에 기초를 놓게 되어, 영어로 번역이 되어(William Tyndale, 1526-1535; Matthew Bible, 1537; The Great Bible, 1539; Geneva Bible, 1560; King James Bible, 1604-1611) 널리 보급하며 읽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는 활자를 이용한 활판 인쇄술로 성경<구텐베르크 성경 = 42행 성경, 1272쪽, 1442년>을 대량 인쇄하여 성경을 보급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1주일 만에 성경책 500권을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1454년 동업자인 푸스트의 소송에 져서 구텐베르크는 더 이상 성경을 인쇄하지 못했답니다. 그러나 1522년 루터는 1516년 Old Latin 성경을 기초로 번역한 독일어 성경이 2주일 만에 독일 전역에, 두 달 만에 전 유럽에 독일역 성경이 보급할 수 있게 된 것도 70년 전에 예비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이었습니다. 오늘 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신앙의 본질인 성경, 믿음, 은혜, 그리스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교회개혁을 다섯 가지 구호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Sola Fidei(오직 믿음으로), Sola Gratia(오직 은혜로),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로),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20여년에 걸쳐 작시, 작곡 그리고 편곡한 찬송가가 38편인데 그 중에 11편은 라틴 찬송가의 번역 작품이고, 4편은 교회 개혁 이전의 작품을 개작한 것이며, 12편은 시편과 다른 성구를 운율화한 것이며, 나머지 11편만 순수 자작품인 셈입니다. 전래되는 10편 중에 단 한편만 우리 찬송가에 실려 있는데, 그의 대표작이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입니다.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in feste Burg ist unser Gott, ein gute Wehr und Waffen.
Er hilft uns frei aus aller Not, die uns jetzt hat betroffen.
Der alt böse Feind mit Ernst er's jetzt meint,
groß Macht und viel List sein grausam Rüstung ist,
auf Erd ist nicht seins gleichen.]
2)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이 찬송가는 루터가 가톨릭에 항거, 투쟁하던 절정기인 1529년에 시편 46편을 토대로 쓴 작품입니다. 시편 46편은 예루살렘성이 위기일발(危機一髮)의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기적적인 하나님의 손길로 보호된 것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교황과 대적자들의 온갖 박해와 위협 속에서도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며, 큰 환란에서 구해 주실 능력의 하나님만 바라보고 교회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당시 상황을 웅변적인 필치(筆致)로 시구화(詩句化)한 찬양입니다. 정열과 남성적인 강함으로 찬양하는데, 세째 단락 1~2마디는 레가토(legato 부드럽게)로 처리하며, 3~4마디부터 마르카토(marcato 강조해서)로 크레셴도(crescendo, 점차 크게)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의 장을 강해합니다. 복습하면 고린도전서에서는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질의한 열 가지 논쟁(issues)에 대한 변증적인 답변입니다. ①교회 안의 분쟁(1-4장), ②음행한 교인의 포용, 권징(5장), ③성도의 법정 소송(6장), ④결혼(7장), ⑤사도권(8장), ⑥우상제물과 우상숭배(8, 10장), ⑦여자의 머리 수건 문제과 성찬(11장), ⑧성령의 은사(12-14장), ⑨부활(15장), ⑩헌금(16장) 등의 문제입니다. 이중 부활에 대한 논쟁이 가장 뜨겁습니다. 15장을 ‘부활의 장’이라 부르는데 58절입니다.
1.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고전 15:1-11)
(1) 또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을 너희에게 밝히 알리노니 너희 역시 그 복음을 받았으며 또 그 가운데 서 있느니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3) 이는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5)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6)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 중의 대다수는 지금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니라. (7) 그 뒤에 그분께서 야고보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모든 사도에게 보이셨으며 (8) 맨 마지막에는 제 때를 벗어나서 태어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나니 (9) 이는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니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불리기에 합당치 못하되 (1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11) 그러므로 나든지 그들이든지 우리가 그렇게 선포하매 너희가 그렇게 믿었느니라.
주님께서 승천하시면 부탁하신 유언과 같은 말씀이 땅끝까지 “부활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신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1-2절. 복음은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바요, 고린도 교인들이 받은 바요, 그 가운데 선 바이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시대마다 수정 보완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이미 고정된 내용으로 사도들을 통해 세상에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복음의 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죄와 그 형벌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므로 구원이 필요하며, 또 그러므로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이라는 말은 진실하고 확고한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임을 보입니다.
3-4절. 앞절에 언급한 구원을 받을 근거를 나타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대로’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약성경에 예언되고 예표된 바이었다는 뜻입니다. ‘위하여’라는 원어(휘페르 ὑπὲρ)는 ‘대신하여’라는 뜻인데,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은 그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속죄(贖罪)의 진리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속죄의 복음입니다. 4절에 ‘묻히셨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확실한 사실이고,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처지인 무덤에까지 내려가셨고, 그분의 부활이 무덤으로부터의 부활 곧 그분께서 묻히셨던 무덤을 비우시고 부활하신 사건임을 암시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두 번째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가장 기본적 내용입니다(롬 10:9-10).
5-8절. 부활의 주님께서 게바(베드로),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 중에 지금까지 대부분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죽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에게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여성들(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신 것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 문화와 관습이었습니다.
9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마지막 증인으로 자신을 언급한 후 자신에 대해 잠시 간증합니다. 8절에서 그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표현한 이유를 말합니다. 그는 사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곧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말합니다.
10절.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합니다. 찬송 310장에서 이런 내용을 고백합니다.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후렴>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11절. 바울은 자신이나 다른 사도들이나 복음을 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과 그분의 몸의 부활을 증거하였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사도들이 증거한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속죄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얻을 기본적 신앙입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확증함(고전 15:12-19)
(12)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선포하였거늘 어찌하여 너희 가운데 어떤 자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느니라. (14) 또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이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15)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리니 이는 우리가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셨다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지 아니하셨느니라. (16)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느니라. (17)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 (18)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멸망하였느니라. (19)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
12-15절. 고린도교회 안에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 그것은 부활이 인간의 이성으로 불가능하여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 썩고 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질문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며(사26:19; 단 12:2; 마 22:23-33; 히 6:1-2) 기본적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교회의 중대한 문제이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그들의 전파하는 것이 헛된 것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파하는 중심적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포함하였기 때문입니다(행 1:22; 2:32; 3:15; 4:33; 5:30-32). 또,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헛것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부활을 믿었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진실하심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6-19절. 앞에서 언급한 요지를 반복하면서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가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그의 부활로 확증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죄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로 남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이 망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을 믿고 소망 가운데 죽었으나 그 소망이 헛되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분을 위해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당한 자들은 아무런 보상과 위로가 없는 헛된 죽음을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은 돈, 부귀, 영화, 명예, 권세, 쾌락 등 이생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길어야 백년 동안만 가치 있는 것들이며 무궁한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을 확신하고 그 영광을 소망합시다.
3. 부활의 순서(고전 15:20-34)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왜냐하면 사망이 사람을 통해 임한 것 같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사람을 통해 임하였기 때문이라 (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이니라. (23)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24) 그때에 끝이 오리니 곧 그분께서 모든 치리와 모든 권세와 권능을 물리치시고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때라. (25) 그분께서 모든 원수를 그분의 발아래 두실 때까지 그분께서 반드시 통치해야 하나니 (26) 멸망 받을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그분께서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나 그분께서 모든 것을 그분 아래 두셨다고 말씀하실 때에 모든 것을 그분 아래 두신 분은 예외인 것이 분명하도다. (28)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 당할 때에는 아들도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두시는 분께 친히 복종하시리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려 하심이라. (29)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할진대 그들이 어찌하여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우리가 어찌하여 매시간 위험 속에 서 있느냐? (31)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들의 방법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을진대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33)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34) 의에 대하여 깨어 있고 죄를 짓지 말라. 어떤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하노라.
20-21절. ‘잠든 자들’은 죽은 자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죽은 자는 잠자는 자와 모양이 비슷할 뿐 아니라, 또 잠자는 자가 깨어 일어나듯이 죽은 자도 깨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잠든 자들의 ‘첫열매’라고 부른 것은 그분의 부활이 죽은 자들의 부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곡식이나 과일나무의 첫열매는 동일한 종류의 많은 열매들이 뒤따를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자들이 그분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21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은 자들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는 이치를 보입니다. ‘사망이 사람을 통하여’라는 말씀은 아담의 범죄로 세상에 사망이 들어온 사실을 말합니다(롬 5:12).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을 통하여 있나니’는 말씀은 대속의 이치를 말합니다.
22-24절. 죽은 자의 부활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까닭을 보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범죄하였고, 그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고전 12:13; 요 15: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다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요 3:16). 23절에 부활에는 순서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분은 부활의 첫열매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곧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에게 붙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근본 진리이며 거기에 우리는 큰 소망을 둡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곧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뜻입니다(롬 1:6). 그분에게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 재림 시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입니다(살전 5:16). 24절에 ‘끝’이라는 말은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의 부활이 있은 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물론 그때 악인의 부활도 있을 것입니다. 악인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입니다(요 5:29). 다니엘서에는 그것이 수욕과 무궁한 부끄러움을 입을 부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단 12:2). 요한계시록은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보좌 앞에서 심판받는 장면을 증거합니다(계 20:12). 악인의 부활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마귀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의인들을 핍박하던 세상 나라들이 ‘우리 주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계 11:15). ‘왕국을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은 이미 시작된 교회 시대가 끝나고 영광스런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됨을 말합니다. 지금도 교회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중생한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이지만(요 3:5; 골 1:13; 계 1:6), 주님의 재림으로 이 왕국은 아버지께 바쳐져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25-26절. 하나님의 ‘모든 원수’는 사탄과 악령들과 그 도구인 세상의 악한 정권들을 가리킵니다(엡 6:11-12; 단 10:20-21). 그러나 그분은 모든 원수를 결국 다 복종시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온 우주의 물질계와 영계를 통치하시고 모든 원수를 복종시키실 것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이십니다(시 46:1).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고전 15:55). 사망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극복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 시 사망은 실제적으로 정복될 것입니다. 의인들은 다 영광의 부활로, 악인들은 다 심판의 부활로 부활할 것입니다.
27-28절.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친히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히 5:8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마 26:39; 빌 2:8).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려 하심이라.’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이 세상과 인류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습니다.
29-32절.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받는다는 말은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 프린스톤신학교 학장)의 주석대로, 비세례교인이나 학습교인이 세례받기 전에 죽었을 때 그의 가족이 그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았던 초대교회의 잘못된 풍습을 가리킨 것 같습니다. 그 풍습은 비록 잘못된 것이었지만 부활 신앙에 근거하였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바울의 전도생활이 죽음의 위험이 가득한 삶이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위험한 생활을 피하지 않는 것은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3-34절.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과의 교제는 악한 교제이며,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우리는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4. 부활의 몸(고전 15:35-49)
(35)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떻게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느냐? 그들이 어떤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것이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으로 말하건대 네가 앞으로 있을 그 몸을 뿌리지 아니하고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알갱이를 뿌리되 (38)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그것에게 몸을 주시며 또 모든 씨에게 그것의 고유의 몸을 주시느니라. (39)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는 아니니 한 종류는 사람의 육체요, 다른 것은 짐승의 육체요, 다른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다른 것은 새의 육체라. (40) 또한 하늘에 있는 몸들도 있고 땅에 있는 몸들도 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의 영광과 땅에 있는 것들의 영광이 서로 다르니라.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들의 영광이 다르니 이 별과 저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 (43)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 (44)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 (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46)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 번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48) 땅에 속한 자들은 또한 땅에 속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과 같으니 (49)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35-38절. 부활의 몸에 대해 가르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이 썩어버리는데 어떻게 다시 살 것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죽은 성도의 부활의 모습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 속에 증거합니다. 우선, 그는 사람이 뿌리는 씨가 썩음으로 싹이 나는 이치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죽지만 그것을 통해 영원한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의 싹이 납니다. 사람이 쌀 농사나 밀 농사를 할 때 벼나 참밀을 직접 심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들의 낟알 곧 씨를 뿌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그것에게 각각의 형체 혹은 몸체를 주십니다. 사람은 곡식의 낟알을 뿌리고 하나님은 곡식이 나게 하시며 심겨진 벼와 밀의 낟알은 자라서 각각 벼와 밀의 형체를 가지는 것입니다.
39-41절.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새들, 물고기들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창 2:7, 19, 시 104:29). 그러나 그 육체들은 다 동일하지 않고 각각 다릅니다. 생명 세계의 육체들도 다 다르고, 해와 달과 별들의 형체들도 다 다르고 하늘의 것들과 땅의 것들의 영광이 서로 다르고 하늘의 것들 간에도 영광이 서로 다릅니다.
42-44절. 죽은 자의 부활도 피조세계의 각 육체 혹은 형체가 다르며 그 영광이 다르듯이 사람도 부활 전 상태와 부활 후 상태가 다르며 그 영광이 다릅니다. 그러면 부활 전의 몸은 어떠하며 부활 후의 몸은 어떠한가요? 첫째로, 부활 전의 몸은 썩을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썩지 않을 몸입니다. 죄의 결과 몸이 썩어 버립니다. 죄씻음을 주는 구원의 결과인 부활의 몸은 썩지 않을 몸입니다. 죄악성이 다 제거되었기 때문에 썩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둘째로, 부활 전의 몸은 욕된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아름다운 몸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지혜롭고 거룩하고 의로웠으나, 범죄함으로 그 의와 영광을 상실했고 슬픔과 고생이 많은 세상 속에 살면서 그 얼굴과 몸이 보기 흉해졌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결과인 부활은 본래의 영광과 아름다움의 회복인 것입니다.
셋째로, 부활 전의 몸은 약한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강한 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수록 인간의 몸이 참으로 약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문명이 이토록 발달했을지라도 여전히 우리 몸은 조금 춥게만 자도 감기에 걸리고 한번 감기에 걸리면 흔히 몇 일 동안 아파야 낫고 심지어 감기로 죽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더 이상 병이 없는 건강한 몸을 가질 것입니다.
넷째로, 부활 전의 몸은 육의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육의 몸은 인간의 타고난 죄성 즉 죄악된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 몸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는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몸, 죄성이 없는 몸’을 가리킵니다. 성도의 부활체는 썩지 않고 아름답고 강하고 신령한 몸일 것입니다.
45-46절. ‘마지막 아담’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사람 아담과 그 안의 모든 사람들과 대조하여 마지막 아담으로 죄 없는 인성(人性)을 입고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와 불행의 문제를 해결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로 인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아담이시며 그 후에 또 다른 분이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살려주는 영’ 혹은 ‘생명을 주는 영’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대속(代贖)을 이루셨고 지금 성령으로 죄인들에게 그 속죄를 적용하여 새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일을 하심을 의미합니다.
47-49절. 첫 사람이 땅에서 났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음을 말합니다. 첫 사람은 육이 먼저 지음 받고 그 후에 영혼이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땅에서 났고 흙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 곧 주님께서는 본래 신성(神性)을 가지신 영이십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48절에 ‘흙에 속한 자’는 첫 사람을 가리키고, ‘흙에 속한 자들’은 부활 전의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장차 부활할 성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인류는 흙에 속한 아담과 같지만, 장차 부활할 성도는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을 닮을 것입니다.
5. 부활의 개가(고전 15:50-58)
(5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53) 왜냐하면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기 때문이라. (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50절. ‘혈과 육’은 현재의 몸을 말합니다. 성도의 부활체가 단지 영은 아닐 것이지만 현재의 몸과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현재의 혈과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썩을 몸이기 때문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왕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51-52절. 주님의 재림 때에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살아 있는 자들의 변화는 비밀과 같습니다. ‘잠잔다’는 원어는 미래시제입니다. 우리가 다 죽을 것이 아니지만, 이미 죽은 자들이나 주님의 재림시 살아 있는 자들이나 간에 마지막 나팔에 다 변화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부활과 변화의 사건은 마지막 나팔소리에 맞추어 일어날 것이다(마 24:31, 살전 4:16-17).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끝날 때 죽은 성도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종말 사건은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납니다. 성도들의 부활과 변화는 순식간에,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53-54절.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50절).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모든 성도는 죽은 자나 산 자나 주님의 재림시 다 변화를 받습니다. 이 부활의 시간이 오면 사망의 확실한 패배가 증명될 것입니다. 사 25:8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사망처럼 강력한 승리자가 없지만, 그때가 되면 그것이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보다 더 강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성도의 부활과 변화는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이며 세상으로부터 사망의 영원한 추방입니다.
55-56절. 사망의 권세는 죄 입니다. 또, 죄가 힘을 가지는 것은 율법입니다. 죄가 없다면 사망이 힘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범죄하였고 온 세상이 죄로 가득함으로 사망이 또한 온 세상을 주장하였고 율법 때문에 죄는 죄로 드러나고 정죄됩니다. 주님의 재림이후 사망은 더 이상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고 무덤은 더 이상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57-58절. 율법으로 드러난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사망 아래 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망에 대한 승리를 감사합니다. 구원은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과, 부활과 무궁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입니다. 성도는 아직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으나 부활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끝으로 두 가지의 권면을 합니다. 첫째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약속들, 특히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약속들을 확신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는,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며(요 6:29),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막 16:15), 교회를 세우는 일이며(마 16:18), 복음 사역자들을 훈련하며 파송하는 일입니다(딤후 2:2). “이는 너희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풍성히 참여하고 수고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쓰거나 단순히 세상을 위해 쓰는 것은 내가 죽고 세상이 불탈 때 헛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사람을 무궁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일일 줄 믿습니다(계 22:12).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거듭나서 무궁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부활의 증인으로서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신앙으로 교회와 저 자신을 개혁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믿음으로 사망을 극복하며 새로운 하늘과 땅에서 누릴 축복을 바라보며 매일 살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편 39편 강해설교말씀] 병중에서 인생의 헛됨을 깨달음(시 3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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