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원문 성경강해

[욥기 3장 히브리어 강해] 생명을 탄식하는 욥(욥기 3:20-26)

성령의 능력 2021. 8. 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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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3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생명을 탄식하는 욥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받고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가족과 재산과 병들게 됨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너무나 갑자기 닥친 환난과 시련에 어떤 사람이라도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환난을 주시면서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율법주의 신앙을 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복음주의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나의 의를 드러내는 율법주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높이는 복음주의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을 탄식하는 욥(욥기 3:20-26)

 

20절 라마 이텐 레아멜 오르 베하임 레마레 나페쉬

성 경: [욥3:20]

욥3: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욥은 3-10절에서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11-19절에서는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써 '죽음'을 갈망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부터는 (1) 왜 고난이 자신에게 임하는가(25,26), (2) 왜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20-23).

󰃨 곤고한 자...마음이 번뇌한 자 - 공히 재앙 속에 허덕이는 욥을 지칭한다. 한편 '마음'은 영혼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사실적이다.

󰃨 - 이는 욥의 '생명'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욥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욥은 앞에서 '죽음'(무덤)을 어두움으로 여러 번 묘사한 바 있다(4-9).

21절 하메하킴 라마베트 베에네누 바야흐페루후 미마트모님

성 경: [욥3:21]

욥3: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 인간은 종종 현실의 한계 상황에 부딪히거나 절망의 벽에 다다를 때 죽음을 최후의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염세주의자나 일단의 실존 철학자들은 죽음 이야말로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 방책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아마 욥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 그는 모세(11:15), 엘리야(왕상 19:4)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중압감에 압도되어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죽음을 의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욥이 자살을 염두에 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살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정면적 배반이기 때문이다. 욥 역시 자살을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첫 단계 시련(1:13-19) 또는 적어도 둘째 단계 시련(2:8,8)을 받았을 때 이를 결행했을 것이다. 요컨대 욥은 현실의 상황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22절 하세메힘 엘레 길 야시수 키 이므체우 카베르

성 경: [욥3:22]

욥3: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 욥이 죽음을 고난으로부터 해방되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했음을 시사해 준다.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은 감정의 흥분 상태에서 주위를 빙빙 돌며 춤을 추는 행위가 동반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즐거워하다'라는 말과 더불어 욥이 얼마나 죽음을 갈구했는가 하는 것과 또 역설적으로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23절 레게베르 아쎄르 다르코 니세타라 바야세크 엘로아흐 바아도

성 경: [욥3:23]

욥3: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 1:10에서 사단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산울로 두르심'으로 표현한 바 있다. 여기서 욥은 일단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섭리)를 인정하고 들어 간다. 그러나 그 보호가 이제는 욥에게 있어서 도리어 방해와 올무(Anderson)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있는 한 욥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단계에 이르러서 욥은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데에까지 이름으로써 사단의 계략에(1:11;2:5) 일면 동조하게 된다.

󰃨 길이 아득한 사람 - 여기서 '''생명'(고난에서의 해방)을 상징하기도 하며 그 반대로 '죽음'을 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욥은 현실의 고난의 해결책으로서 '죽음'을 갈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고난에서 해방되기 위해 죽음을 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구원을 바라며 생명을 연장시키기에는 그 고난이 너무 감당하기 힘든 욥의 상황, 곧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한 그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준다.

24절 키 리프네 라흐미 안하티 타보 바이트쿠 카마임 샤아고타이

성 경: [욥3:24]

욥3: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 전에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리프나이로서 시간보다는 장소를 지칭하는 전치사로 많이 쓰였다. 즉, ...의 면전(面前)에서 (tothe presence of), '...정면에서 (to the front of) 등의 뜻이다(4:19). 따라서 개역성경의 번역처럼 이것을 굳이 시간의 전치사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대신 (NIV, insteead of),...로(RSV, as)'로 번역하는 것이 더 사실적이다. 이렇게 될 때 본문은 음식 대신 한숨이 나오고 , 또는 탄식이 밥이 되며(RSV, sighing coms as mybresd)로 해석된다. 이는 욥의 고난의 심각성을 묘사하기 위한 표현이다.

󰃨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 시청각적 직유법을 사용하여 병고(病苦)와 싸우는 욥의 상황을 잘 드러내 준다. 그런데 여기서 앓는 소리는 대부분의 영역 성경이 끙끙거리는 소리 , 신음 소리 (NIV, LB, RSV, groans)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원어상 이 말은 포효하는 사자의 울음 소리 같은 것을 가리키므로 KJV의 번역과 같이 으르렁거리는 (roaring)으로 옮기는 것이 더 좋다. 이 표현이 욥의 상채를 보다 적나라하게 묘사해 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앤더슨(F.I.Anderson) 같은 학자는 본 구절을 나의 큰 울음이 바닷물처럼 떨어지는구나((my bellowingw cascadelike the sea)라고 옮기고 있다.

25절 키 파하드 파하드티 바예에타에니 바아쎄르 야고르티 야보 리

성 경: [욥3:25]

욥3: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 두려워하는 그것. 무서워하는 그것 - 이는 (1) 물질적 축복(1:2,3)을 상실하는 것, (2) 육체적 질병(2:7,8)을 당하는 것, (3)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욥은 자신의 번영(1:2,3) 중에서도 그 자손이 행여 범죄 할까 근심하였다. 그래서 그 자녀들을 성결케 하는 의식을 일정한 시기에 행하기도 하였다(1:5). 이에 근거해 볼 때 욥은 언제 닥칠지도 모를 하나님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항상 경성(警醒)하는 삶(13:17)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늘 두려워하던 것, 곧 하나님의 축복(소유물의 번성, 건강, 하나님과의 교제)을 상실하는 것이 지금 욥에게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재앙)은 구체적인 욥의 범죄가 없는 가운데 임했으며, 바로 이러한 점에 있어서 욥은 자신의 고난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회의(갈등)에 빠졌던 것이다.

26절 로 솰라베티 베로 솨카트티 베로 노흐티 바야보 로게즈

성 경: [욥3:26]

욥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주제1: [욥의 탄식]

주제2: [생명을 탄식하는 욥]

본절은 본장의 후반부(11-26)를 종결짓는 결론부라 할 수 있다. 11절부터는 고난에 대한 욥의 한탄을 서술하고 있는 바, 본절에서는 그의 한탄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욥의 정신적 육체적 평안을 깨뜨리는 고난이었다. 그런데 이 고난은 특별한 이유 없이 주어진 것이었기에 더욱더 욥의 심경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한편 본장에 나타난 욥의 '저주'(3-10)'한탄'(11-26)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1) 인간의 한계성:욥은 그 행위와 성품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인정을 받은 의인 중의 의인이었다(1:1, 8;2:3). 뿐만 아니라 그는 자녀들의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를 정기적으로 행하는 견실한 가정(1:5)의 가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위대한 신앙을 가진 그도 두 단계로 주어진 시련을 결국 인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일과 잉태를 저주하며(3-9), 무덤을 갈망하는(11-19)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선지자 중의 선지자였던(34:10) 모세가 죽기를 간구한 것이나(11:10-15), 엘리야, 요나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고통의 심각성으로 인해 죽기를 간구한 것(왕상19장; 욘4:3)과 흡사하다. 이렇듯 인간은 그 능력과 인내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피조물인 것이다. 이 같은 인간을 엘리바스는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4:19)로 묘사하고 있다. (2) 정직한 토로:하나님은 지. 정. 의를 갖춘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2:7; 4:24). 이는 인간이 자신에게 닥치는 환경적 요소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즐거운 일에는 웃고, 고통에는 슬픔과 불만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욥의 경우에 있어도 그는 무한정 인내하거나, 외부의 환경적 요소에 대해 전혀 무반응을 보이는 목석(木石)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 중에 신음과 저주의 목소리를 발했다. 생일을 저주한 것이나(3-9), 죽음을 갈망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그가 이미 신앙을 상실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비신앙적인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욥은 감내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서 자연스러운 장탄식을 발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섭리)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데에 궁극적 의도가 있었다. 요컨대 욥은 솔직한 자기감정을 내보임으로써 하나님의 감추어진 진리로 접근해 갔던 것이다. 이는 속으로 불신앙과 회의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경건한 행세를 하는 외식주의자들(마 6:5; 딤전 4:2)의 행태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자기 고민과 고통을 토로하며 당신의 섭리를 물은 욥에게 결국 진리를 계시하시고 구원의 축복을 주셨다(42:5,12-17).

[이사야 1장 히브리어 강해]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사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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