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애가 히브리어 원어 강해 중에서 황폐한 예루살렘 참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계속해서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서 징계를 내립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보고 너무나 슬퍼합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실 때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황폐한 예루살렘 참상(애 1:1-9)
1절 에카 야쉐바 바다드 하이르 라바티 암 하예타 케알마나 라바티 바고임 사라티 바메디노트 하예타 라마스
성 경: [애1:1]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이 책의 주제는 유다 왕국과 그 수도 예루살렘의 재앙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인데, 본장 전반부, 곧 1-11절까지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파멸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간략하게 언급된다. '슬프다' 라고 번역된 감탄사 '에카'는 비극적 상황을 묘사할 때 흔히 등장한다(사 1:21 참조).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은 평상시에는 민족 종교의 구심점이었으며 상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참혹하게 황폐화되어 버린 폐허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파멸의 비극적인 상황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남편과 자식을 잃은 과부가 옛날의 영광을 회상함과 동시에 현재의 한탄스러운 상황을 돌아보면서 애도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과부 예화는 인간의 깊은 외로움과 절망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었다. 한때 예루살렘은 에돔이나 모압 등과 같은 주변 나라의 지배자였으나, 이제는 포로가 되었고 버림받았다.
2절 바코 티브케 바라옐라 베디므아타흐 알 레헤야흐 에인 라흐 메나헴 미콜 오하베이하 콜 레에이하 바게두 바흐 하이우 라흐 레오예빔
성 경: [애1:2]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밤새도록 애곡하니...친구도 다 배반하여 - 잠자는 것도 잊어버린 채 밤새껏 통곡하는 저자의 모습은 극에 달한 슬픔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한편 본절에서는 유다가 '사랑하던 자' 혹은 '친구'으로부터 배신당한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당시 유다가 의지하던 대표적인 맹방은 애굽이었는데, 성경 기록상에는 애굽이 유다에 대해 배신하였다고 하는 특별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B.C. 588년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애굽은 비록 패주하긴 했으나 유다를 돕기 위해 원군을 파견하기도 하였다(렘 37:5). 그렇다면 본절 내용은 맹방의 특별한 배신 행위보다는 의존하던 대상으로부터 실질상으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사실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겔 23장; 호 8:9, 10). 유다는 외세에 의존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의존하여 그들의 안전을 유지하여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이었다(왕상 15:16-20). 유다는 이러한 친구들이 꺾어진 갈대라는 사실을 패망 후에야 비로소 배웠을 것이다(겔 29:6, 7).
3절 갈레타 예후다 메오니 우메로브 아보다 히 야쉐바 바고임 로 모츠우 마노아흐 콜 로드페이하 히시구하 베인 하메차림
성 경: [애1:3]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유다는...사로잡혀 갔도다 - 여기서 시인은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에게로 눈을 돌린다. 영역 성경 KJV 는 이를 '유다가 환난으로 인해서 포로 잡혀 갔도다'(Judah is gone into captivity because of affliction)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사로잡혀 갔다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렘 40:11; 42:4-10; 44:1 참조). 그러나 '사로잡혀 갔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레타'(*)는 삼하 15:19과 겔 12:3에서도 쓰이고 있는데, 이는 전혀 자발적인 포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시인은 언약 백성이 이방 땅에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하는 현실을 애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유다 백성이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실에 대해서는 왕하 24:1-5; 25:8-12; 대하 36:6, 10, 20을 참조하라.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 '협착한 곳'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차르'는 흔히 어떤 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된 고통스러운 상황을 암시하는 상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RSV 영역 성경은 본문을 '그녀의 고통 중에'(in the midst of her distr ess)라고 번역하였고, NEB 영역 성경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협곡에서'(in her sore st raits)라고 번역하였다.
4절 다르케 치욘 에벨로트 미벨리 바에 모에드 콜 쉐아레이하 쇼메민 코하네이하 네에나힘 베툴로테이하 누고트 베히 마르 라흐
성 경: [애1:4]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예전에는 성전에 올라가 제사 절기를 지키려고 하는 순례자들로 북적대었으나 이제는 황량하고 인적이 끊겼다. 렘 41:5에 의하면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도 드물게나마 순례 행렬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바,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는 그것조차 끊어졌던 것 같다(Ellison).
5절 하이우 차레이하 레로쉬 오예베이하 솰루 키 아도나이 호가흐 알 로브 페솨에이하 올랄레이하 홀르쿠 쉐비 리프네 차르
성 경: [애1:5]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곤고케 하셨음이라 -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이미 언약에 규정되어 있던 것이다(신 28:44 참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이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솔직한 고백이었다.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솨'는 원래 '위반', 혹은 '반역'을 뜻하는 말이다. 문맥을 살펴보면 이런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 역시 언약 파기에 따른 처벌로서 이미 예언되었던 것 중에 하나였다(신 28:36, 63-68 참조).
6절 바예체 민 바트 치욘 콜 하다라흐 하이우 사레이하 케아얄림 로 모츠우 미르에 바옐레쿠 베로 코아흐 리프네 로데프
성 경: [애1:6]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목백'에 해당하는 '사르'는 영역 성경에서 주로 '군주'(princes)로 번역되었는데, 예루살렘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 온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을 가리키는 듯하다(왕하 25:4; 렘 39:4 이하 참조). 그리고 목초지를 찾지 못하는 '사슴'예화는 시 23편에 묘사되고 있는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거기서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목자가 되사 그들을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양떼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신 선한 목자로 묘사된 바 있다(요 10 :11 이하). 시인은 여기서 과거의 상태와 현재의 비참한 지경을 대조시킴으로써 포로로 잡혀 가는 비애와 슬픔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고 있다(Harrison).
7절 자케라 예루솰람 예메 오느야흐 우메루데이하 콜 마하무데이하 아쎄르 하이우 미메 케뎀 비네폴 암마흐 베야드 차르 베에인 오제르 라흐 라우하 차림 사하쿠 알 미쉐바테하
성 경: [애1:7]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예루살렘이 정복자의 먹이가 되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과거의 영광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비참하였다. 아마 이 시는 이 성이 함락된 이후 오래지 않은 그 어느 시기에 구성되었던 것 같다. 설상 가상으로 그 대적들을 이들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성경에서 대부분 비웃음은 조롱이나 비난과 연결되어 쓰였다. 한편, '군박'의 히브리어 '마루드'는 그 어원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약간 다르게 번역될 수 있다. 즉 '루드'(이주하다)에서 유래되었다면 '추방'을 그리고 '마라드'(반항하다)에서 유래되었다면 '핍박'을 각각 가리킨다.
8절 헤트 하테아 예루솰람 알 켄 레니다 하야타 콜 메카베데이하 히질루하 키 라우 에르바타흐 감 히 네에느하 바타솨브 아호르
성 경: [애1:8]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 이곳에서 5절에서 언급되었던 예루살렘의 범죄에 대한 주제가 보다 더 상세하게 지적된다. 그리고 이 주제는 본서의 주요 신학적 문제들 중에 하나가 된다. 시인은 여기서도 더렵혀졌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여인을 예화로 사용하여서 설명하고 있다.
9절 투메아타흐 베숄레이하 로 자케라 아하리타흐 바테레드 펠라임 에인 메나헴 라흐 레에 아도나이 에트 오느이 키 히게딜 오예브
성 경: [애1:9]
주제1: [유다의 슬픔]
주제2: [황폐된 예루살렘]
여호와여...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 선지자는 여호와께 호소하며 환난을 감찰해 줄 것을 간구하는데, 이 간구는 스스로 큰 체하는 적들의 무례에 근거해 있다. 아마 유다 백성은 그들의 운명을 다시 역전시켜 달라고 간청할 수도 없었고 간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것을 목격하고서도 그 근본적 원인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죄악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상반절). 따라서 적들의 오만불손한 승리의 자부심을 징벌할 것을 요구하며, 백성들의 고난을 제거해줄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고 있는데 그 두드러진 예로서 앗수르가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서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사 10;12의 내용을 들 수 있다. 한편 '스스로 큰 체하오니'란 말을 영역 성경 NIV, RSV 등은 '적이 승리했사오니'(the enemy has triumphed)라고 번역하였는데, 문자적으로 틀린 번역은 아니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적들의 승리로 인한 보응이 아니라, 승리 후에 보여준 오만불손한 교만으로 인해서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 베드로전서] 흩어진 성도에게 문안 인사(벧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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