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누가복음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주기도문 강해 말씀(눅 11:1-54)

성령의 능력 2022. 1. 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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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에서는 예수님이 주기도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주기도문 강해 말씀(눅 11:1-54)

 

1-13, 기도를 가르쳐주심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 . . .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자 제자 중 하나가 말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는 친히 기도하기를 힘쓰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에게 무슨 기도가 필요하셨겠는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는 기도하셨다. 그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조용한 곳에 나가 기도하셨고(1:35) 늦은 밤에도 기도하셨으며(14:23) 때때로 밤새도록 기도하기도 하셨다(6:12). 신성을 가지신 예수께서 시시 때때로 기도하셨다면, 연약성과 죄성을 가진 인간인 우리는 얼마나 더 자주, 또 더 많이 기도해야 하겠는가!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예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의 기도 내용의 모범이 된다. 그 기도는 전체적으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하고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의 것을 구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먼저 요긴한 것들을 기도하고 그 다음에 부차적인 것들을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건강이나 물질 문제나 자녀 문제 등을 기도한다. 주께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시겠지만, 그것들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보여주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여라는 말이 전통본문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세계를 초월하여 계신다. 또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들을 낳고 보호하고 의식주의 문제를 책임지듯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창조자와 보호자와 공급자이시다. 우리의 천부(天父)께서는 영적인 것들뿐 아니라, 의식주에 관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6:3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그 이름에 욕을 돌렸고 지금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고, 또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최종적 공의의 심판이 내려짐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두 번째 내용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범죄한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은 하나님의 통치권의 회복이다. 소요리문답은 이것을 은혜의 나라영광의 나라로 표현하였다.

은혜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현재적 측면을 말한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 영혼들의 거듭남으로 시작된다. 성도는 이미 은혜의 나라에 들어와 있다. 신약교회는 비록 불완전한 모습으로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단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은 복음 전파의 일, 그것을 통한 영혼 구원의 일, 또 그로 말미암아 참된 교회들이 설립되는 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는 또한 영광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의 측면을 말한다. 그것은 몸의 부활과 만유의 회복을 포함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나라이며 의와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나라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의와 진리와 순수한 복음과 바른 교회를 위해 때때로 고난을 당하지만, 장차 그 나라에서 기쁨과 위로와 보상을 얻을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전통본문에는 그 다음에,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옵소서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세 번째 내용으로서,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듯이, 땅 위에 있는 성도들도 그렇게 하게 하시기를 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이다.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구원 얻는 것이며(2:8), 거기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원의 과거적 단계는 죄로 죽었던 영혼들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 인해 거듭나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重生)과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와 양자(養子)이다. 이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졌다.

구원의 현재적 단계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이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거룩의 열매를 맺고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6:22). 이것이 성화(聖化)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과 온전함이다(살전 4:3; 딤후 3:16-17). 이것은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이 죄를 떠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이지만, 교회적으로는 교회가 배교(背敎)와 타협하지 않고 그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날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들은 이러한 순수함을 추구하며 소유하는 교회들이다.

구원의 미래적 단계는 구원받은 신자들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영광스러운 몸이 되고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이다(8:29-30; 21-22).

우리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3:22; 2:8). 또 구원받은 성도들은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순종함으로써 점점 더 거룩하여진다. 또 교회들도 모든 인본적, 세속적 생각과 방법을 버리고 오직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전심으로 믿고 따를 때 순결한 교회가 될 것이다.

또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수많은 영혼들이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힘써 드려야 한다.

[3-4]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 . . .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네 번째 내용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것이다. 사람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책을 읽고 묵상함으로 영적 활기를 얻지만, 주께서는 특히 육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줄 안다. 사람은 영육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육의 양식도 주실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또 이 기도 내용은 일용할 양식 외에 우리의 모든 육신적, 물질적, 가정적, 사회적 일들도 포함된다고 보인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다섯 번째 내용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고 영적 죽음을 가져왔다. 성도에게 있어서 죄는 여전히 하나님과의 교제의 방해물이다. 범죄한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꺼려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 십자가 위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을 때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는 다 용서되었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범하는 실수와 죄는 여전히 죄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죄사함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것은 몸에 침투한 병균을 죽이거나 제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여전히 회개에 대해 말한다(고후 7:10; 2:5; 3:19).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용서하는 것이 필요함을 교훈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여섯 번째 내용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것이다. 전통본문에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다. 우리의 큰 문제는 육신적, 경제적 문제가 아니고 죄의 문제이다. 우리에게는 죄사함도 중요하지만, 죄에 떨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5-8]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빌려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함께 나와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아나이데이아)[끈질김]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주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강청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 밤중에 무엇을 빌려달라는 것은 무례한 일이지만, 그 사람이 친구의 청을 들어준 것은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강청함 곧 끈질김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몇 번 아뢰다가 중단하지 말고 끈질기게 조르듯이 강청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며 또 그에게는 밤중같이 불편하여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기 힘든 때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하면 항상 들어주실 것이며, 특히 강청의 기도를 드리면 잘 들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청의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강청의 기도를 통해 자신의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고 자기를 부정하게 되고 겸손해진다. 또 우리는 강청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굳세게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익을 주시려고 우리의 기도를 금방 들어주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에게 강청의 기도를 올리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시시때때로 간절한 강청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 . . .

예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기도의 응답은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기도하면 응답을 얻는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반복적이고 점점 강해지는 뜻을 가진 이 말씀은 끈질긴 기도를 묘사한다.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이라는 말씀은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뒤따른다는 것을 가리킨다. 원문에는 10절 초두에 왜냐하면’(가르 ga;r)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기도 응답에 대한 근거로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가, 두드리는 이에게라는 표현은 기도하는 당사자가 응답을 받는 것이며 그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이다. 기도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며 증거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굳게 믿는 자는 힘있게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에 비례한다.

[11-13]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주께서는 다시 한 번 더 사람의 예를 사용하신다. 전통본문에는 생선을 달라 하면이라는 말 앞에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라는 구절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줄 자가 없고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없고 계란을 달라 하면 전갈을 줄 자가 없다. 악한 사람도 그러하다면, 하물며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들을 주시겠는가?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은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들 중에 가장 귀한 복임을 증거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는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이끄시는 거룩한 영이시며 우리에게 진리의 지식과 믿음, 또 생명의 활기와 힘, 또 위로와 기쁨을 주신다. 예수님 믿는 신약성도는 이미 성령을 받았고(8:9),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늘 구하며 느끼며 그의 위로와 힘을 받으며 살아가면 된다.

주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첫째로, 그는 기도의 주요 내용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그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고 참된 교회들이 세워지고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또 그는 우리가 의식주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죄사함과 시험에 들지 않는 일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주로 죄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그는 기도의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기도할 때 강청해야 즉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그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강청의 기도는 바른 기도 방법이다.

셋째로, 그는 기도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가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용대로, 즉 필요한 대로 주실 것이며, 좋은 것을 주실 것이며, 특히 하나님 자신이신 성령님을 주실 것이다. 성령님은 성도가 얻는 가장 큰 복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된 것과 같다.

14-36,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심

[14]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 . . .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며 벙어리가 말하였다.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다. 귀신은 실제로 존재한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 곧 악한 영이다.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가 그를 벙어리 되게 하였다. 모든 질병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보지만, 어떤 질병들은 정신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그런 경우 그 병은 자신의 영의 결함 때문이든지, 귀신의 영의 활동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사건에서와 같이, 귀신은 어떤 사람의 뇌신경에 나쁜 영향을 줌으로 그로 하여금 언어 기능이 마비된 벙어리가 되게 하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벙어리 귀신을 내쫓아 주심으로 그 벙어리는 말하게 되었다. 그것은 심리 치료 방법이나 반복적 언어 훈련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된 것이었다. 이런 유의 병의 치료는 병든 영의 치료나 악한 귀신을 내쫓음으로 가능하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다. 특히 귀신을 내쫓는 일은 인간편에서 기도와 금식의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17:21, 전통사본). 예수께서 귀신을 내쫓으셨다는 사실은 그가 천사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분이심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영계와 물질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15-16]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 . . .

그런데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말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였다. ‘바알세불더러운 것[우상들]의 주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다 믿음을 주지는 못하였다. 기적은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기적이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근거와 계기가 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기적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벙어리 귀신을 내어쫓은 예수님의 기적이 놀라웠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그를 비난하기를, 그가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악한 벙어리 귀신을 내어쫓으셨는데도, 그를 믿지 못하고 그를 귀신들의 왕이라고 비난하다니 인간은 참으로 무지하고 악하다.

또 어떤 이들은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였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확인할 만한 기적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이미 믿을 만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고 또 이제도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는 표적을 보이셨음에 불구하고, 그들은 또 다른 신기한 일들을 구한 것이었다. 그것은 믿음의 근거를 구한 것이라기보다 단순히 호기심을 위한 요청이라고 보여진다. 참으로 믿기를 원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충분한 기적들을 주셨다. 오늘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자 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 충분하다.

[17-19]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 . . .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장이 되리라.”

예수께서는 단지 그들의 말에 대해 대답지 않으시고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그것은 자신이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그런 일을 행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주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는 일반적 진리를 들어 말씀하셨다. ‘분쟁한다는 원어는 나뉜다는 뜻이다. 한 가정이든지 한 나라든지 분쟁하여 둘로 나뉘어 있다면 그 가정이나 그 나라는 견고하고 평안하게 세워질 수 없고 무너지고 황폐하여질 것이다. 주께서는 이런 일반적 진리를 들어, 사탄이 스스로 나뉜다면 어떻게 그 나라가 서겠는가라고 반문하셨다.

또 주께서는, 만일 내가 귀신들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그렇게 하는가라고 반문하셨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자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예수를 따르지 않던 어떤 사람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일을 행하였었다(9:49). 유대인들은 그런 자들에 대해 예수께 했던 비난과 같은 비난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자기 아들들에 대해서는 관대했으나 예수께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그 아들들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의 행위가 귀신들의 왕을 힘입어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한 것임을 증거하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는 어떤 이들의 잘못된 말들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특히 자신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나타낸다고 증거하셨다. 이스라엘 사회는 심히 타락하여 사탄과 악령들의 지배를 받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두워진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탄과 악령들의 세력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탄과 악령들은 힘이 있는 천사들이다. 그들이 무장을 하고 자기 집과 같은 사회를 지킬 때에는 자기들의 소유물들이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강한 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을 이기실 때 그들의 무장을 빼앗으시고 그들의 소유물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들을 통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3-26]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 . . .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흩어지게] 자니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비난하는 저 악한 자들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로, 그들은 그를 반대하고 그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실 백성들을 흩어지게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정말 위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그와 함께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뜻은 예수님의 생각과 뜻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와 함께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들은 확실히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다. 또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영혼들을 모으지 않는다면, 그들은 예수께서 구원하여 모으시려는 사람들을 흐트러뜨리는 자들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혼들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구원 운동의 방해자요 교회를 흩어지게 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결코 그런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그들은 만일 그를 참으로 영접지 않는다면 그들의 마지막 형편은 더 나빠질 것이다. 사탄과 악령들의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 사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탄과 악령들이 일시적으로 내쫓김을 받았지만, 만일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하고 순종치 않으면 사탄과 악령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어와 활동하게 되어 그 마지막 형편은 더 나빠질 것이다. 복음을 듣고 그 은혜를 체험하고도 그를 진심으로 영접지 않고 순종치 않는 자들의 마지막 형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27]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 . . .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라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과의 혈육적 관계를 자랑하며 뽐낸다. 천주교회는 마리아와 예수님의 혈육적 관계를 중시하여 마리아가 무죄(無罪)하다든지 승천했다든지 중보사역에 참여한다든지 성도들의 기도를 듣는다는 등 지어낸 말들로 마리아를 거의 신적 존재로 만들었다.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 . . .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혈육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많은 말들과 글들이 있지만 그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들과 다르다. 그것은 곧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구원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예수님의 혈육관계보다 더 복되다.

[29-30]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 . . .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예수님 당시의 세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다. 그들이 예수께 표적을 구하지만 진심으로 믿으려는 동기에서가 아니고 단지 호기심에서일 뿐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많은 표적들과 기적들을 행하셨으나,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고 또 다른 표적들을 구하는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오직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지막 가장 큰 표적이기 때문이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삼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신 후에 제3일에 부활하실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지막 표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최종적으로 확증할 것이다.

[31-3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주께서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더 크신 자이며 또 요나보다 더 크신 자임을 증거하셨다. 그것은 인간적 교만이나 자랑의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리요 사실 그대로인 것이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시고 요나보다 더 크신 자이시다.

그러나 솔로몬 때에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말을 듣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었고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지만, 이 악한 세대는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지 않고 그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으니 얼마나 악한 것인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 때에 남방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마지막 심판날에 그들이 다 부활하여 예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회개하기를 거절한 이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33-3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주 예수께서는 마음의 눈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것은 내면적 지식과 사상과 깨달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마음의 등불과 같다.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과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아는 지식이다. 이것은 성경의 바른 지식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고 불행한 세상이다. 벙어리 귀신 들린 사람은 세상의 현실을 보인다. 귀신은 더럽고 악한 영이며 이 세상을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세상은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온 자처럼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또 악한 세상은 표적을 구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도 회개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은 영적으로 어둡고 무지하다. 우리는 이 세상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둘째로,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다.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사건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또 그는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리켰다. 그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최종적인 확증이다. 또 그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크시며 요나보다 크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자요 속이는 자이겠지만, 그는 그런 자가 아니고 말씀하신 그대로 솔로몬이나 요나보다 크신 자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참 지식의 빛을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야 한다(10:22; 고후 4:6).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되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던 니느웨 사람들처럼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를 회개하라고 가르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를 믿으며 그와 함께하는 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경의 교훈대로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하라고 가르친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하는 것이 바른 길이며 복된 길이다.

37-54,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심

[37-38]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 . . .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는데, 잡수시기 전에 우선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겼다. 음식을 들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던 것 같다. 주께서 당시의 관습을 따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인간의 관습에 불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쳐 주신 것들만 권위 있게 여겨야 하고 성경에 가르치지 않은 관습들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 . . .

주께서는,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교훈하셨다. ‘탐욕이라는 원어(하르파게)약탈(Thayer, KJV, NASB) 혹은 탐욕(BDAG, NIV)이라는 뜻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삶을 말하면서 내면적 성결을 중시하지 않고 외형적 성결만 강조하였다.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음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것이 문제이었다. 외적 불결은 몸에만 해롭지만, 마음의 불결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며 자기의 영육을 멸망시킨다. 참된 경건은 내면적 성결로 나타난다.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고 착한 것이 중요하다.

[40-41]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주께서는 사람이 내면적 성결 없이 외적 성결만 중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영육의 존재이다. 남에게 보이는 사람의 외형적 부분은 육체요,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적 부분은 영 혹은 영혼이다. 사람의 겉이 아무리 아름답고 단정해 보여도 그 속, 즉 그의 영혼과 마음이 깨끗하고 바르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무가치한 자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의 내면적 불결을 지적하신 것이다.

주께서는 그 해결책으로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안에 있는 것이라는 원어(타 에논타)는 옛날 영어성경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고 번역하였다(KJV). 바리새인들은 마음 속에 물질에 대한 탐욕이 가득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탐욕의 죄를 회개하고 탐욕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해야 한다.

구제는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규모 없이 살거나 절제 없이 살아서 가난해진 자들 또는 근면하지 않고 게을러서 가난해진 자들은 자신을 반성하고 규모 있고 절제 있게 살고 근면하게 살기를 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강조하여 교훈하신 바이다(15:7-11). 그러므로 구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는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중요한 표시가 된다. 옛날 멸망을 당하였던 소돔 성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했으나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줄 몰랐고 그것이 그들이 멸망한 중요한 죄악의 내용들 중 하나이었다(16:49). 사람은 탐심을 버려야 남을 구제할 수 있다.

[42-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율법대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실천하였다. 십일조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서 성경에 가르치신 헌금의 주요 원리이다(27:30-33). 그것은 물질의 복이 약속된 규례이다(3:8-12). 십일조는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물질의 소득이 다 하나님의 복임을 인정하며 감사하며 고백하는 표시이다. 바리새인들이 십일조 생활을 실천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십일조 같은 종교적 규례보다 내면적 도덕성, 즉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교훈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원어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로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다 가리킬 수 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 자비)과 신(, 신실함)”이라고 표현하였다. 종교적 규례와 내면적 도덕성은 둘 다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내면적 도덕성이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규례는 중시했으나 내면적 덕을 버린 것이 큰 죄이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명예심과 교만을 나타낸다. 이것도 역시 큰 죄이므로 주께서는 그들에게 화를 선포하셨다. 겸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덕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주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23:11-12). 우리는 교만과 명예심을 버려야 한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 . . .

예수께서는 또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전통본문에는 너희여라는 말 대신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라고 되어 있다.평토장한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지만, 그 속에는 부패되고 더러운 죄성으로 가득한 위선적 인격을 표현한 말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겉보기에 경건하고 단정했으나 속에 탐욕과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 위선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내면적 성결과 단장이다. 디모데전서 2:9- 10,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우리는 마음을 단장해야 한다.

[45-46]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 . . .

한 율법사가 예수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하자, 주께서는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율법사서기관과 같은 말로서 율법 학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들은 말로만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들은 지기 어려운 짐들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기들은 한 손가락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전혀 행위의 모범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롭고 선한 삶을 원하신다.

[47-48]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가꾸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죽이려 한 것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그들의 선조들의 삶과 동일하다. 그것은 큰 위선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단지 전시대의 선지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것보다 그들의 사상과 인격과 삶을 본받는 것이다.

[49-51]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많은 종들을 핍박하고 죽였었다.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뜰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대하 24:20-21)의 피까지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의인과 선지자들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할 것이다. 그것은 그 세대가 참된 의인이시요 선지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핍박하고 마침내 죽일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죄악은 인류 역사와 구약 역사의 모든 죄악들의 절정일 것이다.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 . . .

예수께서는 또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율법사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지식의 열쇠를 오용하였다. 그들의 지식은 행위를 동반하지 않은 지식이었다. 행함 없는 지식은 위선자들을 만들어 내며 종교를 부패시킬 뿐이다. 또 그런 위선자들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길을 오히려 방해한다.

[53-54]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 . . .

거기서 나오실 때[그들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실 때](전통본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 가지 일로 힐문하고 [그를 비난하기 위해](전통본문)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켰다. ‘목을 지킨다는 원어(에네드류오)숨어 기다린다, 올무에 걸리게 한다는 뜻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겉뿐 아니라 속을 깨끗이 하자. 우리는 외모만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지 말고, 탐욕, 악독, 명예심, 교만을 버리고 마음 속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특히 탐욕을 버리고 가난한 이웃에게 구제하는 자가 되자. 그러려면 우리는 근검절약하며 절제하며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된 규레로 주신 십일조 생활도 실천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덕인 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넷째로, 신자에게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실천이 더 중요하다. 참된 경건은 환난 중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1:27).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2:17, 26). 참된 복음 지식은 실천을 수반한다.

[마태복음 23장 예수님의 말씀] 위선자들을 책망하심(마 23:1-39)

 

[마태복음 23장 예수님의 말씀] 위선자들을 책망하심(마 23:1-39)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사람들을 의식하여 보여주는 신앙을 했습니다. 우리는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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