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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설교말씀] 성령의 열매-충성(수 14:6-15, 갈 5:22-25, 마태복음 25:14-29)

성령의 능력 2021. 5. 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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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여호수아 설교말씀 중에서 성령의 열매 중에서 충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도의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충성의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여 하나님께 큰 상급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이 세대에서는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세에서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목: 충성(faith)의 열매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수 14:6-15,  갈 5:22-25,  마태복음 25:14-29

 

요    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주 제: 주님의 뜻에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고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자

 

갈라디아 5장에 22-23절에 의하면 성령의 열매의 일곱 번째는 ‘믿음 faith’ 곧 ‘충성’입니다. 그리스 원어에는 ‘믿음’(pistis)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는 fai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충성을 굳이 영어로 번역하면 faithfulness(신실, 충실, 한결 같음), sincerity(신뢰성, 믿음직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같은 어원을 달리 번역한 것입니다. 또 순종과도 연관됩니다. 믿음과 충성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방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가 있고 기적과 능력을 베푸는 사람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충성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전 12:9에 보면 믿음이 성령의 은사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성하며, 충성의 사람은 믿음직합니다. 나를 불러주시고 사용하시는 분에게 절대 순종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칭찬받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한 내용을 계시록 2:8-10을 통해 읽어 봅시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be thou faithful unto death, and I will give thee a crown of life.”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순교를 말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폴리갑의 순교를 낸 교회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면 충성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저는 지난 40년간 선교지를 떠날 때마다 유언장을 써놓고 갑니다. 무슨 일을 당할는지 주님만 아십니다. 일사각오의 자세로 선교를 하고 목회를 하고 강의를 해 오고 있습니다. 일시 충성할 수 있어도 끝까지 충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unto the end)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이 말씀 속에 주님의 충성하시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점령하고 있은지 5년이 지난 어느날,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부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 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수 14:6-12) 했습니다. 45년 전 바로 여호수아와 함께 헤브론 정탐 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한 그 믿음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으며 평생 주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했습니다. 갈렙이란 이름의 뜻은 ‘개’(dog)인데 개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충성스러운 개처럼 갈렙은 그렇게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수 14: 13-15) 성령님을 좇아 사는 사람은 꾸준합니다. 충성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 듣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임시로 맡겼는데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하게 되었는데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하니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5:14-30)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주인은 한 달란트 맡긴 종에게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를 맡기면 다섯 이상을 능히 해 낼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그것을 땅에 묻고 아무것도 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매우 화를 내었습니다. 악하고 게으르다고 단정 지으면서 불충한 종을 밖으로 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기대 이상으로 충성했기에 칭찬을 듣고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도록 초청하십니다. 충성은 주인의 뜻을 깊이 헤아려 주인을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총성이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는 신자는 순종하는 성도입니다.  어떻게 순종할 수 있습니까 ?  (1)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내 뜻과 지식과 경험을 내세우면 절대 순종 못하고 반발, 불평, 화, 무관심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먼저 파악하며 아는 것입니다  (3)  확실히 주의 뜻이라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는 두 가지 법이 있는데 하나는 ‘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지 말라’라는 법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 법에만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말씀에서 하라 하면 하는 것이며 아무리 하고 싶고 이익이 나오는 일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것이 순종입니다;  십계명에서 4-5 계명은 하라이며, 그 나머지 8 계명은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 법에 확실히 순종하는 진실하고도 충성스러운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순종에 요점은 충성입니다. 충성스러운 마음이 없는 자는 순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 충성심이 있는 자는 그 헌법을 잘 지키고 충심이 없는 자는 잘 안 지킵니다. 충성스러운 자는 주인이 보든지 안 보든지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합니다.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자는 하라, 하지 말라의 법에 잘 순종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해 놓으시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일대일 언약이 이루어졌는데 이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고 합니다. 당사자는 하나님과 인간 대표 아담입니다. 조건은 순종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조건을 실천하면 영생을 상으로 주실 것이오, 순종의 조건을 불이행할 때에는 영원한 사망으로써 형벌하실 것을 계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조건을 지키지 못하여 즉 순종치 않고 선악과를 먹음(뱀에게는 순종, 하나님께는 불순종)으로써 죽음이 오고 온갖 고통과 비극이 오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대표자가 순종치 않은 벌로 인하여 오늘의 억조창생이 다 그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순종이라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지대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눈앞에 두시고 기도하시기를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8-19)

 

종(doulos둘로스)은 말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종의 목적은 주인의 뜻대로 살고 주인을 기쁘게 하는데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한 것이나 우리가 종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였어도 우리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였다면 그것은 종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여기서 말하는 흔적(stigmata)이란 종의 신분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종이니 그를 건드리면 주인을 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해야 하며, 주인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고 나가야 합니다. 모든 수고를 다한 후에도 칭찬과 영광과 크레딧(신용)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주인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눅 17:10 “We are unprofitable servants: we have done that which was our duty to do.”)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6:16-17)

 

 노아는 산위에서 방주를 지으라고 할 때 즉시 순종했습니다. 만일 노아조차 불순종했더라면 그의 가정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기의 본토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떠났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 하실 때도 그대로 순종하니 믿음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18). 모세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성막과 모든 예배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25-30장은 명령이시고(God's design, 하나님의 설계도), 35-40장은 그대로 제작을 했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성막 위에 임했습니다. 모세의 충성이 하나님의 기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설계도를 ‘하나님의 뜻’(행 20:27), “하나님의 믿음”(the faith of God, 킹 제임스 역; 개정 개역에는 ‘하나님의 미쁘심’이라고 약하게 번역함)이라고 하며 “계획,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faith of Jesus)이라고 합니다. 딤후 3:15에 보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며 하나님 왕국을 건설하시는 뜻입니다.

 

사무엘상 15:21에는 사무엘이 사울 왕을 책망하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제사보다 순종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수양의 기름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사무엘은 지적하기를 “거역하는 것이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하여 고집하는 것이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으니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거절하는 고로 여호와도 왕을 버려 왕 되기를 배척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버림받은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위대합니다. 두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인생을 실패한 사람, 또 다른 한 부류는 인생을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인생을 실패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5분 이상 듣기가 어렵습니다. 우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 원망, 시비, 불평의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게 패배적인 신념을 가졌기에 그대로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반면에 승리하는 사람을 보세요. 그들의 입에서는 언제나 승리와 소망, 신념에 가득 찬 말이 나옵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그러나 대적하고 불순종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실패하고 맙니다. 전자는 믿음의 사람이고, 후자는 불신의 사람입니다. 불신의 사람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먹고 자고 입고 사는 것을 걱정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O ye of little faith)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27-33)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Nevertheless when the Son of man cometh, sha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눅 18:8 하)  참된 경건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기도, 믿음의 봉사, 믿음의 예배, 믿음의 찬양, 믿음의 가르침, 믿음의 선교가 본질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막 11:23-25)

 

믿음이 상실이 현대의 위기입니다.  서로가 점점 믿지 못하는 사회로 되어 갑니다. 자신도 믿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설 땅을 영원히 잃어버립니다.  믿음의 회복이 없으면 우리 마음에 평화가 없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로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며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악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4-5)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이어지게 만드는 힘이 믿음이다.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5-19)

 

3세기 랍비 시말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은 구약에 613개의 계명을 주셨다. 365개는 ‘하지 말라’는 부정적 계명이고 나머지 248개는 ‘하라’는 긍정적 계명이다. 이것을 함축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십계명이다. 이사야 선지는 이를 다시 6개의 교훈 안에 요약했다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여호와 경외, 11:2). 미가는 이를 다시 3개로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6:8) 함축했고, 하박국 선지는 그것을 다시 한마디로 요약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2:4)고 했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니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많은 증거를 받은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수소폭탄보다 더 폭발적이고 혁명적입니다. 믿음은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 자체를 바꿔놓기도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여 위대한 결과를 창출한 원동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비결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창조를 하신 후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고 찬양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세상 종말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누구도 이 물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노아 시절 홍수가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세 자녀를 통하여 자녀가 다시 세상에 퍼지게 됩니다.

 

오랜 후 인간의 마음은 다시 사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시켜 일을 중단한 후 사방으로 흩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조카 롯이 북방왕에게 인질로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신 318인을 거느리고 뒤쫓아가 빼앗긴 재물과 조카와 부녀와 하인들을 찾아온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하니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이에 여호와의 말씀에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에 횃불 언약을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이란 “확고하게 선다,”는 말입니다. 충성되고 신실한 종은 확실하게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두 번째는 지속적으로 관계성을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한 여행자가 그랜드 캐년 가장자리에 다가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는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사람 살려 주세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주 너의 하나님의 말이다” ‘당신이 거기 계시다니 정말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구해주기는 하겠지만 그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에도 나갑니다. 또 성경도 읽고, 매일 기도 시간도 가집니다. 헌금도 주에 몇 백 불씩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아니, 네가 정말 날 믿느냐고?”  ‘제가 얼마나 주님을 믿는지 모르실 거예요. 저는 주님을 진정 믿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그렇지만 ... 주님 ...”‘정말 날 믿는다면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잠시 동안 그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소리치기를 ‘거기 위에 누구 다른 이 없소?’ 믿는다고 하면서도 100% 믿지 못합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보다는 나뭇가지에 의지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중국 내지 선교에 헌신하여 많은 사람을 전도한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 목사님이 임종을 몇 달 앞두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그의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몸이 너무 쇠약해서 걸을 수거 없을 지경이라네. 그리고 나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심지어 기도도 못하고 있네. 단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팔에 안긴 어린 아기와 같이 누워 있는 것이라네. 그리고 그 어린 아기가 하나님을 믿듯이 나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라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태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곤경에 빠져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더 강해지려고 애쓰지 말아라. 단지 그냥 그대로 너의 믿음을 지키고 있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충성의 열매를 주님께 드려 주님을 기쁘게 하며 온전히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히브리어 강해] 호렙산 아말렉전투-여호와닛시(출 17:8-16)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호렙산 아말렉 전투-여호와 닛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왔을 때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했습

bedesd15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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