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성경공부

[사복음서 성경공부자료] 공생애 사역 이전의 예수님에 관한 연구

성령의 능력 2023. 5. 2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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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에는 예수님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공생애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많이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생애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사생애가 30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입니다. 사생애의 삶은 요셉의 아들로서 사셨고 공생애의 기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았습니다.  

 

공생애 사역 이전의 예수님에 관한 연구  

 

유아 시절의 예수

복음서는 공생에 이전의 예수에 대해서 거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마가와 요한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공생애 이전의 예수를 연구함에 있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정경 가운데서)는 마태와 누가의 전승뿐이다. 예수의 생애 33년 가운데서 드러나지 않은 30년 동안의 예수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생애 이전의 예수의 삶에 대한 책들이 나와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감추어진 예수의 생애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적, 성서적 근거가 희박한 것이 사실이며, 학문적 가치가 없다. 많은 문학서들도 이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단순한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공생애 이전의 예수에 대하여 바로 알기 위해서는 1세기 문헌과 유대인들의 관습과 종교, 사상, 문화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며, 그러한 배경에서 복음서 이전의 예수의 삶을 조명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신비에 차있는 공생애 이전의 예수의 삶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으며, 공생애 동안의 예수의 사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의 탄생

마구간(?)에서 태어나시다.

누가는 마리아가 여관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구유에서 해산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구유"라는 표현 때문에 예수의 탄생 장소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되어 왔다. 예수는 소나 말이 있고 여물통이 놓여있는 그리고 건초더미가 쌓여있는 그런 마구간에서 태어나지 않으셨다. 누가는 예수가 마구간(stable)이 아니라, "구유"(manger)에서 태어나셨다고 전하고 있다(누가복음 2장에 구유라는 표현이 3번 나오나 마구간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구유가 있으니까 그곳은 당연히 마구간이 아니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추측일 뿐이다.

1세기에는 아직 짐승들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로서의 외양간 같은 건물은 없었다. 예수께서도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서 울타리 정도를 쳐놓은 양우리 같은 곳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면 이 구유가 놓여있던 곳이 어디인가?  여관 안 마당이었다. 예수 당시에는 사람들이 여행할 때 대부분 짐승을 이용하여 짐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은 종들도 데리고 갔다. 날이 저물어 여관에 들게 되면, 주인은 방에 들어 묵게 되고, 종들이나 짐승들은 밖에서 밤을 지냈다. 따라서 여관에서는 그들을 위한 시설을 대부분 안쪽 마당에 마련해 놓았다. 종들은 짐승들의 짐을 풀어주고 그것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리고 짐을 지키면서 잠을 자야 했다. 가난한 사람들도 방에 들지 못하고 이곳에서 밤을 지냈다. 물론 이 여관 마당에는 여기저기 많은 구유들과 건초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짐승들로 붐볐다.

마리아와 요셉도 여행 가운데 있었다. 여관에 들기를 원했지만,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방에 들지 못하고 종들과 짐승들과 함께 여관 마당에서 밤을 지내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밤을 지내기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바로 그곳에서 해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구유가 이제 막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눕히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은 외양간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여관 뜰이었던 것이다.  아기 예수는 짐승들과 그것을 지키는 하인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태어나셨던 것이다.  

모든 그림들은 동방박사들이 마구간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거기에는 한결같이 소와 나귀가 등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사야서에서 발견된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1:3). 즉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메시아의 탄생과 연관 짓는 것이다.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눅 2:8-20)

누가는 한밤 중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이 전해준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듣고 달려가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는 전승을 전해주고 있다.  탈무드에 의하면 보통 양들은 광야를 제외하고는 방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광야 지역이 아니었다. 따라서 양을 방목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목자들은 들에서 방목하는 양들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이 목자들은 어떤 목자들이었으며, 그들이 치던 양들은 어떤 양들이었는가?  미쉬나(오랜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승들을 200년경에 편찬한 유대 문헌)에 따르면 일반 양들은 아무 곳에서나 방목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성전에 희생제물로 바쳐질 양들만 방목을 하도록 하였다(Baba Qamma 7: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베들레헴에서 기르던 양들은 대부분 성전에 바쳐질 희생제물들이었다(Shekalim 7:4). 따라서 이 양들은 들에서 방목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목자들이 치던 양들은 바로 희생제물로 바쳐질 특별한 양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질 양들을 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특별히 성별 된 사람들이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목자들은 보통 말하듯이 가난해서 밤에도 양을 돌보아야 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별 된 목자들이었던 것이다.  

유아 시절의 예수

할례를 받다

예수는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그랬듯이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받았다(눅 2:21).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이삭 때부터였다. 유대인들은 이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새로 태어난 이들은 이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할례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유대 공동체에서 축출하였다. 할례는 난 지 여드레만에, 즉 안식일을 한번 지나고 난 다음에 행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일찍 할례를 행하도록 한 것은, 할례는 빨리 베풀수록 그 고통이 덜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도 이 규정에 따라 난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그러나 유대법은 만일 아이가 아프면  할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진 다음에 할례를 베풀도록 하였다(미쉬나, Shabbat 19:5).

한편 할례는 아버지가 베풀도록 하였다. 요셉은 나사렛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운데서 예수에게 할례를 베풀며 전통에 따라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 "당신의 계명으로서 우리들을 성결하게 하시고 이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게 함으로 이 아이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언약 속으로 들어가게 하심을 찬양하나이다." 이어서 동네 사람들은 "이 아이가 언약 속으로 들어간 것같이 이 아이로 하여금 토라를 연구하게 하시고 후파(결혼식을 거행하는 야외에 세워놓는 텐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시고 선을 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탈무드, Shabbat 137b).

명명식

요셉은 갓난아기에게 할례를 행하고 나서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주었다(2:21). 그러나 이 이름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었다. "예수"라는 이름은 헬라 식 표기로서, 예수의 본래 이름은 "예슈아"이다. 예슈아라는 이름은 여호수아와 같은 어근으로서, 구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다. 나사렛에서 예수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파편에 예슈아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사가랴도 요한에게 세례를 주고 나서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주었다. 성서의 관례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곧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1세기 당시에 할례 시에 이름을 지어주는 관례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몇 세기 후에는 그것이 관례가 되었다.

대속제물을 바치다(눅 2:22-23)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지 33일 만에 남편과 함께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아이를 대속하기 위하여 "산 비둘기 한 쌍이나 집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는 규정에 따라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누가는 실수를 하였다. 이 제물은 대속제물이 아니라 정결 예식을 행한 산모가 드리는 희생제물이다. 그러나 누가는 여기에서 대속제물과 산모가 바치는 희생제물을 혼동했던 것이다.

한편 이 첫 아이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대속제물 대신에 속전으로 아무 데서나 5세겔을 바칠 수 있었다. 예수의 부모들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들처럼 맏이를 속량 하기 위하여 아기를 데리고 성전에 올라간 예는 구약 성서나 신구약 중간기 문헌, 그리고 랍비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를 방문하다( 2:1-12)

대부분 동방박사들이 예수가 탄생하시던 날 밤에 예수께 경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마태는 동방박사들이 예수께 경배하던 날 밤에 예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을 갔다고 전하고 있다( 2:12-15). 만일 그들이 예수가 탄생한 날 밤에 예수를 찾아갔다면,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지 33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정결 예식을 행하고 대속제물을 드렸다고 하는 누가의 전승과 상충한다. 따라서 마태와 누가의 전승을 다 받아들인다면, 예수의 정결 예식이 끝나기까지 동방박사들은 예수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마태는 동방박사들이 별이 머무른 ""에 들어가 예수께 경배했다고 전하고 있다( 2:11). 만일 이 일이 예수가 태어나신 밤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누가의 말구유 전승과 서로 상충된다. 그래서 학자들 가운데는 예수가 태어난 곳은 말구유에서였고, 동방박사들은 그 후에 마리아가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던 ""으로 예수를 찾아갔던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 몇 명의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경배하기 위하여 왔는가?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왔도다" 대표적인 성탄 송 가운데 한 곡이다. 그러나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복음서에는 그들이 몇 명이었는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2). 대부분 그들이 세명이었다고 믿고 있으나, 어거스틴이나 크리소스톰 같은 이들은 그들이 12명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바친 예물이 세 가지 종류였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동방박사들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무엇이었겠는가라고 질문하면 누구나가 자신 있게 낙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그들이 무엇을 타고 왔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낙타를 타고 왔다고 교회에서 가르쳐온 이유는, 이사야서(60:6)에 근거한 것이다. 이사야서에 보면 마지막에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할 때 세계 곳곳에서 많은 민족들이 금과 유향을 싣고 예루살렘에 올라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때 그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낙타로 되어있다. 동방박사들도 황금과 유향을 가지고 왔는데, 교회에서는 예수의 탄생 사건과 예루살렘의 회복 사건을 연관시켜서 동방박사들도 낙타를 타고 왔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것을 미드라쉬(Midrash)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서 해석 방법이다.

한편, 동방박사들이 가지고 온 예물들은 위에서 언급한 황금과 유향 외에도 몰약이 있었다. 학자들 간에는 마태가 동방박사들이 몰약을 예물로 가져왔다는 이야기의 배경을 열왕기상 10장에서 찾기도 한다. 여기에 보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올 때 향료를 가져왔다. 당시에 스바의 향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이 몰약이었다. 사실상,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예물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어울리는 것들이 아니었다. 이 예물들을 각 나라의 특산물로도 볼 수 있으나, 마태가 이 세 가지 예물을 특별히 제시한 것은,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가족이 피신 간 곳은?( 2:13-15)

예수의 가족이 피신 간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이집트의 어느 곳으로 갔는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자주 피난처로 이용되었다. 1세기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전 세게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이집트에도 많이 살고 있었다. 당시에 이집트에서 가장 큰 도시는 북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였는데, 인구가 백만이 넘었으며, 삼분의 일 이상이 유대인이었다. 또 한 곳은 나일강 남부에 위치한 엘레판틴이라는 곳으로, 그곳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며 살고 있었다. 예수의 부모들은 동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피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엘레판틴보다는 알렉산드리아가 더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엘레판틴이 알렉산드리아보다 훨씬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아 대학살?( 2:16-18)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메시아의 탄생은 분명히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듣고 "당황하였다"( 2:3). 그 이유는 헤롯이란 인물 때문이었다. 새로운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헤롯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헤롯은 자신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베들레헴 주변의 2살 이하의 아이들을 다 학살하도록 하였다. 헤롯은 그런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요인들을 300명 이상 학살하였으며, 나중에는 그의 아내와 어머니 세 아들까지도 죽였다. 그가 죽을 때에는 이스라엘의 요인들을 다 모아놓고서, 그가 죽는 순간에 그들도 모두 한꺼번에 죽이도록 여동생에게 부탁을 할 정도로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유아들이 학살을 당했을까? 1세기 당시의 인구와 연령 비율로 미루어 볼 때, 이때 학살된 아이들은 20여 명 남짓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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