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구약성경강해

[시편 119편 고난주간 설교말씀] 고난의 유익(시 119:67-71)

성령의 능력 2021. 4. 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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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119편 고난주간 설교말씀 중에서 고난의 유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영원히 죄악 가운데 죽었던 인생인데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나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아픈 시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풍파를 맞아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거나 낙망하게 됩니다. 망연자실하여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고난을 통해서 더 큰 비전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고난이 없었다면 깨닫지 못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고난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그것으로 나에게 더 큰 영적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이 시간 우리가 육체의 고난을 통해서 영적 유익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목: 고난의 유익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말씀:  시 119:67-71

 

요    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주 제: 고난 주간의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뜻을 깊이 묵상하며 동참하자

 

시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 119: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시 119: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신구약 성경에서 제일 긴 장은 시편 119편으로 176절입니다. 제일 짧은 장은 시편 117편으로 2절입니다. 그런데 시편 117편과 119편 사이에 있는 시편 118편은 신구약 1189장의 제일 한가운데 있습니다. 시 118편에서도 중심이 22-25절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2)이 신구약 성경 전체의 한가운데 있는 요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건축자의 버린 돌이며, 주님의 부활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the head stone of the corner)입니다.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을 예언한 말씀으로 이 말씀이 공관복음서에 다 나오며 (마태 21:42, 마가 12:10-11, 누가 20:17), 행 4:11, 엡 2:20-22, 벧전 2:7에도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퉁이의 머릿돌은 집이나 건물의 기초에 박혀서 두 벽을 연결하며 모든 건물이 이 돌에 모든 힘을 두고 있는 주춧돌을 말합니다. 이 돌이 빠진다면 건물이 붕괴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모퉁이 돌은 제일 먼저 놓여지는 돌로서 다른 돌들은 모두 그 돌 다음에 놓여집니다. 또한 이 돌은 건물을 지지하는 돌입니다. 모든 다른 돌들은 그 위에 놓여지며 그 돌의 도움을 받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사람이 건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기초로서, 그 위에 놓여지지 않은 모든 것들은 다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버린 건축자들이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들, 장로들, 바리새인들, 이들의 사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군중들,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군인의 백부장과 그 수하의 군병들, 도망친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인본주의자들, 무신론자들, 공산주의자들, 과학주의자들, 합리주의자들, 사이비 이단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 자기 생각, 고정관념으로 모래 위에서 무너질 집을 짓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버림받은 돌 즉 그리스도는 버린 자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며 버린 그들을 가루로 만드는 심판의 돌이 될 것입니다(벧전 2:8)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하여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를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엡 2:20-22). 그런데 가장 위대한 최고의 건축 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건축자들의 행위를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들이 버린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히 멸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사 28:16)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것입니다(시 118:23).

 

이 승리의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입니다.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시 118:23). 사람들이 버린 돌을 집모퉁이의 돌로 삼으신 것이 바로 십자가요 부활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역전승이며 믿음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 바로 “호산나” (히브리어 발음으로 ‘호쉬안나’ Hoshanna הושענה = Hosanna, 그리스어 ὡσαννά, hōsanná)입니다. 문자적인 뜻으로는 “제발 구원하소서 Save, I pray”)입니다. 시 118:25에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간의 모든 죄짐을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막절(Sukkot 숙곳) 일주일간 매일 아침마다 호산나 기도회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러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많은 군중들이 주님을 메시야로 영접하며 부른 승리의 찬송이었습니다 (the Messiahship of Jesus on his triumphal entry into Jerusalem).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 성 동쪽에 위치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말씀하시기를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마 21:1-3) 이는 대언자[=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기록되었으니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 21:5, 사 62:11, 슥 9:9)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 곧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님께서 그 위에 타시니 군중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군중들이 소리 질러 말하기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Hosanna to the Son of David: Blessed is he that cometh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마 21:9, 막 11:9, 눅 19:38, 요 12:13)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우리 교회로, 우리 가정에, 우리나라에 메시아로 영접하며 환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왕이십니다.

 

찬송 141장 (통 132장)

 

1) 호산나, 호산나 다 노래 부른다. 수많은 아이들이 즐거운 노래로

그 품에 안으시고 복 주신 주님께, 온 몸과 마음 드려 주 찬양합니다

2) 저 감람산 길 따라 큰 무리 따른다. 그 손엔 종려가지 흔들며 외친다

만왕의 왕 주 예수 나귀를 타시고 이아들 노래 소리 다 받아 주신다

3) 호산나 그 옛 노래 우리도 부르자 주 예수 우리 구주 우리의 전능왕

온 몸과 마음 다해 목소리 높여서 영원히 기쁜 노래 주앞에 드리자 아멘

 

오늘은 또한 고난 주일(Passion Lord’s Day)이라고도 합니다. 내일부터 한 주간은 고난주간(The Last Week = Holy Week, The Passion Week)으로 지킵니다. 사순절 여섯 번째 주간은 일 년 중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주간입니다. 매일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부활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1) 월요일 – 베다니에서 조반을 드시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 들어오시는 길에 열매가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당시 형식만 남은 유대교 및 주님을 죽이려 했던 이들의 믿음 모습)를 저주하심(마 21:18-19). 성전을 정화하심(눅 19:45-48), 권위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심(마 21:23-28),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심(눅 20:45-47). 과부의 연보를 칭찬하심(눅 21:1-4). 아침에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말라있는 모습을 보시고 믿음의 기도의 위력에 대해 교훈하심(막 11:20-22).

 

2) 화요일 – 종말 교훈을 하심(마태 24-25장),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를 하심(눅 19:41-44, 히 5:7). 천국 복음을 마지막으로 전하심.

 

3) 수요일 – 이날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감람원 Olivet) 동산에서 종일 침묵의 기도를 하신 날입니다.

 

4) 목요일(세족 목요일 Maundy Thursday)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요 13:1-35). 최후의 만찬을 하심(마 26:17-30), 가룟 유다가 배신을 함(눅 22:1-6),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심(마 26;36-46)

 

5) 금요일(성금요일 Good Friday) – 새벽에 로마 군병들에 의해 체포되심 (마 26;47-56), 유대인의 산헤드린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빌라도 심문을 받으심(마 14:53-72), 사형언도를 받으심(마 27:11-31). 십자가 형에 처하시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행진하심(Via Dolorosa “고난의 길”),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 만에 운명하심(마 27:32-56),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심(요 19:38-42)

 

6) 토요일(성 토요일 Holy Saturday) – 무덤에서 안식하심으로 구약의 안식일을 완성하심. 지옥에 내려가셔서 구원의 마지막 기회를 주심(행 2:31, 엡 4:8-10, 벧전 1:11-12, 4:6)

이번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금메달 따기 위해 고된 훈련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발명합니다. 높은 산 정상에 가기 위해 험난한 등산을 해야 합니다. 명문학교 입학과 졸업을 위해 형설지공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 전에 험한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래에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하늘 상급이 큽니다(롬 8:18, 마 5:11-12). 시 119편 기자(에스라로 추정함)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영국의 대설교가 찰스 H. 스펄전(Charles H. Spurgeon, 1834-1892) 목사님은 “예수님 우리는 베들레헴 말구유로부터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거룩한 생애를 통해 명백하게 나타난 당신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당신을 따라갑니다. We remember thy love, O Jesus, as it was manifest to us in thy holy life, from the manger of Bethlehem to garden of Gethsemane. We track thee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기자도 고백하기를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67, 71, “Before I was afflicted I went astray: but now have I kept thy word. It is good for me that I have been afflicted; that I might learn thy statutes.) 절대적으로 동감하는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고난하면 욥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스(Uz, 오늘날 터키 북쪽) 땅의 욥도 인내로 고난을 이겨내면서 가장 소중한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받고 사탄은 하루아침에 욥의 모든 재산을 거두어 가며, 열 명의 자녀들을 죽여버립니다(물론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심). 맏아들 집에서 모든 자녀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을 때, 회리바람(tornado)과 같은 큰 바람이 이 집의 네 모퉁이를 넘어지게 하여 열명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소식을 듣고 나서 욥의 행동은 감동적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0-22) 재산과 자녀를 치면 욥은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고 자신했던 사탄은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욥이 행동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솔직하게 하나님께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 앙심을 품습니다. 사탄의 특징입니다.

 

첫 번 재앙 후 며칠이 흘러갔는지는 모릅니다. 하루는 천상 회의에 온 사탄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여기서 보니 ’까닭 없이“ (without cause) 욥은 재산과 자녀를 하루에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세 친구들은 까닭이 있기에 그런 재앙이 왔다고 욥을 괴롭혔습니다. 주의 종들은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번에 사탄은 그의 건강을 쳐보라는 것입니다. 아직 건강하니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건강의 문제가 생기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꿀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 2:4-5) 하나님은 자신 있으셨습니다. 이것마저도 허락하시면서, 욥의 건강을 무너뜨리는 일을 사탄의 손에 붙이시면서 당부하시는 것은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 2:6 but save his life.) 중요한 말씀입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sore boils)이 나게 했습니다. 그 당시 불치병에 해당하는 악성피부병은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병이었습니다. 이럴 때도 욥은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고 자숙합니다. 너무 간지러우니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는데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한 아내가 쏘아붙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욥 2:9 Dost thou still retain thine integrity? curse God, and die.) 그동안 내조를 잘했던 아내, 재물과 자식을 다 잃어도 침묵을 지켰던 아내가, 욥의 건강상태가 최악으로 가는 것을 보고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남편이 바보스럽기도 하고 해서 뱉은 말이었습니다. 태초에 에덴동산 시절 뱀이 하와에게 먼저 접근하여 남편은 무언의 공범자가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욥은 아내를 향하여 담대하고 단호하게 대합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욥 2:10) 이런 가운데서도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했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0-11)

 

고난 후 욥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욥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아직도 욥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음)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습니다. 선물을 줄 만큼 그의 재산도 회복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42장 12절 이하에 보니 구체적으로 두 배로 회복된 재산을 열거합니다. 양이 14,000마리, 약대 6000마리, 소 1000 겨리, 암나귀 1000마리를 두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식도 10명을 아내로부터 낳게 되는데 지난번 먼저 천국에 보낸 자녀들 수처럼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는데, 첫째 딸은 여미마, 둘째 딸은 긋시아, 셋째 달은 게렌합북이라 지었는데 그 미모가 당대 절세미인들이었습니다. 욥은 이 세 딸들에게도 아들들처럼 산업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축복은 전에 누리던 생활보다 갑절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140세 살면서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고 나이 늙어 기한이 차서 죽는 복을 누렸습니다.

금붕어는 어항 안에서는 3천 개 정도의 알을 낳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1만 개 정도 낳습니다. 열대어는 어항 속에서 자기들끼리 두면 비실비실 죽어버리지만 천적과 같이 두면 힘차게 잘 살아갑니다. 호도와 밤은 서로 부딪혀야 풍성한 열매를 맺고, 보리는 겨울을 지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알곡이 들어차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야 바다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야 대기가 정화됩니다. 평탄하고 기름진 땅보다 절벽이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꽃이 더 향기롭고 귀합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순전한 나드(spikenard, 막 14:3),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값비싼 나드(spikenard, 요 12:3)는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절벽에서 자라나는 풀에서 채취된 감송방향(甘松芳香)이라고 합니다. 늘 따뜻한 곳에 자란 나무보다 모진 추위를 견딘 나무가 더 푸릅니다. 일송정의 소나무처럼. 열대지방의 사람들은 대체로 게으르나, 한대지방의 사람들은 강인하고 고난을 잘 견뎌 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후의 축복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난에 적극 동참하셔서 희망찬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고난주간에 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좇아갑시다(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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