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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설교 말씀] 가룟 유다 대신 사도로 뽑힌 맛디아(행 1:12-26)

성령의 능력 2024. 1.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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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설교 말씀은 가룟 유다 대신 사도로 뽑힌 맛디아가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맛디아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사명을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 사도로 뽑힌 맛디아(행 1:12-26)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안식일의 알맞은 길이란 한 2킬로 정도로 본다. 안식일에 이 이상 걸어선 안 된다. 제한이라는 말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함이다. 성수주일의 미덕이 다원화한다고 소홀함이 크다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이 일을 기념하게 하심이라 속되게 해서는 안식일을 소홀히 함이다.

[13]-[14]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들로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다락이 상당히 큰 듯하다. “모인 무리가 한 120명이나 되더라”(15)를 보아 알겠다. 만찬을 잡수신 곳인지 모른다. “예비된 다락방을 보이리니”(막 14:15) 그렇다면 저들에게는 더욱 큰 의의가 있는 방일 것이다.

거기 모인 제자의 명당이 나오는데 이것이 네 번째 명단이라(마 10:2-4, 막 3:16-19, 눅 6:12-16). 저들의 특성은 다 알려졌거니와 그 하나하나를 집어 보면서 내 명단도 여기 들었을까 무엇하는데 기도하는 데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4) 골방에 살 것을 지로 하심이다. “항상 기도하고”(눅 18:1) 더욱 복음사명을 감당함에는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이는 기도에 있을 뿐이다. 여자들의 명단은 없다.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요 19:25) “갈릴리에서부터 쫓아온 많은 여자”(마 27:55) “구사의 아내는 요안나 또 수산나”(눅 8:3)등의 이름도 들만하다.

또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 그들의 이름도 없다. 다 참예했는지 혹 빠진 이가 있는지 모른다.

나도 모모들 속에 드는가 개별적으로 이름이 기록되는가 하나님이야 아시겠지만 이름이 녹명되어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기도의 명단에 기록된 기록이 있을 때 그 영광은 큰 것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2:46)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4:24)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5:12) “너희 중에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들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어떤 마음에 같이 했을까 승천하실 때에 들은 대로 오신다는 그 마음에 합치됨이다.

주를 기다리는데 일치한 것이라. 실로 이는 모든 신부들에게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중국어 성경엔 專務祈禱라 번역됐다. 주님 재림을 갈망하는 기도이니 그 간절함, 그 기도의 힘은 대단함이다.

주의 재림은 갈망해서 아버지의 약속(눅 24:49)을 기다려 성령의 권능으로 땅 끝까지의 주님의 증인이 됨에 있는 것이다. 모든 기도 주님의 분부대로 저들의 기도의 실천은 우리 모든 기도의 표준인 것이다. 이렇게 기도했으므로 약속하심을 받아(행 2장) 힘 있는 증인이 된 것이다. 사도행전을 위시하여 교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함이다.

[15]-[16] 모인 무리의 수가 한 120명이나 되더라 그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 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보선의 필요는 성경에 응함이다. 120명 모인 회중에서 베드로가 사회자로 발언함이니 형제들아 여러분들이여로 받을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통하여 그 말씀이 사람의 입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여기서 보여준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본장에는 유다를 지로 한 말씀이 응함이 마땅하다. 이미 성령이 말씀하신 대로 응했음이 보선의 필요임을 말한다.

[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유다의 ① 수 가운데 한 사람 ② 직무까지 맡았던 자이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으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마귀 역사를 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25) 맡은 직무를 버렸다. 교인의 수에 참예했다가 유다의 길을 걸은 사람도 때로 나타난다. 유다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인가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받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유다의 위에 ①②에 이어 ③ 불의의 삯으로 밭은 샀다. ④ 배가 터져 창자까지 흘러나왔다.

유다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더라”(요 12:6) “저희의 신은 배요”(빌 3:19)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로 16:18) 유다는 선생을 판 은 30을 도로 저 교권자들에게 돌리니 저들이 안 받는지라(마 27:3-4).

이를 성전에 던지고 목매어 죽었다고(마 27:5) 저들이 그것을 갖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마 27:7)

[19]-[20]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 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되었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소서 하였도다

유다의 던진 은 30으로 산밭을 아겔다마 곧 피 밭이라는 뜻이니 유다가 거기서 죽어 피를 흘린 연고라고 예수의 피를 흘리게 한 유다가 후회했으나 회개하지 못하고 죽은 그 피는 애석만 하다.

유다는 아겔다마를 사고 갔다. 압살롬은 자신의 비석을 세우고 갔다(삼하 18:18). 거처로 황폐케(시 69:25) 유다의 멸망으로 직분을 타인 이는 시 109:8의 인용으로 받은 직분은 보선으로 타인이 취한다.

[21]-[22]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실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보선의 자격은 세례요한 때부터 오늘까지 우리와 함께 있던 자로 정한다. 교회서 직분을 택할 때에도 “새로 입교한자도 말찌니”(딤전 3:6) 여기에 기인한 듯하다. 말하자면 역사성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려야 한다.

보선된 이가 할 일은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 되게 하심이다. 부활하신 사실을 위하여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 역사가 있음이다. 사도행전은 부활의 증거의 기록이다. 2:32, 3:15, 4:10, 5:30, 10:40, 13:33, 17:18, 25:19, 26:23

[23]-[26]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열둘은 주님이 친히 택하심이다(마 10:1). 이번에 유다 대신 보선도 주님이 하셔야 한다. 그런고로 기도한 바이다. 자격자는 두 사람뿐이다. 요셉과 맛디아였다.

이제 드린 기도문을 보면 “뭇 마음을 아시는 주여”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렘 17:10)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오”(요 2:24) 이 주님께 친히 선택하시기를 기도함이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우리와 같이 주의 부활 증거 할 봉사자인지 보여 주옵소서 기도였다. 다시 천명함은 선택의 목적이 주의 부활을 증거 함에 있다. 나의 신앙생활의 표현은 주님의 죽었다 사심을 다른 이에게 나타냄에 있다는 말이다.

다시 유다에 대한 말 중에 ① 수에 참여했고(17) ② 직무를 받았고(17) ③ 불의의 삯으로 밭을 샀고(18) ④ 배가 터져 죽었다. ⑤ 이를(직무) 버리고(25) ⑥ 제 곳으로 간 것이다.

유다는 자기 갈 길이 있음이니 그 생각 그 생활 그 행함에 부응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요 13:30) 그는 가는 곳이 있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2) 여기 가지를 못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부겔로, 허모게네도(딤후 1:15) 바울을 버렸다.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3)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목숨을 버리면 찾는다. 이런 버림이 마땅하다.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 10:18)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그 고상한 버리심은 자기 그 권세로 하심이니 생명의 소유자는 이 권세가 있기에 순교도 한다.

또 얻을 권세도 있음이니 유다가 비천하게 버린 것을 크게 구감을 삼을 것이다. 제 위치를 정욕 탐욕으로 버리는 자들을 제 곳으로 갈 밖에 없다. 마침내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었다. 사도의 수에(17) 그가 유다 대신들이었다. 이후에 맛디아의 말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 위에 어린양의 12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게 21:14) 요한은 그 이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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