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로마서 12장 강해 성경말씀] 그리스도인의 생활(롬 12:1-21)

성령의 능력 2022. 5. 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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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적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의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교회에 대한 성도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사회생활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롬 12:1-21)

 

1-2, 헌신(獻身)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구원받은 자의 삶에 대해 교훈하면서 첫째로 헌신에 대해 말한다. 헌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신(獻身)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몸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우리의 손과 발, 우리의 재능과 목소리와 힘, 우리의 시간과 돈,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 포함한다. 이런 것들은 다 우리의 몸과 같이 움직인다. 몸이 없으면 이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몸을 드리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헌신의 동기 혹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복음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 사랑, 은혜의 소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은혜의 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크신 자비와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바울은 헌신을 산 제사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제사와 대조하는 말이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주신 오늘날에는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특히 구약시대의 번제는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상징하였다. 물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헌신으로 이루신 대속 사역을 상징했으나, 또한 성도들의 온전한 순종과 헌신의 삶도 상징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신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이어야 한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악 된 삶과 구별된 삶,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죄를 짓지 않는 삶이다. 이런 헌신의 삶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불렀다. ‘영적이라는 원어(로기코스)합당한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대한 어떤 형식의 예배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합당한 예배인 것이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헌신의 방법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본절에서 헌신의 방법으로 몇 가지를 교훈한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은 언제나 불경건하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적과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와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성도가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선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본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없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릴 수 없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지만, 그것은 또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였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했다(2:40).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우리는 또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마음이라는 원어(누스)생각이라는 뜻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생각은 이 세상 중심적이고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고 정욕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져서 성경에 교훈된 대로 하나님과 천국과 영생을 생각하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것만 생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변화를 받으라는 원어(메타모르푸스데)는 현재 명령형으로 우리의 생각의 변화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야 함을 보인다. 성도의 영적 성장 곧 성화의 시작은 생각의 변화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생각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뜻이라고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그 내용이 선하며 그 결과도 선하다. 또 우주의 왕이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신다. 때때로 그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달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115:3).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밝히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여기 조금, 저기 조금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삶에서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신구약 66권을 열심히 읽고 듣고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순종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헌신함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獻身)하자. 우리는 우리의 손과 발을, 우리의 재능과 목소리와 힘을, 우리의 시간과 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며, 우리의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바치자. 예수께서 구약의 번제물같이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온전히 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온전히 드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여 헌신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원함으로 자신을 주셨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되셨고 우리는 그 의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자비와 사랑에 보답하여,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온전히 드리자.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헌신이다. 하나님의 그 뜻은 성경에 충족하게 증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며 그 모든 말씀을 다 믿고 그 모든 말씀을 다 소망하고 그 모든 말씀을 힘써 행하자. 참된 헌신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3-13, 그리스도인의 생활

[3-5]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에이스 토 소프로네인)[건전한 생각으로](BDAG)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범사에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지혜롭게라는 원어(에이스 토 소프로네인)건전한 생각으로라는 뜻이다. 우리는 무슨 일에 관해서 건전한 생각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생각의 통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다.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이 있다. 각 지체가 자기 위치를 떠날 때 몸의 분열이 생긴다. 눈이 입을 무시하고 입노릇을 하려 하거나 손이 발을 무시하고 발 노릇을 하려 한다면 혼란이 생길 것이다. 각 사람이 자기 위치를 지키고 충성할 때 교회는 평안할 것이나, 자기 위치를 벗어나는 자들이 생길 때 교회 안에는 시험과 다툼이 생길 것이다.

[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勸慰)하는 자면 권위(勸慰)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하플로테스)[단순함, 너그러움]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각 사람은 하나님의 주신 은혜대로 자기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 예언하는 자는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한다. 예언은 오늘날 설교에 해당된다. 오늘날 설교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여 거기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전해야 한다. 섬기는 일은 섬기는 일로 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섬기는 자들이다. 가르치는 자와 권위(勸慰)하는 자도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 구제하는 자는 단순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해야 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9-10]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선을 붙들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들어야 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 거짓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거짓 없는 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다. 악은 남에게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해를 끼치는 것이며 선은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다. 성도는 악을 버리고 선한 일을 힘써야 한다.

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대속하셨기 때문에 서로 존경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존중할 뿐 아니라, 서로 복종하는 심정으로 행해야 한다. 에베소서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또 우리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살아야 한다. 성경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했다(6:6). 우리는 세상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직장인은 직장의 일에서, 자녀들은 학교 공부에서 부지런해야 한다. 주부들은 가사에 충실하여 제한된 생활비로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가정을 잘 꾸미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하며, 또 지교회에 속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임들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고 전도와 봉사의 일에도 힘써야 한다.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또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해야 한다. 성도의 소망은 주의 재림과 천국과 부활과 영생이다. 이것들은 성도의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또 우리는 환난 중에 참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질병들, 경제적 곤란, 자연적 재난, 핍박 등 여러 가지 환난들을 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 중에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권자 하나님께서 그 환난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 환난 중에서도 우리를 지키실 것이 확실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 환난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키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한다. 우리는 평안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지만, 환난 날에 특히 우리의 기도 생활이 약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다. 또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길이다. 우리가 기도에 항상 힘쓰면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낙심치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13]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필요한 것들을 함께 나누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우리는 또 성도의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누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한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다(15:7-11; 요일 3:17). 또 우리는 어려운 교우나 이웃, 또 손님이나 나그네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후하게 대접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감독 혹은 장로의 자격 요건에 대해 가르치면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들었다(딤전 3:2).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교훈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을 따라 바르고 건전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기억하고 결코 자기 위치를 벗어난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위치에 맞게, 건전한 생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주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고 선행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서로 우애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며 또 피차 복종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순종해야 하며, 또한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녀를,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부지런하게 살고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 일에도 무슨 일이나, 죄악된 일이 아닌 한, 열심히, 부지런히 해야 한다. 게으른 것은 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법이다(22:37-38).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읽는 것과 시시때때로 기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소망,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복된 천국과 영생을 확신하고 소망하고 즐거워하며 또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들을 참아야 한다.

우리는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을 돌아보며 구제하기를 좋아해야 한다. 형제 사랑, 이웃 사랑은 구제와 선행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야고보서 1:27은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일서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4-21, 선으로 악을 이기라

[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성도는 또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사랑으로 대하고 그들을 축복해야 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내용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며 너희를 모욕하고](전통본문)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물론,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해야 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우리도 과거에 구원받기 전에는 그런 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며, 셋째로 그들도 어느 날 우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며, 넷째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모든 죄도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셨을 것이므로 우리가 그들을 저주하는 것은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친히 이 일을 실천하셨고 집사 스데반도 그러하였다.

[15-16]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인간의 삶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삶이다. 결혼, 출산, 취직, 승진 등의 일도 있으나, 질병, 교통사고, 죽음과 장례식 등의 일도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성도는 이웃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격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할 줄 모르고, 또 다른 사람이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할 줄 모르는 것은 건전한 인격자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음과 감정을 같이해야 한다.

성도는 겸손히 마음을 같이하고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아야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다. 사람의 가치는 외모나 재산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신분에 있지 않고 그의 인격성, 경건성, 도덕성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경건하고 도덕적인 인격이 되어야 한다.

잠언 18:1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말한다. 옛날 모세 시대에, 레위의 증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의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유명한 족장들 250명과 함께 모세를 대적하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분수에 지나치게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인다고 비난했다(16:1-3). 그러나 모세는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고 말하였고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구한다고 지적하며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라고 말했다(16:7, 10-11).

교만한 자들은 항상 불평하고 원망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항하지만, 겸손한 자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평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와 질서에 순응한다. 유다서에 보면, 이단들의 특징은 원망하고 불만하며 당을 지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고 대항하는 것이었다(16, 19). 우리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17-18]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5:39-42). 하나님께서 우리가 악으로 악을 갚는 행위를 허락지 않으신 까닭은 우리 자신이 전에 악인이었으나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수 되었던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악하게 행하는 자에게 보복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잘못이 우리에게 있는 경우는, 우리가 먼저 가서 사과하고 서로 화목해야 한다. 잘못이 상대에게 있는 경우에는, 그가 용서를 구하면 언제라도 용서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형제를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셨다(18:22). 그러나 우리가 상대와 화목하기가 불가능한 때도 있을 것이다. 상대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거나 거짓으로 우리를 비난함으로 교제가 끊어졌을 때 무조건 우리가 먼저 화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상대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와의 교제의 회복은 그가 회개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직접 우리의 원수를 갚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원수에게 보복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공의의 심판자이신 그가 우리의 원수를 갚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직접 보복하려 하지 말고 공의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면 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 . .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베풀라”고 말씀하셨다(5:44, 전통본문). 성도가 원수들에게 선을 베푸나 만일 그들이 깨닫고 회개치 않으면 그것은 그들의 머리에 숯불을 쌓는 큰 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우리는 악에게 굴복하지도 말고 또 악으로 악을 갚으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그것은 악한 자에게 끝까지 선하게 대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해야 한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친히 교훈하신 바요 행하신 바이며 스데반 집사도 행한 바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었으나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원수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우리는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가지고 남을 무시하고 이웃과 떨어져 살지 말고,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겸손하게 처신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한다. 믿는 형제들 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도 가능하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우리는 특히 다른 교우를 사랑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악으로 갚지 말고 끝까지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에게 원수 되었고 악을 행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용서하셨다. 우리는 공의의 보응은 하나님께 맡기고 선을 베푸는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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