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고린도전서 2장 좋은 성경 말씀] 영적인 진리(고전 2:1-16)

성령의 능력 2022. 5. 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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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장에서 바울은 사도권의 변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온전한 사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직접 부른 사도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영적인 진리(고전 2:1-16)

 

1-5, 전도의 내용과 방식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증거이다. 그것은 죄사함과 영생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다. 하나님의 증거는 참되며 확실하다. 그것은 인간의 말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하지 않았다. 복음의 진리성은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는 사실에 있지 인간의 달변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은 그 전달 방법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 복음의 가치는 그 내용에 있다. 기독교 복음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전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결심했다. 사람이 복음을 아름다운 말로 단장한다고 복음이 더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효력은 인간의 아름다운 말에 있지 않고 그 내용 자체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된다.

[3-5]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 능력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머물었을 때에 인간적으로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으나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인 바울 자신은 약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 내용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잘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느낄 때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충실히 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며 설교할 때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했다. 여기에 전도자의 바른 자세가 있다. 복음 전도자는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 단순한 복음 전파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신다. 그 능력은 과거에 외적으로 나타난 기적들 뿐만 아니라, 또한 어느 시대나 내면적 변화의 능력, 즉 죄인을 회개시키고 믿게 하는 구원의 능력을 가리킨다.

복음의 성격이 그러하듯이, 성도의 믿음도 사람의 지혜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믿음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를 믿게 하셨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사람의 아름다운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 성령의 역사(役事)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오늘날도 죄인을 구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어느 시대에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었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6-13, 성령으로 깨닫는 진리

[6-7]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온전한 자들이란 구원의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주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 즉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바울은 이미 복음 신앙에 굳게 선 이들 가운데서는 지혜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이 세상의 없어질 정치가들의 지혜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것은 비밀한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해 미리 정하셨고 오랫동안 감취어 있었던 내용이다.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라는 말은 우리의 구원의 목표를 보인다. 우리의 구원의 목표는 영화(榮化) 즉 영광스런 상태의 회복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었다고 본다. 사람의 본래의 형상은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그 영광스러운 형상, 즉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을 잃어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 본래의 영광스러운 상태의 회복을 주시는 것이다.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모든 일들에 대한 완전한 설계자요 계획자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인류 구원의 일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작정하신 방법이다.

[8-9]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이 비밀한 지혜, 감취었던 지혜를 알지 못하였다. 만일 로마 총독 빌라도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죽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영광의 주라고 부른 것은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한다. 그는 초라한 유대인에 불과한 자가 아니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주님이셨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곧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귀나 마음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 곧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사랑하고 죄악 된 삶에 빠져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말씀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을 사모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은 이 세상의 헛되고 죄악된 것들, 곧 돈과 육신의 쾌락과 덧없이 지나가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다.

[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신비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성(神性)을 가지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 모든 것을 아심 즉 전지(全知)의 속성은 하나님만의 속성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기운이나 세력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시다. 그는 무엇을 아시는 분이시다. 인격적 존재가 아닌 것은 무엇을 알 수 없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엇을 지시하기도 하셨고(10:19)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쓸 때 그것을 허락지 않기도 하셨다(16:7). 그는 우리 속에 계시며 우리가 기도할 말을 알지 못할 때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기도 하시고(8:26) 우리가 범죄할 때에 근심하기도 하신다(4:30).

하나님께서 영이시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구별되신 성령에 대해 증거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신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고 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3:16-17). 요한복음 14:16-17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요한복음 15:26에서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 16:7에서도 그는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다.

[12-13]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하나님의 깊은 것도 아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감취었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 진리를 사도들에게 계시해주셨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그가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14:26) 또 그가 오시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장래 일도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16:13). 사도들은 하나님께로 온 영곧 성령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성령께서 주신 진리 곧 영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전한 복음 진리를 다 깨닫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그는 사도들을 통해 주신 신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믿고 구원 얻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의 지혜로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분별할 수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의 도리로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상의 지혜자와 권세자들에게 감취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알았다면 그를 배척하거나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들에게는 지혜를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류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알게 하셨다. 기독교 진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진리이다. 복음 진리의 깨달음과 참된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 즉 성령께서 그들 속에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는 이 지혜와 은혜를 감사하자.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 안에 거하며 만족하지 않고 신비적 체험을 추구하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치우친 생각이다.

2:14-3:4, 세 부류의 사람

[14] 육에 속한 사람(프쉬키코스 안드로포스)[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2:14부터 3:4까지는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육적인 사람이다. ‘육적인’(프쉬키코스)이라는 말은 ‘영적인’(프뉴마티코스)이라는 말과 대조되는 단어로 감각적 성질 즉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육적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일반 사람,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이다. 이단자들도 육적인 자들(프쉬키코이)이다(19).

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고전 1:21) 깨닫지 못하고(3:11)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1:21; 3:18)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1:23).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과 악령들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온갖 죄와 부도덕에 빠져 있다(15:19; 3:12-15; 2:2-3; 4:17-19).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교훈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다. 그는 성령께서 계시하여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15-16] 신령한 자(호 프뉴마티코스)[영적인 사람]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신령한 자영적인 사람이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을 받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이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다. 사람이 중생하고 구원을 받을 때 성령께서 그 속에 들어오시며 그 안에 영원히 거하시고 그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신다. 성도는 성령을 받은 자이다. 주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여 성령을 보내어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제자들 속에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하셨다(14:16-17).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1:13).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오셨다. 바울은 로마서 8:9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고 믿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을 분별하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께서 주신 지식인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욥기 33장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자신을 다 알리지 않으심(욥 33:1-33)

 

[욥기 33장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자신을 다 알리지 않으심(욥 33:1-33)

욥기 33장에서는 엘리후가 욥의 결백에 대해서 책망하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마지막에 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욥이 자기는 의롭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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