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과 찬송가의 관계
기독교의 교회력(The Sacred Calender)이라고 하는 것은 1년을 한 주기(cycle)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 즉 그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또 주로 의식 교회(liturgical churches)에서는 성자(Saints)가 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 그리스도의 덕성을 배우고 기리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제 1 절 교회력의 시작
사람에게는 누구나 특별한 날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날을 기념하고 싶어 하는 깊은 본능이 있는데, 교회력은 바로 인간의 이러한 종교적 내지 심리적인 본능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포함해서 자연 속의 모든 생물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힘에 의하여 둘러 쌓여 있고, 그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빛과 어둠이 반복되고, 일하는 시간과 쉬어야 하는 시간이 있고, 탄생과 성장과 늙음과 죽음이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계절을 감지하고, 생일과 죽은 날을 기념하여 1년을 싸이클로 하여 주기적으로 기억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적이고도 종교적인 본능에다 유대교의 전통이 접목되어 기독교의 교회력은 시작하게 되었다고 본다.
유대교의 명절은 율법에 의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것이 교회력의 기초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시작은 유월절부터이다. 레위기 23장을 보면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6개의 명절이 나오는데 곧 유월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절 그리고 초막절이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온 이후 이 날을 교회력으로 지켰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날이 바로 “농업 신 축제”의 날이었고, 또 그곳의 기후에 따라 비가 일찍 오는 비도 있고 늦게 오는 비가 있어서 (농사도 두 번 추수하는 모양) 첫 과일 열매로 유월절을 지냈던 것이다. 또 첫 추수로 감사절(초실절이라고 함)을 드린 후 7주가 지난 50일째 (그래서 이날을 칠칠절이라도 함) “나중에 추수한 다른 곡식으로 여호와에게 새 소제를 드려야 한다”(레 23:16)고 하여 칠칠절을 지켰다. 칠칠절이 무교절(the feast of unleavened) 이후 50일 되는 때에 지켰기 때문에 희랍어의 “50”을 의미하는 Pentecost 곧 성령강림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독교를 역사의 종교라고 한다. 역사 속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들이 많이 있고, 그 사건들은 1년을 주기로 재현시켜 반복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본능이다. 따라서 유대교는 율법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해서 매 7일마다 안식일을 지킨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매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고 이날을 지킨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적인 사건은 출애굽 사건이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지킨다. 공교롭게도 유대교의 유월절은 기독교의 부활절과 그 시기가 같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유대인들이 지키는 오순절도 자연히 기독교의 오순절과 같은 기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부활주일 이후 50일이 되는 날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나시어 기독교에서는 성령강림 주일을 부활 후 7주가 되는 주일에 지키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유월절 후 50일을 맥추 감사절로 지키는 동시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율법을 주시는 것과 성령을 주시는 것과는 신학적으로 또 하나의 좋은 대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약탈되어 이방신을 섬기게 되어 더럽혀진 성전을 마카베오 유다 장군이 이방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성전을 되찾아 이를 재건하고, 깨끗이 한 다음 성전 재 봉헌식을 드렸다. 그것이 유대 월력 아홉 번째 달인 Chislev(오늘의 12월)의 25일이었다. 그들은 이 날을 하누카(Hanukkah)라고 해서 축제를 갖는데 이것 역시 우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시기에 온다. 유대인들이 갖는 감사절인 장막절은 9월에 있으나 기독교에서도 비록 그 날짜는 다를 지라도 감사절을 지킨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역사의 종교이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로 이루어진 특별한 날을 무시할 수 없고 이들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력은 1년이라고 하는 싸이클 (cycle)을 통하여 우리 주님의 구속 사업의 역사적인 날을 기억함으로써 인간 구속 사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우리의 신앙을 더욱 강화하자는데 그 의미가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날을 유대교로부터 전수받았으나 그 후 마리아를 비롯한 많은 성자들의 성일이 교회력에 추가되어 하나님의 인간 구속사의 기념일이 인간들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일로 타락하여 교회력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서 종교개혁자들은 성탄절과 부활절을 제외한 모든 교회력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교회력을 앞장서서 부정했던 사람들이 바로 Scotland의 장로교파 사람들과, 영국의 청교도(Puritan)들이었다. 그 후 Scotland 장로교에서는 교회력에 관한 관심이 다시 커져서, 결국 1940년에는 교회력에 근거한 성서 일과가 담긴 예식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개신교회에서도 차츰 교회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60년 제2 바티칸 공의회가 개신교에게도 공개되고, 초청됨에 따라 천주교의 예배 의식에 까지 개신교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미국 감리교와 장로교회에서 개정한 의식서를 보면 천주교회의 의식으로부터 대단히 큰 영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영향은 천주교회에서 개신교회로 만 온 것이 아니다. 개신교로부터 천주교로 간 영향 또한 지대하다. 우선 천주교는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의 파문을 철회하였고, 그의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천주교의 찬송가로 받아들였으며, 개신교 예배의 중심이 되는 설교가 천주교의 미사에서도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개신교가 교회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첫째 종교 개혁가들이 교회력을 거부했던 이유가 오늘에 와서는 더 이상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정도로 합리화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복음의 선포가 단순히 설교만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식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또한 교회력을 통하여 지키는 교회의 절기를 기념함으로써 인간 구속 역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복음 선포가 설교 이상으로 이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설득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력의 준수와 예배의식의 복구가 복음 선포에 더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개신교에서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 의미를 찾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 2 절 주일 예배
기독교의 주일은 물론 유대교의 전통인 안식일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안식일을 정하셨고, 이 날을 엄숙히 지키라고 십계명을 주시면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유대교는 이 날을 엄숙히 지킨다. 뿐만 아니라 이날을 엄숙히 지키는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할 때 모세가 이집트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나온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더욱 안식일을 지키라고 모세는 호소하였던 것이다. (신 5:15)
이와 같은 율법의 안식일이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구약에 기록된 율법과 안식일과 축일에 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목회와 가르침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율법이 완성되었을 때 “천국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외형적인 법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그 율법의 본래의 중심 사상과 정신과 내용에 충실하라고 했다. 마가복음에서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정신을 잘 드러낸 예수의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안식일의 지배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지배하는 주인임을 선언하셨다. 또한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새 왕국, 새 하늘나라”는 “주일의 첫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시작된다고 믿었다. 이 부활 사건으로 율법이 완성된 것이다. 이로 인해 초대교인들은 매 일요일을 주께서 죄와 죽음에서 승리하신 날로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그날을 거룩한 날로 지켰다. 이상과 같은 근거에서 초대교회는 안식일을 종래의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도들은 계속해서 유대교의 교회력을 지켰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있다가 개종한 새 기독교인들에게는 더 이상 유대교의 교회력이 그들에게 의미와 필요를 주지 않았다. 사도 바울도 유대교의 전통과 교회력을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의 전통과 교회력을 지키든 안 지키든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롬 14:5-9)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가르치면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것이나 명절이나 매월 초하루나 안식일에 관해서 아무도 여러분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6-17)고 말했다.
사도의 시대가 끝나기 전(AD 1세기)까지 교회 신도들의 대부분은 이방인들이었다. 일주일의 첫 날인 일요일을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날로 선정하였다.(행 20:7; 고전 16:2) 2세기의 신학 저술가들은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보고, 이를 유대교와 다른 상징(symbol)으로 삼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주님의 유월절”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이 지난 후에 기념하였다. 또 지방 교회에서는 순교자의 죽은 날을 “영원으로의 탄생일”로 정하고 해마다 이 날을 기념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이야 말로 교회 신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를 증거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인 “주일”은, 곧 그리스도께서 말세에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바로 그날이라고 생각하였고, 우리의 구속자시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이 넘쳐흐르는 약속의 나라로 들어가는 “영원에로의 탄생일”로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일은 교회력의 핵이요, 기본이다. 이날은 일주일의 첫날이요,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막 16:2)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제8일에 함께 모였고, 성만찬을 가졌으며, 얼마 후에는 예배까지 갖게 되었다(요 20:26). 사도 바울도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주일의 첫날에 모임을 갖는 것으로 했고(고전 16:2), 그러한 기록이 사도행전에 나타난다.(행 20:7) 씨리아어(Syriac)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이날을 일요일이라고 했지만 희랍어(Greek)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이날을 “주일”(the Lord's Day)이라고 했고(계 1:10), 라틴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뜻인 “Dominica”라 했다. 150년경 순교자 유스틴(Martyr Justin)은 그의 Apology에서 “기독교인들은 시내에 살든 시골에 살든 모두 해의 날(일요일)에 한 곳에 모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모임을 갖는 이유는 이날이 한 주의 첫날이요, 하나님께서 어두움 가운데 빛을 창조하신 우주 창조의 날이요, 바로 이 주일의 첫날에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사신 날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의 Constantine 황제는 321년 기독교인들의 예배일을 휴일로 선포하였다.
일요일은 성경에서도 대단히 의미 있는 날이다.
①하나님이 빛을 창조한 날이요,
②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만나를 내리신 날이요,
③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인간으로 오신 구세주께서 부활하신 날이요,
④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신 날이다.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에도 주일을 지키는 것은 엄격했다. 많은 순교자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의 규칙이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지 않고 살 수 없다” “성찬을 거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주님으로부터 끊어 버리는 것이다. 주일의 성찬은 주님과 함께 드는 것이요, 형제들과 함께 드는 것이다”라고 증언한 것을 여러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주후 9세기부터 서방교회에서는 성자의 기념일을 지키는 것이 주일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로마교회에 있어서 이와 같은 전통은 오늘에 이르러 더욱 확산되어 굉장히 많은 성자들의 축일을 갖게 되었고, 교황 피우스 10세(St. Pius X: 1835-1914)는 1911년부터 성자의 축일을 없애는 운동을 시 작하기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주일의 특수성을 보다 철저히 지켰고, 주일에 갖는 몇 개의 축일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사건과 연관된 것뿐이다. 개신교회에서 갖는 공동예배는 항상 주일에만 갖는다. 따라서 현현일 (Epiphany: 1월 6일이기 때문에 평일에 오는 경우가 많음)과 승천일(Ascension: 부활 후 40일이므로 항상 목요일임)을 해당되는 그날에 지키지 못하고 그날과 가까운 주일에 지킨다. 개신교회에서는 성자들의 축일을 지키지 않는 대신, 특별한 주일을 지키는데 예를 들면, 어린이 주일, 어머니 주일, 교회학교 주일, 성서주일, 성만찬 주일, 3.1절 기념주일, 광복절 기념주일, 교회 창립 주일 등이다. 위에서도 말했거니와 성경과도 관계없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도 관계없는 인간들의 축일이 많아서 이를 부정하기 위하여 교회력을 거부한 개신교회에서, 이번에는 성경과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와 관계없는 어린이 주일, 어머니 주일, 3.1절 기념주일, 광복절 기념주일, 등 세속적인 명절을 교회의 주일 명절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엄밀히 말해 비 성서적이요, 종교개혁자들이 거부해온 천주교의 인간 중심 교회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력을 거부해 왔던 것처럼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한다. 물론 어린이 주일과 어버이 주일을 통해서, 그리고 3.1절 기념예배와 광복절 기념예배, 그리고 6.25 기념예배를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찾는다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3.1절, 6.25, 8.15의 기념예배가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어서 지켜야 한다면 성경을 통해서 지켜지는 교회력은 하나님이 역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 내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와, 어버이, 그리고 3.1절을 기념해야 한다면, 교회력은 더더욱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제 3 절 수요일과 금요일
기독교에서는 수요일에 저녁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감리교인 경우 속회를, 장로교인 경우엔 구역예배를 또는 철야기도회를 갖는다. 이와 같은 전통도 유대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대교에서는 월요일과 목요일을 금식의 날로 정해서 지켜 왔다. 3세기 중엽에 기독교에서도 금식의 날을 수요일과 금요일로 택 했다. 수요일은 주님께서 배반당하신 날이기 때문이고, 금요일은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기 때문이다. 서방교회에서는 금식이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러면서 수요일의 금식이 없어졌다. 다만 사순절 때에만 수요일의 금식과 금요일의 금식이 철저히 지켜졌었다. 현대 기독교에서 수요일에 기도회를 갖고 금요일에 구역예배 또는 속회를 갖는 것과 금요일 철야 기도회를 갖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금식을 하던 전통이 금식 대신에 기도회로 그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제 4 절 부활절의 유래와 풍습
기독교에는 이동 명절과 고정 명절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고정 명절이어서 12월 25일을 고정으로 지키고, 부활절은 이동 명절이어서 매해 그 날짜가 변동된다. 부활절의 날짜가 변동됨에 따라 교회력의 많은 날이 또한 달라진다.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는 336년 또는 354년에 시작되었고, 부활절은 기독교가 시작된 첫 해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명절이 바로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유월절이라고도 말하는데 그 이유는 부활절이 유대교의 유월절과 같은 계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두 명절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흠이 없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유월 (passover)하여 그 집의 장자를 구해 준 것”처럼, 기독교에서는 흠이 없으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가 속죄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죄악의 죽음에서 구원하셨던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안식일까지 죽음 속에서 안식하시다가 안식일을 지내고 일주일의 첫 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심으로써 예수의 제자들은 이날을 “주의 날”이라고 하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매 일요일에 모임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매 일요일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로 주일 모임을 갖게 되었고, 안식일 대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전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는 매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켰고, 부활절을 대 명절로 지켰으며, 매 주일 드리는 주일 예배는 소명 절, 즉 작은 부활절로 지켰던 것이다.
유월절을 영어로 말할 때 유월절의 의미 그대로 Passover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부활절을 영어로 말할 때는 부활의 의미가 없는 Easter라고 한다. 이는 고대 노르웨이語의 Ostara 또는 Eostre에서 유래되었다고 8세기경 영국의 역사
학자 Bade 가 기록하고 있다. Old English에서는 easter 또는 eastre 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은 본래 “봄”이란 뜻으로 “봄의 축제”를 의미했다. (희랍과 라틴어에서는 “Pascha"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Passover”의 뜻인 “Pesah”라고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기념하여 3월 21일 춘분 때 “봄의 축제”를 갖는데 바로 “봄의 축제”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어의 Easter란 말은 기독교의 문화를 토착화시켜 세속문화를 기독교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서양 기독교회에서 부활절에 갖는 풍습을 살펴보면 세속문화가 토착화하여 기독교 문화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부활절이 되면 부활절의 상징으로 토끼 인형(Easter Bunny)이 백화점에 나오고,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또 가정이나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색깔을 입힌 계란을 나누어 주거나 혹은 교회 근방의 잔디나 나무 밑에 숨겨 놓고 찾도록 하는 Egg Hunting의 풍습이 있다. 토끼가 부활절 풍습으로 된 것도 “봄의 축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이유는 모든 짐승 중에서 토끼는 가장 번식률이 크기 때문에 긴 겨울 동안 죽었던 만물이 소생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달걀에 색깔을 입히는 것 역시 겨울 동안 해가 짧았던 북극지방 Norway에서 춘분이 지나자 해가 다시 길어짐으로 인해 태양이 소생하는 의미로 노랗고 빨간 색깔로 태양을 상징하였다. 이것은 또한 북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극광(Aurora)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기독교에서 달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달걀이 각질로 된 딱딱한 죽은 물건과도 같은 물체 속에서 이를 깨고 나오는 새로운 생명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풍습은 모두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고 세속문화가 기독교 문화 속에 들어와 남아 있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간 구속의 역사와는 관계없는 풍습이다. 천주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하여 양을 부활절의 상징으로 삼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으나,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유대교의 상징이라 하여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제 5 절 부활절의 날짜 결정 문제
크리스마스는 항상 12월 25일로 고정해서 지키는데 반하여 부활절은 매해 그 날짜가 바뀌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Babylon 사람들은 본래 음력을 사용했고, 이집트 사람들은 일력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Babylon에 포로가 되어 70년간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음력 사용법을 배워서 그들의 명절을 모두 음력으로 바꾸어 지켜 왔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과 같은 날에 지켰다. 유대 사람들은 이를 한 해의 첫 달(이달을 그들은 Nisan이라고 불렀다) 만월이 되는 저녁부터 지켰다. 그러니까 그들의 월력으로 보면, Nisan 14일(3월 21일: 춘분) 저녁부터 지켰든 것이다. 그러나 2세기 이후 모든 교회에서는 부활절의 축제를 유월절 후에 오는 첫 주일로 바꾸었다. 그러나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옛 그대로 유월절과 부활절을 같은 날로 지키도록 고집하였다. 그러다가 역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모든 교회는 같은 주일에 부활절을 지켜야 한다”라고 칙령을 내려 부활절의
축일을 통일하였다. 오늘날에도 동방교회에서는 서양 구력인 Julian calendar를 사용하고, 서방교회에서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에 의하여 수정된 서양 신력(Gregorian calendar)에 의하여 부활절을 계산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한 달의 차이를 갖는 때도 있다.
유대인들은 춘분(3월 21일)이 지나 첫 번 만월이 되는 날을 유월절로 지켰고, 그 달을 그 해의 첫 달로 계산하였다. 초대 기독교에서도 유대교의 전통과 축제를 모두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유월절도 음력에 기준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활절은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다음 첫 만월이 지나서 오는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킨다. 유대교의 유월절과 기독교의 부활절이 다른 것은 유월절은 요일중 아무 날이나 만월이 되는 날이 유월절인데 반하여 부활절은 평일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일에 지키기로 결정되어 항상 만월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만월 일과 주일이 겹치는 경우에는 유월절과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기독교에서는 그다음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만월일인 유월절을 부활절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며, 또 월력을 계산하는 수학적인 방법이 나라마다 제각기 달랐기 때문에 곳곳에서 지키는 부활절의 축일이 달랐으나 니케아 공의회 때(325)부터 지금과 같이 통일되었다. 따라서 부활절은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오게 된다. 부활절이 고정 축제일이 아니고 이동 축제일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교회 월력의 삼분지 일이 해마다 이동하게 된다. 부활절 70일 전, 즉 칠순절(Septuagesima or Pre-lent)로부터 시작하여 성회일(Ash Wednesday), 사순절(Lent), 종려주일 (Palm Sunday), 고난주간(Passion Week or Holy Week),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 성금요일(Good Friday), 그리고 부활절 후에 오는 승천일 (Ascension), 성령강림 주일 또는 오순절(Whitsunday or Pentecost), 성 삼위일체 주일(Trinity Sunday)등의 날짜가 해마다 바뀌게 된다.
[데살로니가전서 복음 설교말씀] 전도자들의 자세(살전 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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